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사주의 마법’ 꺼져가는데 승계작업 속탄다
여전히 삼성 총수 일가는 삼성물산과 삼성생명 그리고 삼성전자를 통해 모든 계열사를 지배할 수 있다. 자회사 관리 부서 등을 통해 미전실이 하던 기획, 인사, 법무, 감사, 홍보, 대관 등의 기능이 축소는 되겠지만 대부분 유지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 부회장은 이미 삼성전자와 삼성생명, 삼성물산을 꽤 강력하게 지배하고 있다. 우선 이 부회장의 삼성물산 지분율은 17.08%다. 삼성전자가 지배하는 삼성전기, 삼성SDI도 각각 2.61%, 2.11%의 삼성물산 지분을 보유 중이다. 삼성생명이 지배하는 삼성화재 역시 1.37%의 지분을 갖고 있다. 이 부회장과 계열사 지분율이 23%에 달한다. 여기에 두 여동생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이서현 삼성물산 패션부문 사장이 각각 5.47%씩 총 10.94%,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2.84%를 합하면 지배력은 37%에 달한다.
삼성생명은 더 강력하다. 이 회장이 20.76%, 삼성물산이 19.34%를 보유 중이며 삼성문화재단과 삼성생명공익재단의 지분 6.86%까지 합하면 지배력이 발행주식의 절반에 달한다. 삼성생명만 지배하면 금융계열사들은 물론 삼성전자 지분 7.9%까지 확보할 수 있다.
미전실을 없앤다고 당장 삼성그룹이 해체되는 것은 아니지만 아직 미완성인 이 부회장의 승계 작업에는 상당한 도전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언뜻 강력해 보이지만 아직도 흔들릴 여지가 있어서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2월 18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박영수 특별검사팀 사무실에 소환조사를 받기 위해 출두하고 있다. 최준필 기자
가장 많은 계열사 지분을 가진 삼성전자도 문제다. 특수관계인 지분율이 18.44%에 달하지만 외국인 지분율이 51%나 된다. 이 부회장이 지난 연말 등기임원에 올라 이사회에 직접 들어간 이유다. 재계 한 관계자는 “삼성물산이나 삼성생명은 이 부회장이 직접 행사하는 지분율이 높아 굳이 이사회에 직접 들어갈 필요는 없지만, 삼성전자는 이사회를 확실히 통제하지 않으면 자칫 경영에 대한 고삐가 느슨해질 가능성이 있다”며 “이사회 견제 기능이 강화된 상법개정안이 통과되면 더욱 그렇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필요한 것이 삼성전자 인적분할이다. 삼성전자를 지주회사와 사업회사로 나누면 삼성물산이 가진 지분을 지주사에 현물출자하고, 발행주식의 13%에 달하는 자사주 의결권이 되살아난다.
물론 금융산업의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금산법) 때문에 삼성생명과 삼성화재가 가진 삼성전자 사업회사 지분은 지주사에 현물출자가 어렵다. 하지만 자사주 의결권만 되살려도 삼성물산과 재단, 개인주주 지분만으로도 지주사 지분 30% 확보가 가능하다. 자사주가 소각되면 사업회사 지배력도 높아진다.
문제는 인적분할 시 자회사 지분을 지주사에 현물출자할 때 과세를 연기해주는 혜택과 자사주에도 신주를 배정하는 ‘자사주의 마법’이 곧 금지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미 야당 의원들을 중심으로 관련 법 개정안이 발의된 상태다.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삼성전자 지주사 전환 시 삼성물산은 막대한 세금을 내야 한다. 삼성전자 자사주도 지배력 강화에 활용할 수 없다. 치명적 타격이다. 시간이 없다는 뜻이다.
증시 관계자는 “지난 연말 엘리엇매니지먼트가 삼성전자 측에 인적분할을 제안한 것은 현재 이 부회장의 가장 절실한 부분을 파고 든 셈”이라며 “이 때문에 빠르면 올 정기추종에서 인적분할이 이뤄질 수도 있었는데,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이 부회장이 구속 수감되면서 차질이 생겼다”고 풀이했다.
