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드·북핵 해법 보수도 진보도 불만…적폐청산 위해 ‘개혁 대상’ 검찰 밀어주기 논란
다만 이쪽을 봐도 저쪽을 봐도 딜레마다. 이 판의 주도권을 확보하지 못하면, ‘게임 체인저(흐름의 판도를 뒤바꿔 놓을 만한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이나 사건)’의 희생양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정권 교체 이후 여당 소속 의원들은 “정권교체, 그 이상의 것…”이라며 문 대통령을 치켜세웠다. 주도권 확보 여부에 따라 ‘정권교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으로 바뀔 수도 있다. 본게임은 지금부터다.
문재인 대통령. 사진=청와대 제공
정치권 인사들이 꼽은 문 대통령 암초는 ‘포지션 딜레마’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나 북핵 등 각 이슈 파이팅에서 문 대통령은 보수에도 진보에도 적극적 지지를 받지 못하는 포지션에 처했다. 문 대통령의 신 베를린 구상은 북한 미사일 도발 등 8월 위기설의 후폭풍을 맞았다. 북·미 간 직거래 가능성으로 ‘코리아패싱’ 움직임도 보인다. 박주선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은 “문재인 정부의 무개념 안보인식과 국정운영이 한심스럽기 짝이 없다”며 “그래서 코리아 패싱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라고 일갈했다.
고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통일부 장관을 지냈던 정세현 한반도평화포럼 상임대표조차 북한 도발 원인에 대해 “패권 경쟁 상대인 중국이 자국에 힘을 보태줄 거라는 잘못된 판단 때문”이라고 말했다. 애초 중국이 미국에 협조할 것이란 오판이 한반도 위기를 자초했다는 의미다. 문 대통령의 사드 임의 배치를 지시하자, 당내 매파(강경파)들은 “노무현 정부 당시 이라크 파병 결정과 무엇이 다르냐”라고 반발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출범 200여 일이 지난 2003년 이라크 파병을 결정하면서 지지층의 이반 현상을 자초한 바 있다.
이번에도 비슷하다. 환경단체와 경북 성주 주민들은 문 대통령의 사드 임의 배치 결정 직후 “사드 가동과 환경영향평가 동시 가동은 기만행위”라고 강력 반발하고 나섰다. 민주당 한 의원은 “청와대가 사드 배치 이유에 대해 설명을 해야 할 것이 아니냐”라고 비판했다. 당 내부에서 사드 방중단 구성 움직임을 보이면서 청와대와 결을 달리했다. 그러자 당에는 ‘강경파 단속령’이 내려졌다. 86(80년대생·60년대생)그룹 신주류인 우원식 원내대표는 문 대통령 휴가 기간 당내 강경파 설득에 나섰던 것으로 알려졌다. 전계완 정치평론가는 이와 관련해 “사드 배치 등의 추진 과정을 보면, 박근혜 정부와 무엇이 다르냐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비판했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양립 불가에 낀 포지션이 문재인 정부의 가장 큰 문제”라고 말했다. 검찰 개혁과 적폐 청산의 딜레마가 대표적이다. 이 둘은 문 대통령이 후보 시절부터 강조해온 핵심 과제다. 문 대통령은 검찰 개혁을 언급할 때마다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설치와 검·경 수사권 조정 문제를 강조했다. 국정농단 게이트의 한 원인으로 작용한 검찰의 정치화를 단절할 수 있는 최적의 카드라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문무일 검찰총장은 7월 24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인사청문회에서 공수처 설치와 수사권 조정에 대해 각각 “더 효율적인 제도를 찾자”, “검찰의 직접 수사 기능은 유지돼야 한다”며 청와대의 그간 기조와 온도차를 보였다.
미스터리는 그 다음에 발생했다. 청와대는 문 총장의 공수처 발언 등에 대한 입장을 밝히지 않은 채 인사청문회 다음 날 임명장을 수여했다. 향후 청와대와 검찰 간 갈등을 예고한 상황에서 문 대통령이 임명 절차를 밟은 것이다. 이는 문 대통령의 처한 정치적 상황과 맞물려있다. 현재 검찰은 청와대 캐비닛 문건을 비롯해 한국항공우주산업(KAI) 등 사정정국의 수사 주체다. 앞서 문 대통령은 7월 말 5대 국정목표와 20대 국정전략, 100대 국정과제에서 ‘적폐 청산’을 제1과제로 내걸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없이 출범한 청와대가 ‘사정정국 시즌1’에서부터 검찰 힘 빼기에 나설 경우 적폐 청산은 사실상 물 건너갈 수밖에 없다. 적폐 청산을 위해 검찰 개혁을 놓고 속도 조절에 나선 셈이다.
이는 청와대 캐비닛 문건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삼성물산 합병 재판은 물론, 우병우 전 민정수석에 대한 추가 수사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에서 일단 검찰에 힘을 실어준 것으로 분석된다. 청와대 주도의 ‘적폐청산특별조사위원회’가 여당 내 산하 기구인 ‘적폐청산특별위원회’로 전환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김진표 전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7월 초 올해 연말까지 ‘적폐청산특조위’ 구성에 나서겠다고 밝혔지만, 청와대 대신 당이 8월 적폐청산특위를 만들기로 했다. 일단 청와대는 뒤로 빠지고 검찰에 적폐 청산 임무를 맡겼다는 얘기다.
