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통의 적 잡다 말고 서로에게 멱살잡이
저격은 신 씨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실제로 400억 원을 주식으로 벌었다면 직접 계좌를 보게 해달라. (박 씨의) 말이 맞다면 원하는 단체에 현금 1억을 약정 없이 일시불로 기부하겠다”고 페이스북에 올리며 시작됐다. 신 씨가 박 씨를 저격했고 박 씨는 무너졌다. 박 씨가 400억이 없다는 점을 인정했고, 그보다 훨씬 적은 10억 원가량의 돈을 벌었다고만 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끝나는 줄 알았던 저격이 새로운 전환점을 맞았다. ‘가치투자연구소’(가투소) 카페대표인 김태석 씨가 참전하면서다. 김 씨는 지난 13일 자신의 카페에 ‘희대의 사기꾼 박철상과 그를 더 큰 괴물로 만들려했던 신준경. 그 추악한 진실 폭로’라는 글을 올렸다.
‘청년 버핏’ 박철상의 정체를 폭로한 두 슈퍼개미가 서로를 저격하고 나서 논란이 되고 있다. 신준경 스탁포인트 이사(왼쪽)와 김태석 가치투자연구소 대표. 페이스북 캡처.
폭로 글에는 김 씨와 박 씨의 통화내역과 녹취록, 신 씨와 박 씨의 녹취록이 있었다. 김 씨의 장문의 글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김 씨는 박 씨가 400억 자산이 있다고 믿고 있었다. 박 씨가 신 씨에게 저격을 당해 인증을 요구받자 이 상황을 평소 잘 지내던 김 씨와 상의한다. 녹취록에서 박 씨는 김 씨의 질문에 ‘자산이 400억 그 이상이다’, ‘홍콩에서 일한 것은 MBA를 가기 위해 필요한 경력을 채우기 위해 지인들이 마련해준 일자리다’ 등 모두 거짓으로 대답한다.
김 씨는 거짓에 감쪽같이 속아 넘어갔고 그를 옹호한다. 그러다 우연히 박 씨의 말이 거짓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충격에 빠진다. 충격에 빠진 김 씨는 신 씨와 박 씨가 나눈 통화 녹취록을 듣게 된다. 김 씨는 박 씨가 거짓말을 했다는 점을 자신의 카페를 통해 폭로했다. 게다가 김 씨는 신 씨가 사건을 덮으려 한다고 의심하면서 그까지 저격하기 시작한다. 김 씨는 신 씨에게 계좌 내역을 인증하라며 과거 행적까지 공격했다. 이 과정에서 김 씨는 10억 원을 내걸기도 했다.
김 씨는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신 씨에게 ‘수상한 거래내역이 있는지 계좌 내역을 공개하라’, ‘공론의 장으로 나오라’고 수없이 얘기했지만 무시했다”며 “신 씨가 나를 공격하는데, 신 씨가 박 씨에게 했던 것처럼 3억 원이 아니라 1000만 원만 공탁 걸어도 내 계좌 내역을 보여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결과적으로 김 씨와 신 씨는 모두 박 씨의 실체를 폭로한 인물이라는 점에선 공통점을 갖는다. 그렇지만 현재의 분쟁은 김 씨와 신 씨가 서로 자신이 박 씨의 실체를 폭로한 실질적인 주체라고 주장하고 있는 점이다. 이 과정에서 김 씨는 신 씨가 오히려 박 씨의 실체를 폭로하지 않고 논란을 덮어버리려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처음부터 박 씨 저격을 지켜봐온 배상범 씨는 김 씨의 이 같은 저격에 황당하다는 입장으로 김 씨 저격에 나섰다. 배 씨는 이희진 사건의 피해자로 신 씨가 이 씨를 저격할 때부터 알아온 사이다. 배 씨는 야합은 없었으며 김 씨가 아니었어도 박 씨의 정체는 탄로날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배 씨는 “8월 7일까지 박 씨를 옹호하는 댓글까지 작성했던 김 씨가 갑자기 입장을 바꿔 카페에 폭로의 글을 올린 뒤 박 씨를 잡았다고 하는 걸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기본적으로 신 씨와 박 씨의 1차 통화만 놓고 보면 김 씨의 주장에 무게감이 실린다. 그렇지만 배 씨는 “2, 3차 통화를 보면 박 씨가 사과문을 올리라고 재촉하며 그걸 보고 (폭로 여부를) 판단하겠다는 신 씨의 입장을 알 수 있다. 