법원 “남편이 더 나쁘다” 당신의 생각은 어떤가?
KBS <부부클리닉-사랑과 전쟁>의 한 장면.
그런데 5년 전인 2009년 남편 박 씨가 간암 3기 진단을 받으면서 부인 김 씨와 박 씨 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이 생기기 시작했다. 몸이 약해지면서 예민해진 박 씨가 자신을 돌보는 부인에게 짜증을 내는 일이 잦아진 것이다. 하지만 박 씨가 믿고 간병을 부탁할 사람도 김 씨뿐이었다. 건강이 점점 악화되는 것을 느낀 박 씨는 부인에게 요양을 위해 강원도 횡성으로 내려갈 것을 제안했다.
하지만 부인 김 씨는 박 씨의 제안을 거절했다. 김 씨는 늦은 나이였지만 대학원에 진학해 학업을 이어갈 계획이라고 남편에게 설명했다. 남편 박 씨도 김 씨의 굳은 결심에 요양 차 강원도로 내려가자는 제안을 다시 하지 못했다. 박 씨의 서운함은 점점 커져갔다.
그사이 몸과 마음이 지쳐있던 남편 박 씨의 눈에 들어오는 사람이 있었다. 자신이 운영하는 회사에서 근무하던 여직원 임 아무개 씨였다. 박 씨는 자신의 처지를 잘 이해해 주는 임 씨에게 기대기 시작했다. 이혼녀인 임 씨도 직장 대표인 박 씨와 회사 밖에서 어울리는 일이 잦아졌다. 박 씨와 임 씨는 곧 연인으로 발전했다.
박 씨가 요양 차 강원도로 내려갈 때도 내연녀 임 씨가 함께 했다. 2010년 봄부터 박 씨는 임 씨와 함께 자신이 요양할 집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박 씨가 머무를 곳을 정하자 임 씨도 근처 가까운 곳에 거처를 마련했다. 박 씨는 강원도에 머물며 한 달에 한두 차례만 부인이 있는 서울 집을 방문했다.
그렇게 강원도에서 요양을 하며 투병생활을 한 지 1년. 그러나 남편 박 씨의 병세는 차도를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간암은 재발했고 두 차례 항암치료를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결국 박 씨는 강원도 요양생활을 접고 부인 김 씨가 있는 서울 집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두 사람의 사이는 예전 같지 않았다. 부인 김 씨는 건강이 악화되면서 예민해진 남편의 짜증에 지쳐가고 있었다. 박 씨도 부인이 아픈 자신을 외면했다는 생각을 지우지 못하고, 투병 중 차도가 없었던 것을 부인 탓으로 돌렸다.
두 사람의 사이가 파국으로 치닫기 시작하면서 부인 김 씨는 남편 박 씨에게 간 이식을 하기로 한 아들을 말리기도 했다. 군 복무 중이던 아들은 아버지에게 간 공여를 하기로 결심한 상태였다. 하지만 김 씨가 남편의 불륜사실을 아들에게 폭로하며 수술을 말리자 충격을 받은 아들도 간 공여를 포기했다.
박 씨는 아들이 부인의 설득으로 간 공여를 포기했다는 사실을 알고 괘씸한 마음에 수술 직전 자신의 명의로 된 아파트를 자선단체에 기부해 버렸다. 결국 박 씨는 아들이 아닌 조카의 간을 이식받아야 했다.
남편이 아무런 언질도 없이 아파트를 기부했다는 사실에 부인 김 씨도 황당하긴 마찬가지였다. 결국 올해 초 부인 김 씨는 별거 중이던 남편 박 씨와 내연녀 임 씨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최근 법원은 암 투병 중인 남편의 간이식을 막은 아내보다 외도를 한 남편의 귀책사유가 더 크다며 아내의 손을 들어줬다.
서울고법 가사3부(부장 이승영)는 부인 김 씨가 남편 박 씨와 내연녀 임 씨를 상대로 낸 이혼 및 위자료 소송에서 “박 씨와 임 씨는 부인 김 씨에게 위자료 2000만 원을, 박 씨는 부인에게 재산분할로 4억 3900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고 23일 밝혔다. 재판부는 “박 씨가 간암 발병 및 재발을 거듭하고 있는 상황에서 김 씨가 지방으로 내려갈 것을 거절하고 아들의 간 공여를 말려 남편에게 정신적 고통을 준 잘못이 있다”면서도 “부부간의 가장 중요한 정조의무를 저버리고 박 씨가 임 씨와 부정행위를 한 것이 혼인관계 파탄에 결정적인 원인이 됐다”고 판시했다.
법무법인 로메인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부부는 한쪽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이를 돕고 보살필 의무가 있다. 만약 한쪽이 위중한데 병간호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면 이혼의 귀책사유가 되기도 한다”며 “그러나 이번 사건의 경우 남편이 부부가 지켜야 할 가장 중요한 정조의무를 저버렸기 때문에 부인에게 책임을 묻거나 역으로 소송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배해경 기자 ilyoh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