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집 이사 코앞인데, 헌집 처리 고민이네’…일각선 론스타 5500억대 소송 대비설도
하나금융은 지난 8월 하나은행 본관, 을지로 별관, 한외빌딩 4~10층, 하나빌 연수원 등 보유 부동산을 매각한다고 밝혔다. 용도가 없어진 유휴 부동산을 처리하고 현금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을지로 인근에 신축공사 중인 하나은행 본관이 내년 상반기 완공 예정인 것도 부동산 매각의 한 이유다. 하나금융 관계자는 “외환은행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연수원 등 중복되는 기능의 부동산이 많아졌다”며 “본관과 별관의 경우 내년 상반기 새 본관이 완공되면 대부분 부서가 사무실을 이전할 계획이라 용도가 없어져 매각하려는 것”이라고 전했다.
김정태 하나금융그룹 회장.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한외빌딩 역시 2차례 유찰됐다. 하나금융은 당초 한외빌딩의 최저입찰가를 406억 원으로 책정했으나 유찰됐다. 10월 377억 원, 현재 348억 원으로 낮췄다. 하나빌은 6차례나 유찰돼 처음 508억 원에서 359억 원까지 최저입찰가가 떨어졌다.
매물로 나온 하나금융의 부동산 중 제일 규모가 큰 것은 을지로 하나은행 본관이다. 국토교통부 공시지가에 따르면 본관의 단위면적(㎡)당 가격은 3307만 원. 본관의 대지면적이 1만 1742㎡이므로 땅값만 3883억 원이다. 하나금융은 본관의 최저입찰가격을 공개하지 않았으나 예상 매각가를 1조 원 수준으로 잡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나금융은 시장에 내놓은 대형 부동산들과 점포를 모두 매각하면 1조 2000억 원가량의 현금을 확보할 수 있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은행권의 대기업 여신이 최근 중소기업으로 향하고 있다”며 “중소기업 여신은 대기업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위험성은 더 높아 현금 마련 등의 대비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실제 지난 3분기 기준 하나은행의 대기업 대출금은 16조 1290억 원으로 지난해 말 20조 200억 원에 비해 20%가량 하락한 반면 중소기업 대출금은 지난해 말 62조 4410억 원에서 63조 7620억 원으로, 가계대출금은 87조 6910억 원에서 90조 7530억 원으로 증가했다.
그렇지만 하나금융에 당장 현금이 급한 것은 아니다. 하나금융의 올해 1~3분기 누적 이익은 1조 2400억 원으로 지난해 1조 30억 원에 비해 2000억 원 이상 증가했다. 부실 채권 비율을 나타내는 고정이하여신비율도 지난해 말 1.27%에서 1.11%로 하락했다.
그럼에도 하나금융이 급하게 현금을 마련하는 이유는 론스타의 5500억 원대 소송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라는 견해가 나온다. 외환은행 전 최대주주인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는 지난 9월 하나금융을 상대로 5596억 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론스타는 2012년 2월 외환은행 보유 지분 51.02%를 주당 1만 4250원에 하나은행에 매각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정부의 승인 절차가 지연되면서 주가가 하락했고 실제 계약은 주당 1만 3990원에 이뤄졌다. 론스타는 정부의 지연으로 손해를 봤다며 2012년 11월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건 데 이어 지난 9월에는 하나금융이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며 소송을 건 것이다.
하나금융 측은 소송에 대비한 현금 확보는 아니라고 전했다. 하나금융 관계자는 “론스타는 1차적 책임을 정부에 묻고 있는 상황이라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있다”며 “하나금융은 정책에 따라 움직인 것이라 론스타가 소송에서 이겨도 모든 배상은 정부가 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앞의 금융권 관계자도 “당시 론스타가 서둘러 매각을 진행하려고 가격 인하에 합의했다”며 “설령 론스타가 이기더라도 하나금융이 급하게 현금을 마련할 정도로 배상액이 크지는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매각이 진행중인 하나은행 본관. 고성준 기자 joonko1@ilyo.co.kr
결국 하나금융이 급하게 부동산 매각에 나서는 까닭은 본관 신축의 영향으로 보인다. 대부분 사무실이 내년 완공될 신축 본관에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곧 비게 될 현재의 본관·별관을 매각할 수밖에 없는 것.
하지만 매각이 쉽지 않다는 게 문제다. 끝내 적당한 가격에 매각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하나금융 입장에서는 임대로 방침을 바꿀 수밖에 없다. 임대한다 해도 임차인을 구하기까지 빈 건물로 놔둬야 한다. 부동산 경기가 침체해 있는 탓에 건물 내 모든 사무실이 채워진다는 보장도 없다. 매각이나 임대 형식이 아닌, 아예 하나금융의 다른 계열사가 쓸 수도 있으나 3년 후 건물이 처분되면 다시 사무실을 구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현행법상 은행이 건물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해당 건물 내에 영업점이 있어야 한다. 만일 영업점이 폐쇄되면 3년 내로 해당 건물을 처분해야 한다. 하나은행 본점도 신축 본관으로 이전할 계획이라 3년 내 현재 본관을 매각해야 한다. 현 하나은행 본관에 또 하나의 영업점을 만들면 매각을 하지 않아도 되지만 현 본관과 신축 본관의 거리는 약 400m에 불과해 가뜩이나 기존 영업점을 줄이는 추세에서 영업점을 하나 더 내기는 무리다. 이 때문에 하나금융이 현 본관·별관을 계속 쓰기보다 매각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여전히 매수 희망자가 없어 단기간 내 매각은 쉽지 않아 보인다. 부동산업계 한 관계자는 “최근 부영이 매입한 을지로 삼성화재 사옥은 삼성이라는 상징성이 있었기에 그나마 거래가 성사된 것”이라며 “대우조선해양 사옥도 매각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등 부동산 경기가 전체적으로 좋지 않아 거래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