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꼬치엔 칭따오’ 웃을 수만은 없는 이유
왜 이렇게까지 해야 했을까? 한류 시장이 아시아를 넘어 전세계로 뻗어나가면서 한류 콘텐츠를 세계인이 향유하게 됐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단순한 무지의 소치로 넘어갈 수 있는 일이 이제는 인종 차별 및 외교 분쟁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이는 미국 유명 프랜차이즈 커피숍에서 주문한 손님을 구분하기 위해 매장 직원이 눈매를 매섭게 표현해 컵에 그려놓았던 그림이 동양인에 대한 차별로 읽힌 것과 일맥상통한다.
사진=MBC 드라마 ‘죽어야 사는 남자’ 홈페이지
비슷한 문제는 지난 4월에도 발생했다. SBS <웃찾사> ‘레전드매치’에서는 개그우먼 홍현희가 흑인으로 분장한다며 피부에 검은 칠을 한 후 파와 배추 등으로 치장한 채 무대에 올랐다.
그러자 호주 출신 방송인 샘 해밍턴은 자신의 SNS에 “홍현희가 흑인 분장하고 나왔는데 진짜 한심하다. 도대체 이런 말도 안 되는 행동 언제까지 할 거야? 인종을 그렇게 놀리는 게 웃겨? 예전에 개그방송 한 사람으로서 창피하다”는 글을 올렸다. 외국인의 시선으로 본 한국 개그의 문제 지적에 호응이 많았다.
이에 대해 개그맨 황현희는 자신의 SNS에 “단순히 분장한 모습을 흑인비하로 몰아가는 형의 이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는 영구라는 캐릭터는 자폐아들에 대한 비하로 해석될 수 있다”며 “예전에 한국에 시커먼스라는 오랫동안 사랑받았던 개그도 있었어. 그럼 그것도 흑인비하인 건가?”라고 꼬집었다.
황현희의 반박은 오히려 대중의 질타를 받았다. 과거 인종 차별과 비하 등에 무지하던 시절에 보여줬던 시커먼스는 문제가 될 소지가 다분했다. 다만 인터넷 및 SNS가 지금처럼 발달하지 않았고, 개념이 충분히 성숙하지 못하던 때라 웃고 넘길 수 있었다는 것이다. 황현희는 부적절한 예를 통해 자신의 논리를 강화하려다 오히려 된서리를 맞은 셈이다.
한 방송 관계자는 “황현희가 어떤 의미로 글을 올린 것인지 공감이 가는 부분이 있고, 그의 글을 옹호하는 네티즌도 있었다”며 “하지만 한류가 전세계 시장을 지향하는 상황에서 보다 세심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었다. 글로벌 스탠더드로 볼 때는 충분히 문제가 될 소지가 있는 장면”이라고 말했다.
아직 문제는 남았다. “인식이 변해야 한다”는 것에는 모두가 공감하지만 “정확한 기준을 마련해달라”는 요구에는 뚜렷한 답을 내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배우 정상훈은 tvN <SNL코리아>에서 엉터리 중국말을 하는 ‘양꼬치엔 칭따오’ 캐릭터로 큰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중국인 특유의 말투를 흉내 내며 이를 웃음의 소재로 삼는 것은 중국인 입장에서는 기분이 언짢을 수 있다. 돌려 생각해, 중국 예능 프로그램에서 엉터리 한국어를 구사하는 중국인 연예인이 나와서 자신을 ‘소주엔 닭발’이라고 소개한다면, 한국에서도 충분히 문제를 제기할 법하다.
MBC 드라마 ‘죽어야 사는 남자’ 홈페이지 게시판에 오른 사과문
특정 국가나 인종에 대한 비하가 아니더라도 각 나라가 처한 국제 정서를 읽지 못하는 것 또한 위험하다. 한국 연예계는 지난해 ‘쯔위 사태’를 통해 이를 경험했다.
걸그룹 트와이스의 대만인 멤버 쯔위는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 출연해 대만 국기를 흔들었다. 이는 대만이 중국의 일부라며 ‘하나된 중국’을 강조하던 중국 측의 분노를 샀다. 결국 쯔위가 속한 트와이스를 비롯해 소속사인 JYP엔터테인먼트 소속 연예인들이 줄줄이 중국 활동에 제동이 걸렸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세계적인 팝가수 저스틴 비버는 또 다른 이유로 얼마 전 중국 공연을 하지 못했다. 그가 중국의 ‘블랙리스트’에 올랐기 때문이다. 중국 측은 그의 평소 행실을 문제 삼은 것으로 알려졌다. 비버는 지난 2013년 공연을 위해 중국을 방문했을 때 보디가드의 어깨 위에 앉아 만리장성에 올라 빈축을 샀다. 중국의 대표적인 문화재를 모독한 셈이다.
또한 중국은 티베트 문제와 관련해 티베트 독립을 지지하거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를 응원한 아티스트들의 중국 공연을 불허했다. 레이디 가가를 비롯해 본 조비, 마룬 파이브, 린킨 파크 등이 이에 해당된다.
물론 그들의 행동은 잘못되지 않았다. 정치적 소신을 당당히 밝힌 것뿐이다. 마찬가지로 한국의 스타들도 자신의 소신에 따라 입장을 밝히는 것은 상관없지만, 이런 정치적 지식이 없다면 부지불식간 오해를 입을 만한 언행을 해 발목이 잡힐 수 있다.
또 다른 연예계 관계자는 “한류스타들의 무대는 더 이상 한국이 아니다.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은 방송사 카메라 외에도 팬들의 스마트폰 등에 저장돼 전세계로 전파된다”며 “섣부른 말 하나, 행동 하나가 치명적인 문제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에 각 나라에서 금기시되는 것을 미리 공부하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충고했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