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촉사고’ 막으려다 ‘끓는다 끓어’
# 엑소 이어 레드벨벳까지…인기 탓? 안전사고 무방비 노출
최정상 인기그룹 엑소의 매니저 A 씨(34)가 팬의 머리를 가격한 혐의(상해)로 벌금 100만 원을 선고받았다. 인천지법 형사14단독 김성진 판사는 4월 29일 SM엔터테인먼트(SM) 소속 A 씨에게 벌금형을 선고하며 “사건이 일어난 당시 증거를 종합하면 팬을 때린 혐의가 인정된다”고 밝혔다.
A 씨는 지난해 8월 19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탑승동 지하 1층 셔틀트레인 승차장에서 엑소 멤버들과 함께 서 있던 중 사진을 찍으려는 팬 B 씨의 뒷머리를 한 차례 때린 혐의다. B 씨는 엑소 멤버들을 찍으려고 카메라를 들고 있다가 느닷없이 A 씨에게 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이 과정에서 들고 있던 카메라에 얼굴을 부딪혔고 타박상으로 전치 2주의 부상을 입은 것으로도 알려졌다. 재판 과정에서 A 씨는 “B 씨의 얼굴조차 기억나지 않는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레드벨벳 매니저가 몰려든 팬들을 제지하려다 욕설을 쏟아내는 모습이 동영상으로 촬영돼 구설수에 올랐다. 배경 사진은 아이돌그룹 멤버가 출연한 영화 행사에 몰려든 팬들.
비슷한 일은 최근에 또 일어났다. 이달 초 SM 소속의 신인 걸그룹 레드벨벳이 KBS <뮤직뱅크>에 출연을 마치고 방송사를 나서던 도중 팬들이 몰려들며 일대 혼잡이 빚어졌다. 팬들을 제지하려던 담당 매니저는 팬들을 향해 고함과 막말, 욕설을 쏟아냈고 이 모습은 팬들이 촬영한 동영상에 고스란히 담겨 각종 게시판을 통해 급속히 퍼졌다. 편집돼 올려진 동영상만 보면 당시의 상황이 얼마나 ‘험악’했는지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엑소와 레드벨벳이 소속된 SM은 국내에서 첫 손에 꼽히는 아이돌 그룹 보유 회사다. 1990년대 중반 H.O.T를 시작으로 동방신기와 슈퍼주니어를 거쳐 엑소까지 시기 별로 인기 아이돌 그룹을 배출해온 노하우를 갖추고 있다. 그런데도 팬 관리에 있어서는 미숙한 대응으로 연일 눈총을 받고 있다.
# 갈수록 견고해지는 팬덤…매니저 상대 안전교육 진행하기도
엑소와 레드벨벳의 매니저들과 팬들 사이에 발생한 갈등은 사실 아이돌 그룹이 처음 배출되던 때부터 존재하던 고질병과 같은 문제였다. 1990년대 인기를 얻은 H.O.T와 젝스키스가 음악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날이면 해당 방송사 주변은 몰려든 팬들로 인해 치열한 몸싸움까지 벌어졌다. 접촉 사고 위험까지 제기되자, 이후 경호원이 배치되기도 했지만 팬들을 막아내기는 역부족이었다. 한때 모 아이돌 가수가 탄 차량이 팬들의 힘에 밀려 넘어지는 사고까지 있었다.
물론 이에 대처하기 위해 각 연예기획사는 자구책을 내놓고 있다. 실제로 아이돌 그룹이 대거 포진한 SM을 비롯해 YG엔터테인먼트, 큐브엔터테인먼트 등은 매니저들을 대상으로 팬들과의 몸싸움에 대처하는 안전 교육 등을 수시로 진행하고 있다. 각 회사 차원에서 팬클럽을 통해 자제를 요청하기도 한다. 하지만 매니저들이 현장에서 느끼는 ‘위기감’은 예상보다 강도가 세다. 특히 걸 그룹보다 남성 그룹을 향한 팬들의 위력은 강하다.
한 아이돌 그룹을 담당하는 매니저는 “한꺼번에 팬들이 몰려들 때 느끼는 위기감은 겪어보지 않으면 짐작하기 어렵다”며 “아무리 주의를 당부해도 한껏 흥분해 있는 팬들을 자제시키기는 역부족이다.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거나 팔을 휘둘러 가수를 보호할 때가 많다”고 말했다. 이런 이유로 인해 최근에는 경호원 출신이나 대학에서 체육을 전공한 이들을 매니저로 채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 극성 ‘사생팬’…매니저와 갈등 심화
팬들과 매니저의 충돌이 더욱 잦아지는 또 하나의 이유는 ‘사생팬’에 있다. 스타의 사생활까지 쫓아다니는 팬을 지칭하는 ‘사생팬’은 심지어 도청은 물론 연예인의 집에 침입해 몰래카메라를 설치해놓기까지 한다. 집 앞에 진을 치고 밤을 새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공포심에 떨어야 하는 아이돌 스타로서는 가장 먼저 매니저에게 도움을 청할 수밖에 없고,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물리적인 충돌까지 빚어지고 있다. 일부 극성팬은 스타의 개인 정보까지 파헤치고 있다.
그렇다고 갈등의 원인을 전적으로 팬들에게 넘길 수도 없다. 아이돌 가수를 쫓는 팬들이 거의 대부분 10대 청소년이기 때문이다. 미성년자인 이들은 스타를 향해 맹목적인 관심을 보일 수밖에 없다. 이들을 대하는 아이돌 그룹의 매니저들은 더욱 신중하고 책임감 있는 태도가 요구된다는 지적이 높다.
한 매니지먼트사 대표는 “미성년자 팬들은 쉽게 컨트롤되지 않는 면이 있다. 하지만 흥분한 팬들을 막말이나 힘으로 제압하는 건 엄연한 불법”이라며 “스타와 팬들이 가깝게 접촉하는 기회를 최대한 줄여 안전사고의 위험부터 방지해야 한다”고 짚었다.
이해리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