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특집 사랑방 이슈] 여권 잠룡 3인방 대권 기상도

차오르는 보름달 그들 꿈도 부푼다

	▲ 캐리커처=장영석 기자 [e-mail]

이명박 대통령이 청와대에 입성한 지 6개월이 지났다. 이제 겨우 몸풀기 정도 한 셈이지만 ‘촛불정국’을 겪으면서 일부에서는 벌써부터 ‘지겹다’라는 반응마저 보인다. 이 대통령으로선 아직 국민들에게 보여줄 게 많겠지만 무엇을 내놔도 지지율은 좀처럼 오르지 않는다. 이 대통령만큼 정권 초반의 인기 프리미엄을 빨리 소진한 대통령도 드물다.

그래서 정치권이나 언론도 벌써부터 여권의 ‘신선한’ 차기 대권주자 쪽에 더 눈길을 보내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현재 거론되는 한나라당의 대권 후보들도 별반 신선하지 않다. 그럼에도 이 대통령의 인기가 떨어지는 것과 반비례해 차기 주자들에 대한 관심과 호감도는 상승할 것으로 전망된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정가에선 잠룡들의 행보 하나하나가 화두가 된다. 과연 이들의 ‘대권시계’는 어디쯤을 가리키고 있을까. 한가위 사랑방 화제가 될 여권 주자들의 대권 레이스 초반 기상도를 분석해봤다.

박근혜 ‘쾌청’
박근혜 전 대표의 ‘현재’ 대권 기상도는 ‘활짝 핀 맑음’이다. 일단 여야를 통틀어 그만 한 거물을 찾아볼 수 없다. 일각에서는 여권의 친이(친 이명박 대통령)그룹에서 박 전 대표 대항마를 지금부터 키우더라도 치열한 경선을 겪은 뒤 더욱 단단해진 ‘선거 여제(여자황제)’를 이기긴 힘들 것이란 섣부른 전망도 나온다. 더욱이 친이그룹에서 차기 대권 후보를 신속하게 내세우지 못할 경우 박 전 대표는 이명박 대통령처럼 대선 1~2년을 남겨 두고 일찌감치 ‘대세론’에 편승할 가능성도 있다.

친이그룹에서 민주당 성향인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마저 ‘세계의 대통령이 한국의 대통령으로’라는 명분으로 차기 대권 후보군 가운데 한 명으로 점찍고 있다는 점만 봐도 현재 친이그룹의 대안 부재는 심각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대권주자로서 박 전 대표가 그 가능성을 넘어 점점 현실적인 대안으로 당 안팎에서 인식되고 있다는 점에서 친이그룹의 고민은 깊어진다. 특히 나경원 의원이 최근 “경선 때 이명박, 박근혜로 파가 나눠졌는데 요즘 당내에서는 박근혜 의원 쪽으로 옮기는 분들이 많다는 얘기가 들린다”라며 ‘친박 쏠림’ 현상을 지적한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하지만 친이그룹 핵심부에서는 박 전 대표가 차기 정권을 차지할 경우 ‘이명박 대통령 패밀리’에 대한 대대적인 사정 작업을 벌일 수도 있다고 보고 어떻게 해서든 박 전 대표의 집권을 막으려는 정서가 흐르고 있다. 또한 이명박 대통령도 여전히 박 전 대표를 신뢰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특히 ‘국정을 맡길 만한 인물이 되는지’에 대해 계속 회의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바로 이 자체가 박 전 대표로서는 반드시 넘어서야 할 높디높은 기압골이다.

현재 ‘맑게’만 보이는 박 전 대표의 대권 기상도는 내·외적 변수에 따라 먹구름으로 변할 수 있다. 먼저 외적인 변수로는, 확실한 대권 후보를 찾지 못한 친이그룹이 내각제로의 개헌 등을 통해 대대적인 정계개편을 단행해 박 전 대표 세력을 영남권 보수세력으로 고립시킬 가능성이 있다. 또한 박 전 대표 세력 내부적으로는 지난 경선을 통해서 드러났던 대권 전략의 부재, 전국적인 조직의 재건과 유지 미숙, ‘꽉 막힌 보수, 불안한 여성’ 이미지를 상쇄시킬 제2의 박근혜 브랜드 만들기가 실패할 경우 등을 들 수 있다.

