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발만 잘못 내딛어도‘나락’으로
▲ 사진=임영무 기자 namoo@ilyo.co.kr | ||
연예인들을 우울하게 하는 가장 큰 요인은 ‘인기’다. 문제는 대중적인 사랑이라는 게 부침이 심하다는 데 있다. 국민적인 스타 반열에 올랐다가 순식간에 추락하기도 한다. 이러한 연예계의 생리를 잘 견디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이들도 있다. 1996년 자살한 가수 서지원은 새 앨범 발표를 앞두고 신경안정제 과다 복용으로 숨졌다. 인기에 대한 부담이 자살을 선택한 여러 가지 요인 중에 하나였음을 반증하는 대목이다.
연예계 관계자에 따르면 “최정상에 있는 연예인들조차 인기가 언제 떨어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사로잡혀 있기도 하다”며 “한번 정점에 오른 스타는 화려함을 잃어버렸을 때 깊은 상실감을 겪게 된다”고 전했다. “최진실의 경우 국민적 스타의 자리를 차지했다가 이혼 등으로 추락한 후 다시 재기한 게 사실이지만 언제 다시 추락할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2007년 가수 유니 역시 새 앨범 발표를 앞두고 자신의 자택에서 목을 매 숨졌다. 특히 그는 대중들의 인기가 ‘악플’이라는 화살로 되돌아온 것을 견디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인터넷에서 ‘성형논란’에 휩싸였고 이로 인해 심한 우울증을 겪었다고 한다.
악플은 팬들의 인기를 먹고 사는 연예인들을 괴롭히는 주범으로 통한다. 최진실의 죽음 역시 직·간접적으로 네티즌들의 악플과 관련이 있었다. 고려제일정신과 김진세 원장은 “대중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는 연예인들은 악플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는 특징이 있다”고 전했다. 대중들의 시선이 좋고 나쁨에 따라 연예인들의 감정 상태도 급격히 변한다고 할 수 있다. 악플은 연예인들에게 공공의 적이다. ‘악플러’들은 시도 때도 없이 연예인들을 공격한다. 결혼 이혼 재혼은 물론 사망했을 때도 변함없이 등장한다. 그 내용 역시 거침이 없다. 성형 논란은 기본이고 여자 연예인들의 ‘낙태’에 관한 소문까지 마구 올려댄다. 많은 연예인들이 이 악플 때문에 힘겨워한다.
▲ 돈 악플 루머 등의 스트레스로 우울증에 시달리던 연예인들이 최근 잇따라 자살하고 있다. 사진은 고 안재환(위)과 이은주의 영정. | ||
일반적으로 연예인들은 엄청난 부를 누리고 있다고 여겨지고 있다. 그러나 대중들의 관심이 부침이 많은 만큼 연예인들에게 돈 역시 갑자기 사라지는 거품 같은 존재다. 안재환의 자살은 연예인들의 재산이 대중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화려’하지는 않다는 걸 보여준다. 일부 연예인의 경우 드라마 출연료가 회당 수천만 원, CF 한 편에 몇 억 원 등의 이야기가 들리지만 그 이면에는 그것보다 몇 배나 많은 빚이 있을 수도 있다.
가수 전진은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아버지가 사업을 하다 7억 원을 빚을 진 일이 있었고 이를 다 갚아 통장에 잔고가 없다”고 전한 바 있다. 탤런트 송재호도 지난해 한 월간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영화 제작을 하다 빚을 져 사채를 쓴 일로 심한 고통을 겪었다”고 털어 놓기도 했다. 이혼한 박철과 옥소리는 한때 빚을 갚기 위해 사이가 좋지 않았는데도 동반 CF를 찍었다는 일화가 소개된 적도 있었다.
연예 관계자에 따르면 “연예인들은 안정된 수입처를 마련하기 위해 사업을 벌이는데, 이 일이 잘 안되면 언제든 돈을 다시 벌 수 있다고 생각하고 사채를 빌려 쓰는 것도 주저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렇게 생긴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나 결국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기도 한다.
2005년에 자살한 영화배우 이은주는 유서를 통해 “누구도 원망하고 싶지 않았어. 혼자 버티고 이기려 했는데… 1년 전으로 돌아가고 싶었어. 돈 때문에 참 힘든 세상이야. 나도 돈이 싫어”라는 말을 남겼다. 당시 자살 원인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돈 문제도 하나의 요인이었음을 암시하고 있다.
연예인들은 매우 불규칙적인 생활로 정신적·육체적으로 약해질 대로 약해져 있는 상태에 있는 경우가 많다. 또 멋진 몸매를 유지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 무리한 다이어트를 하기도 한다. 한 정신과 의사는 “이러한 생활습관은 육체적으로도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데, 특히 우울증을 더 심화시키는 요인이 된다”고 밝혔다.
고려제일정신과 김진세 원장은 “절망감, 공격성과 폭력성, 수치심과 굴욕감, 갈등, 이별, 좌절, 경제적 어려움 등이 우울증의 원인이 되고 자살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이러한 일들은 연예인들이 꽤 자주 접하는 어려움들이라고 할 수 있다. 언제나 화려한 모습만을 대중들에게 보여주는 연예인이지만 이들이 무대를 떠나 혼자 있을 때는 매우 무력한 존재가 되는 셈이다.
류인홍 기자 ledh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