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어머니 떠나자 일손 놓고 뒤따라
지난 10월 29일 퇴거를 앞둔 서울 동대문구 장안동 주택 1층에 세 들어 살던 최 아무개 씨(68)가 숨진 채 발견됐다. 최 씨는 자살을 결심하고 목을 매기 전 자신의 시신을 수습하러 올 사람들을 위해 돈이 든 봉투를 준비했다. 시신을 수습하느라 수고할 사람들을 위해 국밥 값을 남긴다는 짧은 글귀로 최 씨는 자신의 마지막 유언을 대신했다. 또 다른 봉투에는 자신의 장례비와 전기요금, 수도요금을 넣어두었다. 최 씨가 깨끗한 신권으로 봉투에 넣어 준비한 돈은 모두 176만 원에 달했다.
생활고에 시달리던 독거노인 최 씨가 자신의 시신을 수습하러 올 사람들을 위해 남긴 돈봉투.
최 씨가 살던 집은 전세금 6000만 원인 49.5㎡(15평) 남짓한 주택이었다. 전세금 중 5700만 원은 LH공사로부터 받은 독거노인 전세 지원금이었다. 최 씨는 이곳에서 혼자 홀어머니를 살뜰히 보살폈다. 일정한 직업이 없어 일용직을 전전했지만 국가에서 주는 기초생활수급비와 막노동으로 벌어온 일당으로 그럭저럭 살림을 꾸려나갈 수 있었다.
그런데 최 씨 어머니의 건강이 악화되기 시작했다. 유일한 혈육인 형과도 연락이 끊기고, 결혼도 하지 않았던 최 씨에게 어머니는 유일한 가족이었다. 그러나 병약해진 최 씨 어머니는 결국 지난 7월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홀어머니를 떠나보내고 혼자 남겨진 최 씨는 가끔씩 하던 막노동도 하지 않고 칩거에 들어갔다. 서울 동대문경찰서 관계자는 “최 씨 이웃들에 따르면 최 씨가 어머니를 생각하는 마음이 남달랐다고 한다. 일이 없는 날에는 늘 어머니와 붙어 다녔는데 모친상을 당하면서 상심이 컸다고 한다. 그 와중에도 모친상을 치르는 것을 도와준 이웃들과 경찰을 일일이 찾아가 감사인사를 할 정도였다”고 말했다.
어머니를 떠나보낸 최 씨에게 또 한 번의 시련이 닥쳤다. 집주인이 바뀌면서 “주택을 철거할 계획이니 집을 비워 달라”는 퇴거 요청이 들어온 것이다. 이에 지난 10월 28일 최 씨는 LH공사에 전화를 걸어 “내일 퇴거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퇴거 예정일이던 지난 10월 29일 최 씨는 연락이 닿질 않았다. 이를 이상하게 생각한 LH공사 직원은 경찰에 연락을 했고,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자신의 시신을 수습할 사람들을 위해 국밥 값을 남긴 채 목을 맨 최 씨를 발견했다.
경찰 관계자는 “최 씨가 모친상을 치른 아픔이 치유되기도 전에 살고 있던 집에서 퇴거를 해야 하는 상황이 오자 신변을 비관해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며 “20년 동안 연락이 닿질 않았던 최 씨의 형을 수소문했고 결국 조카와 연락이 닿았다. 최 씨 집에서는 돈이 든 봉투와 당첨되지 않은 복권 등이 발견됐다. 최 씨가 남긴 돈은 모두 조카에게 전달했다. 조카도 처음엔 돈을 받아야 하나 망설였지만 돈을 받아야 고인이 떠나는 길이 한결 편할 것 같다고 판단해 돈을 수령했다”고 말했다.
배해경 기자 ilyoh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