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프개혁’ 검찰개혁추진단 발족 무색···공수처 신설 힘 싣나
김형준 출국금지-금융계좌 압수수색 등 대검 특별감찰팀 수사전환
사실 확인 땐 형사처벌 불가피···檢 수사 결과에 따라 공수처 등 검찰 개혁 공방 예고
스폰서 김 아무개 씨는 김 부장검사와 고교 동창에 사기전과
‘스폰서 부장검사’ 의혹 김형준 출국금지.사진은 지난해 12월 3일 서울 양천구 신정동 서울남부지방검찰청에서 기관투자자 비리 수사결과를 발표하는 김형준 검사.출처=연합뉴스
[일요신문] 대검 특별감찰팀이 이른바 ‘스폰서 부장검사’ 의혹을 받고 있는 김형준(46·사법연수원 25기) 부장검사를 출국금지 조치했다. 또한 계좌·통신 압수 영장을 법원에 청구했다. 법원은 곧바로 영장을 발부했다.
특별감찰팀은 9일 피의자로부터 금품·향응을 받고 수사 무마 청탁을 한 의혹을 받고 있는 김형준 부장검사에 대해 이같이 조치하고 현직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사건을 감찰 착수 일주일 만에 수사로 전환했다.
특별감찰팀은 김 부장검사가 사업가 김 아무개(46·구속) 씨로부터 받은 금품ㆍ향응의 규모와 김씨의 사기·횡령 수사 등을 무마하기 위해 김 부장검사가 부당하게 개입한 사실, 또 다른 검찰 관계자 등 추가 감찰 대상자가 있는지 확인하고 있다. 김씨와 김 부장검사는 고교동창이다.
게임업체 J사 실소유주인 김씨는 70억원대 사기·횡령 혐의로 지난 4월 고소돼 서울 마포경찰서 조사를 받았고, 한 달 뒤인 5월 서울서부지검 형사4부는 김씨 사건을 송치 받아 수사를 이어갔다. 서울서부지검은 논란이 벌어진 김씨 사건을 최근 형사5부로 재배당했다.
특별감찰팀은 최근 서울마포경찰서와 서울서부지검으로부터 김씨 사건 기록과 조사 내용 일체를 넘겨받아 분석 중이다.
앞서 마포경찰서는 김씨 사건을 조사하던 중 김 부장검사에게 1500만원을 줬다는 진술의 진위를 파악하기 위해 지난 5월 두차례 J사 법인계좌에 대한 금융계좌추적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서울서부지검은 마포경찰서의 압수수색 영장 신청을 기각한 뒤 사건을 다시 돌려받아 직접 수사를 벌여왔다.
서울서부지검은 당초 김씨 사건에 김 부장검사가 연루됐다는 사실을 모른 채 통상적인 고소 사건으로 간주해 마포경찰서로 사건을 내려 보냈다가 김 부장검사 뇌물 의혹 사건 수사 상황을 알게 된 후 영장을 기각하고 김씨 사건을 넘겨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특별감찰팀은 다각적인 검토를 위해 김씨에 대한 소환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특별감찰팀은 김 부장검사가 동창 김씨와 1500만원의 돈거래를 했을 뿐만 아니라 지인인 검사 출신 박모 변호사와도 추가로 2000만원의 돈거래를 한 사실을 확인했다. 하지만 김씨 주장에 따르면 김 부장검사에게 그 동안 제공한 돈과 술값 등을 모두 합하면 7억원 대에 달하는 등 추가 금품ㆍ향응 정황이 드러날 수 도 있다.
또한, 김 부장검사에게 오피스텔 등을 제공받았다는 의혹이 일고 있는 유흥업소 여종업원도 지난 7일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조사했다. 결국 김 부장검사가 김씨로부터 스폰을 받고 수사 등에 개입한 진위를 확인할 방침이다. 김 부장검사에 대해 제기된 의혹이 사실로 확인될 경우, 형사처벌은 물론 구속수사도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김수남 검찰총장이 지난 7월18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퇴근하고 있다. 김총장은 이날 전국 고검장 간담회를 긴급 소집해 진경준 검사장의 뇌물수수 사건과 관련해 사과하고 철저한 수사와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을 약속했다.출처=연합뉴스
검찰을 바라보는 시각은 냉랭하다. 진경준 검사에 이어 현직 부장검사의 비리의혹으로 검찰개혁을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지만 검찰이 내놓은 대책은 자체 검찰개혁추진단 발족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7월 김수남 검찰총장이 대국민 사과를 한 데 이어 지난 6일에는 양승태 대법원장이 사과문을 발표에도 ‘셀프개혁’이라는 자기반성만 담겨 있어 법조계 안팎에서는 실망스럽다는 반응이다.
김수남 검찰총장이 ‘스폰서 의혹’이 제기된 김형준 부장검사의 직무집행정지 요청이 타당하다고 판단, 김 부장검사에게 2개월 동안의 직무집행정지 명령을 내리는 등 이례적으로 수사가 진전이 있는 것도 이를 의식해 반영했다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김 부장검사의 수사 청탁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조사 대상이 된 전현직 검사들이 여럿 있으며, 이들과 김 부장검사와 부적절한 관계가 의심되는 등 검찰수사가 확대될 조짐이 있기 때문에 검사 개개인이 아닌 검찰 구조자체에 대한 비난은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더구나 과거 2006년 ‘법조 브로커 김홍수’ 사건를 비롯해 2010년 ‘그랜저 검사’, 2012년 김광준 부장검사 뇌물수수 사건 때도 검찰은 재발 방지를 다짐했다. 당시에도 검찰은 이번처럼 대국민 사과로 넘어갔다. 또다시 비리가 발생하고 있으며, 그들의 약속은 지키지 못했다.
김현웅 법무부 장관이 지난 7월18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진경준 검사장의 비리 혐의와 관련해 고개 숙여 사과하고 있다.출처=연합뉴스
이에 ‘셀프개혁’이 한계에 다다라 외부로부터의 강력한 개혁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동안 검찰개혁 논의의 단골소재였던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신설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공수처 신설 등 외부기관 감시제도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정치권은 물론 법조계내부에서 조차 제기되고 있다.
공수처 신설은 검찰 개혁의 일환으로 지난 1996년 도입 필요성이 제기된 뒤 2004년 본격 논의가 시작됐지만, 검찰 등의 반대로 법안 발의와 폐기를 반복해왔다.
공수처 신설은 결국 법원과 검찰이 내부 비리에 대한 외부의 감시를 허용하지 않겠다는 특권의식 고집과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을 정도로 수사지휘권, 영장청구권, 기소권, 공소유지, 형 집행권 등을 한 기관이 독점하는 구조적인 문제가 최대 걸림돌이다.
비정상적으로 커져 버린 검찰을 정상화시키기 위해 외부견제 기구 설치로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작동해야만 한다는 지적이 강조되고 있다.
서동철 기자 ilyo100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