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독관 실수·기술적 한계로 오독…방송사 4D 화면에 딱 걸려 ‘망신살’
KBO가 리플레이 화면을 판정 번복에 이용하기 시작한 건 2014년 후반기부터였다. 크고 작은 오심 논란이 반복되면서 판정 번복의 필요성이 끊임없이 제기됐다. 결국 KBO도 움직였다. 심판 합의 판정 제도를 마련했다. 일부 정해진 판정에 한해 한 팀 감독이 심판 합의 판정을 요청하면, 각 구장에 배치된 심판진과 경기감독관이 심판실에서 TV 중계 리플레이 화면을 보고 의견을 모아 세이프 혹은 아웃을 결정하는 방식이었다.
첫해부터 효과가 확실히 나타나자 지난해에는 합의 판정 가능 범위가 확대됐다. 동시에 메이저리그 비디오 판독 방식과 동일하게 별도의 리플레이 센터에서 전문 판독관이 판정을 내리는 시스템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마침내 올 시즌부터 KBO 리그 규정 제28조 ‘심판 합의 판정’의 명칭이 ‘비디오 판독’으로 바뀌었다.
3월 31일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개막전 두산 대 한화 경기. 심판이 인터컴을 쓴 채 오심 여부에 대한 리플레이센터의 비디오 판독을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 비디오 판독, 어떻게 진행되나
이전에는 TV 중계가 부득이한 사정으로 끊기거나 중계가 늦게 시작되면, 경기 중 애매한 판정이 나와도 확인할 도리가 없었다. 그래서 판정 번복이 불가능했다. 이제는 다르다. TV 중계방송의 메인 화면 1개, 중계와 별개로 제공되는 방송사 촬영 화면 6개, 각 야구장 좌측·우측·정중앙에 별도로 설치한 3대의 카메라에서 송출되는 화면 3개까지 총 10개의 화면으로 그라운드 구석구석을 볼 수 있다. KBO가 설치한 카메라 3대는 지난해 판정 번복 요청의 70% 이상을 차지했던 1루와 3루, 홈을 중점적으로 찍어 비디오판독센터로 보낸다.
비디오판독센터는 서울 상암동에 마련됐다. 센터를 구축하고 각 구장에 카메라를 설치한 뒤 구장과 센터를 연결하는 시스템을 구현하는 데 30억 원이 넘는 돈이 투입됐다. 물론 15개 구장을 찍어야 하는 메이저리그 비디오판독센터보다는 규모가 작다. 세로로 길쭉한 작은 방에 의자 5개가 놓여 있고, 그 앞의 벽면에는 커다란 모니터가 걸려 있다. 탁자 위에 설치된 비디오 장비를 통해 프로야구 다섯 경기가 다각도로 중계되고 끊임없이 리플레이된다.
비디오판독센터장은 김호인 전 KBO 심판위원장이 맡았다. 김 센터장을 포함한 전문 판독관 3명과 공채로 뽑은 엔지니어 3명이 비디오 판독을 진행한다. KBO가 여러 차례 시뮬레이션을 통해 적정 인원을 검토했고, 만약 5개 구장에서 동시에 판독 요청이 들어오더라도 엔지니어 3명이 판독 화면을 편집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와 별도로 각 현장에는 각 구장별로 KBO 판독 요원 1명과 각 구장별 보조 요원 1명이 배치된다. 5개 구장에서 총 10명이 지원하는 셈이다. 판독 요원은 중계차 신호를 연결하고 KBO 카메라와 서버를 관리하면서, 인터컴을 심판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KBO는 앞으로 비디오 판독 시설과 인원을 보강해 나갈 계획이다.
# 비디오 판독, 제2구장에서도 진행된다
비디오판독센터 설립 이후 첫 비디오 판독은 시범경기에서 나왔다. 3월 14일 광주 KIA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KIA와 두산의 시범 경기 개막전이었다. 김기태 KIA 감독은 7-2로 앞선 8회 1사 만루서 왼쪽 폴 위로 넘어간 두산 국해성의 타구가 좌월 만루홈런으로 판정되자 지체 없이 비디오 판독을 신청했다. 그러자 진기한 광경이 벌어졌다. 비디오 판독은 판독을 요청 받은 해당 심판과 그 심판조의 팀장(팀장이 해당 심판일 경우 팀장을 제외한 최고 경력 심판)이 그라운드에서 인터컴 장비를 착용하고 판독센터에서 통보하는 결과를 수신 받는 형태로 이뤄진다. 실제로 이날 김성철 주심과 김준희 3루심은 그라운드 진행요원으로부터 헤드셋 형태의 인터컴을 전달받았고, 가만히 선 채로 인터컴을 통해 결과가 들려오기를 기다렸다. 비디오 판독 요청이 나오면 심판실로 급히 달려 들어가야 했던 이전 풍경과는 달랐다. 결국 이 타구는 홈런이 아닌 파울 타구로 정정됐다. KIA가 시범경기 시작부터 혜택을 봤다.
