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신문] 이재원 씨의 어조는 시종일관 조용하고 차분했지만 말엔 강단이 있었다. ‘친탁을 했다’는 자신의 말처럼 할아버지 이시영 선생의 모습이 서려 있는 외모와 곧은 자세부터 기품이 흘렀다. 할아버지에 대한 자부심과 나라 사랑하는 마음은 그 무엇보다 큰 듯 보였다.
“어머니가 시집가서 여관방으로 할아버지를 처음 찾아 뵀을 때 어머니는 눈물을 펑펑 쏟으셨다고 합니다. 거기엔 물론 할아버지의 너무나 초라한 형편에 대한 안쓰러움도 있었죠. 하지만 할아버지의 뜨거운 애국심이 어머니를 더욱 북받치게 했다고 해요. 할아버지는 어머니를 처음 뵀을 때 ‘감시만어(感時漫語)’ 원고 보자기를 안고 계셨어요. ‘이것이 나라다’며 ‘왜놈’에게 뺏길까봐 늘 보자기를 품에 꼭 안고 다니셨던 겁니다.”고 말했다.
‘감시만어’는 이시영 선생이 중국 학자 황염배가 중국인들에게 ‘제 2의 조선이 될지 모른다’는 경계심과 위기의식을 심어주기 위해 지은 ‘조선’이라는 책에 대한 반박을 위해 쓴 책이다. 일본인의 연구와 자료를 바탕으로 쓰여진 탓에 왜곡 기술된 황염배의 ‘조선’을 비판하고 한국사의 독자성을 강조해 한국인의 능력이 우월함을 천명했다.
이와 관련 이 씨는 “역사를 제대로 가르쳐서 젊은이들을 올바른 방향으로 인도해야 합니다”며 조언도 잊지 않았다.
백범 김구, 석오 이동녕, 백암 박은식 선생 등 비교적 잘 알려진 인물들은 물론이고 박찬익, 차리석, 조완구 등 상해 임시 정부 요인들 십여 명의 이름을 술술 외던 이 씨에게 기자가 “저도 석오 선생의 후손입니다”라고 하자 반색하며 이것저것 물어보더니 이시영 선생과 이동녕 선생간 에피소드를 들려주기도 했다.
“석오 선생이라고 하면 특별히 반가워요. 우리 할아버지랑 키와 외모도 비슷하고 성격이나 생각도 비슷해서 얘기가 가장 잘 통하고 제일 친했다고 해요. 늘 붙어 다니셔서 당시 임정에서는 두 분이 동성 연애한다는 말까지 나왔을 정도였다고 해요”라고 회고했다.
이 씨의 할아버지에 대한 자랑은 마지막까지 계속됐다. “할아버지는 요즘 말로 치면 매우 깨어 있는 분이셨어요. 여자들도 공부를 하고, 자기 일을 갖고 경제적으로 자립해야 한다고 늘 말씀하셨어요. 할아버지 말을 듣고 이태영 박사가 얘들을 시어머니에게 맡기고 그때부터 법 공부를 해서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변호사가 됐다고 해요”라고 덧붙였다.
이연호 기자 dew9012@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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