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족들 답 없는 싸움 그 눈물 닦아줄래요’
강윤석 의료수사팀장은 “의료사고는 병을 고치러 갔다가 사망했기에 유족들이 받는 고통은 클 수밖에 없다”며 “책임감을 가지고 수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서울경찰청에 의료수사팀이 생기게 된 배경에는 고 신해철 씨 사건이 자리하고 있다. 위장관유착박리술을 받은 지 열흘 만에 신 씨가 사망했고, 그 배경에는 수술 사후 처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의료진의 실수가 있었다. 때문에 의사의 잘못으로 환자가 허망하게 죽을 수 있다는 점을 사람들에게 강하게 각인시켰다.
수사 면에서도 여러 교훈을 남겼다. 전문지식이 필요한 의료사고는 경찰로서도 수사하기 까다로운 영역이다. 때문에 길게는 수년간 답 없는 싸움을 이어가고 있는 유족이 많다. 반면 신해철 씨 사망사건은 발생부터 수사결과 발표까지 5개월이 걸렸다. ‘초고속 수사’라는 게 환자단체 등의 평이었다. 경찰은 이번 사건을 통해 전문인력이 확충되면 수사여건이 훨씬 개선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봤다. 강 팀장은 “일반 의료사고는 일선 경찰서 형사 1명이 전담으로 맡는 게 보통이었다”고 그간의 상황을 설명하며 “의료수사팀이 생겼기 때문에 이제 일반 사건도 조사에 속도가 붙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의료수사팀은 의료현장 경험이 있는 검시조사관을 둬 전문성을 확보했다. 검시조사관으로 참여하게 된 이지연 조사관(45)은 다년간의 실무경험을 갖춘 ‘현장파’다. 팀을 편성할 때 실제 수술실에서 일해 본 경험이 있는 전문인력을 찾았다. 이 조사관은 전직 간호사로 수술실에서 오래 일했으며, 군의관 자격으로 해외파병을 다녀온 경험도 있다.
강 팀장은 “의료사고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차트를 읽는 거다. 이 조사관의 임상경력을 높이 사 함께 일하자고 청했다. 모든 사건에 현장출동을 해 능력을 발휘한다”고 설명했다. 나머지 수사관 역시 평소 의료사고에 관심이 있고, 과학수사대에서 일했던 경찰들로 꾸려졌다. 또한 전직 간호사 출신의 별도의 인력 풀도 관리하며 필요할 땐 의료수사팀이 지원요청을 한다.
검시관이 있다고 해서 수사관들도 공부를 게을리 할 수 없다. 강 팀장은 “검시관이 있다고 하지만 형사들도 전문지식이 있어야 수사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방법은 없다. 꾸준한 공부와 현장경험 쌓기가 해답”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역대 의료사고 관련 판례를 모두 수집해 하나하나 확인했다. 틈틈이 관련 서적을 읽으며 의학용어나 전문지식을 익히기도 한다. 강 팀장은 “어떤 수사든 현장 감각이 중요하다. 많은 케이스를 접하면서 ‘의사들의 세계’랄까, 의료현장의 생리를 파악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지방경찰청
의료수사팀에서 전담해 진행하고 있는 사건은 현재 3건이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다. 서울시내 31개 경찰서에 접수되는 모든 의료사고가 수사팀 8명의 손을 거쳐 간다. 서울에서 접수되는 의료사고가 1년 평균 140여 건이라고 하니, 1주일에 3건꼴인 셈이다. 강 팀장은 “일선 경찰서에서 접수되는 사건은 일단 다 현장에 나간다. 초동에 일선 형사와 같이 차트, CCTV 등을 확인하고 필요하면 부검도 참관한다. 중간 결과를 놓고 의료수사팀이 직접 맡을지, 현장지원만 할지를 결정한다”고 설명했다.
수사팀 발족 소식이 보도되자 팀에는 매일 전화가 걸려온다. 의료사고로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 안타까운 마음에 직접 전화를 하는 것. 강 팀장은 “구구절절한 사연이 참 많다. 마음 같아선 모두 수사하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에 잘 설명하고 위로를 전한다”며 안타까워했다. 초동대응이 중요한 의료사고의 특성 상 시간이 오래 지난 사건은 재수사가 거의 불가능하다. 새로운 증거를 확보할 가능성이 희박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수사팀은 발족 이후 발생한 사건에 한해서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갑작스레 병원에서 가족이 사망할 경우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강 팀장에게 물었다. “일단 차트를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시간이 지나면 자료가 사라지거나 조작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또 경찰은 법원에서 영장을 받아야 차트를 확보할 수 있지만, 보호자는 병원에 요구하면 바로 자료를 받을 수 있다. 원칙적으로 이해당사자인 보호자가 요구할 때 의료기관은 바로 차트를 제공해야 한다. 또한 처치를 옆에서 지켜보다가 특이사항이 있다면 메모하고 수사관과 충분히 얘기를 하는 게 중요하다.
의료수사팀 발족으로 현장에서도 긴장하고 있는 눈치다. 지금까진 ‘정보 불균형’의 상태에서 의료진이 우위를 점했지만, 수사팀 발족으로 이런 불균형이 어느 정도 해소될 것이기 때문이다. 강 팀장은 “유족이 의료사고라고 소송을 걸면 병원 측에서도 골치 아프긴 마찬가지다. 수사팀이 명백하게 사실 여부를 가리면 병원도 수혜자가 될 수 있지 않겠냐”며 “적극적인 수사 협조가 있으면 서로 윈윈(win-win)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현장에서 겪는 애로사항은 없을까. “검찰이나 법원에서도 호의적이고, 수사를 의뢰하는 피해가족도 전문팀이 수사하면 좋아한다”며 웃었다. 하지만 아직 남아있는 경찰 수사에 대한 불신이 어려운 점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지금까지 의료사고는 대한의사협회에 감정촉탁을 맡겨 전문성을 확보했다. 하지만 유족 입장에서는 “가재는 게 편 아니겠냐”며 의협의 감정 결과에 대해 불만을 가졌다. 강 팀장은 “검시관이 있다고 해도 전문가의 감정을 아예 안 받을 수는 없다. 다양한 단체의 감정을 받고, 경찰 내 전문 인력을 적극 활용하는 방향으로 개선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강 팀장은 인터뷰를 마치며 “의료사고는 사연 없는 사건이 없다. 병을 고치러 갔다가 사망했기에 유족들이 받는 고통은 특히 크다. 비슷한 사건이 발생하지 않게 뛰는데 느끼는 책임감이 크다. 유족도 의료진도 경찰을 믿고 응원했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
서윤심 기자 hear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