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껑도 열기 전 업체가 ‘뻥끗’
▲ 서울시가 지하도 상가 일반경쟁입찰 등을 추진하자 상인들이“대기업이 상가 관리권을 인수하게 만드는 결고를 초래한다”며 반발하고 있다. 사진은 영등포 지하도.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이들이 오 시장을 고소한 배경은 서울시의 시내 지하도상가 일반경쟁입찰 추진 과정에서 비롯된 특정업체와의 유착 의혹과 관련이 있다.
지난 2008년 4월 서울시는 시내 지하도상가 일반경쟁입찰 방침을 발표했다. 명목은 상가임대차보호법 상의 보호기간(최소 5년)이 끝나 ‘계약기간이 만료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상인들은 수십 차례에 걸쳐 집회를 열며 시의 방침에 강하게 반발했다. 지하도상가는 건설 이후 30여 년 이상 상인들의 임차권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수의계약이 실시돼 왔기 때문에 일방적으로 임대차 계약을 해지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 상인들의 주장이다.
이에 서울시는 올 1월 9일 지하도상가 일반경쟁 입찰 내용을 일부 수정해서 다시 발표했다. 서울시내 29개 지하도상가 중 상권이 활성화된 강남권 상가 5개 지역(강남역·반포터미널 1·2·3구역, 영등포역)에 대해 경쟁입찰을 실시하며 민간위탁을 실시하겠다는 내용이었다. 또 나머지 24개 상가는 3년간 계약 연장을 해주되 양도양수를 금지하는 화해조서 첨부를 조건으로 내걸었다.
서울시는 이에 덧붙여 상권 활성화를 위해 점포별이 아닌 상가 전체에 사업자를 하나씩 선정하고 이 사업자가 개·보수 비용을 부담하는 조건으로 민간위탁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상인들은 민간위탁은 영세한 상가 활성화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미 활성화돼 있는 강남권 상가를 민간에 위탁하는 것은 엄연한 모순이라고 반발했다. 특히 상인들은 서울시의 이러한 방침이 활성화된 강남권 상가 관리권을 대기업이 인수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하고 개·보수 작업을 거치면 이들 대기업이 엄청난 차익을 얻게 된다고 항변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뿔난 상인들의 화를 한층 돋우는 사건이 발생했다. 서울시와 특정 업체의 유착 의혹이 제기될 만한 정황이 포착된 것이다.
문제의 기업은 지하상가 전문운영업체인 D 사다. 발단은 올 초 D 사 대표의 신년사에서 비롯됐다. D 기업의 대표 A 씨는 올 1월 2일 신년사를 통해 지하도상가 민간위탁을 추진하기 위해 자체 TF팀을 구축했으며 지난해 말 서울시장의 최종 결재까지 확인했다고 밝힌 바 있다.
여기서 문제되는 것은 신년사의 시점이다. D 사 A 대표의 신년사가 이뤄진 시점은 1월 2일인데 서울시가 지하도상가 경쟁입찰 추진계획을 발표한 시점은 1월 9일이기 때문이다. 서울시의 정책을 무려 일주일이나 앞서 알았다는 해석이 가능한 것이다. 상인들은 D 사 측이 서울시의 정책방침을 미리 알고 있지 못했다면 이런 내용의 신년사는 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 오세훈 서울시장. | ||
상인연합회 측은 이 신년사가 D 사와 서울시의 유착관계를 증명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며 오세훈 시장과 D 사 대표 A 씨를 검찰에 고소했다.
D 사는 문제가 불거지자 신년사 내용을 수정했다. 그리고 2월 9일 “뜻하지 않게 일부 내용이 과장되고 확대해석돼 서울시 및 서울시시설관리공단의 사업 추진에 오해와 혼란을 불러일으킨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는 해명서를 냈다. D 사 측은 이 해명서를 통해 A 대표의 신년사 중 ‘지하도상가의 민간 위탁으로의 운영방침은 본사가 기울인 노력의 결과’라는 부분을 ‘본사는 수도권 지하도상가의 신규개발 및 리모델링 사업에 참여하고자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이던 중 서울시와 지하도상가 상인 간 임차권 문제가 발생하게 됐고, 서울시에서 제반사항을 고려하여 일부 지하도 상가에 대해 민자유치, 민간 위탁관리 방침을 검토하게 됐음을 알게 됐다’로 말을 바꿨다.
‘서울시 간부, 시설공단 간부들이 본사의 탁월한 관리력을 인정했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2007년부터 2008년 사이 시설관리공단 직원들, 서울시 직원들, 강남역 등 지하도상가 일부 경영주들이 당사의 대구점 또는 부산점을 방문해 당사의 관리 효율성에 대해 인정한 바 있어 직원들을 격려하는 차원에서 표현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서울시 측에서도 “상인연합회에서 말하는 특혜업체 D 사는 서울시가 지하도상가를 관리하는 방안에 대해 학습하고 여러 전문가들과 접촉하는 과정에서 만난 업체들 중 하나일 뿐이다. 인허가 의혹을 제기하는 것은 말도 안된다”며 “서울시는 D 사와 어떤 용역 계약도 한 적이 없다”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상인연합회 측은 물러서지 않고 있다. 특히 서울시가 상인들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잘나가는 강남권 상가의 민간위탁을 강행하는 것은 뭔가 짜여진 각본에 의해 이뤄지고 있다는 냄새를 풍긴다며 강한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상인들은 나아가 추후 단체행동도 불사할 뜻을 밝히고 있다.
상인연합회 관계자는 “서울시와 D 사의 유착관계 의혹은 검찰이 수사해야 할 부분이다. D 사가 TF팀을 구축했는지, TF팀이 실제로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꼭 밝혀져야 한다. 하지만 소장을 제출한지 한 달이 지났지만 아직 아무런 통보가 없다”며 “검찰 조사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우리 측에서도 다른 대책을 마련할 수밖에 없다”는 강경한 입장을 밝혔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