여권 관계자 분석을 종합하면, 집권 초 검찰과의 최소 공약수 찾기는 실보다 득이 많다. 조직의 명운이 걸린 검찰도 성과 내기에 총력전을 전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국정농단 게이트에서 벼랑 끝으로 내몰린 검찰로선 조직의 자존심을 되찾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문재인 정부는 검찰의 적폐 청산 결과물을 통해 공직기강 다잡기에 나설 공산이 크다. 포지션 딜레마를 역이용한다는 얘기다. 여당 한 관계자는 “공공기관 등에 박근혜 정부가 심어놓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나”라고 반문했다. 청와대의 사정정국 조성이 ‘공직기강 다잡기’로 이어진다면, 사실상 ‘윈윈 게임’이 될 수도 있다. 시간벌기를 통한 조직 정비 차원도 있다. 검·경 수사권 조정은 경찰 개혁이 수반돼야 한다. 경찰의 영장청구권 부여는 ‘헌법 개정’ 사안이다. 집권 초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만큼, 검찰과의 마찰을 최대한 피한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청와대와 검찰 간 ‘케미’(사람 사이의 궁합을 지칭하는 신조어)가 맞는다면, 이들은 힘의 균형점 찾기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검찰 내부에서도 정부에 대한 분위기가 나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역대 정권에서 이뤄졌던 ‘청와대 하명정치’가 없어서라고 한다. 청와대가 적폐청산특조위 구성에 나서지 않은 것도 하명정치 근절의 연장선이라는 분석도 있다. 그간 각 정권은 집권과 동시에 검찰에 하명을 전달, 검찰 장악에 나섰다. 문민정부에서조차 출범 직후 특정인의 이름을 박아 명단을 배포했다는 얘기가 지금까지 여의도에 회자된다. 검찰 출신인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문 대통령의 적폐 청산을 “5년마다 반복되는 정치 쇼”라고 평가 절하한 이유다.
변수는 ‘윈윈 게임’에 나선 청와대와 검찰의 지속 가능성이다. 최근 여의도 안팎에선 문재인 정부가 ‘사정정국 시즌 2’에 본격적으로 나설 것이란 얘기가 심심치 않게 흘러나온다. 신호탄은 이명박근혜 정권과의 전쟁 선포가 될 가능성이 크다. 문 대통령의 휴가 전 표적은 ‘박근혜 지우기’에 방점이 찍혀 있었다. 문화체육관광부 블랙리스트를 비롯해 검찰 내 우병우 라인 정리 등이 대표적이다. ‘사정정국 시즌 2’의 군불은 땐 상황이다. 여권은 ‘이명박 정부의 황태자’였던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의 언론 통제 녹취록 등을 정조준하며 사정거리 맞추기에 나섰다. 홍익표 민주당 정책위 부의장은 이와 관련해 “정치공작을 낱낱이 밝혀야 한다”며 “원 전 원장에서 끝날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사자방(4대강사업·자원외교·방산비리)에 대한 파헤치기가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민정수석실과 국정원은 이미 적폐와의 전쟁 착수에 돌입했다. 청와대는 문 대통령 휴가 기간 때 민정수석실 특별감찰반을 전원 교체한 뒤 민정비서관실과 반부패비서관실로 이원화했다. 20명으로 구성됐던 특별감찰반은 고위공직자 및 대통령 친인척 등을 감찰하는 핵심 중 핵심 조직이다. ‘우병우 별동대’로 불렸던 조직에 메스를 들이댄 것이다. 권한 분산을 통한 조직 정비 차원이지만, 일각에선 본격적인 적폐 청산 사전작업이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새로 투입된 이들은 다수가 검·경 출신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원도 산하의 내부 적폐청산 태스크포스(TF)를 통해 국정원 댓글사건, 북방한계선(NLL) 관련 남북정상회의록 공개, 서울시 공무원 간첩증거 조작, 박원순 서울시장 관련 문건 등 적폐 청산 13개를 집중 파헤치고 있다.
문제는 딜레마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당장 문 대통령의 검찰 개혁 의지는 “급하다고 청산 대상과 손을 잡은 꼴”이라는 비판에 직면했다. 빈대를 잡으려다가 초가삼간을 태울 수도 있다는 얘기다. 사드와 원전의 밀어붙이기식 행보는 ‘이명박근혜 정부와 판박이’라는 지적이다. 외치를 통한 정국 돌파도 미·중의 ‘코리아패싱’ 움직임으로 벽에 부닥쳤다.
추미애 민주당 대표와 청와대의 갈등도 현재진행형이다. 당·청 갈등설의 불씨를 끄지 못 한 사이, ‘노무현 그림자’는 문재인 정부를 덮칠 조짐이다. 이혜훈 바른정당 대표는 정부의 8·2 부동산 정책에 대해 “노무현 시즌 2”라고 꼬집었다. 문 대통령은 ‘노무현의 데자뷔냐, 비욘드 노무현이냐’의 갈림길에 섰다. 전 평론가는 “사회적 갈등이 산적한 이슈들이 많아서 정부가 뒷감당을 못 할 수도 있다”며 “사즉생의 각오로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다. 실천의 본게임은 이제부터”라고 말했다.
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