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강제 모금 개입…보수단체 자금 지원 의혹
서울 여의도에 있는 전국경제인연합회 사옥 앞 표지석. 고성준 기자 joonko1@ilyo.co.kr
특히 전경련은 청와대가 ‘민원’을 제기하면 사실상 ‘해결사’ 역할을 한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고 있다. 검찰이 작성한 최순실 씨에 대한 공소장에 따르면 청와대는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에 앞서 수차례에 걸쳐 전경련에 모금액을 증액하라고 지시했는데 전경련 측은 이를 그대로 이행했다. 이 과정에서 포스코, 금호, KT, 아모레퍼시픽, LS, 대림 등은 두 재단에 거액을 출연했다.
또 전경련은 세월호 참사 직후 청와대의 요청을 받고 보수단체인 어버이연합의 ‘세월호 반대 집회’를 지원했다는 의혹을 받은 바 있다. 당시 전경련 사정에 정통한 관계자는 “청와대에서 ‘2014년 8월 교황이 방한하는데 그에 앞서 진보단체의 시위가 예상되니 이를 막아달라’는 취지의 전화가 걸려왔었다“며 “이 같은 얘기가 정치권에 알려지자 당시 내부에선 발설자를 색출하려 하는 등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고 말했다. 이후 전경련은 보수단체인 어버이연합을 우회 지원했고, 어버이연합은 ‘세월호 맞불집회’ 등을 벌였다.
당시 전경련은 수억 원의 지원금을 선교단체를 거쳐 보수단체에 전달한 것으로 전해진다. 어버이연합과 갈등 관계에 있던 단체 대표 한 아무개 씨는 “정확한 사정은 모르지만 전경련 측 선교단체 말고도 다른 루트에서 어버이연합을 금전적으로 지원했다는 얘기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어버이연합 안팎에선 지난 이명박 정권 시절 비선으로 불렸던 A씨의 역할론도 제기됐으나 A씨는 “전혀 사실이 아니며, 근거 없는 이야기”라고 반박했다. 또 정보기관의 자금이 전경련을 거쳐 보수단체로 일부 유입된 것 아니냐는 주장까지 있었지만 사정당국 관계자는 “확인하거나 증거를 잡기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경련은 매년 회원사로부터 받는 회비 등 400~500억 원의 예산을 쓰고 있다. 그러나 정확한 세부 지출 내역은 공개하지 않고 있다. 복수의 재계 관계자는 ‘대략적인 예산 집행 내역은 분기별 이사회 때 공개하지만 전경련의 사업별 세부 지출 목록은 알 수 없다’는 취지로 말했다. 때문에 전경련이 보수단체에 어느 정도 금액을 후원하고 있는지는 파악이 어려운 상황이다.
결과적으로 전경련은 보수단체 후원 및 대기업 모금 등을 통해 정부 국정 운영에 협조했다. 공교롭게도 지난 20대 총선에서 전경련으로부터 업무상 후원을 받아오던 두 명의 비례대표 후보는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또 보수 성향 청년단체 대표였던 윤 아무개 씨는 전경련 사회협력팀을 거쳐 새누리당 국회 보좌진에 발탁됐다. 사회협력팀은 미르·K스포츠재단 사건과 관련해 검찰 압수수색 대상에 포함된 부서며, 보수단체 지원을 주도했다는 의혹을 함께 받고 있다.
최근 전경련은 최대 후원사인 삼성그룹이 탈퇴를 선언하는 등 강한 해체 압박을 받고 있다. 전경련은 “전체 회원사의 의견을 수렴해 조직 개편 등의 개혁안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조직의 편제만 바뀔 뿐 정치권과의 유착 고리를 끊어내지 못한다면 그 개혁은 또 다른 논란의 ‘불씨’가 될 가능성이 높다. 지난 6일 ‘최순실 국정농단 국정조사특별위원회’에 출석한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전경련이 (로비 창구가 아닌) 미국 헤리티지 재단처럼 기업들의 친목 단체로 남아야 한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