박 전 대표의 대권 기상도는 오는 2010년 지방선거를 전후해 그 결과가 어느 정도 나타날 전망이다. 정치컨설턴트 A 씨는 이에 대해 “현재 한껏 몸을 낮추고 있는 박 전 대표는 이명박 대통령의 임기 5년이 반으로 접히는 2010년 지방선거를 전후해서 본격적인 ‘날갯짓’을 할 것으로 보인다. 지방 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을 뽑는 그 선거가 당내의 역학구도를 바꿀 절호의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특히 대안을 찾지 못하는 친이그룹 일부를 흡수할 경우 수도권 세력까지 등에 업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당내에 대세론이 확산되는 계기가 될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정몽준 ‘흐림’
정몽준 의원의 대권 기상도는 ‘구름 많음’으로 정의할 수 있다. 자신 앞에 놓인 수많은 먹구름을 어떻게 제거하느냐에 따라 ‘맑은 날’을 기대할 수 있다. 사실 정 의원은 대중적인 흡인력, 정치적 결단력, 광범위한 외교인맥, 합리적인 성품 등 강점이 많은 정치인이다. 정치권에선 “5선을 하면서도 이루지 못했던 ‘업적’을 지난 몇 개월 만에 이룬 것을 보면 과감하게 정치적 승부수를 던질 줄 아는 뚝심 있는 정치인”이라는 평가도 내놓는다.

그럼에도 그에게 드리운 먹구름은 짙고도 넓다. 대외적인 인기는 높지만 당내 기반과 지지도는 그의 대권을 가로막는 결정적 장벽이다. 그의 당내 우군이라고는 홍정욱 의원 등 개인적 친분으로 인연을 맺은 젊은 정치인 몇 명과 지난 2002년 대선 때 ‘국민통합21’ 캠프에서 뭉쳤던 몇몇 인사들 정도다. 당내 기반이 없다보니 그를 대권주자로서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지원해줄 시스템도 전무한 상태다. 이 때문에 정 의원은 다른 거물급 정치인에 비해 정무적인 메시지 관리가 매우 취약하다는 평을 듣고 있다. 박근혜 전 대표의 경우 자신이 직접 기자들과 사적으로 만나지 않더라도 ‘대변인’ 역할을 하는 이정현 의원, 비서실장 출신의 유정복 의원, 전략통인 김선동 의원 등이 언론과 유대관계를 유지하며 체계적이고 통합적인 메시지 관리를 하고 있다.

반면 정 의원의 경우 자신을 ‘대변’해줄 대외적 창구가 없기 때문에 공식 회의석상 전후로 취재를 하러 몰려온 기자들과 직접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특히 이 과정에서 정제되지 않은 이야기들이 그대로 언론에 노출되면서 대권주자로서의 신뢰도에 금이 가는 일도 종종 발생한다. 또한 정 의원의 경우 그리 달변이 아니기 때문에 전달하려는 메시지를 설명하면서 이런저런 예를 드는 편인데 듣는 입장에서는 메시지가 아니라 농담조로 꺼내는 예문만 기억하게 돼 결과적으로 자신에게 마이너스가 되는 허점도 있다.

