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최악의 악’ 지창욱 “기철-의정 키스신, 저도 보고 비명 질렀어요”

첫 누아르 도전 무색할 정도로 완벽했던 ‘야차’ 면모…“준모-기철 브로맨스 아냐, 약간의 연민이었을 것”

[일요신문] “어렸을 때 선배님들이 하신 누아르 작품을 본 영향이 없을 순 없죠. 저도 늘 한 번 이런 장르를 해봤으면 좋겠단 생각을 해 왔거든요. 그러다 제게 이 작품 제안이 들어오고, 심지어 ‘사나이픽처스’에서 제작한다는 얘길 들으니 진짜 잘 만들어질 수 있겠다 싶더라고요. 일단 이름부터 ‘사나이픽처스’잖아요(웃음).”

배우 지창욱은 디즈니 플러스 오리지널 시리즈 '최악의 악'으로 첫 누아르 도전에 나섰다. 사진=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생애 처음으로 누아르 작품에 도전하게 된 계기를 묻는 질문에 배우 지창욱(36)은 이렇게 말하며 웃음을 터뜨렸다. 한국형 누아르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영화 ‘신세계’(2013)의 제작사에서 만든다는 작품이라니, 고민의 여지가 없을 수밖에 없었다는 게 그의 이야기다. 10월 25일 12부를 마지막으로 종영한 디즈니 플러스(+) 오리지널 시리즈 ‘최악의 악’으로 누아르의 세계에 당당히 입성한 지창욱은 극 중 마약 조직 ‘강남연합’을 일망타진하기 위해 조직 안에 잠입한 형사 박준모 역을 맡아 거칠고 날 선 연기를 선보였다.

“저는 준모와 승호를 두 캐릭터로 나눠 해석하지 않았어요. 그저 ‘박준모’란 경찰이 ‘권승호’의 상황에 놓여있다는 생각으로 연기했죠. 그 상황 안에서 어떻게 하면 긴장감을 유지하면서 더 효과적으로 극대화할 수 있을지 그런 걸 많이 고민했던 기억이 나요. 준모 같은 경우는 처음부터 끝까지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궁지에 몰려 있는데 개인적으로 저는 그게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웃음). 내가 어느 정도까지 감정을 숨기고, 긴장해야 할지 그 흐름과 템포를 감독님과 논의하면서 만들어나갔죠.”

지창욱이 연기한 준모는 강남연합의 보스 정기철(위하준 분)을 잡기 위해 그의 쿠데타에 휘말렸다가 목숨을 잃은 절친 권태호(정재광 분)의 가짜 사촌동생, 권승호를 가장한다. 태호의 죽음에 깊은 죄책감을 가진 기철은 준모의 정체를 의심하고 불신하면서도 그에게 이끌리고, 준모를 위시한 경찰들이 계획한 잇따른 위기 속에서 준모의 도움을 받으며 결국 그를 온전히 신뢰하게 된다. 악인이라면 악인이지만 가슴 아픈 과거로 시청자들의 동정심을 샀던 기철을 이용하는 준모가 오히려 또 다른 악인이 아니냐는 지적에 지창욱은 “준모는 그저 주인공이 마땅히 가져야 한다고 여겨지는 온전한 정의로움이 없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마약조직을 일망타진하기 위해 조직 내로 잠입한 언더커버 '박준모' 역을 연기한 지창욱은 그가 명확한 선도, 악도 아닌 인물이라고 접근했다고 설명했다. 사진=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박준모가 과연 선일까요, 악일까요. 굳이 그런 걸 생각해야 하는 작품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준모는 언더커버일 뿐이고, 자기 할 일을 해 나가는 사람인 거죠. 경찰로서 하지 말아야 하는 행동도 하는데 그걸 정당화하기 위해선 정기철을 무조건 잡아 넣어야 하는 목적을 가진 사람이에요. 그래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주변인을 이간질해 서로를 내치게 만들죠. 자길 괴롭혔던 정배(임성재 분)와 기철이를 이간질시켜서 정배가 떠나갈 때도 ‘들어가십시오’ 그러잖아요, 얄밉게(웃음). 그런 걸 보고 있으면 준모는 사람의 욕망을 보여주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일반적으로 주인공은 착해야 하고, 악랄하면 안 된다는 걸 생각하지 않고 그저 준모가 가진 인간으로서의 선택, 갈등, 욕심만 생각해서 연기했죠.”

비슷한 나이 또래의 두 남성 주연이 나오는 작품엔 감독의 안배든, 시청자들의 자의적인 해석이든 ‘브로맨스’의 기류가 느껴지곤 했다. ‘최악의 악’ 역시 기철이 준모를 대하는 태도나 감정의 변화에서 이런 해석을 할 수 있지 않겠냔 감상이 더러 있었다. 다만 준모의 눈으로 ‘최악의 악’ 세계를 살펴 본 지창욱의 입장에선 그런 감정은 당연히 없었고, 있어서도 안 됐다고.

“연출 의도는 정확히 모르지만 저 개인적으로 준모 입장에서 본다면 브로맨스는 없었다고 생각해요. 기철이의 마음을 얻게 돼도 준모가 기철이에게서 브로맨스를 생각한다는 것 자체를 아예 처음부터 배제했죠. 이 둘 사이에 브로맨스가 과연 있을 수 있을까요. 전 없다고 봐요. 개인적으론 준모가 기철이에게 가진 감정은 브로맨스보단 인간으로서의 약간의 연민이었다는 생각으로 연기했어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시는 시청자들의 입장에선 어느 정도 브로맨스를 기대하실 수도 있겠죠(웃음).”

