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멍난 마운드 틀어막을 둥근 ‘해’가 떴습니다
# 전임감독제 도입, 현실이 되기까지
그동안 야구 국가대표 전임감독제 도입의 필요성은 꾸준히 논의돼 왔다. 매번 국제대회가 열릴 때마다 감독 선발에 애를 먹었기 때문이다. 현역 프로야구 감독에게 국가대표 지휘봉을 맡기기란 사실 쉬운 일이 아니다. 팀과 국가대표팀을 동시에 지휘해야 한다는 부담이 따르기 때문이다.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다면 최상의 결과겠지만, 현실은 다르다. 정작 자신의 진짜 일터를 잃을 수 있다. 일례로 김인식 전 한화 감독은 2009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준우승이라는 최고의 성과를 거두고도 그해 한화가 리그 최하위에 머물면서 프로 사령탑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다. 류중일 전 삼성 감독은 2014 인천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수확하고 팀도 통합 우승으로 이끌었지만, 선수 선발 과정에서 소속팀 삼성 선수에게 특혜를 줬다는 타 팀 팬들의 야유를 받아 괜한 마음고생을 하기도 했다.
기자회견 중인 최초의 국가대표 전임감독 선동열. 연합뉴스
게다가 갈수록 선수 차출이 어려워진다. 각 구단과 선수들이 팀 사정과 부상 등을 이유로 대표팀 참가를 기꺼워하지 않는다. 해외파 선수들의 참가도 갈수록 줄어든다. 올해 3월 WBC는 특히 선수 구성에 가장 어려움을 겪은 대회였다. 지난해 통합우승팀 두산이 선수를 무려 8명이나 보내는 희생을 했지만, 이들 가운데 대부분이 지난해와 같은 성적을 내지 못하거나 부상으로 고생하면서 팀 성적도 함께 내려갔다. 분위기가 이러니 앞으로의 전망도 썩 밝지 못하다. 국가대표 감독은 그야말로 ‘독이 든 성배’이자 ‘잘해야 본전’인 자리가 됐다.
KBO는 이 때문에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부터 ‘전년도 우승팀 사령탑에게 대표팀 감독을 맡긴다’는 원칙을 마련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역시 인천아시안게임을 끝으로 유명무실해진 상태다. 결국 WBC 4강과 준우승 신화를 일군 백전노장 김인식 감독에게 또 한 번 손을 내밀어야 했다. 김 감독은 2015년 프리미어12와 2017 WBC 지휘봉을 다시 잡았다. 한국은 프리미어12에선 극적인 초대 우승팀으로 등극했지만, WBC에선 안방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1라운드에서 탈락했다.
결과적으로 WBC 2회 연속 1라운드 탈락은 전임감독제 추진을 가속화하는 계기가 됐다. 그동안 KBO가 전임감독제 도입을 망설였던 이유는 세 가지다. 국제대회가 그리 자주 열리지 않고, 전임감독의 권한이 제한적인 데다, 프로팀 감독을 제외하면 후보군이 넓지 않다는 점이다. 실제로 2008년 베이징올림픽 이후 야구가 올림픽 정식종목에서 제외되면서 국가대표 전임감독이 지휘할 만한 대회는 WBC와 아시안게임 정도가 전부였다. 전임감독이 활동할 수 있는 운신의 폭이 너무 좁았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다. 2020년 도쿄 올림픽 야구 부활 소식을 기점으로 매년 국가대항전을 치르게 됐다. 올해 신설된 아시아 프로야구 챔피언십을 시작으로 내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2019년 제2회 프리미어12, 2020년 도쿄 올림픽이 연이어 이어진다. 2021년에는 다시 WBC 차례도 돌아온다.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WBC를 제외한 다른 대회에도 각기 중요한 의미가 있다. 아시아 프로야구 챔피언십은 국가대표들의 세대교체를 가늠해 볼 수 있는 기회이고, 프리미어12는 올림픽 본선행 티켓이 걸린 야구 예선전 성격이다.
