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해 나도 투자 계속…딸들 먹거리 챙기나
서울 서초구 방배동 차이797본점. 이곳 1층에 게스트로펍이 있었지만 현재는 문을 닫은 상태다. 강현석 기자
그러나 게스트로펍은 지난해 11월 돌연 폐점했다. 삼천리 관계자는 “젊은 층을 주 타깃으로 삼았는데 생각만큼 영업이 잘 되지 않았다”며 “게스트로펍 자리에는 또 다른 음식점이 입점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게스트로펍은 2012년 8월 오픈 이래 매년 적자를 내온 것으로 전해진다.
게스트로펍을 운영해 온 업체는 삼천리의 옛 계열사 SL&C다. 2008년 삼천리는 “외식사업을 하겠다”며 자본금 3억 원을 들여 SL&C를 설립했다. SL&C는 2010년 68억 2000만 원을 주고 지금의 건물 터를 매입했고, 2012년에는 음식점이 들어설 빌딩을 세웠다. 그러나 SL&C는 이미 2년 연속 억대 영업손실을 기록하는 등 자금 사정이 좋지 않았다. 이때 ‘흑기사’로 나선 곳이 삼천리 또 다른 계열사인 삼천리이엔지다.
그룹 내에서 가스배관시설 공사와 가스충전소 사업을 맡고 있는 삼천리이엔지는 150억 원을 들여 SL&C의 지분 100%를 사들였다. 2012년 11월 삼천리이엔지로 흡수합병된 SL&C는 게스트로펍과 고급 중식당인 차이797(Chai797)의 운영권을 넘겼다.
삼천리이엔지의 외식사업 투자와 관련해 일각에선 이만득 회장의 세 딸이 영향을 주거나 직접 개입한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한다. 에너지 전문기업으로 성장한 삼천리가 전혀 다른 사업영역인 외식업을 벌이는 것에 대해 쉽게 납득하기 힘든 까닭에서다. 재계 사정에 정통한 관계자는 “2012년 무렵 차이797 서래마을지점과 청계천지점의 운영에 장녀와 차녀가 각각 관여했다는 의혹이 있었다”고 전했다.
에너지 전문기업으로 성장한 삼천리가 전혀 다른 사업영역인 외식업을 벌이는 것에 대해 쉽게 납득하기 힘들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출처=삼천리 홈페이지
또 이만득 회장의 막내딸인 이은선 삼천리 전략본부 이사는 미국 유학을 마치고 2010년 삼천리에 합류한 뒤 외식사업 등 그룹의 신사업 파트를 맡았다. 재계 다른 관계자는 “오너 2~3세가 해외 유학생활 당시 접한 외식문화를 국내에 도입해 사업을 벌인 사례가 적지 않다”고 설명했다.
삼천리는 이은선 이사의 경영 관여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공식 직함이 없는 다른 자녀의 개입은 부인했다. 삼천리 관계자는 “이른바 재계 호사가들이 ‘회장이 외식사업을 해서 딸들에게 물려주는 거 아니냐’는 주장을 하지만 사실과 전혀 다르다”며 “모든 음식 조리에는 에너지가 필요하기 때문에 연관성이 전혀 없다고 할 수 없고, 결혼한 장녀와 차녀는 오래 전부터 그룹 경영과 무관했으며 차이797은 점차 매장 수가 늘고 있는 데다 매출도 좋은 상황”이라고 반박했다.
실제 차이797은 현대백화점, AK플라자 등에 입점하는 등 어느 정도 시장에 안착한 모습을 보인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삼천리이엔지의 외식사업 부문 매출은 2011년 30억여 원에서 2015년 100억 여 원으로 3배가량 뛰었다.
그러나 수익성에 대한 우려는 여전히 해소되지 않는다. 2014년 15억여 원의 영업손실을 낸 외식사업부는 2015년에도 9억여 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또 삼천리이엔지는 2014년 중국 현지 외식업체로 알려진 ‘POK CHENG GROUP LIMITED’ 지분 45%를 3억 6000여만 원에 매입했는데 이 회사 역시 2014년과 2015년 각각 1억여 원의 적자를 나타냈다. 외식사업에 투자하는 족족 손해를 보고 있는 것이다.
이만득 삼천리그룹 회장
재계 안팎에선 삼천리의 이 같은 사업 다각화를 그룹 후계구도와 연관 짓는 분석이 나온다. 이만득 회장은 지난해 그룹 명예회장으로 추대된 뒤 경영권 승계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재계 관계자들의 설명을 종합하면 현재로서 삼천리의 차기 오너는 이만득 회장의 조카인 이은백 삼천리 미주본부장(부사장)이 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점쳐진다. 이 본부장은 고 이장균 창업주의 장남인 고 이천득 부사장의 장남으로 삼천리의 적장자다. 형인 이천득 부사장이 1987년 36세의 나이에 세상을 뜨면서 이만득 회장 역시 30대의 이른 나이에 회장에 올랐다. 그런데 이만득 회장이 경영권을 내려 놓으면 자신의 혈육 가운데 유일하게 경영에 참여하고 있는 이은선 이사의 역할이 애매해질 수 있으므로 여러 신사업을 맡겨 그룹 내 위상을 높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삼천리 관계자는 “(신사업과 관련해) 여러 시각이 있을 수 있지만 아직 경영권 승계를 논하기에는 이르다”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co.kr
삼천리 경영권 변천사…‘조카 vs 삼녀’ 3세 경영 누가 할까 삼천리그룹의 전신은 1966년 설립된 ‘삼천리연탄주식회사’다. 1955년 이장균 삼천리 창업주와 유성연 창업주가 공동 설립한 ‘삼천리 연탄기업사’를 모태로 한 삼천리연탄주식회사는 1984년 상호를 주식회사 삼천리로 바꾸고 여의도에 터를 잡았다. 당초 연탄에 한정됐던 사업 포트폴리오를 도시가스를 비롯해 자원 개발로 확장했다. 삼천리그룹은 크게 삼천리와 삼탄으로 나뉜다. 이들 두 기업은 핏줄은 다르지만 선친 때부터 쌓은 ‘의리’를 바탕으로 계열사 지분을 교차 소유하고 있다. 이장균 창업주의 차남인 이만득 현 삼천리 명예회장은 삼천리를, 유성연 창업주의 장남인 유상덕 현 삼탄 회장은 삼탄을 각각 물려받았다. 이만득 회장이 차남임에도 경영권을 승계한 것은 형인 이천득 부사장이 1987년 먼저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1993년 창업주 2세로서 경영을 시작한 이만득 회장은 지난해 명예회장에 오르며 3세 경영의 단초를 마련했다. 현재로선 고 이천득 부사장의 장남인 이은백 삼천리 미주본부장이 경영권 승계의 적장자로 꼽히지만 이만득 회장의 삼녀인 이은선 삼천리 전략본부 이사도 경쟁자로 거론된다. [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