사실 정 의원은 자신을 지지하는 당원들 사이에서도 “정 의원이 거물급 정치인이긴 하지만 그가 앞으로 대통령직을 수행할 만한 깊은 국정철학과 정무적 능력이 있는지에 대해선 회의적”이라는 반응이 있음을 잘 알고 있다. 그에게 확신을 가지지 못한 당원들이 대선후보 경선에서 자신들의 정치적 운명을 내맡기고 열심히 바닥에서 뛰어줄지도 여전히 의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정 의원이 우려하는 치명적 약점은 이명박 대통령과 그가 ‘기업가 출신 정치인’이라는 이미지로 중복이 된다는 점이다. 이 대통령이 향후 경제 회생 등에 여전히 좋은 성적표를 내놓지 못할 경우, 정 의원의 경제인 출신 이력은 약이 아니라 독이 될 수도 있다.

김문수 ‘흐린 뒤 맑음’
김문수 경기도지사의 기상도는 ‘흐린 뒤 점차 맑아짐’으로 평가할 수 있다. 3선을 거치면서도 그리 정치적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던 김 지사는, 최근 이명박 정부가 수도권 규제완화에 대해 머뭇거리는 태도를 보이자 연일 거침없이 여권을 공격하면서 정치적 중량을 한껏 끌어올리고 있다. 더욱이 한나라당의 수도권 의원들이 김 지사의 지원군으로 나서자 일각에선 “한나라당 내에서는 친 박근혜, 친 정몽준계에 이어 친 김문수계가 등장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마저 나돌고 있다. 한나라당 출입기자들과 몇몇 의원의 연찬회 뒤풀이 자리에서 차명진 대변인이 “김문수 대통령!”을 외쳤다가 정몽준 의원을 지지하는 윤상현 대변인과 가벼운 몸싸움이 벌어졌다는 전언도 있다.

김 지사가 갑자기 중앙 정치권의 관심을 받게 되면서 그의 정치적 능력을 재평가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그의 정치 역정 가운데 가장 도드라졌던 시기는 지난 17대 총선 과정에서 박근혜 전 대표의 ‘하명’을 받고 공천심사위원장으로 ‘개혁 공천’을 주도했을 때였다. 당시 그의 ‘칼 공천’을 경험했던 한나라당 의원들은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사람”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소신과 추진력은 당내에서도 인정받고 있다.

여기에 재야 운동권 출신으로서 당의 ‘희망봉’인 소장파들을 아우를 수 있는 미래지향적 정치인으로도 통한다. 이런 그의 잠재력 때문인지 최근 친이그룹 내에서는 차기 대권주자와 관련해 “대안이 없으면 김 지사로 가야 되는 것 아니겠느냐”라는 반응이 많이 나오는 편이다.

하지만 김 지사에게도 완전히 걷히지 않는 먹구름은 많다. 먼저 그에게 경기도지사 자리는 차기 대권을 위한 도약대인 동시에 스스로를 옭아매는 덫이 될 수도 있다. 정치권에선 ‘경기도지사의 추억’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이인제 임창열 손학규 전 지사 등이 모두 1000만 경기도민을 배경 삼아 대권 도전에 나섰지만 전부 경기도라는 ‘변방’ 이미지에 가로막혀 실패로 끝났다. 앞서 열거했던 주자들은 모두 당내의 정치적 기반도 약했지만, ‘경기도’라는 ‘넘버 2’ 이미지가 국민들에게 확실한 임팩트를 주지 못했던 것이다.

김 지사는 국가 경영 능력에 대한 신뢰 확보와 함께 친이그룹으로부터도 ‘인정’을 받아야 대권주자로서 입지를 다질 수 있다. 그런데 김 지사의 트레이드마크인 ‘소신’은 가끔 ‘고집불통’으로 둔갑해 통합의 리더십과 충돌하고 있다. 한나라당 내 한 의원은 “김 지사는 평소 합리적인 사람이지만 한 번 고집을 부리면 절대 이야기가 되지 않는다”라고 평한다. 김 지사는 한나라당 의원들과의 스킨십도 부족하다는 지적을 자주 받는다. 알고 있는 사람과는 친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쉽게 다가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정치권에선 “김 지사는 조직이나 전략보다는 개인의 약점이 대권으로 가는 최대의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평가하는 사람도 있다.

성기노 기자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