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찬 대신 현찰 달라’ 당당 뻔뻔 스타도
역대 톱스타 커플 중 가장 소박한 결혼식을 올린 원빈-이나영. 근처 농가에서 빌린 국수 삶을 솥단지만이 유일한 협찬품이다. 사진제공=이든나인
이나영이 입은 웨딩드레스는 디자이너 지춘희가 만들었지만 협찬은 아니었다. 평소 지춘희와 친분이 있는 원빈이 결혼식을 준비하며 의뢰한 것으로 알려졌다.
두 사람은 CF 스타다. 광고업계가 열광하는 이들이란 의미다. 그들이 결혼식을 올린다고 선언했다면 협찬을 하겠다고 나서는 업체들이 줄을 섰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모든 협찬을 거부했다. 아니, 엄밀히 말해 결혼식이 끝난 후 두 사람이 결혼했다는 것이 알려졌기 때문에 협찬을 제안할 겨를도 없었다. 협찬을 거절한 것이 아니라 협찬 제안을 원천봉쇄한 셈이다. 이런 그들의 결혼식을 여론과 언론은 ‘스몰 웨딩(small wedding)’이라 명명했다.
이 개념을 대중들에게 가장 먼저 알린 주인공은 가수 이효리 이상순 부부였다. 두 사람은 2013년 8월 제주도에서 결혼식을 치렀다. 대한민국 최고의 섹시 스타이자 패셔니스타인 이효리의 결혼식은 일거수일투족이 관심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는 제주도에 신혼집을 짓고 이곳에서 가족, 친지, 지인 등 소수만 초대해 ‘그들만의 잔치’를 벌였다. 흔하게 볼 수 있는 스타 하객 사진과 결혼식 축하 사진은 없었지만 부부가 함께 자전거를 타는 등 자유분방하게 즐기는 결혼식 사진이 공개돼 대중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스몰 웨딩으로 화제를 모은 김무열-윤승아(왼쪽), 이상순-이효리 부부.
그 바통은 가수 조정치 정인 커플이 이어받았다. 오랜 기간 공개 교제를 해 온 두 사람은 2013년 11월 조용히 혼인신고를 한 후 지리산으로 여행을 떠나 신혼여행을 겸한 소박한 결혼식을 올렸다.
지난 4월에는 배우 윤승아 김무열 커플의 결혼식이 화제를 모았다. 지금도 포털사이트에 두 사람의 이름을 치면 ‘남양주’라는 연관 검색어가 나온다. 그들이 경기도 남양주의 한 예식장에서 규모가 크지 않은 야외 결혼식을 치렀기 때문이다.
같은 달에는 방송인 김나영의 결혼 소식이 전해졌다. 중요한 건, 결혼 사실이 공개된 날이 바로 김나영의 결혼식 당일이었다. 게다가 그는 제주도에서 지인 몇 명만을 초대한 후 혼인서약을 했다. 이 자리에는 김나영과 절친한 배우 서영희가 연예인 중 유일하게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언급된 결혼식 모두 장소부터 남다르다. 통상 스타의 결혼식장하면 서울 시내의 유명 호텔을 먼저 떠올린다. 그들이 어떤 호텔에서 결혼을 하고, 어디로 신혼여행을 다녀온 후 어느 지역에서 신접살림을 시작하느냐는 것이 결혼 보도의 공식이었다. 그들이 사용한 장소는 결혼을 앞둔 예비부부들의 명소가 되고, 스타가 입은 웨딩드레스는 ‘○○○ 웨딩드레스’라는 별명이 붙으며 엄청난 프리미엄을 누렸다.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스타들은 대부분 협찬으로 제공받은 많은 것들이 대중에게는 고가의 상품으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한 웨딩 플래너는 “스타들에게 협찬을 하며 돈을 받지 않기 때문에 업체가 떠안는 손해는 스타와 같은 결혼식을 원하는 예비부부들에게 전가된다”며 “유명 스타 부부가 결혼식 때 사용한 물품은 가격 프리미엄이 붙어 통상적으로 더 비쌀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런 내막이 알려지면서 스타들의 호화 결혼식은 대중의 선망의 대상에서 지탄의 대상으로 탈바꿈하기 시작했다. 허례허식과 겉치레를 부추긴다는 따가운 지적도 이어졌다. 이후 톱스타들의 경우 ‘협찬 없는 결혼식’을 선언하며 실속보다는 명분을 챙기는 사례가 많아졌다.
한 연예기획사 대표는 “유부남, 유부녀가 되면 결혼 전보다 팬덤이 줄어들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호화 결혼식까지 도마에 오르며 이미지가 나빠지면 향후 CF 시장에서 배제되기 쉽다”며 “하지만 대중의 지지를 받는 결혼식을 통해 긍정적 이미지를 쌓으면 결혼 후에도 가전제품, 세제 등 주부층을 대상으로 한 광고 시장을 공략할 수 있다”고 전했다.
협찬 없는 웨딩이 마냥 핑크빛은 아니다. 몇몇 연예인의 경우 무리하게 협찬을 받으려다가 실패해 얼굴을 붉힌 후 마치 협찬을 받지 않고 결혼식을 하는 것처럼 둔갑시킨 경우도 있다. 여배우 A의 경우 자신의 결혼을 진행한 웨딩 업체의 지원이 뒤늦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지불하기로 약속했던 최소의 비용조차 주지 않고 잠수를 타버렸다. A의 결혼을 준비했던 웨딩 플래너 B는 “물품 협찬은 원치 않고 현금을 달라고 당당히 요구하는 연예인도 있었다”며 “겉으로는 협찬 없는 결혼식이라고 홍보한 후 뒷돈만 챙기겠다는 꼼수”라고 꼬집었다.
‘비공개 결혼식’을 선언한 후 친분이 있는 방송 제작진과 따로 거래하는 경우도 있다. 대규모 연예인 하객을 부르지 않은 C의 결혼식은 아기자기하게 꾸민 하우스 웨딩 사진이 공개되며 화제를 모았지만 이후 그가 결혼식을 준비하는 과정이 한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구체적으로 소개됐다. “개인사인 만큼 조용히 결혼식을 치르고 소박하게 살고 싶었다”던 C는 결혼 후 고급스러운 신혼집까지 방송에 노출시키며 적극적으로 자신을 홍보했다.
또 다른 웨딩 플래너는 “요즘은 받을 건 다 받으면서도 겉으로는 협찬을 받지 않은 것처럼 포장해주는 시나리오를 짜주는 방송 제작진이나 업체가 연예인들의 각광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