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대양 6대주에 한국바둑 수놓았다
1980년대 유럽 바둑대회를 석권한 유종수 사범(가운데)이 지인들과 함께한 모습. 원 안 사진은 호주 바둑 챔피언을 12번이나 차지한 한상대 전 시드니대 교수.
희귀 고서본, 고대 기보 제작술, 미발표 사진 등 ‘위대한 여정’ 전시회에는 볼거리가 많다. 다만 한두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게 있다. 바로 모든 역사의 흐름을 프로의 관점에서만 조망했다는 것. 바둑은 어차피 프로와 아마의 양 날개다. 프로는 바둑의 꽃이지만 바둑의 자양은 아마다. 우리는 모두 ‘아마추어’로 시작했다. 우리 아마추어에도 후세에 남길 만한 기념비적인 사건이 무수히 많다. 우리 프로바둑이 세계 정상정복에 나서기 이전에 이미 우리 아마추어들은 5대양 6대주에서 우리 바둑의 진가를 알리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일찍이 1960년대, 세계 문화유행의 중심으로 일컬어지던 파리에서 동양문화의 정수를 보급했던 임갑 선생. 그는 기원을 차린 것은 아니었지만 파리에서 카페를 열었고 그곳에 바둑판을 비치했다. 차를 마시는 사람 누구나 바둑을 즐길 수 있도록 안내하고 교수했다. 그는 훗날 유럽 바둑 활동에서 자기의 후배가 된 유종수 사범에게 친필 쪽지를 남겨주었는데 거기에는 한국기원에 바라는 말씀 대여섯 가지가 적혀있었다. 길지 않은 메모형식의 글이었지만 그것 또한 세월이 가면 우리 한국 바둑의 사료로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임갑 씨의 뒤를 이은 사람이 이창세 사범이다. 그는 한국에 있을 때 프로기사로 활동했다. 그러나 조남철 국수에게 두세 번 도전해 타이틀 쟁취에 실패하자 바둑을 접고 사업가로 전향했다. 독일을 본거지로 활동했던 그는 한국과 러시아가 정식 수교를 맺기 전부터 한국 바둑인들을 초청, 선상 크루즈 같은 기획 상품을 선보였다. 사업은 성공도 했고 실패도 했는데 아깝게도 몇 년 전에 타계했다.
‘유럽 바둑 정복사’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유종수 사범이다. 1982년 독일로 유학 간 유종수 사범은 89년 귀국할 때까지 7년여 동안 학업보다는 바둑에 심취해 유럽의 대소 바둑대회를 석권했다.
유럽에서는 전 유럽 바둑선수권 대회를 비롯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바둑대회, 스위스 라쇼드퐁 바둑대회, 독일 함부르크 바둑대회를 4대 메이저 바둑대회로 꼽는데, 유종수 사범은 4개 대회에서 단 2번을 빼고 30번을 우승, 불멸의 금자탑을 세웠다. 또한 유럽의 대소 60여 바둑대회를 석권, 82년부터 89년까지 유럽에는 유종수를 대항할 사람이 없었다.
당시 유럽 최강은 로널르 슐램퍼 7단이었다. 네덜란드의 한 보험회사가 진정 최강자가 누구인가를 가리자는 뜻에서 두 사람의 10번기를 주최했다. 유종수는 압도적인 스코어로 슐램퍼를 제압했다. 이후 유종수에게 도전하는 사람은 없었다.
한상대 전 시드니대 교수는 1985년 호주로 이민을 떠나 20년간 살다가 2005년에 귀국하고 한국에서 10년을 살다 다시 호주로 돌아갔다. 그가 왜 돌아갔는지는 모르지만 1, 2급수에 살다가 4, 5급수에 적응하기가 만만치 않았던 것으로 짐작된다.
한 교수는 호주 20년 체류 동안 호주 바둑 챔피언을 12번이나 차지했고, 호주대표로 세계대회에 6번 출전했다. 한 사람이 2년 연속 국가대표가 될 수 없다는 규정 때문이었다. 호주 바둑선수들은 어떻게 하면 한 교수가 호주 대표 선수 선발전에 못나오게 할까 하는 것이 숙제였다. 한번은 호주 본토에서 멀리 떨어진 태즈메이니아 섬에서 한 교수 모르게 대회를 개최했다. 한 교수가 섬까지 찾아올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그러나 한 교수는 대회장소에 나타났다. 이후 한 교수는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호주 바둑협회 회장에 취임하는데 이는 한국인이 외국에 나가 문화단체의 수장이 된 최초의 케이스였다. 또한, 그는 1990년대 이후에는 유럽 각지를 순방하며 한국 대사관 임직원을 설득 ‘한국대사배 바둑대회’ 창설에 공을 들여 결실을 보았다. 이것은 개인의 일로서는 작지 않은 업적이었다. 그러나 국내 바둑회와의 소통과 협조에 있어 문제가 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최근에는 우리 젊은이들이 해외에서 한국 바둑의 첨병 역할을 하고 있다. 프로기사 윤영선 5단은 말할 것도 없고, 아마추어 부부기사인 황인성-이혜미 커플은 스위스와 프랑스를 부지런히 넘나들며 인기 있는 강의와 지도기를 통해 일정수준 이상의 소득을 올리고 있다.
나는 이런 사람들이 현대바둑 70년 전시회에 소개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위해 생계를 떠나 젊음과 청춘의 한 시절을 바치는 것은 자체로 아름다운 일이니까.
아마추어 사범, 아마추어 사부, 아마추어 선생은 영원한 선생이고 사부고 사범이다. 보람의 가치를 어디서 찾느냐는 각자의 몫이다. 우리 바둑계도 아마에 대한 시각을 다시 조정하고 아마추어에 대해 새로운 각도에서 관심을 가질 때가 되었다.
이광구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