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 대표, 청와대와 잇단 엇박자…대통령 호위무사 자처한 송영길 ‘포스트 추’ 눈도장
친문(친문재인)계와 86그룹 관계가 심상치 않다. 7월 정국에서 당·청 갈등이 돌출 변수로 등장한 이후 당 물밑에서는 계파 간 권력구도 재편의 불씨가 살아나고 있다. 정부 출범 이후 여의도 정가에는 친문계와 86그룹의 전면적 결합 시나리오가 떠돌았다. 지난해 8·27 전당대회에서 친문계 지원을 업고 당 수장에 오른 추미애 민주당 대표가 잇따라 청와대와 엇박자를 내자, 친문계가 정계개편 ‘플랜 B’ 가동을 통해 당 틀어쥐기에 나선다는 게 골자다. 핵심 연결고리는 86그룹의 ‘신주류’다. 시기는 내년 6·13 지방선거 전후다.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가 10일 오전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물을 마시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86그룹을 바라보는 시선은 극과 극이다. 고 김대중(DJ) 전 대통령 시절 발탁, 정치권과 연을 맺은 이들은 ‘노무현 탄핵’ 바람이 분 2004년 총선 때 원내에 대거 진입했다. 당내 86그룹의 선두주자인 이인영·우상호·송영길 의원 등이 대표적이다. 청년 시절 6월 민주항쟁을 이끌며 ‘개혁세력’의 대표 격으로 불렸지만, 원내 진입 이후에는 자기 정치 대신 최대 계파와 동거 관계를 형성해 ‘하청 정치’의 표본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86그룹 한 의원은 “우리는 그 누구보다 치열한 삶을 살았다”며 이를 일축했다. 이에 대해 당 한 관계자는 “지난 십수 년간 보여준 것이 없다”라며 평가 절하했다.
86그룹의 독자 세력화 여부는 여전히 뜨거운 감자다. 다만 문재인 정부 출범 이전과 다른 점은 86그룹 제2기인, 운동권 신주류가 부상했다는 점이다. 대통령 참모조직인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과 조국 민정수석비서관, 전병헌 정무수석비서관, 윤건영 국정상황실장, 당내 송영길·전해철·우원식 의원, 주중대사인 노영민 전 의원 등이 그들이다. 외곽에도 있다. 친문 중 친문인 양정철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과 ‘호위무사’ 최재성 전 민주당 의원 등이다.
이밖에 서훈 국가정보원장과 청와대 정의용 안보실장, 백원우 민정비서관과 한병도 정무비서관 등도 떠오르는 신주류다. 이른바 문재인 캠프의 ‘광흥창팀’이 핵심인 셈이다. 반면, 운동권 제1기 시대를 열었던 이인영 의원 등의 입지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86그룹 중 친문계 아성을 넘을 수 있는 비문(비문재인)계는 지방자치단체장인 안희정 충남지사와 이재명 성남시장 등 정도다.
친문계와 86그룹 신주류와의 연대설이 부상한 이유는 후계자 없는 ‘친문계 한계론’이 한몫했다. 친문계는 당 최대 주주이지만, 문 대통령을 대체할 후계자는 없는 상황이다. 반면, 86그룹은 그간 민주평화국민연대(민평련)와 정세균계, 손학규계 비노(비노무현)계 등으로 분파돼 있었다. 과거 민주당 시절부터 86그룹 일부가 당 주류와 손을 잡는 순간, 타 계파들이 넘을 수 없는 ‘산성’이 됐다. 소수 계파를 뛰어넘는 수적 우위 때문이다. 2012년 민주통합당 시절 때도 86그룹 일부는 친노(친노무현)계와 함께 공천권을 장악했다. 86그룹의 하청 정치 논란도 이 지점과 맞닿아있다.
이들의 전략적 제휴설은 ‘추다르크(추미애+잔다르크)’가 불을 지폈다. 추 대표가 연일 ‘거친 입’으로 대치 정국의 진원지로 전락하자, 친문계뿐 아니라 당내 중진들 사이에서도 불만이 터져 나왔다. 민주당 중진 의원들은 7월 11일 회동에서 국민의당 대선 조작 게이트와 관련해 추 대표에게 발언 자제령을 촉구했다. 이 모임은 원혜영 박병석 오제세 박영선 문희상 이종걸 설훈 이석현 의원 등 민주당 4선 의원들과 우원식 원내대표 등이 함께한 자리였다. 박병석 의원은 “검찰에 맡기면 되는 사안”이라며 “정치권 입장은 충분히 개진했으니 언급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밝혔다.