다행히 프로야구 역대 최다승 사령탑인 김응용 전 한화 감독이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초대 회장으로 부임하면서 프로와 아마 사이에 원활한 소통의 장이 열렸다. 협회가 국가대표 감독 선임과 선수 선발 전권을 KBO에 부여했고, KBO도 곧바로 전임감독 후보를 추렸다. 전임감독에게 도쿄 올림픽까지 3년간 임기를 보장하고, 재임 기간 동안 프로팀의 영입 제의에 흔들리지 않도록 적절한 대우도 하기로 했다. 프로 감독으로서 성과를 올리고 국제대회에서 경험도 쌓은 전임 감독들을 중심으로 후보군을 추렸고, 그 가운데 선 감독이 최종 선택됐다.
# 왜 구원 투수는 선동열인가
납득이 되는 인선이라는 평가다. 선 감독은 현역 시절 통산 1점대 평균자책점(1.20)을 남긴 역대 최고의 투수였다. 마운드가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는 국가대표팀에 ‘구원 투수’로 등판하게 됐다. 또 국내 리그와 국제대회에서 모두 지도자 경험이 풍부하다. 2005년부터 2010년까지 삼성 사령탑을 맡으면서 역대 최초 부임 첫 해 우승을 포함해 한국시리즈 우승컵을 2회 들어 올렸다. 2012년부터 2014년까지는 KIA 감독도 역임했다. 감독 통산 1159경기에 출전해 584승을 올렸다. 대표팀에서도 2006년 초대 WBC와 2017년 4회 WBC 투수코치를 맡았다. 2015 프리미어12에서도 김인식 감독을 보좌해 투수코치 역할을 훌륭하게 해냈다.
선 감독은 감독 선임 발표 직후 열린 취임 기자회견에서 “최초의 전임 감독으로 선임돼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며 “올해 3월 WBC에서 대표팀이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다. 새로운 대표팀을 구성할 때는 철저한 검증을 통해 최고의 선수를 선발하고 싶다. 내년 아시안게임과 도쿄 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내 국민 여러분께 보답하고 싶다”는 출사표를 던졌다.
아무래도 향후 선 감독에게 주어진 과제는 대표팀 마운드 전력 강화다. 2000년대 후반 국가대표팀 원투펀치였던 류현진(LA 다저스)과 김광현(SK)이 부상으로 합류하지 못하면서 대표팀 투수 전력이 급격하게 떨어졌다. 그들의 뒤를 이을 만큼 견고한 특급 선발 투수들도 아직 보이지 않는다. 한국 국가대표팀이 2000년대 중후반과 같은 위력을 회복하기 위해선 류현진과 김광현 못지않은 존재감을 발휘할 수 있는 원투 펀치를 찾아내는 게 중요하다. 선 감독은 “지금은 국제대회를 하면 류현진과 김광현처럼 한 게임을 막아줄 투수들이 부족한 게 사실”이라며 “단기전에서는 선발 투수가 5이닝 이상 최대한 긴 이닝을 책임지고 중간을 거쳐 마무리 투수로 이어지는 게 가장 좋다. 그러나 아무래도 앞으로 상황에 따라 (불펜을) 잘 운영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이어 “코칭스태프는 경기 감각을 위해 현장에 있는 코치들을 중용하게 될 것”이라며 “2군 경기와 아마추어 경기도 꾸준히 지켜볼 생각이다. 현재 고교 졸업을 앞둔 투수들 가운데 좋은 재목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이 선수들이 잘 성장하고 구단도 관리를 잘해줘서 향후 국가대표팀 주축으로 자라줬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대표팀 감독으로서 선 감독이 선수들에게 바라는 것은 단 하나다. 국가대표 선수다운 자세다. 선 감독은 “우리 선수들이 그동안 태극마크에 대한 사명감이 조금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며 “앞으로 대표팀에 뽑힐 선수들이 자신의 명예도 생각하면서 몸 관리를 잘 해줬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강조했다.
