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상’은 미워도 ‘팁’은 달콤했다
▲ 일반 사회와 화류계에서 돈을 버는 방법은 하늘과 땅 차이. 그만큼 화류계 여성들은 새출발을 하고도 이곳으로 다시 돌아오는 일이 빈번하다. 사진제공=heymannews.com | ||
하지만 이는 화류계 여성들의 고민을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생각일 뿐이다. 실제 그녀들은 대부분 겉으로는 웃지만 속으로는 울고 있다. 빚에 쫓기는 경우도 허다하다. 버는 돈이 많은데 왜 빚을 지느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이 역시 그녀들의 속내를 잘 몰라서 하는 말에 불과하다. 때로 화류계 생활을 청산하고 새출발한 뒤에도 다시 돌아오는 경우도 있다. 현역에 있을 때는 ‘지긋지긋’했지만 막상 다른 일을 하려니 적응하기가 쉽지 않아 결국 컴백한다는 것이다. 그녀들의 고백을 통해서 화류계 여성들의 고민을 들어봤다.
C 양(25)은 최근 화류계에서 일을 시작했다. 북창동 인근의 많고 많은 업소 중 한 곳에 들어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초보’는 아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이곳에서 ‘날리던’ 에이스 중의 한 명이었다. 그녀는 이곳을 떠난 지 1년 만에 다시 화류계로 돌아왔다. ‘화류계 여성은 결국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다’는 속설을 입증이라도 하는 것일까. 하지만 그녀에게는 나름대로의 안타까운 사정이 있었다.
“독하게 마음먹고 빚을 청산했다. 고등학교 졸업한 뒤로 화류계에서 일한지 3년이나 됐지만 남은 것은 하나도 없었다. 막 화류계에 입문했을 때는 그 생활이 너무 좋아 들떠서 술 먹고 호빠(호스트바) 다니고 명품들을 샀었다. 하지만 나중에는 그것이 정말 잘못됐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정신 차리고 보니 생활은 피폐해졌고 빚만 늘어나 있었다. 그때부터 독하게 마음먹고 1년간 빚을 갚았다. 주변 친구들한테서 ‘짠순이’라는 말까지 들어가며 정말로 독하게 일했다. 그리고 화류계를 떠났다. 빚 없이 그 생활을 끝내는 내 자신이 대견스러웠다.”
하지만 그렇게 떠난 지 1년 후. 그녀는 자기 발로 다시 화류계의 문을 두드렸다.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홀복을 벗고 캐셔복을 입었다. 한 대형 마트에서 캐셔로 일을 했다. 소원대로 아침에 출근하고 저녁 때 퇴근하는 생활을 할 수 있었다. 해를 본다는 것이 너무 즐거웠다. 하지만 생활은 너무 힘들었다. 한 달에 수백만 원 벌다 90만 원밖에 못 벌었다. 젊었을 때 아무 생각 없이 살았던 내 자신이 후회스럽고 안타까웠다. 조금이라도 돈을 더 벌어볼 생각에 공장으로 직장을 옮겼다. 비록 월급은 150만 원 정도가 됐지만 이것 역시 견디기 힘들었다.”
물론 박봉이지만 자신의 직업에 최선을 다하는 캐셔나 노동자들도 얼마든지 있지만 이미 화류계의 삶을 경험했던, 아니 거기에 길들여져 있는 그녀에게 이들 직업은 전혀 딴 세상의 일이었다. 적은 돈이나마 알뜰하게 모으면서 살아가는 보통사람들의 생활에 그녀는 적응하지 못했다. 결국 돈을 바짝 벌어보고 싶은 욕망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화류계로 돌아왔다는 것.
“다시 화류계에 돌아온 내가 초라해 보이기는 한다. 하지만 이제 나는 과거의 내가 아니다. 만 원짜리 한 장을 아껴 쓰던 시절이 있었기에 돈의 소중함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이제는 호빠도 가지 않고, 명품도 사지 않는다. 지금 나는 겉에는 홀복을 입고 있지만 마음만큼은 캐셔이고 공장 노동자다. 이런 자세로 일을 하면 이제는 진짜 돈을 좀 벌 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 화류계 자체를 싫어하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이 살아가야 하는 공간으로 생각하는 여성도 있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아가씨도 있다. J 양의 이야기다.
