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금융 난항 겪자 ‘일본 지우기’ 대작전
서울 용산구 한 빌딩에 아프로서비스그룹의 OK저축은행, 러시앤캐시, 미즈사랑 등이 입점한 모습. 왼쪽은 최윤 회장.
지난 4월, 러시앤캐시와 OK저축은행으로 잘 알려진 아프로서비스그룹 최윤 회장은 폴란드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에서 열리는 현지 1호 법인 개업식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최 회장은 폴란드를 교두보로 동유럽 국가를 비롯해 유럽으로 사업 영역을 확대해 나가겠다는 계획이다. 국내외 금융사를 인수·합병(M&A)해 글로벌 종합금융사로 행보를 넓히겠다는 청사진도 세워두고 있다. 최 회장은 개업식에서 “글로벌 종합소비자금융그룹으로 나아가는 데 투자와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야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하지만 최 회장의 이런 청사진은 국내에서 계속 제동이 걸리고 있다. 아프로서비스그룹은 최근 LIG투자증권, 씨티캐피탈, KT캐피탈 등 굵직한 금융사 M&A에 도전장을 냈지만 모두 고배를 마셨다. 그 중에서도 씨티캐피탈 인수 실패는 아프로서비스그룹에 대한 일종의 편견이나 선입견이 작용했다는 점에서 뼈아프다.
아프로서비스그룹은 지난 5월 한국씨티은행 계열인 씨티캐피탈 매각을 위한 우선협상자로 선정됐다. 6개월여 동안 실사 등의 절차를 마친 한국씨티은행은 지난 10월 5일 이사회를 열고 ‘한국씨티그룹캐피탈 매각 승인건’에 대해 결의했다. 이에 따라 씨티은행이 보유한 씨티캐피탈 주식 100%는 아프로서비스그룹에 넘어가게 됐다.
그런데 돌발변수가 튀어나왔다. 씨티캐피탈노동조합이 아프로서비스그룹에 매각되는 것을 반대하면서 이사회 의결이 최종 부결됐다. 이사회가 매각을 결의하면서 노조와 합의를 전제조건으로 명시한 게 걸림돌이 됐다. 당시 이사회는 “한국씨티그룹캐피탈과 노동조합 간 매각과 관련 사항에 대한 서면 합의가 이뤄지는 것을 전제로 한다”며 “상기 계약이 성사되지 못할 경우 회사의 청산에 필요한 절차를 밟을 것”이라고 조건을 달았다.
금융권에서는 씨티캐피탈 노조가 일본계와 대부업 자본 등의 이미지 때문에 아프로서비스그룹의 인수를 거부한 것으로 보고 있다. 씨티캐피탈의 경우 그룹의 주력 계열사는 아니지만 글로벌 금융사의 일원이라는 자부심이 상당한 만큼 아프로서비스그룹의 이미지에 거부감을 느꼈을 것이란 분석이다.
아프로서비스그룹 폴란드 현지 1호 법인 개업식 모습.
씨티캐피탈 인수 실패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인 10월 말에는 아프로서비스그룹 계열인 러시앤캐시가 조만간 있을 LIG투자증권 본입찰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LIG투자증권은 KB금융그룹에 인수돼 KB손해보험으로 이름이 바뀐 LIG손해보험 계열사로, 증권가에서는 꽤 매력적인 매물로 꼽힌다.
KB손보가 보유한 LIG증권 지분은 82.35%로 예상 매각가는 1500억 원 수준으로 평가된다. 브랜드나 증권업계 위치를 고려할 때 비교적 합리적인 가격이지만, 러시앤캐시는 인수 가격을 이유로 본입찰 참여를 포기한 것으로 전해진다. 금융권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인수 가격은 이미 예비입찰 단계에서 예측이 됐는데도 뒤늦게 가격을 이유로 발을 빼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는 반응이다. 러시앤캐시는 이미 예비입찰에 참가한 터다.
공을 들였지만 실패했던 과거 사례와 달리 이번에는 러시앤캐시 스스로 입찰을 포기하자 금융권에서는 ‘뭔가 의심스럽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경쟁사나 업계 정보만 얻기 위해 입찰에 참여했다는 지적이 나오기 시작한 것. 제도권 금융사 한 관계자는 “아프로서비스그룹이 인수전에 뛰어들기만 하고 의외로 적극적이지 않은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안다”면서 “확고한 인수 의지 없이 정보수집 차원에서 경쟁에 참여한 것 같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고 귀띔했다.
금융업계에서는 아프로서비스그룹의 계속되는 인수 실패는 부정적 이미지 때문에 겪는 고난의 일면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아프로서비스그룹은 과거 저축은행 인수를 시도할 때부터 일본계와 대부업이라는 꼬리표 때문에 제도권 진입에 어려움을 겪어왔다. 2007년에는 저축은행업에 진출하기 위해 당시 예한울·부산중앙·프라임·파랑새 저축은행 등 인수에 나섰으나 모두 실패했다. 캐피탈사와 관련, 동부·아주·KT캐피탈 인수전도 예외 없이 무산됐다. 올해 들어서는 공평저축은행과 리딩투자증권 인수전에서도 고배를 마셨다.
‘출신성분’이 발목을 잡는 형국이 계속되자 최윤 회장은 최근 결단을 내린 것으로 전해진다. 일본계라는 족쇄를 벗어던지기 위해 수백억 원의 자금을 들여 주요 계열사를 한국 회사로 바꾸는 작업에 착수한 것.
아프로서비스그룹은 일본 J&K캐피탈이 소유한 러시앤캐시·미즈사랑·원캐싱, 3개 대부업체의 지분과 사업권을 신설 한국법인에 넘겼다. 러시앤캐시 소유권 이전은 올해 안으로 마무리될 예정이고, 미즈사랑과 원캐싱 지분은 오는 2016년 자회사 아프로파이낸셜로 넘어온다. 업계에서는 아프로서비스그룹의 지배구조 개편 작업에 약 600억 원의 비용이 필요할 것으로 보고 있다.
재일교포인 최 회장은 2004년 일본 대부업체 A&O그룹을 인수해 대부업을 시작한 뒤 2007년 러시앤캐시를 통해 한국에 들어와 국내 대부업체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럼에도 일본계와 대부업이라는 주홍글씨는 늘 최 회장을 따라다녔다. 그는 기회 있을 때마다 “나는 한국인”이라며 정체성 논란을 불식시키려 애써왔다.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이번 지배구조 개편이 마무리되면 최 회장도 꼬리표를 뗄 수 있을 것”이라며 “국부 유출 논란 등에서도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