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 자꾸 골라… 감독 믿고 가는 거야”
▲ 인터뷰 장소에 직접 오토바이를 몰고 나타난 김창완.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그의 자유로움이 모습에서 그대로 엿보인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김태진(태진): 사극은 이번이 처음인데 처음부터 왕 역할이네요.
김창완(창완): 평소에 사극은 판타지가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었어요. 물론 리얼리티가 있는 드라마도 좋지만 <일지매>는 상상력이 풍부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또 비록 일지매가 허구의 인물을 다루긴 해도 역사적인 사실의 빈 공간을 상상력으로 채우고 싶었다는 감독의 설명에 끌린 부분도 있죠.
태진: <하얀거탑>에 이어 다시 악역인 데 드라마를 보니까 딱히 캐릭터가 악역처럼 보이진 않더군요.
창완: 그렇죠. 사실 악이라는 게 늘 상황 논리잖아요. 그런 느낌이 좋았어요. <하얀거탑> 하면서도 악역이 참 재밌다고 생각했거든요.
태진: 악역은 <하얀거탑>이 처음이었는데 마치 악역 전문 배우를 보는 것처럼 자연스러웠어요. 아무래도 평소 이미지와 상반되는 역할이라 <하얀거탑> 출연이 조금은 부담스러웠을 것 같아요.
창완: 그렇진 않았어요. 어떤 역할이건 드라마에 캐스팅된다는 건 행운이에요. 그래서 드라마에 출연할 땐 작품이나 캐릭터 가리지 않고 스케줄만 겹치지 않으면 들어오는 순서대로 해요. 그러니 들어온 순서가 악역 차례였을 뿐이죠, 뭐.
태진: 정말 고르지 않고 무조건 들어오는 순서대로 출연하시는 거예요?
창완: 제작하는 분이나 감독의 열정을 믿으니까요. 제안받고 출연할까 말까 고민하는 게 오만일 수도 있고.
태진: 그런데도 출연하는 작품마다 호평을 받았어요. 지난해 최고의 드라마라 불린 <하얀거탑>과 <커피프린스 1호점>에 연이어 출연했잖아요.
창완: 하하하~ 그건 행운이죠. 사실 <커피프린스 1호점>을 할 때 다른 사극에서 출연 제안을 받았는데 이미 <못된 사랑> 출연이 예정돼 있어 포기했어요. 그러고 나서 <일지매>에서 제안이 왔는데 왕이네요. 뭐랄까, 둔감증이 가져다 준 행운이죠.
태진: 아무래도 배우로선 악역이 더 매력적이죠?
창완: 그렇진 않아요. 애 딸린 홀아비 역할을 하도 많이 해서 그런지 모나지 않은, 성격이 강하지 않은 역할도 좋아요. 극적인 인물보다도 스쳐지나가는 일상인으로서의 모습이 좋죠.
태진: 인기 가수이자 작곡가에서 돌연 배우를 겸업하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창완: 데뷔작은 황인뢰 감독이 연출한 <바다의 노래>라는 어린이날 특집 2부작 드라마였어요. 그 전에 드라마 OST를 정말 많이 해서 감독들은 많이 알고 있었는데 황 감독이 가장 먼저 캐스팅 제안했죠. 그땐 역할도 로커라 특별히 연기한다는 느낌보다 가수 활동의 연장이라는 생각으로 출연하라는 권유에 승낙했던 거예요. 드라마 OST도 내가 맡았었고.
▲ 퓨전사극 <일지매>(왼쪽)에서 맡은 역할 탓에 수염이 꽤 덥수룩한 김창완. 오른쪽은 인기리에 막 내린 <커피프린스 1호점> 출연 모습. | ||
창완: 글쎄~. 그 뒤로 내로라하는 감독들이 다 나를 캐스팅을 하더라고요. 이관희 감독이 박상원 데뷔작인 <잠들지 않는 나무>에 상원이 형으로 캐스팅했고 다시 황 감독과 <연애의 기초>로 호흡을 맞췄죠. 그 다음은 이창승 감독. 뭐 그렇게 계속 캐스팅되면서 연기를 이어가게 됐어요.
태진: 배우 활동에 반대하는 분들도 많았을 것 같아요.
창완: 산울림 팬들이 연기에 너무 치중하는 거 아니냐며 불만을 털어놓곤 했어요. 다행히 지금은 많이 괜찮아져서 그냥 그러려니 해요. 그땐 동생들도 어처구니없다는 반응이었어요.
태진: 물론 지금도 뛰어난 가수지만 연기활동을 하지 않고 음악에만 몰두했다면 가요계에 더 큰 발자취를 남기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기는 해요.
창완: 아니에요, 안 그래요. 음악이라는 게 굉장히 창발적으로 나오는 것이라 몰입한다고 해서 더 훌륭한 음악이 나오진 않아요.
태진: 이번에 뮤지컬 <반 고흐와 해바라기 소년>에서 음악 감독을 맡았는데 사흘 만에 열네 곡을 모두 쓰셨다고 들었어요. 이런 창작의 원동력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창완: 글쎄~. 지금 와서 곡을 쓸 때를 생각하면 아무 기억도 안나요. 일종의 망각 증세죠. 아마도 싹 잊는 게 장점인 것 같아요. 노래를 만들 때 집중하고 작업 끝나면 그 기억이 싹 잊히거든요. 여운이 없어요. 여운이 많은 곡은 꿰맨 자국이 많은 거나 마찬가지에요. 사람 몸같이 완벽한 곡은 천의무봉(바늘이나 실로 꿰매 만들지 않고 처음부터 그대로 만들어져 있다는 하늘에서 내린 전설적인 옷) 같은 상태에서 만들어지는 거예요.
태진: 사실 저도 선배님 방송 즐겨 듣는 ‘아침 창 식구’(김창완이 DJ를 맡고 있는 <아름다운 이 아침 김창완입니다> 청취자라는 의미)예요. 아침마다 일 나가며 듣는데 숲속에서 라디오 듣는 것처럼 참 편해져요. 라디오 DJ 하시는 건 재미있으세요?
창완: 라디오, 재미있지. 라디오를 하면 청취자하고 늘 함께 있는 것 같아요. 창 밖에 세상이 있지 않고 세상 속에 내가 살아 있는 기분이라고 할까. 데뷔 초창기인 78년부터 DJ를 했기 때문에 라디오는 그냥 나의 일상이에요.
태진: 사실 매일 라디오 DJ를 진행한다는 게 상당한 성실함을 요구하잖아요.
창완: 난 어디 가는 걸 싫어해요. 여행 같은 거. 일상이 파괴되는 걸 귀찮아하거든. 그런 점에서도 라디오가 나의 일상을 지켜주는 버팀목이 돼주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