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친박 후보로 나서면 불리…본인은 아직까지 고민 중인 듯”
[일요신문] 국회의장은 의전서열 2위에 해당하는 의회의 대표자지만 우리 헌정사에서 ‘존재감’을 나타냈던 의장은 손에 꼽힌다. 신익희, 이만섭, 박관용 전 의장 정도가 기억에 남아있다. 이는 막강한 대통령 중심제의 정치적 환경 탓이 크다 할 수 있겠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5월 퇴임한 정의화 전 국회의장은 역대 의장 중에서도 가장 큰 ‘존재감’을 남긴 인물이라 할 수 있다. 현직 당시 대통령의 법안(경제선진화법) 직권상정 요구에도 반대의 목소리를 냈던 정 전 의장이다. 그의 존재감은 퇴임 이후에도 계속되고 있다. 정 전 의장은 퇴임과 함께 설립한 싱크탱크 ‘새한국의 비전’ 활동을 활발히 전개 중이다. 또한 내년 대선을 앞두고 잠룡군으로 분류되며 여전히 우리 정계의 주요 행위자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일요신문>은 7월 27일, 그의 사무실에서 정 전 의장과 마주했다.
7월 27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새한국의 비전 사무실에서 정의화 전 국회의장이 인터뷰에 임하고 있다.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새한국의 비전은 어떤 목적으로 어떻게 운영되고 있나.
“가장 중요한 설립 계기는 내가 비록 의정 생활을 끝냈지만 ‘정치인’으로서는 일을 계속하겠다는 생각에서다. 20년 전 우리 정치를 바른 정치로 만들고 싶어서 정계에 입문했다. 20년 동안 국회의장까지 한 뒤 의정 경력을 끝냈지만 아직 우리 정치가 부족하다고 느꼈다. 헌신할 필요가 있겠다고 생각했고 그런 순수한 뜻으로 시작했다. 신경외과 의사인 나를 국민께서 국회의장으로 만들어주셨다. 그저 끝내고 돌아간다면 안 되겠다는 죄송스러운 마음이 컸다. 보답할 부분이 있지 않나 싶다.”
―좀 더 구체적으로 부연하자면.
“내년이 대선이다. 내년 대선은 중요하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부터 지금까지 우리 정치가 오는 과정에서 독재와 보스정치와 계파 정치가 이어져 왔다. 내년 대선은 이러한 앞서의 정치에서 새로운 정치로 탈바꿈할 수 있는 중요한 시점이라고 본다. 안팎으로 경제 문제나 사회적 문제를 놓고 봤을 때도 내년 대선, 앞으로 4~5년이 우리의 미래를 가름할 중요한 시기라고 본다. 그래서 새한국의 비전을 열게 됐다. 우리 사회에 ‘싱크탱크’가 필요하다. 미국의 헤리티지 재단과 같은 규모 있는 싱크탱크가 되기 바라는 묘목을 심는 심정으로 설립했다. 미국에선 공화당이 집권하면 헤리티지 연구원들이 정부에 들어가 도와주고 민주당이 집권하면 브루킹스 연구원들이 도와준다. 우리도 알맞은 정권이 들어서면 도와주고 그로 인해 나라 발전에 도움이 되고, 그런 의미에서 시작했다.”
―싱크탱크로서 정부를 돕겠다는 것인가.
“대통령이 되고 싶은 사람은 많다. 하지만 대부분 대통령이 되고 나라를 어떻게 끌고 가겠다는 구체적인 부분은 약하더라. 당선까지는 선거운동으로 바쁜데, 이후에는 인수위 두 달 동안 우왕좌왕이다. 정권이 들어서도 여러 복잡한 일 탓에 우왕좌왕이다. 내가 이를 쭉 지켜봤고 누가 대통령이 되든 우리가 생각해서 ‘저 사람이 좋겠다’고 판단되는 후보가 있다면 1년 동안 기부하겠다는 생각이다.”
―지금까지 세간에 언급되고 있는 ‘신당창당’ ‘제4세력’ 등과는 괴리가 있어 보인다.
“그것(창당)과 싱크탱크는 별개다. 앞서도 난 정치인이니까 정치는 계속한다고 하지 않았나. 정치인 정의화가 앞으로 무슨 일을 할 것인가는 별개다. 대선을 앞두고 새한국의 비전이 무슨 베이스캠프로 생각할 수 있지만 그것은 언론의 오해다. 새한국의 비전은 싱크탱크로 갈 것이고 나는 나대로 정치인의 길을 갈 것이다”
―외부인사 영입은.