당 내부 기류 변화도 감지된다. 애초 추 대표가 ‘머리 자르기’ 발언을 할 때만 해도 호남 발 정계개편과 청와대에 존재감 드러내려는 포석에 방점이 찍혔다. 당 내부에선 “할 말은 했다”는 반응도 나왔다. 그러나 추 대표가 1차전에 그치지 않고 제2·3차전을 계속하자, 초반 분위기와는 달리 “여당 내 야당이냐”는 볼멘소리도 나왔다. 청와대도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최근 추 대표로 시작된 당·청 갈등설에 대해 “할 말이 없다”며 질문 자체를 피하는 모양새다. 다만 내부에선 불편한 기색도 역력하다. 청와대 조직을 틀어쥔 86그룹이 ‘포스트 문재인’ 대체자 찾기에 나설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방향타는 당내 권력구도 재편이다. 당·청 조직은 이미 86그룹이 접수했다. 3040세대 그룹이 들어갈 틈이 없다. 민주당 전 당직자는 전직 의원인 백원우·한병도 비서관이 청와대에 입성한 것과 관련해 “그 자리는 의원급이 갈 자리가 아니다”라며 “운동권 신주류가 세대교체를 막는 꼴”이라고 말했다. 남은 것은 새 바람을 일으킬 ‘사람’이다. 얼굴마담으로 전락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지만, 대중적 바람만 타면 ‘후계자’로 떠오를 수도 있다. 추 대표의 임기는 내년 8월까지다.
‘포스트 추미애’ 체제의 대체재 1순위로는 송영길 의원과 안희정 충남지사가 꼽힌다. 수도권 4선 송 의원은 젊은 시절 노동운동을 하다가 2000년 총선을 통해 원내에 진입했다. 민주당 정풍운동을 이끌기도 한 송 의원은 2007년 대통합민주신당 대선 경선 때 손학규 캠프에 합류한 데 이어 지난해 8·27 전대에서는 친문계를 업고 나선 추 대표와 각을 세우며 당 주류진영을 강하게 비판했다. 결과는 컷오프 탈락. 충격파는 컸다. 86그룹의 한계론부터 “송 의원이 오만했다”는 비판 등이 쏟아졌다. 호남의 맹주를 꿈꾸던 송 의원의 역할도 끝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문 대통령과 손을 잡았다. 문 대통령 삼고초려 끝에 캠프 총괄선대본부장직을 수락했다. 문 대통령의 ‘호위무사’를 자처했다. 그는 대선 경선 때 신드롬을 일으켰던 안 지사가 김종인 전 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에게 경제 전권을 준다는 의혹이 일자, “새로운 맛이 없다”고 일갈했다. 송 의원 측 관계자는 “송 의원이 대선 때 호남에 상주하면서 바닥 민심 변화를 위해 사력을 다했다”고 귀띔했다.
그는 정부 출범 직후 대통령 특사로 러시아를 방문했다. 송 의원은 6월 12일 문 대통령의 일자리 추가경정예산(추경) 시정연설 직후 가장 먼저 일어나 박수를 치기도 했다. 그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감격스러운 문재인 대통령 첫 시정연설 감개무량합니다”고 전했다. 정치권 안팎에서 친문계가 ‘송영길 카드’로 당내 권력구도의 새판 짜기에 나설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지난해 8·27 전대에서 추 대표를 앞세워 당을 장악했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원조 친노’ 안 지사 행보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3선이냐, 여의도 정치냐’의 갈림길에 선 안 지사는 ‘당권 도전→원내 진입→대선 직행’ 플랜을 택할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송영길 vs 안희정’ 구도는 86그룹 경쟁의 신호탄이 될 전망이다. 지난 5·9 대선에서 문재인 캠프의 호위무사와 안풍(안희정 바람)의 한판승부가 시작되는 셈이다. 친문 신주류와 원조 친노 간 대결이다. 다만 이들의 입각 여부 및 안 지사의 3선 도전 여부에 따라 맞대결이 불발될 수도 있다.
대체 카드는 많다. 차기 서울시장 후보군인 임종석 실장을 비롯해 입각한 김부겸 행정자치부 장관,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이용섭 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 등을 통해 퍼즐 맞추기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대선 막판 문재인 캠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은 박영선 의원도 유효한 카드다. 박 의원은 문재인 정부의 마지막 경제팀인 중소기업벤처부 장관 후보자에 올라있다.
