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유국의 꿈’ 첫단추 꿸 기회다
북한 서한만(작은 사진)에 거대한 유전이 존재할 가능성이 쭉 제기돼 왔다. 남북 경협사업으로 추진할 수 있을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취항 30주년 맞은 국내 유일 시추선 두성호. 연합뉴스
“평양이 기름더미 위에 올라앉아 있다.”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지난 1998년 10월 평양을 방문하고 돌아오는 길에 남긴 말이다. 당시 정 명예회장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대화 한 자락을 공개하며 남북합작 유전개발 사업 가능성을 제시했다. 물론 이러한 ‘꿈’ 같은 일은 실제 벌어지지 않았다. 아마도 이는 남북경협사에 있어서 가장 가슴을 설레게 하는 장면이었을 것이다.
정말 북한에 석유는 존재할까. 절반은 맞는 말이다. 앞서 정 명예회장이 평양을 다녀오기 1년 전인 1997년 6월, 남포 앞바다 서한만 인근에서 450배럴에 해당하는 원유를 뽑아 올린 사실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경제성과는 관련 없는 시험 시추였다. 원유 생산의 경제성 여부를 떠나 서한만 인근의 ‘유징(유전이 있는 징후)’이 있다는 사실은 확인된 셈이다. 시험 시추 4개월 후, 북한 당국은 일본 도쿄에서 ‘조선유전설명회’를 개최해 “남포 앞바다 일대에 50억에서 430억 배럴 규모의 원유가 매장돼 있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북한의 유전개발을 위한 지질탐사 역사는 상당히 오래됐다. 북한 당국은 1965년 본격적인 지질탐사를 시작했으니, 올해로 딱 반세기의 역사다. 초창기 북한의 지질탐사는 주로 내륙 지역에 집중됐지만 별다른 성과가 없자, 1970년대 들어 해저 탐사에 눈을 돌린다. 1978년엔 1만 4000톤급 시추탐사선인 ‘유성호’를 들여왔다. 그리고 북한 당국은 그 축적된 데이터를 근거로 남포 앞바다 서한만 일대에 유징이 집중됐다는 것을 확인한다.
같은 대륙붕을 끼고 있는 중국의 발해만에서도 중국 당국에 의해 유징이 확인돼 현재 시추가 진행 중이라는 점을 놓고 볼 때, 유징 자체는 상당한 신빙성이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왜 북한의 석유 시추 사업은 지금까지 현실화되지 못하는 것일까, 그리고 지금까지 자원 빈국 한국은 경협 분야에 있어서 왜 시추 사업에 소극적이었던 것일까.
앞서 정주영 명예회장이 언급했듯 한국의 현대아산 외에도 북한은 최근까지 수십 차례에 걸쳐 해외 사업자들과 유전개발 사업을 추진해 왔다. 1978년 독일의 ‘데미넥스’를 시작으로 구 유고연방, 노르웨이, 이란, 호주, 구 소련, 프랑스, 스웨덴, 캐나다, 일본 등 수많은 국가의 시추 사업자들과 유전 탐사 및 시추와 관련한 계약을 맺었지만 실제 결과를 낸 경우는 없다.
그 이유에 대해 한 대북사업기관 관계자는 “유전개발 사업 자체가 철저한 비밀에 부쳐지는 분야라 정확한 내부 사정은 알 수 없다”면서도 “다만 재미 사업가들을 경유해 들어오는 소식에 따르면 유전 자체보다는, 사업성의 문제가 가장 큰 것으로 보인다. 유전개발 사업은 시추업체와 원유국 사이의 분배가 관건이다. 업체들 입장에선 사업성을 위해 어느 정도 이윤이 보장돼야 하지만, 북한 당국과 조율이 쉽지 않은 모양”이라고 추측했다.
두 번째 이유는 북한의 시추 및 탐사 기술의 후진성 문제다. 전략물자 반입 제한국인 북한 입장에서 아무리 해외 시추업체들과 협업을 진행한다고 해도 한계가 있다. 즉, 상당부분은 북한 자체의 탐사 및 시추장비에 의존해야 한다는 것. 한국석유공사 소속 이준범 박사는 자신의 논문을 통해 “북한의 시추 장비는 1970년대에 도입된 것으로 고난도 작업에 한계가 뚜렷하다”며 “첨단 기술이 유입되지 못한 북한은 유전개발에 있어서 뚜렷한 성과를 거두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렇다면 남북경협 분야에 있어서 서한만을 중심으로 한 원유개발 사업은 왜 더딘 것일까. 물론 다른 경협 분야 역시 지난 10년간 남북 당국 간의 갈등 탓에 고전을 면치 못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원유개발 사업은 그 정도가 더욱 심하다. 세계적 탐사 및 시추 기술국인 한국 입장에서 상당히 의외인 점이다.
이와 관련해 한 정유업체 관계자는 “시추 사업은 상품화까지 최소한 10년이 필요하다. 이 10년이라는 기간은 최소한의 수치이며, 다른 경협처럼 중간에 중단되면 재개 자체가 상당히 어렵다. 게다가 (서한만은) 지리적으로 휴전선을 한참 넘어 위치해 있다”며 “사업성을 바라보기엔 너무 큰 위험 부담이 있다”고 지적했다.
재미교포 대북사업가 박찬구 씨는 자신의 저서 <아! 평양>을 통해 “실제 북한 내부에서 석유탐사에 나선 사업자들에 따르면, (사업 자체가) ‘희망적’인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최첨단 기술과 엄청난 자금이 요구되는 상황에서, 정치적으로 불안한 북한 내 석유탐사에 대해 세계의 눈은 냉랭할 수밖에 없다”고 평했다.
앞서의 대북사업기관 관계자는 “원유개발 사업은 외교·군사적으로도 상당히 민감한 문제”라며 “한국 입장에선 최대 동맹국인 미국을 신경 쓸 수밖에 없다. 미국은 이미 유전을 보유한 일부 중동 및 중남미 적대국 때문에 많은 골치를 썩고 있다. 한국의 기업들이 북한의 유전개발에 별 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 데에는 이러한 보이지 않는 외교적 장벽이 있을 수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결국 남북합작 유전개발 사업의 가장 큰 걸림돌은 정치적 문제로 귀결되는 셈이다. 다만,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지난 2007년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비공개 회담에서 ‘서한만 유전개발’과 관련한 말을 꺼냈던 것으로 전해진다. 현재 남북은 이제 막 당국자 회담의 성사를 앞두고 기 싸움을 시작했다. 얽혀있던 실타래가 풀려 남북 정상회담의 테이블에 다시 ‘서한만 유전개발’ 사업이 오를까. 대내외적 장애물이 존재할 뿐, 이론과 가능성은 충분하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