“싱크탱크와 외부인사영입은 관계없다. 현재 새한국의 비전에는 전·현직 의원 30여 명이 자문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이곳은 그저 나와 공부하고 패널로 세미나도 하는 곳이다. 현재 이곳엔 중도 여야 의원들이 다 계신다. 내가 ‘빅 텐트’라 표현하는 이유다. 그저 어떤 이념이나 당을 떠나 나라를 위해 지혜를 모아 일해보자는 뜻이 크다.”
―본인 역시 대권 잠룡으로 분류되고 있다. 직접 킹으로 나설 것인지, 아니면 킹메이커로서 역할을 할 것인지 관심이 크다.
“얼마 전 한국정치학회 학술회의에서 기조강연을 하던 중 비슷한 질문을 받았다. 그때 공자의 말씀을 얘기했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 했다. 나는 물론 부족하지만 수신과 제가에 있어선 B+에서 A- 정도는 된다고 생각한다. 또 치국도 의장 생활을 겪었다. 남은 것은 ‘평천하’지만 그건 하늘의 몫이다. 내가 하겠다는 순간 노욕이고 과욕이다. 공자께서 지불가만(志不可滿)이라고도 했다. 사람이 생각하는 대로 채우려면 패가망신한다. 난 오직 우리 정치가 잘됐으면 좋겠고 갈등과 분열의 문제를 넘어 화합과 통합의 길로 가는 데 기여하고 싶을 뿐이다.”
정 전 의장은 질문 중 ‘킹’이란 표현에 대해 이러한 답변을 이어가기도 했다. “지금 대통령은 킹이 아니다. 한 사람이 독점적 권한을 갖고 모든 것을 주도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우리 사회는 다양해졌고 복잡해졌다. 이제는 그룹이 필요하다. 서태지도 아이들이 없으면 안 된다. 또 그 뒤에는 밴드도 있어야 한다. 이번 대선은 우리가 다음에 나라를 맡길 수 있는 어느 누구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팀’을 선택하는 문제다. 이를 연관 지어 보자면 나는 그것을 위해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과 모여 의논해보자는 것이다. 그런 플랫폼을 만들고자 하는 것이 내 구상 중 하나다. 내가 원래 술 사고 밥 사고 시간 만드는 것 잘한다(웃음).”
정의화 전 국회의장이 26일 오후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자신이 이사장을 맡은 싱크탱크 사단법인 ‘새한국의 비전’ 창립기념식에서 내빈들과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개헌 얘기를 안 할 수 없다. 싱크탱크 의제에 포함되나.
“그렇다. 예산만 허락한다면 오는 11월께 이와 관련한 세미나를 열고자 한다. 또 관련한 프로젝트도 늦어도 9월부터는 시작할 생각이다.”
―개헌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과 전망은.
“개헌은 이번 박근혜 대통령 임기 내에는 물리적으로 어렵다. 개헌은 크게 ‘권력구조’ ‘기본권’ ‘지방자치문제’ 등 세 가지인데 역시 제일 문제가 되는 것은 권력구조다. 어떤 사람은 4년 중임제를, 또 어떤 사람은 내각제를, 나 같은 사람은 이원집정부제를 말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이것 중 하나를 국회의원 삼분의 이의 동의를 받아 통과해야 하지만 조율하기가 쉽지 않다. 이원집정부제만 해도 대통령에 어느 선까지 권한을 줄 것인지가 문제다. 또한 개헌을 위해선 박근혜 대통령이 드라이브를 걸어줘야 하는데 쉽지 않다. 물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 방법이 무엇인가.
“차기 대선 후보들이 국민들에게 공개적으로 약속을 하는 것이다. 후보들 저마다 임기 1년 내에 이원집정부제든 4년 중임제든 공약으로 내걸고 당선이 되면 지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원집정부제를 내걸고 당선되면 1년 동안 개헌작업을 진행하되 그 기간 동안에도 의회에서 총리를 뽑도록 하고 총리에게 장관들 추천하라고 하는 거다. 그러면 된다.”
정 전 의장은 차기 대선 후보의 공약으로 저마다 개헌의 내용과 방법을 공개하고 이를 국민이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그러면서 그는 또 한 가지 중요한 제안을 하기도 했다. 다음 대선과 총선을 함께 치르자는 제안이었다.