게다가 <MBC> 기자와 몇몇 지인들에게 녹취록을 전달했다는 점 등을 고려해보면 덮으려고 한 게 아니란 것을 알 수 있다”며 “1차 통화 이후 신 씨는 젊은 친구의 호소에 살 길을 열어주려고 했지만 사과문 없이 끝까지 기만하는 모습에 모든 걸 공개하려는 상황이었는데 8월 8일 김 씨가 한 박자 빨리 박 씨의 실체를 폭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게다가 신 씨에게 박 씨와의 녹취록을 입수한 뒤 그 내용을 정리해서 자신의 SNS에 올린 뒤 이를 국민신문고에 고발하는 이들에게 기프티콘을 주는 식으로 박 씨를 저격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신 씨도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야합이라고 하는데 지금이야 박철상 씨의 여러 의혹이 수면 위로 올라왔지만 당시에는 박 씨가 400억이 있는지 없는지가 핵심이었다. ‘400억’만 과장됐다면 젊은 사람 살리는 셈으로 퇴로를 열어주려고 했을 뿐이다. 박 씨의 여러 의혹이 새롭게 나온 지금과는 상황이 다르다. 박 씨에게 집중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김 씨의 입장은 다르다. 김 씨는 “신 씨는 박 씨와의 녹취록이 공개되면 자살한다고 했었는데 녹취록 내용을 들어보면 자살할 내용이냐. 신 씨는 영웅이 돼서 박 씨를 이용하려 했다”고 말했다. 이에 신 씨는 “이희진 씨를 저격하다 명예훼손으로 고소까지 당했다. 하지만 이 씨를 잡았다고 광고한 적이 없다. 유명세를 타고 싶었다면 이 씨 때는 왜 가만히 있었겠나”라고 반문했다.
게다가 김 씨는 신 씨 관련 내용을 서봉규 전 서울남부지방검찰청 금융조사1부 부장검사에게 카카오톡 메시지로 보낸 뒤 이를 자신의 SNS에 공개했다. 신 씨는 부장검사에게 메시지를 보낼 만한 사람이 몇이나 되느냐며 이를 ‘청탁’으로 규정했다. 이에 김 씨는 ‘제보’에 불과하다고 일축했다. 오히려 김 씨는 “신 씨는 내가 서 검사와 골프 친 내용을 들었다는 거짓 의혹까지 퍼트리고 있다”고 공격하기도 했다.
400억 자산이 허위로 밝혀진 박철상 씨의 모습. 페이스북 캡처.
두 명의 의견이 엇갈리며 격해지고 있지만 사실 본질은 어느 정도 일치한다. 두 사람의 최종 목표가 어느 정도 일치한다는 점에서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박 씨와 관련된 새로운 의혹이 다시 터져 나올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김 씨는 “지금 나와 신 씨의 싸움으로 프레임되는 것에 반대한다. 핵심은 박 씨다. 박 씨에게 집중해야 한다. 얼마 전 박 씨에게 메시지로 ‘본인 이름으로 기부 받은 내역과 그 사용내역을 투명하게 밝히고 잘못이 있다면 그 벌을 받아야 하고 그럼으로 인해 진정 용서 받을 수 있다’는 내용의 글을 보냈다“고 말했다.
신 씨도 “본질은 내 계좌가 아닌 박철상이다. 김 씨의 저격으로 박 씨의 문제가 감춰지고 있다. 박 씨가 주식으로 돈을 얼마나 벌었는지 다른 사람들에게 돈을 받았다면 어떻게 그 돈을 이용했는지가 핵심이다”라고 설명했다.
앞서의 배 씨는 “김 씨가 박 씨에게 집중해야 한다고 말하는 건 웃기는 이야기다. 김 씨가 끼어들면서 논점은 흐려지고 박 씨 저격이 중단됐는데 무슨 소리냐”며 어이없어 했다.
김 씨와 신 씨의 싸움은 김 씨가 운영하는 가투소, 신 씨가 운영하는 함투 양 카페를 타고 번져가고만 있다. 이 싸움이 어떻게 끝날지, 박 씨는 결국 어떻게 될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정작 당사자인 박 씨는 무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박 씨는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더 이상 드릴 말씀이 없다”며 말을 줄였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