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서실 때부터 정경유착·비자금 통로 오명…그룹 컨트롤타워 삼성전자로 옮기나
최순실 국정농단 청문회에 나와서 미래전략실의 해체를 밝힌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미전실은 삼성그룹의 인사·기획·지원·재무 등을 총괄한다. 경영진단팀, 금융일류화추진팀, 기획팀, 법무팀, 인사지원팀, 전략팀, 커뮤니케이션팀, 7개 팀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근무 인원은 약 200명이다.
미전실의 모태는 1959년 설립된 비서실이다. 비서실 시절에는 그룹 총수를 보좌하는 참모조직으로 운영됐다. 이후 IMF 외환위기 때인 1998년, 구조조정을 추진하면서 구조조정본부로 이름이 바뀌었고 2006년 이른바 ‘X파일 사건’을 겪으면서 전략기획실로 다시 이름이 바뀌었다.
X파일 사건이란 1997년 이건희 삼성 회장이 이학수 전 삼성 구조조정본부장과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당시 사장)을 통해 대선 후보들에게 수백억 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제공하고 전·현직 검사들에게 수천억 원의 뇌물을 전달한 사건이다. 삼성 측은 공소시효가 지나 처벌을 받지 않았지만 구조조정본부를 통해 정치자금을 제공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비판이 쏟아졌다.
이건희 회장은 구조조정본부를 전략기획실로 바꾸면서 법무·감사 업무를 폐지하는 등 기능을 축소했다. 그러나 2007년 김용철 전 삼성그룹 법무팀장이 삼성이 과거 구조조정본부에서 차명계좌를 이용해 비자금을 조성했다고 폭로하면서 다시 논란에 휩싸였다. 이 회장은 2009년 8월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 벌금 1100억 원을 선고받았으나 4개월 후인 12월 평창동계올림픽 유치 준비를 이유로 특별 사면됐다. 재계 한 관계자는 “재벌들은 금융실명제가 시행되고 나서 한동안 차명계좌를 통해 비자금을 관리했다”며 “합의로 만들어진 차명계좌에 대해서는 별다른 규제가 없었기 때문에 삼성의 경우 전략기획실 직원들이 차명계좌를 많이 만들었다”고 전했다.
전략기획실은 오너 일가의 비자금 조성 창구라는 비판에 휩싸였다. 결국 이 회장은 2008년 7월 전략기획실을 해체했으나 1년 반 후인 2010년 12월 이름만 다를 뿐 사실상 전략기획실과 똑같은 기능을 수행하는 미전실을 신설했다. 신설 당시 6명의 팀장 중 김명수 전 미전실 전략2팀장(현 삼성엔지니어링 부사장)을 제외하면 모두 전략기획실 근무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당시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논평을 통해 “전략기획실 해체라는 사회적 약속을 뒤집는 행위”라며 “과거로 원점 회귀했다는 점에서 사회적 책임성에 현저한 문제가 있는 행태”라고 비판했다.
삼성 측은 미전실 신설 당시 계열사 간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립 이유를 밝혔다. 앞의 재계 관계자는 “전략기획실이 해체된 후 그룹의 논의는 삼성 사장단협의회를 통해 진행됐다”며 “그러나 회의 때 본인 계열사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고 다른 계열사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는 등 회의에 한계를 느껴 미전실이 신설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과거 전략기획실 시절에는 실장의 지시에 반론을 달 수 없었지만 미전실에서는 비교적 자유로운 토론이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그렇지만 미전실마저 정경유착의 통로라는 비판이 없지 않았다. 여기에 과거 전략기획실 시절 있었던 비자금 사건으로 ‘오너 일가를 위한 기구’라는 부정적인 이미지도 갖고 있다. 앞의 재계 관계자는 “정부가 삼성으로부터 자금이 필요하면 전경련에 우선 요청하고 전경련은 미전실 기획팀을 통해 삼성에 연락하는 식”이라고 전했다.
청문회에서 미전실이 논란이 된 것 역시 정부와 삼성의 소통창구 역할을 했다는 이유에서다. 미르·K스포츠재단의 기금 출연도 미전실을 통해 이뤄졌다. 이재용 부회장은 청문회에서 기금 출연에 대해 “문화나 스포츠 지원을 일일이 보고하지 않는다”며 “문제가 되고 나서 미전실 실장과 팀장들이 있는 자리에서 보고받았다”고 했다. 이 부회장 말이 사실이라면 미전실이 일정 범위 내에서 자체적으로 기금을 출연할 권한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미전실이 그룹 내에서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으면서 책임이 없다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경제개혁연대는 논평을 통해 “미전실의 성격상 모든 의사결정이 비공식 절차와 비공개 방식으로 이루어져 계열사 임원조차 구체적으로 누가 무엇을 결정했는지 알기 어렵다”며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법적인 책임은 공식적인 의사결정과 집행에 관여한 계열사 임원들에게 전가할 수 있다”고 전했다.
몇 차례 이름을 바꾸면서 생명을 연장했던 삼성그룹의 미래전략실은 과연 해체될 것인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삼성전자 서초사옥 전경.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미전실이 수많은 비판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컨트롤타워 자체가 없어져서는 안 된다는 의견도 있다. 청문회에 참고인으로 출석한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컨트롤타워 없이는 그룹 경영이 될 수 없다”며 “앞으로 미전실은 과거처럼 소속과 이름을 바꾸는 것으로 변하는 것과 지주회사로 전환해 법적 근거를 갖는 것 두 가지로 생각할 수 있다”고 전했다.
한편 지난 11월 29일 이명진 삼성전자 IR그룹장은 컨퍼런스 콜을 통해 “삼성전자의 지주회사 전환을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재계에서는 삼성전자가 지주회사로 전환되면 삼성 컨트롤타워가 삼성전자로 이관될 것이라고 보는 사람이 적지 않다.
미전실이 해체 예고와 관련해 대대적인 인사도 예고된다. 최지성 미래전략실장(부회장)과 장충기 미전실 차장(사장)은 이건희 회장의 절대적 신임을 받았던 인물로 알려져 있다. 삼성그룹이 사실상 이재용 부회장 시대로 넘어온 만큼 향후 인사가 이 부회장의 측근 위주로 진행될 것이라는 전망이 적지 않다. 삼성 관계자는 “미전실 해체는 진행되겠지만 향후 인사나 조직 개편에 대해서는 정해진 바 없다”고만 했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