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조’는 원해도 ‘공천’은 안주데요
▲ 아나운서 출신 방송인으로 TV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던 유정현 씨가 18대 총선 중랑갑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해 길거리 유세를 하고 있다. | ||
오랜 기간 방청객이 있는 프로그램을 진행해온 까닭에 일반인들과의 접촉이 어색하진 않다. 오히려 팬들의 사랑을 받으며 방송인으로 지내온 게 유권자의 지지를 받아야 하는 정치인이 되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짧은 선거운동 기간 동안 잠시 쉴 틈도 없이 빡빡한 스케줄을 소화해야 하지만 이 부분 역시 방송인으로 지내오며 어느 정도 몸에 익었다.
다만 거리 유세를 다니며 일반 유권자들을 만나는 과정은 색다른 경험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아내와 가족들이 총출동하는 것도 연예계와 다른 점이다. 아나운서에서 인기 방송인을 거쳐 국회의원 후보로 변신한 한나라당 유정현 후보의 요즘 살아가는 모습이다.
쉽지 않은 선거전이 예상된다. 본래 한나라당 동작갑 지역구에 공천을 신청했다 탈락한 유 후보는 중랑갑 지역구로 전략 공천됐다. 민주당 우세 지역으로 분류되는 중랑갑 지역구지만 탤런트 이순재가 이 지역에서 민자당 공천을 받아 당선됐던 사례가 있어 유 후보가 전략공천된 것. 조선일보와 SBS가 한국갤럽에 의뢰해 3월 26일 실시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유 후보는 25.1%의 지지를 받아 무소속으로 출마한 이상수 전 노동부 장관(25.3%)과 오차범위 내에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지역구의 특성상 다소 불리한 구도였지만 이 전 장관의 무소속 출마로 민주당 임성락 후보(9.9%)와 지지층이 분산되며 치열한 대결구도가 짜여졌다. 유 후보 측은 공천이 늦어져 다소 늦게 지역구에 뛰어들었음에도 오차범위 내의 지지율을 기록해 선거운동 기간 동안 역전이 가능하다는 입장이고, 이 전 장관 측은 이미 지역구 기반이 튼튼한데다 연예인 출신 출마자와 맞대결해 본 경험도 있다며 승리를 자신하고 있다.
경기 용인 수지 지역구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한 한선교 의원은 한나라당 윤건영 비례대표 의원이 오차범위 내에서 박빙의 승부를 보이고 있고, 아나운서 출신으로 17대 중구 국회의원인 박성범 의원의 아내인 자유선진당 신은경 후보는 여론조사 결과 한나라당 나경원 의원에게 다소 밀리는 형국이다. 이 외에도 이계진 의원(강원도 원주시 한나라당 후보), 변웅전 전 의원(충남 서산 태안군 자유선진당 후보), 박용호 전 의원(인천 서구 강화을 무소속 후보) 등도 아나운서 출신 후보자들이다.
▲ 총선 출마한 래퍼 ‘디지’. | ||
이번 총선은 방송국 기자 출신 후보자가 증가한 데 반해 아나운서 출신 후보자가 다소 줄어들고 순수 연예인 출신 후보자는 급감한 게 큰 특징이다. 가장 큰 이유로는 정당마다 계파 다툼이 치열해지며 공천 경쟁이 뜨겁게 달궈졌음이 언급되고 있다. 이런 까닭에 일치감치 한나라당 후보로 총선에 나설 것이라 표명했던 유 후보 역시 지역구 공천 심사에서 탈락한 뒤 힘겹게 전략공천을 받았을 정도다. 내부적으로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외부인인 연예인이 공천 받는 게 쉽지 않아진 것. 한 동안 총선 출마를 심각하게 고민했던 가수 김흥국 역시 정몽준 의원의 만류로 출마 의사를 접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대선 당시 선거 운동에 적극 참여했던 몇몇 연예인들 역시 비슷한 이유로 출마 의사를 포기했다고 한다.
반면 정당이 출마를 요청한 연예인들도 있다. 김혜자 고두심 김장훈 김미화 등의 이름이 거론됐는데 하나같이 각종 선행으로 이미지가 좋은 연예인들이다. 사회 참여 의식도 높은데다 이미지도 좋아 비례대표 내지는 전략공천자로 영입을 시도했던 것. 물론 하나같이 출마 권유를 거절했다. 지금까지는 연예인의 선행이나 사회 참여가 정치권 진출을 위한 몸짓으로 오인되곤 했지만 이제는 순수한 의미로 이런 움직임을 보이는 연예인들이 더 많아진 것.
그렇다고 이대로 폴리테이너의 시대가 마감되는 분위기는 아니다. 다만 이번 총선을 통해 연예인의 유명세만으론 국회의원 당선은커녕 공천 심사를 통과하는 것조차 어려워졌음이 입증된 만큼 꾸준한 준비가 불가피해졌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