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풍경-미인도(2016), 40.9cm x 31.8cm, 캔버스에 혼합재료.
Future Art Market-Artist 8
‘법고창신 정신에서 우러나온 회화’ 고선경
온고지신. 옛 것을 익혀 새 지식을 얻는다는 말로 2500여 년 전 공자님이 하신 말씀이다. 동도서기. 동양의 정신을 서양 기술로 담아낸다는 뜻으로 조선 후기 개혁론자들의 생각이었다. 법고창신. 옛 것을 본받아 새로움을 창조한다는 것으로 조선 후기를 살아간 실학자 연암 박지원이 남긴 말이다.
의미에서 미묘한 행간이 보이지만 생각의 뿌리는 하나다. 서로 다른 요소를 버무려 새롭게 한다는 얘기다. 요즘 유행하는 퓨전 문화와도 통한다. 문화 글로벌 시대 우리 예술이 꼭 새겨야 하는 고전적 진리다.
박인자의 회화는 이를 실천하고 있다. 그의 작품은 우리 전통 회화를 바탕으로 시대감각에 맞는 새로움을 창출한다. 그래서 새롭다.
박인자는 오랜 세월 사진 작업을 해왔다. 자연 풍광을 카메라에 담아 수묵 산수화의 정취가 스민 모노톤의 풍경 사진으로 감성을 단련한 작가다. 이런 이력 때문인지 그는 우리 정서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다. 여백의 미학이 도드라지는 박인자의 사진은 그의 회화 작업에 중요한 요소다. 한국적 감성을 끌어내는 모멘트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기법적 차원에서도 남다른 방법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그의 회화에서 가장 먼저 눈길을 끄는 것은 조선 시대 회화의 이미지들이다. 대부분 인물이 등장하는데, 전통 회화에 밝은 이들에게는 매우 친숙한 그림들이다. 가장 많이 나오는 것은 혜원 신윤복의 풍속화의 인물들이다. 혜원 풍속화 여러 그림에서 가려 뽑은 인물들을 새로운 상황으로 연출해 전혀 다른 느낌의 회화로 바꾸어버린다. 어찌 보면 팝아트 등에서 새로운 기법으로 개발해낸 혼성모방과도 같은 의미로도 읽힌다.
시간풍경-뱃놀이(2016), 45.5cm x 33cm, 캔버스에 혼합재료.
전통 이미지에다 새로운 의미를 덧입히는 박인자의 해석은 묘한 환상성을 보여준다. 이런 효과를 거드는 것이 사진 이미지들이다. 자신의 풍경 사진들이 새롭게 시도된 회화 작업의 배경으로 등장하는 것이다. 산수화 구성을 연상시키는 그의 흑백 사진이 한 톤 낮추어진 상태로 은은하게 캔버스에 스며들어 그림의 배경이 되는 셈이다. 그는 이런 풍경을 보면서 상황을 구상하고 혜원 풍속화의 인물들로 구성을 한다. 이에 따라 우리가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풍경 속으로 250여 년 전 조선의 여인들이 걸어 들어오는 셈이다.
박인자는 이런 혼성모방 기법을 이용한 작업으로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일까.
우선은 한국적인 미감에의 접근이다. 이런 생각을 쉽게 보여주기 위해 혜원의 풍속화를 차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한국적 미감을 오늘의 감성으로 끌어내려는 의도도 보인다. 그런 심사를 짐작케 하는 대목이 바로 사진 작업의 차용이다. 그가 찍은 풍경은 실재하는 장소다. 그리고 산수화 같은 구성을 따르고 있지만 사진이 보여주는 현대 감각이 살아나는 회화다. 결국 조선 회화에서 구축한 한국적 미감은 이 시대에도 계승돼야 한다는 작가의 심지 깊은 생각이 일궈낸 결과다.
전준엽 화가·비즈한국 아트에디터
전준엽은 개인전 33회를 비롯해 국내외에서 400여 회의 전시회를 열었다. <학원>, <일요신문>, <문화일보> 기자와 성곡미술관 학예실장을 역임했다. <화가의 숨은 그림 읽기> 등 저서 4권을 출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