같은 맥락에서 삼성생명의 중간지주회사 전환을 허용하는 법안도 역시 좌초될 위기다. 중간금융지주회사가 허용되지 않으면 그룹이 지주사로 전환할 때 삼성물산이 가진 삼성생명 지분이나 삼성생명이 가진 삼성전자 지분이 무력화될 수 있다.
일각에서는 이 부회장이 재판에서 실형을 피하거나 집행유예를 받을 경우 차기 정부와 대타협 가능성을 제기한다. 이미 삼성은 사회공헌활동 축소와 그룹공채 폐지를 통한 사실상의 고용 축소 방침을 밝혔다.
재계 관계자는 “대한민국 경제에서 절대적 비중을 차지하는 삼성의 협력 없이 차기 정부가 경제정책을 효율적으로 펼치기 어려울 수 있다. 삼성이 움츠러들면 온 재계가 다 위축될 것이 뻔하다. 재벌개혁 목소리가 높지만 재벌들의 도움 없이 경제를 살리기가 어려운 것도 엄연한 현실이다”라고 꼬집었다.
최열희 언론인
이재용 삼성공익재단 이사장 자리 위태? 또 다른 아킬레스건 될 수도 구속 수감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또 다른 아킬레스건은 공익재단운영과 설치에 관한 법률이다. 현행법에서 금고 이상의 형을 받거나 집행유예 기간이 만료된 지 3년이 지나지 아니한 자는 공익법인의 임원이 될 수 없다. 또 출연자의 특수관계인은 이사회 현원의 5분의 1 이하로 유지돼야 한다. 두 재단의 이사장 자리는 사실상 삼성 총수를 뜻한다. 삼성문화재단은 삼성전자 지분 0.3%. 삼성성생명 지분 4.68%, 삼성물산 지분 0.6%를 보유하고 있다. 삼성생명공익재단은 삼성생명과 삼성물산 지분을 각각 2.18%, 1.05%를 갖고 있다. 삼성생명공익재단은 삼성서울병원을 소유한 곳이다. 이 부회장은 2015년 이건희 회장에게 삼성문화재단과 삼성생명공익재단 이사장 자리를 물려받았다. 현재 이들 두 재단에서 삼성 특수관계인 이사는 이 부회장이 유일하다. 이 부회장에 실형이 확정되면 두 재단의 이사장 자리를 내놔야 한다. 대기업 관련 공익법인은 종종 상속세나 증여세를 아끼는 수단으로 활용돼왔다. 이 부회장은 2015년 두 재단 이사장에 취임하면서 “지배구조에 활용하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이들 두 재단은 현재의 위상만으로도 삼성 지배구조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모친인 홍라희 여사나 두 여동생에게 자리를 맡길 수 있지만, 최근 이부진 대안설이 퍼졌던 점을 감안하면 쉽지 않은 선택일지 모른다”며 “믿을 만한 전문경영인에게 잠시 자리를 맡길 수도 있지만, 최근 미래전략실 해체까지 진행되면서 측근들이 대거 물러나는 상황에서 믿을 만한 인물을 찾기도 쉽지 않을 것”이라고 풀이했다. 재단 이사장직의 중요성은 롯데그룹의 상황에서도 확인된다.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은 수십억 원대 회사 자금을 횡령하고 배임수재한 혐의 등으로 구속 수감돼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다. 신 이사장은 롯데 주요 계열사 등기임원직은 사퇴했지만 재단 이사장직은 유지하고 있다. 장녀인 장선윤 롯데호텔 상무가 있지만 이사장 자리를 넘겨주지 않았다. 롯데장학재단은 롯데제과 지분 8.69%, 롯데칠성음료 지분 6.28%를 보유 중이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 신동주 전 부회장이 경영권 다툼을 벌이는 과정에서 캐스팅 보트 역할을 할 정도의 영향력이다. [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