“현재 대선의 주기는 5년이고 총선과 지방선거 주기는 4년이다. 20년에 한 번 같이 치르는 꼴이다. 이건 좋지 않다. 대선과 총선을 같이해야 한다. 중간에 지방선거를 넣어 ‘중간평가’ 성격으로 치르면 된다. 혹자는 지방선거와 대선을 같이 치를 수도 있지 않느냐고 물을 수 있지만 난 반대다. 첫째는 총선의 경우 지방선거와 달리 다수당이 생기거나 연정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즉 총선은 대통령의 국가 운영과 맞물려간다. 둘째는 지금 이 시기가 우리 정치의 제도적 틀을 확실히 바꿔야 하는데 이를 대비하기 위해선 총선과 대선을 함께하는 것이 좋다는 점이다. 이에 동의하는 분이 있다면 내가 나서서 도울 의향이 있다.”
―주요 대선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반기문 UN사무총장과는 인연이 있나.
“4년 전 내가 의장대행을 했을 때 처음 뉴욕의 관저에서 부부 간 식사를 한 적이 있다. 또한 의장 시절에 UN본부에서 차 한 잔 한 적이 있고 지난해 국회에서 만난 게 전부다. 사적으로 연락하거나 만난 적은 없다. 다만 이건 짚고 넘어가고 싶다. 최근 언론에선 반기문 총장이 대선에 나갈 경우 내가 선대위원장을 맡겠다는 말을 했다고 하는데 난 그런 적 없다. 그저 훌륭하고 존경하는 분이기에 덕담 차원에서 건넨 말일 뿐이다.”
―최근 한 언론에선 반기문 총장이 친박계 후보로 나선다면 불리하다는 전망을 하셨다.
“친박과 비박이 다 도와서 반기문 총장을 대선 후보로 내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반 총장이 친박 후보로 비춰진다면 결과가 결코 좋지 않을 것이라는 뜻에서 한 얘기다. 이번 총선 결과가 국민의 목소리다. 다음 정권은 바뀔 가능성이 많다는 얘기도 된다. 그러한 상황에서 반 총장이 친박 후보로 비춰진다면 이로울 게 없다. 다만 내 정보에 의하면 반 총장은 여전히 고민 중으로 안다. 결정을 못한 듯하다.”
―자서전을 집필 중이라고 들었다. 출판계획은.
“1999년 집필한 자서전이 있긴 하다. 이는 의회에 입성하기 전의 스토리다. 앞으로 낼 자서전은 당선 이후 20년간의 스토리가 될 것이다. 다만 문제가 좀 있다. 국회도서관에서 국회의장들의 구술을 집필하는 기획이 있다. 또한 내가 헌정 이래 최초로 낸 국회의장 백서도 있다. 앞서의 두 개와 집필 중인 내 스토리를 뭉치는 작업이 필요하다. 연말까지는 이 작업이 계속될 것 같다. 출판은 그 이후에 가능할 것이다. 여러분들은 모르겠지만 내가 있던 의장실에는 안 보이는 칸막이 뒤에 내 말을 기록하는 사관이 있었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
“사드 배치 필요성 인정하지만 과정 아쉬워” 정의화 전 국회의장은 역대 의장 중에서도 대북문제에 큰 관심을 기울였던 인물이기도 하다. 정 전 의장은 지난해 신년을 맞아 북한 당국에 공개적으로 남북 국회의장 회담을 제안하기도 했으며 2006년에는 남북의료협력재단을 직접 설립해 현재까지 대북 인도적지원사업을 진행하고 있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정 전 의장은 경색국면을 면치 못하고 있는 남북관계에 있어 현 정부에 다소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다. 정 전 의장은 이날 인터뷰를 통해 “물론 현재의 남북관계가 경색된 것의 주원인은 북한에게 있다. 올 초 북한은 4차 핵실험도 감행했고 미사일 발사도 했다”면서도 “아쉬운 점은 있다. 영유아 영양제 및 예방주사 지원과 같은 인도적 지원은 지금도 해야 한다는 게 내 입장”이라며 대북 인도적 지원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이와 함께 정 전 의장은 개성공단 폐쇄에 대해서도 “물론 내가 구체적인 사항까지 알진 못한다”고 전제한 뒤 “개성공단 역시 폐쇄까지는 버틸 때까지 버텨봤으면 하는 아쉬움도 있다”고 덧붙였다. 대북문제의 연장선상으로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사드배치 문제에 대해서도 정 전 의장은 과정에 있어서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다. 그는 “북한의 상황을 봤을 때 사드배치의 필요성은 분명하지만 미중 간 충분한 설득과 납득이 필요하고 그 과정 속에서 국민의 이해도 필요하다”라고 전제한 뒤 “성주에 다녀온 지인들의 얘기를 들어보니 사드가 배치될 봉우리가 사람들이 사는 곳과 1.5km의 거리에 있다고 하더라. 설령 주민들의 건강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하더라도 기분이 좋을 리 없다. 충분히 설득하고 대화했어야 했는데 그 과정이 미진했다”고 지적했다. [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