J 양의 경우는 그래도 ‘정상적으로’(?) 화류계 생활을 하고 있는 경우다. 상당수의 여성들이 ‘정신 못 차리고’ 살아가는 것에 비하면 그녀는 빚도 없고 돈도 모으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녀가 화류계 생활을 하는 자신의 처지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도 이러한 것들이 바탕이 됐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J 양에 따르면 무언가 ‘목표’를 가지고 있지 않은 ‘나가요 언니들’이 너무 많다고 한다.
“사실 뭔가 하나 딱 제대로 된 목표만 있어도 그렇게 방탕한 생활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처음에는 아무 것도 모른 채 돈에 맛을 들이고, 돈 쓰는 재미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목표가 없으니 눈에 보이는 즐거움이 전부가 돼버린 것이다. 이렇게 되면 당연히 허송세월을 할 수밖에 없다.”
결국 그녀들 스스로가 자신을 그러한 상황에 처하게 만든다고 할 수 있다. 정작 그녀들을 괴롭히는 것은 ‘진상’ 손님이다. 진상 손님을 맞을 때마다 그녀들은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곤 한다는 것이다. 그녀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진상은 어떤 부류일까.
“사실 피아노(몸을 더듬는 손님을 일컫는 말)다 뭐다 해도 제일 진상은 우리들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남성들이다. 피아노는 그냥 참으면 되고, 2차에서 진상을 부려도 뭐 그러려니 하면 된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슴에 상처를 주는 말을 하는 남성들이 제일 싫다. 그럴 때면 정말 이 생활이 더럽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돈 좀 있다고 우리를 벌레보듯 대하고 무시하는 사람들, 돈이면 뭐든지 다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제일 싫다. 솔직히 이런 곳에 오는 사람들치고 돈이 진짜 많은 사람은 별로 없다. 진짜 부자들은 강남 텐프로에 가지 북창동이나 단란주점 같은 데를 왜 오겠는가.”
때로는 같은 동료들의 ‘배신’도 그녀들을 가슴 아프게 한다. G 양은 일수 보증을 서주었다가 돈을 떼인 경우다.
“작년 겨울에 동료가 사정 사정해서 결국에 일수 보증을 서주었다. 하지만 얼마 후 그녀는 호빠 선수와 눈이 맞아서 지방으로 도망가 버렸다. 결국 그 빚은 내 차지가 돼버렸다. 그 빚을 갚으려고 예전보다 더욱 힘들게 일하고 있다. 하루가 일주일처럼 느껴진다. 잡히기만 하면 가만 안둘 생각이지만 잡으러 다닐 시간조차 없다. 이제는 정말이지 아무도 못 믿게 됐다.”
어떤 이들은 화류계 생활을 두고 ‘속빈 강정’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버는 돈은 많지만 실제 이 생활이 끝나고나면 남는 돈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다음은 영업상무 L 씨의 전언이다.
“웨이터로 시작해서 올해로 10년째다. 이곳에서 돈 벌어서 아파트 사서 나간 나가요 언니는 딱 한 명 봤다. 빚 없이 이 생활을 청산하는 것만 해도 행운에 속한다. 그만큼 이곳에서 돈을 벌어 나가기가 쉽지 않다는 이야기다. 물론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시간이 갈수록 씀씀이가 커지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주변에 있는 동료들의 분위기가 그게 아닌데 자기 혼자만 돈을 아끼기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돈을 쉽게 빌릴 수 있는 것도 그녀들이 돈을 헤프게 쓰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물론 그녀들은 정상 금융권에서는 돈을 빌리지 못한다. 하지만 그녀들은 언제든지 원하기만 하면 사채를 끌어 쓸 수가 있다. 그런데 알다시피 이 사채는 한 번 쓰면 헤어나오기 쉽지 않다. 빌린 돈을 한번에 다 갚을 만큼 목돈을 모으기가 어렵기 때문에 계속해서 사채업자들한테 끌려다니게 된다.
나가요 걸의 실상을 모르는 여성들이 유흥업소로 끊임없이 진출하고 있지만 그녀들이 소원대로 돈을 모을 수 있을지에 대해선 유흥업소 관계자들은 한결같이 고개를 저었다. 그녀들이 미래의 자화상으로 그리는 화려한 은퇴는 일반인들이 정기적금 등으로 돈을 모아 아파트를 사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렵고 고달프다고 관계자들은 입을 모았다. 물론 ‘할 일’을 찾지 못해 어쩔 수 없이 유흥가로 내몰리는 여성들도 많지만 이유를 막론하고 한번 발을 들여 놓으면 아무리 벌버둥쳐도 벗어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유흥업소 진출은 신중에 또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그들은 덧붙였다.
구성모 헤이맨뉴스 대표 heymantoday@par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