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자’ 안철수 사태수습 미적 당지지도 4%까지 추락…검찰 칼날 지도부 향하면 더 큰 위기 올 수도
이런 가운데 불거진 ‘문준용 의혹제보 조작 사건’은 국민의당에 치명타를 입혔다. 국민의당 미래에 대해선 비관적 전망뿐이다. 당의 얼굴이었던 안철수 전 대표가 이번 사태로 재기 불능의 상태에 놓인 것과 무관하지 않다. 정치권 일각에선 국민의당이 간판을 내릴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가 1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민의당 당사에서 ‘제보조작’ 사건과 관련해 입장을 밝히기 앞서 인사하고 있다. 박은숙 기자
#총체적 위기에 빠진 국민의당
국민의당 ‘창업자’ 안철수 전 대표가 대선에서 패배한 지 두 달여 만인 7월 12일 여의도 국민의당 당사에 모습을 드러냈다. ‘문준용 의혹제보 조작’ 사건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을 위해 나온 것이다. 그는 “저를 지지해주신 국민 여러분께 고개 숙여 사과드립니다. 심적 고통을 느꼈을 당사자에게도 사과드립니다”라며 고개를 숙였다. ‘정계 은퇴도 고려하느냐’는 질문이 나오자 안 전 대표는 “당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깊이 고민하겠다”고 했다.
이날 정치권에선 “너무 늦은 사과”라는 반응이 우세했다. 안 전 대표 입장 표명은 앞서 박주선 비상대책위원장이 6월 26일 제보조작 사실을 공개하고 대국민 사과를 한 지 16일 만이었다. 파문이 확산되는 와중에 안 전 대표가 즉각적 사과에 나서지 않으면서 국민의당 이미지는 더욱 나빠졌다. 한국갤럽의 최근 여론조사 결과 당 지지도는 4%로 창당 이래 최저치를 갈아치웠다. 창당 두 달 만인 지난해 4월 총선에서 39석을 얻어 원내 제3당에 올랐던 때와 정반대의 상황이 벌어진 셈이다.
안 전 대표가 즉각적 사과를 하지 않은 것은 지난해 총선 당시 ‘리베이트 사건’의 기억이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리베이트 사건 발생 직후 안 전 대표는 책임을 지고 사퇴했으나 법원에서는 이 사건을 무죄로 판단했다. 이러한 전례를 떠올리며 안 전 대표가 조작 사건을 다소 안이하게 생각했거나 사법처리를 두고 보자는 판단을 했을 수 있다는 얘기다.
안 전 대표가 정계 은퇴를 선언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내년 6월 지방선거까지는 영향력을 회복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지방선거를 치러야 할 국민의당으로선 제대로 된 브랜드 없이 맨손 선거를 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더군다나 검찰이 국민의당 지도부를 향해 칼날을 들이대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당은 더 큰 위기에 빠질 수도 있다.
박지원 전 대표의 예전 같지 않은 위상도 국민의당 위기감을 키운다. 지난해 리베이트 의혹 사건 직후 안 전 대표는 당 대표직을 내려놓고 정치 일선에서 후퇴했지만, 당시 박 전 대표가 노련하게 당을 수습하면서 위기를 돌파한 바 있다. 그러나 이번엔 박 전 대표 역시 조작 사건의 책임 공방 아래 놓여 있다.
#특검 제안으로 역공
김동철 국민의당 원내대표는 7월 13일 기자간담회를 열어 ‘문준용의 한국고용정보원 취업 특혜·이유미 제보조작 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했다고 밝혔다. 조작 사건과 함께 준용 씨의 취업 특혜 여부도 특별검사 수사로 밝혀보자는 의미다. 김 원내대표는 “젊은 사람들의 대선에서 이기고 보자는 탐욕 때문에 증거조작이 있었지만, 또 취업 특혜 의혹이 없다면 이 사건도 없었을 사건”이라며 역공을 폈다.
김 원내대표는 “대통령은 국회 교섭단체 중 이번 사건과 관련된 자가 속한 정당이 아닌 정당이 합의해서 추천한 특별검사 후보자 2명 중 1명을 특별검사로 임명해야 한다는 점이 법안의 주요 내용”이라고 말했다. 교섭단체 네 당 가운데 제보조작 사건 당사자인 국민의당과 준용 씨 취업 특혜의혹과 연관이 있는 민주당을 빼면 사실상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에 특검 추천권을 준다는 것이다.