마약조직 강남연합의 보스 정기철(위하준 분)에게 가진 박준모의 감정에 대해 지창욱은 "브로맨스가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둘 사이에 브로맨스의 싹이 틀 수 없었던 이유엔 지독한 ‘삼각관계’가 있었다. 마약 조직 보스의 첫사랑이 준모의 아내이고, 그 아내는 위기에 처한 남편을 구하기 위해 보스의 연정을 이용한 외도 아닌 외도를 저지른다. 그들의 위험한 관계를 알면서도 지켜볼 수밖에 없는 준모가 기철에게 호감을 느낄 수 없는 게 당연하다는 것. 그러면서도 준모 역시 ‘일’을 위해 중국 마약 조직의 핵심 인물인 해련(김형서 분)에게 접근하면서 이들의 관계는 걷잡을 수 없이 뒤틀리게 된다. 특히 사건의 내막을 모두 알고 있는 유일한 인물이면서도 아내인 의정(임세미 분)과 해련 사이를 갈팡질팡하는 준모의 태도를 두고 여성 시청자들의 비판이 일기도 했는데, 인터뷰를 진행하며 그를 변호하는 시간을 짧게나마 가질 수 있었다.

“해련과 의정이 중 준모는 당연히 의정이를 좋아했을 거예요. 의정이를 지키고 싶어서 시작한 일인데 의정이 때문에 더 틀어지게 됐고, 의정이에 대한 집착으로 모든 관계가 다 어긋나게 된 거죠. 반면 해련에 대한 감정은 선을 왔다 갔다 하는, 그런 찰나의 감정들이 섞여 있었다고 생각해요. 일을 위해 그를 이용하려 한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이 여자를 증오하고 싫어하느냐, 그건 또 아니거든요. 그런 미묘한 선 안에 있는 관계성이었던 거죠. 아마 준모는 의정과 해련 둘이 물에 빠지면 무조건 의정이를 구할걸요(웃음)?”

의정이에 대한 준모의 마음이 진심이란 걸 알았기에 지창욱 역시 기철과 의정의 키스신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는 후일담도 들려줬다. “아마 그때 시청자들이 느끼는 감정과 제 감정이 똑같았을 것”이라는 그는 해련과 준모의 키스신과는 차원이 달랐다며 분노와 웃음을 동시에 터뜨렸다.

준모의 아내 의정(임세미 분)과 기철의 키스신을 방송으로 봤다는 지창욱은 "저도 보고 소리 질렀다"며 웃음을 터뜨렸다. 사진='최악의 악' 스틸컷

“내가 사랑하는 와이프와 내가 잡아야 하는 범죄자가 서로 첫사랑인데, 데이트까지 한대(웃음)! 거기서 느끼는 감정은 모두에게 공통적일 수밖에 없는 거죠. 저도 방송 보고 놀랐어요, 소리 질렀다니까요. 대본으로 볼 땐 이 정도로 충격적이지 않았는데 ‘아니, 키스를 이렇게 한다고? 눈물까지 흘려? 이렇게 애절하다고?’하면서(웃음). 그런데 그 장면이 너무 좋아서, 오히려 해련과 준모의 키스신은 이것과 좀 더 대비되는 모습이어도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둘을 비교해 보시면 의정과 기철의 키스신은 풋풋하고 화면도 환한데 해련과 준모의 키스신은 톤도 어둡고 농도도 짙죠. 그걸 감독님들도 의도하고 찍으신 게 아닌가 싶어요.”

이런 4인 4색의 동상이몽 키스신부터 ‘원 테이크’로 이뤄낸 강렬한 액션신까지 지창욱은 첫 누아르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에 도전했고, 만족할 만한 결과를 이뤘다. 특히 어리바리하고 순박해 보이는 시골 형사에서 야차로 보일 만큼 잔인한 조직원으로의 극명한 변화를 선보이며 한 단계 더 성장했다는 호평을 받기도 했다. 다듬지 않은 것에서 볼 수 있는 완벽함이 있다는 걸 ‘최악의 악’을 통해 알게 됐다는 지창욱이 앞으로 보여줄, 또 다른 날것 그대로의 새 얼굴엔 당연한 기대감이 모인다.

“처음부터 그렇게 콘셉트를 잡기도 했는데 작품 안에서 저를 잘 보시면 제가 최대한 이상하게 찍혀 나오는 걸 알 수 있으실 거예요(웃음). 최대한 날것처럼, 더 거칠어 보이게 얼굴 각도와 조명이 의도적으로 조절돼 있거든요. 저는 그런 장치들이 이 작품에 굉장히 큰 도움이 됐다고 생각해요. 어떻게 보면 생김새보다 연기력이 좀 더 도드라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건 저뿐 아니라 많은 배우들의 목표이자 숙제니까요. 매체에서 만든 제 이미지나 제 선택으로 인해 대중들이 알게 된 이미지를 계속 깨 나가고 싶어요. 남들은 잘 모르겠지만 그러려고 정말 부단히 노력 중이고요(웃음). 그런 면에서 ‘최악의 악’은 정말 제게 큰 도움이 된, 제가 앞으로 변해가는 과정들 중 하나가 된 작품인 거죠.” 

김태원 기자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