배영은 일간스포츠 기자
선동열호 첫 출항, 아시아 챔피언십은? 왕별 될 샛별 활약 무대 선동열 초대 국가대표팀 전임 감독은 당장 다음 달부터 바빠진다. 한국, 일본, 대만이 참가하는 아시아 국가 대항전을 준비해야 해서다. 기존에는 없던 대회가 올해 신설됐다. 공식 명칭은 ‘아시아 프로야구 챔피언십(Asia Professional Basaball Challenge)’. 지난해 5월 KBO의 제안으로 논의가 시작됐다. KBO, 일본야구기구(NPB), 중화직업봉구연맹(CPBL) 등 3개국 프로야구 협회가 모여 “아시아 야구의 발전과 교류를 위해 2013년을 끝으로 중단된 아시아시리즈를 대체할 국가대항전을 만들자”는 취지에 공감했다. 2017 WBC 당시 코치이던 선동열 감독. 연합뉴스 당초 1회 대회는 올해 정규시즌이 끝난 뒤 한국의 고척스카이돔에서 치르는 안을 고려했다. 그러나 도쿄 올림픽을 앞두고 분위기를 달구기 위해 일본 도쿄돔으로 장소를 변경했다. 첫 대회는 11월 16일부터 19일까지 진행되고, 팀 당 2경기씩 예선 3경기와 결승 1경기까지 총 4경기가 열린다. 우승팀에는 2000만 엔, 준우승팀에게는 500만 엔의 상금을 각각 준다. 원래 아시아시리즈는 매년 한국, 일본, 대만, 호주 리그 우승팀들끼리 만나 겨루는 대회였다. 이번 대회는 성격이 다르다. 각 팀에서 선발된 국가대표 선수들을 모아 팀을 구성한다. 다만 프리미어12나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같은 국제대회와는 차이가 있다. 24세 이하(1회 대회 기준 1993년 1월 1일 이후 출생) 또는 프로 입단 3년차 이하의 선수로 참가 자격에 제한을 둔다. 차세대 국가대표 주전으로 활약할 만한 선수들을 발굴하고, 이들에게 국가대항전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해서다. 대신 국가별로 와일드카드 3장이 주어진다. 이 세 선수만 나이와 입단 연차 제한을 받지 않는다. KBO 관계자는 이에 대해 “각국의 입장을 고려한 결정”이라고 했다. “나이 기준이 높으면 선수층이 두꺼운 일본에 유리하고, 너무 낮추면 대만의 전력이 떨어진다”는 얘기다. 또 여타 다른 국가대항전들과 차별화를 둘 필요가 있다고 여겼다. “각국 톱클래스 선수들이 출전하는 대회보다 흥행 면에서는 떨어지겠지만, 새로운 스타 탄생을 지켜볼 수 있는 기회”라고 설명했다. 이 대회는 일단 4년에 한 번씩 열리되 향후 야구의 올림픽 정식 종목 존속 여부에 따라 개최 시기가 조정된다. 이 대회에 출전할 선수 1차 엔트리 마감은 8월 말일까지다. 선동열 감독은 이미 각 구단 24세 이하 선수들 명단을 받아놓고 장고를 시작했다. 롯데 박세웅과 KIA 임기영, 넥센 최원태 등 올해 선발로 두각을 나타낸 투수들과 삼성 장필준과 kt 김재윤 같은 입단 3년차 이하 마무리 투수들이 이 대표팀 마운드의 주축을 이룰 새 얼굴들로 꼽힌다. 타자 가운데선 강력한 신인왕 후보인 넥센 이정후를 필두로 넥센 김하성, NC 박민우, 삼성 구자욱, 한화 하주석, SK 김동엽 등이 발탁될 가능성이 높다. 김하성은 이미 태극마크를 달고 지난 WBC 최정예 대표팀에 선발되기도 했다. [은] |