정규시즌 비디오 판독 1호 수혜자는 두산이었다. 3월 31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한화와의 정규시즌 개막전에서 3회 선두 타자 박건우의 유격수 쪽 땅볼 타구가 1루에서 아웃으로 판정되자 김태형 두산 감독이 비디오 판독을 신청했다. 한화 유격수 강경학의 송구가 높아 1루수 로사리오의 발이 베이스에서 떨어졌고, 달려오는 주자를 태그하지도 못했다고 판단한 것이다. 비디오 판독 결과 유격수 실책이 인정돼 박건우는 1루에서 살아남았다.
비디오 판독은 10개 구단이 사용하는 9개 메인 구장들 외에 제2구장에서도 똑같이 진행되고 있다. 올해 프로야구 경기가 열린 제2구장은 울산, 포항, 청주다. 각각 롯데, 삼성, 한화가 두 번째 홈으로 쓰고 있다. KBO가 마련한 차량이 이동형 화면 송출 장비를 싣고 이 구장들로 이동한다. 이 송출 장비는 평소 9개 메인 구장에 설치된 카메라로 찍는 영상을 실시간으로 비디오판독센터로 보내는 기능을 한다. 9개 구장에는 고정형 장비가 설치돼 있지만, 한 시즌에 6경기씩만 배치되는 제2구장까지 고정형 장비를 설치하기에는 효용성이 떨어진다. 결국 이 장비를 제1구장에서 제2구장으로 이동시켜 영상을 전송하는 방법을 택했다.
KBO 카메라가 설치되지 않은 점을 고려해 평소보다 방송사 화면을 더 많이 제공받기도 한다. 중계 방송사들은 평소 방송에 나오지 않는 6개의 화면을 비디오판독센터로 전송하지만, 제2구장 경기 때는 메인 구장 경기 때 보내는 화면 수보다 2~3개를 더 추가한다. 1루와 2루쪽을 잡는 카메라 영상이 그 안에 포함된다.
비디오 판독을 하는 KBO 리플레이 센터. 연합뉴스
# 비디오판독센터, 제 역할 하고 있나
비디오판독센터의 역할은 크게 세 가지다. ▲다양한 화면을 활용한 판독의 공정성 확보 ▲신속한 결정을 통한 경기 스피드업 ▲부정행위에 대한 모니터링 감시 강화가 골자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첫 번째 역할부터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지에 대해 물음표가 끊이질 않는다. 오심 가능성을 없애기 위해 센터를 구축했지만, 최근 들어 득점과 연결되는 오독 사례가 계속 나오면서 논란과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LG와 한화가 맞붙은 7월 29일 대전 경기가 대표적이다. 0-0이던 2회말 한화 공격 때 사건이 벌어졌다. 한화 선두 타자 윌린 로사리오가 좌익선상 2루타를 친 뒤 LG 투수 임찬규의 폭투로 3루까지 밟았다. 1사 3루서 양성우의 1루수 땅볼 때 로사리오가 홈으로 쇄도했다. 공을 잡은 LG 1루수 정성훈이 재빨리 홈으로 송구했다. 아슬아슬한 접전 상황에서 최수원 주심은 로사리오에게 세이프를 선언했다.
LG는 곧바로 비디오 판독을 요청했다. 판독은 무려 7분간 이어졌다. 결과는 원심 확정. 그대로 한화가 1-0으로 앞서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경기를 중계한 방송사가 판독 결과 발표 직후 자체 제작한 4D 화면을 리플레이했다. 이 영상에는 로사리오의 발이 홈에 닿기 전에 LG 포수 유강남이 미트로 주자의 팔꿈치를 태그하는 장면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틀린 판정으로 LG가 1점을 먼저 빼앗긴 것이다.
경기는 LG의 대승으로 끝났다. 결과적으로 비디오 판독 오심이 승부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그러나 비디오 판독 시스템 자체가 손가락질을 받을 여지는 충분했다. 현재 김호인 센터장이 홈런 오독 사태로 KBO 징계를 소화하고 있는 중이어서 더 그렇다.
불과 9일 전인 7월 20일 울산 문수구장에서 열린 롯데-삼성전에서는 판독센터 설립 이후 가장 큰 오독이 나오기도 했다. 롯데가 1-4로 뒤진 3회 롯데 손아섭이 좌중간 펜스 홈런 기준선 위를 맞고 그라운드로 떨어지는 타구를 날렸다. 최초 판정은 홈런. 김한수 삼성 감독이 비디오 판독을 요청했지만 규정상 명백한 홈런이었다. 그러나 비디오 판독 이후 2루타로 판정이 뒤집어졌다. KBO는 책임자인 김 센터장에게 야구규약 부칙 제1조 ‘총재의 권한에 관한 특례’에 따라 10일 출장정지 징계를 내렸다. 해당 판독에 참여한 판독 요원 2명에게는 제재금 50만 원을 각각 부과했다. 이후 징계 중인 김 센터장 대신 다른 판독 요원이 임시로 판독을 지휘하고 있다.
