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외서도 짜릿한 ‘손맛’ 즐겼나
▲ 그래픽=장영석 기자 zzang@ilyo.co.kr | ||
프로야구 선수들은 어떻게 해서 불법 인터넷 도박의 나락에 빠져들게 되었을까. 프로야구계와 도박의 끈질긴 악연을 살펴봤다.
프로야구계 인사들은 스프링캠프의 3적으로 여자, 술, 도박을 손꼽는다. 그만큼 선수들이 이 세 가지 유혹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 음주 관련 에피소드야 혈기 넘치는 선수들이니까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넘쳐난다. 물론 극히 일부지만 ‘혼빙간음’ 등의 여자 문제로 구설수에 휘말리는 선수들도 있다. 그리고 도박 역시 프로야구계서 쉬쉬하면서도 종종 터져 나오는 문제다. 심지어 9회 우승을 자랑하는 KIA의 전신 해태 선수 출신인 김일권 씨는 80년대 해태의 저력을 “다른 팀이 도박을 즐겼는데 반해 해태 선수들만 예외였던 것”이라고 주장할 정도다.
도박은 중독성이 강하고 집단성까지 갖고 있다. 프로야구계에서 가장 많이 회자되는 사건은 몇 년 전 호주로 전지훈련을 떠났던 팀의 경우다. 전지훈련 초반 재미삼아 선수단이 카지노에 몰려갔다 큰돈을 잃는 일이 벌어졌는데 이후 선수들이 잃은 돈을 다시 따기 위해 계속해서 카지노를 찾은 것. 돈이 다 떨어진 선수는 다른 선수에게 돈을 빌리게 됐고 이런 분위기는 결국 팀워크를 해쳤다. 그러니 다음 시즌 성적 추락은 당연지사.
프로야구는 ‘수읽기’와 ‘머리싸움’이 중시되는 종목이다. 그런 만큼 심심풀이로 하는 고스톱이나 카드 게임 정도는 구단에서도 어느 정도 용인된다. 문제는 이런 심심풀이 수준을 넘어서는 경우다. 도박 빚도 문제다. 한 야구관계자는 “A 선수가 수억 원의 도박 빚으로 힘겨워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런 선수들이 여러 명이다”라고 얘기한다. 최근 LG 오상민 선수도 도박과 관련해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았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이에 대해 LG 구단 관계자는 “삼성에서 방출된 뒤 대구에 연고도 없던 오상민이 심심풀이로 해보라며 접근한 업자들에게 속아 큰 빚을 졌다”면서 “빚 독촉이 계속되자 경찰에 고소해 피해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프로야구계의 더 큰 문제점은 원정경기가 많아 장기간 호텔 생활을 한다는 부분이다. 밤 시간을 알차게 보낼 나름의 취미 생활이 절실한 데 그 틈새를 인터넷 불법 도박이 노리고 있다. <일요신문>에선 2008년 시즌 초반 프로야구 선수들의 원정 경기 이후 숙소 생활을 보도한 바 있다. 경기가 끝나고 호텔로 돌아와 식사를 마치면 밤 11시를 훌쩍 넘긴 시간인데 그 시간에 외출해 술을 마시는 이들이 종종 눈에 띄었고 인근에서 애인을 만나는 선수들도 있었다. 당시 식사를 마치고 룸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한 선수가 다른 선수들에게 몇 호실로 모이라고 얘기를 했었다. 지갑을 챙겨오라고 한 걸 보면 방에 모여 가볍게 고스톱이나 카드를 치자고 하는 약속같아 보였다. 그러나 숙소에서의 도박은 판돈이 작은 심심풀이 수준이라는 게 야구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요즘 선수들에게 노트북은 원정 경기 필수품이다. 기사를 검색하고 미니홈피를 업데이트하고, 인터넷으로 바둑이나 장기 등을 두는가 하면 몇몇 선수들은 인터넷 도박을 하기도 한다. 심지어 동료 선수들의 눈을 피해 호텔 인근 PC방을 찾아 인터넷 도박에 빠져드는 선수도 있다는 소문이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한 야구관계자는 “이번에 문제가 된 것은 비교적 큰돈을 도박에 쓴 일부 선수들일 뿐 상당히 많은 선수들이 인터넷 도박에 빠져 있다”면서 “선수들끼리 불법 도박 사이트 주소를 공유하는 등 유행처럼 번져나가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던 게 사실”이라고 얘기한다.
현재 불법 도박 혐의가 있는 것으로 알려진 선수들은 대부분 혐의를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구단 역시 우선은 선수들의 말을 믿고 차분히 검찰 수사 결과를 기다린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곧 검찰의 본격적인 소환이 이뤄질 것으로 보여 그 파장이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