일본 국대 브랜드 ‘사무라이 재팬’ 소속감·자긍심 ‘쩔어’ 일본은 한국보다 훨씬 오래 된 야구 역사를 자랑한다. 프로야구 인기와 수준이 한국보다 한 수 위고, 야구 저변은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월등히 넓다. 일본 퍼시픽리그의 한 구단 고위 관계자는 “일본과 한국은 고교 야구팀 숫자부터 큰 차이가 난다”며 “한국과 일본의 최정예 대표팀끼리 맞붙으면 기량이 비슷비슷하다. 그러나 일본은 같은 수준의 대표팀을 하나 더 만들 수 있다는 게 다른 점”이라고 자부심을 표현했다. “상위 레벨 선수들의 기량은 비슷할지 몰라도, 그 정도 기량의 선수가 얼마나 많이 있느냐는 점에서 일본과 한국의 차이가 확연하다”는 얘기다. 틀린 말이 아니라 반박할 수 없다. 이 관계자는 “국가대표팀에서 뛸 수 있는 수준의 선수가 많기 때문에 일본에서는 그 안에서 국가대표로 선발됐다는 사실이 선수들에게 더 자부심을 안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일본은 국가대표팀을 ‘사무라이 재팬’이라는 하나의 브랜드로 통합해 체계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단순히 국가대표팀의 강인한 이미지를 위해 붙여둔 애칭이 아니라 진짜 별도의 법인이 있는 비즈니스모델이다.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1회와 2회 대회에서 우승한 일본 야구대표팀이 2013년 3회 대회 3위에 머문 ‘사건’이 사무라이 재팬을 탄생시킨 계기였다. 일본야구기구(NPB)는 그해 국가대표팀을 전담 관리하는 NPB엔터프라이즈라는 회사를 설립했다. 일본 양대 리그 12개 구단 대표들이 이 회사 이사를 겸임한다. 선수단 대표팀 차출에 적극 협조하겠다는 서약도 했다. 대표팀 전임 감독제 역시 공식적으로 도입했다. 초대전임 감독은 40대 소장파인 고쿠보 히로키 감독이었다. 일본 프로야구 선수들이 나서는 성인 국가대표팀뿐 아니라 여자 야구 대표팀, 15세 이하 대표팀, 18세 이하 대표팀, 대학 야구 대표팀, 사회인 야구 대표팀까지 사무라이 재팬 브랜드 안에 총망라된다. 굵직한 국제대회가 열리지 않을 때도 대표팀을 상시 관리하고 다음 대회를 한 발 먼저 준비한다. 사무라이 재팬 홈페이지도 따로 있다. 역대 일본 국가대표팀을 거쳐 간 선수들 명단과 현재 국가대표 선수 현황이 자세하게 정리돼 있다. 일시적으로 헤쳐 모이는 팀이 아니라 하나의 기업이나 구단처럼 ‘소속’ 선수들의 데이터베이스를 완벽하게 구축하겠다는 포부다. 대표팀 유니폼도 모두 하나로 통합했다. 메인 국가대표팀과 여자 대표팀, 청소년 대표팀과 아마추어 대표팀이 모두 같은 유니폼을 입는다. ‘일본의 국가대표’라는 소속감과 자긍심, 그리고 일체감을 느끼라는 뜻이다. NPB 고위 관계자는 “사무라이 재팬은 일반 프로야구팀들 위에 진짜 국가대표들로 구성된 ‘특급’팀이 존재한다는 의미”라며 “야구 국가대표를 모두가 동경하고 우러러 보는 자리로 만들겠다는 취지가 가장 컸다”고 설명했다. 이어 “실제로 일본의 어린이들이 국가대표 선수들을 존경하게 됐다. 엄청난 마케팅 효과를 누리고 있다”고 귀띔했다. 한국이 그렇듯, 사무라이 재팬의 가장 큰 목표는 역시 2020년 도쿄 올림픽 야구 금메달이다. 마지막 올림픽이었던 2008년 베이징 대회에선 예선 라운드와 준결승에서 모두 한국에 패해 금메달을 내줬던 일본이다. 안방 도쿄에서 올림픽을 유치하면서 12년 만에 야구를 정식 종목으로 부활시키기 위해 애썼던 것도 잃어버린 아시아 야구 최강국의 명예를 다시 찾아오겠다는 의지나 다름없다. 그런 일본이 가장 경계하는 대상은 역시 최정예 대표팀을 파견할 대한민국이다. 두 국가가 3년 뒤 열리는 올림픽을 향해 벌써부터 큰 그림을 그리고 있는 이유다. [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