친문계와 결이 다른 김민석 민주연구원장 행보도 주목된다. 그는 1996년 총선 때 국회에 진출, 86그룹 중 가장 먼저 의원직을 달았다. 문재인 정부의 세력 구도 중심에는 86그룹 신주류가, 비주류 그룹에도 범 86그룹이 포진해 있다. 바야흐로 ‘86 전성시대’다.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은 “내년 지방선거를 기점으로 86그룹이 전면에 부상할 것”이라며 “빠르면 지방선거, 늦어도 2020년 총선 때까지 유효한 시나리오”라고 점쳤다.
윤지상 언론인
문재인 정부 ‘숨은 실세 찾기’…내각 뜯어보니 김수현 인맥 포진 “문재인 정부의 실세를 찾아라.” 요즘 여의도 정국은 문재인 정부 ‘실세 찾기’에 한창이다. 7월 정국에서도 문재인 정부의 1기 내각 임명안을 둘러싼 갈등이 확전되자, 정치권 안팎에선 내각 조각권을 행사한 이들에 대한 퍼즐 맞추기에 나섰다. 특히 당·정·청과 야권이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에 이어 ‘조대엽(고용노동부)·송영무(국방부)’ 카드를 놓고 인사 난맥상 제2라운드를 펼치면서 문재인 정부의 막후 조력자를 둘러싼 숨바꼭질은 한층 빨라졌다. 정부여당 관계자의 말을 종합하면 정부 실세는 김수현 청와대 시민사회수석비서관과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 윤건영 국정상황실장 등이 선순위로 꼽힌다. 김 수석은 18대 대선 이후 ‘심천회’(心天會)를 만들어 당시 대선에서 석패한 문재인 대통령의 정책 교사를 자처했다. 비공식 자문그룹인 이 모임의 핵심 멤버 중 한 명이 조대엽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다. 서훈 국가정보원장과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 등도 이 모임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김 수석이 ‘조대엽 카드’를 비롯해 문재인 정부 1기 내각 조각권에 영향력을 미쳤다는 얘기도 나온다. 막판까지 안갯속이었던 보건복지부 장관이 ‘박능후 카드’로 정리된 것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사실상 책임총리에서 한발 비켜선 상황이다. 당 한 관계자는 김 수석과 관련해 “문재인 정부에서 영향력이 크다”고 말했다. 당 내부에선 곤혹스러운 기색도 역력하다. 자유한국당·국민의당·바른정당이 두 인사에 대한 강한 비토를 하는데도, 대치정국을 풀 만한 묘수 찾기가 난망해서다. 민주당 한 의원은 “인사권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라면서도 “키는 대통령에게 있다. 지켜보자”고 말을 아꼈다. 일각에선 민주당이 ‘조대엽 낙마’ 카드를 청와대에 건의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당·청 실세들 간 권력싸움이 시작된 게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86(80년대 학번·60년대 생)그룹의 선두주자인 임 실장도 실세로 통한다. 임 실장은 대선 기간 ‘문재인 캠프’의 실질적인 좌장이었다. 그는 청와대 인사 중 대통령과 가장 먼저 마주하는 인사다. 문 대통령은 매일 오전 9시 10분 임 실장과의 차담으로 하루 업무를 시작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 대통령은 여민 1관 3층, 임 실장은 같은 관 2층에서 각각 근무한다. 당에서는 임 실장 역할을 ‘총대’로 비유한다. 그는 안경환 전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자진 낙마했을 당시 야권이 조국 민정수석과 조현옥 인사수석비서관을 정조준하자, “내 책임”이라며 호위무사를 자처했다. 임 실장은 즉각 인사추천위원회를 가동, 야권 반발을 무마했다. 윤 실장은 문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한 최측근 인사다. 그는 문 대통령의 의원 보좌관과 정무특보 등을 거쳐 청와대에 입성했다. 국정상황실은 국정원 등 정보기관의 정보가 한데 모이는 곳인 터라, 윤 실장의 파워를 가늠하는 바로미터라는 말도 나온다. 문 대통령의 파격 인사 표본인 조국 민정수석도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정치권 안팎에선 일자리 추가경정예산(추경)과 정부조직법 등을 처리한 이후 적폐 청산에 본격적인 드라이브를 걸 때 ‘조국 역할론’이 한층 커질 것으로 전망한다. 문재인 정부의 막후 조력자가 없다는 주장도 있다. 당의 한 중진 의원은 “실세니, 조력자니, 모두 쓸데없는 얘기”라며 “다 사실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