자유한국당도 “사건의 본질을 짚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전희경 자유한국당 대변인은 구두논평을 통해 “허위제보는 문준용 씨의 취업특혜 의혹에서 촉발됐지만 취업특혜 의혹은 밝혀진 것이 하나도 없다. 핵심인 이 의혹의 실체 규명을 위해 국회의 국정조사나 특검이 이뤄지도록 국민의당이 적극적으로 나설 책무가 있다”며 국민의당을 거들고 나섰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도 7월 10일 “특혜가 본질이고 사소한 곁가지, 증거조작이 있었느냐 없었느냐는 본질이 아니다. 본질을 도외시하고, 곁가지 수사로 본질을 덮으려고 하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라고 밝혔다.
#호남 민심이 관건
국민의당 지도부는 이준서 전 최고위원이 구속된 12일 ‘텃밭’ 호남을 찾았다. 이들은 폭염특보가 내려진 전북 군산을 찾아 현대조선소 앞에 설치한 천막에서 비상대책위원회 회의를 열었다. 이는 당의 운명이 호남에 달려 있다는 판단에서다. 앞으로 당이 죽느냐 사느냐는 호남 민심이 결정한다는 것을 잘 알기에 사태 수습의 첫 행보로 호남 현장 회의를 택했다는 것이다.
사실 호남에선 문재인 정부에 대한 호의적 여론이 주를 이룬다. 여당이 호남을 잘 대접하고 있다는 인식이 폭넓게 형성되고 있다. 호남의 한 현직 기자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는 것이 문재인 정부에 대한 호남의 평가다. 정부 인사만 봐도 문재인 정부는 호남에 대해 정말 우호적이다. 국민의당에 대한 지지세가 예전 같지 못한 이유”라고 했다.
내년 6월 지방선거가 채 1년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국민의당은 민주당의 이런 ‘공세’를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차단, 호남 민심을 붙들어 놔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추미애 민주당 대표가 ‘문준용 씨 제보 조작 사건’과 관련해 연일 ‘강공’ 발언을 쏟아내는 등 ‘국민의당 깎아내리기’에 나서는 것도 호남 민심 장악과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국민의당에 대한 호남 지지층들의 실망감을 유도한 뒤 내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으로 지지정당을 바꾸도록 하기 위한 전략적 행보라는 관측이다. 민주당은 지난해 추 대표가 직접 위원장을 맡은 호남특별위원회를 구성해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하지만 박지원 국민의당 전 대표는 호남에서의 국민의당 입지에 대한 우려는 글자 그대로 ‘걱정’일 뿐이라고 못 박았다. 그는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호남 민심에 대해 “국민의당이 건재하기 때문에 문재인 대통령이 호남 배려를 더 잘할 것이다. 반드시 국민의당을 지지해줘야 한다는 정서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제보 조작 파문에 대한 비난도 있지만 추 대표가 검찰 수사에 간섭하고 국민의당 죽이기를 하니까 우리 지지층이 더욱 단결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광주의 한 언론인도 “문준용 의혹제보 조작 사건이 터졌지만 국민의당이 간판을 내릴 것이라고 보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한쪽에 모든 지지를 몰아주면 견제가 안 된다. 지난 수년간 특히 광주·전남은 전략적 선택을 잘 해왔기에 국민의당을 아예 배제하는 선택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 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의 양당 구도로 가는 정계개편까지는 가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민의당 내 이탈 움직임이 구체적으로 나타나지 않고 있는 점도 정계개편 가능성을 낮추는 요인이다. 여의도 일각에서는 국민의당 일부 인사의 탈당설이 돌지만 말 그대로 설(設) 수준이다.
한편, 국민의당은 8월 27일 새 대표를 뽑는다. 정동영 천정배 의원 등이 당권을 노리고 있다. 새 대표 선출을 계기로 당의 면모를 일신한다는 각오다. 그러나 인물의 무게 측면에서 안철수·박지원 전 대표와 비교할 때 그리 중량감이 크지 않은 데다 새 인물이 없다는 점은 국민의당으로서는 큰 고민이다.
최경철 매일신문 서울 정경부장 겸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