그 후 10경기가 채 지나지 않아 다시 오독이 나왔고, 또 한 번 비디오 판독의 신뢰도에 치명적인 금이 갔다. KBO 관계자는 “아직 비디오 판독 도입 첫해라 시행착오가 여러 가지 발견되고 있다”고 인정하면서 “올해 비디오 판독 과정에서 나온 문제점을 면밀히 검토해 계속 보완해 나갈 계획”이라고 했다. 다만 울산 경기와 달리 대전 경기 판독요원을 따로 징계하지는 않았다. “울산 경기 때는 정확한 영상을 보고도 오판을 했기에 징계가 내려졌다”며 “이번에는 KBO 카메라에 찍힌 영상과 방송사에서 받은 소스 화면에 판정을 뒤집을 만한 근거가 보이지 않았다. 판독관에게 제재를 내릴 수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고 설명했다.
비디오 판독센터로 송출된 화면 10개 가운데 어디에도 유강남이 로사리오를 먼저 태그하는 장면은 잡히지 않았다는 의미다. 판독관의 실수라기보다는 기술적인 한계에 가깝다. 29일 경기에서 오심 장면을 정확하게 잡았던 4D 화면은 중계 방송사가 여러 대의 고화질 디지털 카메라로 찍어 기술적으로 따로 구현해 내는 화면이다. 비디오판독센터로는 송출되지 않고, 송출되기도 어렵다. KBO 관계자는 “앞으로 방송사와 계속 협의해 나가야 할 부분”이라며 “과정과 별개로 오독이 나온 것은 명백한 실수이니 계속 개선책을 마련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배영은 일간스포츠 기자
ML 챌린지 도입 왜? ‘퍼펙트 게임’ 날린 오심에 팬들 경악 미국 스포츠전문지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SI)>는 몇 년 전 메이저리그 역사에 최악으로 남은 오심을 하나 선정했다. 2010년 6월 3일 코메리카파크에서 열린 클리블랜드-디트로이트 전이 그 무대였다. 이날 디트로이트 선발 아만도 갈라라가는 9회 투아웃까지 단 한 타자도 1루에 내보내지 않는 완벽한 피칭을 했다. 마지막 타자인 클리블랜드 9번 타자 제이슨 도날드 역시 1루 쪽 땅볼로 유도했다. 디트로이트 1루수 미겔 카브레라가 타구를 잡아 1루 커버를 들어온 갈라라가에게 송구했다. 한눈에도 명백한 아웃. 역대 21번째 퍼펙트게임이 성사되려는 순간이었다. 바로 그때 1루심 짐 조이스가 ‘세이프’를 선언했다. 그 장면을 지켜보던 모든 이가 충격에 빠졌다. 육안으로도, 리플레이 화면상으로도 오심이 확연했다. 그런데 조이스는 뭔가에 홀린 듯 두 팔을 양 옆으로 쭉 뻗었다. 스스로도 판정 직후 실수를 알아차렸다. 그래도 달라질 수 있는 건 없었다. 퍼펙트게임이라는 역사적인 기록 하나가 날아갔다. 팬들은 물론 백악관까지 나서 판정 번복을 요청했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야구에서 심판의 세이프-아웃 판정은 한 번 콜이 떨어지면 절대 바뀔 수 없는 사안이었다. 조이스는 다음 날 기자회견을 열어 눈물로 사과했지만, 갈라라가의 퍼펙트게임은 역사에 ‘퍼펙트게임’으로 기록되지 못했다. 그 오심은 메이저리그가 비디오 판독을 도입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이전까지 야구에서는 “오심도 경기의 일부”라는 의견이 우세했다. 심판의 판정에 절대적인 권위를 부여할 필요가 있는 데다, 오심이나 빈볼처럼 다양한 요소가 개입하면서 하나의 ‘게임’을 만들어내는 것이 야구의 진짜 묘미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심으로 퍼펙트게임이 날아가는 장면을 목도한 메이저리그는 게임의 흐름과 선수의 기록을 좌우하는 ‘사람의 실수’를 두고만 볼 수는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정확한 판정이 최우선이라는 데에 뜻을 모으고 독자적인 비디오 판독 시스템 구축을 준비해나갔다. 결국 2013년 한 해 동안 시뮬레이션 기간을 거친 뒤 2014년 한·미·일 프로야구 리그 가운데 가장 먼저 비디오 판독을 공식 도입했다. 정식 명칭은 ‘챌린지’다. 이전까지는 홈런 판정에만 사용했지만, 그해부터 13개 요소에 확대 도입했다. 심판 판정의 90%가량을 바로잡을 수 있게 했다. 현재는 14가지 항목으로 범위가 더 늘었다. 한국보다 훨씬 규모가 큰 외부 비디오판독센터에서 전문 판독관이 15개 구장에서 송출되는 자체 화면을 보고 최종 판정을 해 현장의 심판에게 알려준다. 한국처럼 방송사 중계 화면에 일부 의지하는 형태도 아니기 때문에 경기 중계가 없어도 평소와 같은 비디오 판독이 가능하다. 한국 역시 메이저리그의 뒤를 따라 심판 합의 판정과 비디오 판독을 차례로 도입했다. 일본은 한국과 미국보다 비디오 판독에 보수적인 입장이었지만, 점차 판독 범위를 확대해나가는 중이다. [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