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신동빈 연합’ 사실상 마지막 승부수
지난 5월 신동주 전 롯데홀딩스 부회장은 4개사에 대해 주주총회 결의금지 가처분을 신청했지만 지난 16일 법원은 기각 결정을 내렸다. 당시 신 전 부회장을 대리한 법무법인 바른은 “롯데쇼핑의 가치가 합리적인 범위를 벗어나 지나치게 과대 평가돼 롯데제과, 롯데칠성음료, 롯데푸드의 주주들은 지분율이 감소하는 손해를 입는다”고 가처분 신청의 이유를 설명했다.
이후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지주사 전환 계획은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했지만 최근 다른 변수가 생겼다. 롯데 소액주주들이 ‘롯데소액주주연대모임’을 조직해 롯데쇼핑의 합병 비율 산정이 잘못됐다며 지주사 전환 반대에 나선 것. 롯데소액주주연대모임은 지난 18일 분할·합병 반대 의견을 알리는 홍보 버스를 제작해 운영을 시작했다.
롯데소액주주연대모임은 지난 18일 분할·합병 반대 의견을 알리는 홍보 버스를 제작해 운영을 시작했다. 사진=롯데소액주주연대모임 제공
롯데소액주주연대모임은 “주요 일간지 1면 하단에 소액주주들의 반대 입장을 표명하는 광고계약을 체결하고 광고비까지 전액 입금했으나 압력 때문에 광고가 일방적으로 취소됐다”며 “롯데소액주주들의 반대 입장을 전달하기 위한 홍보버스를 주주총회 전까지 서울 시내에 운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신문사들의 자체 판단에 따른 것이지 우리가 광고 취소를 요청한 적은 없다”며 “광고 내용을 직접 보진 못했지만 광고에 신 회장 이름이 거론돼 명예훼손의 우려가 있어 광고 게재를 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고 말했다.
롯데소액주주연대모임은 신동주 전 부회장과 민유성 전 산업은행장을 특별고문으로 위촉했다. 이른바 ‘반(反) 신동빈 연합’이 만들어진 것. 이성호 롯데소액주주연대모임 대표는 “우리 힘으로는 벅차다는 걸 느껴 신 전 부회장 측 변호사에 연락을 취했다”며 “주주제안을 하려면 약 5000만 원의 돈이 드는데 이를 신 전 부회장이 대신해준 셈이고 실무적인 업무는 민 전 행장의 데이터를 받아 진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민 전 행장은 2015년 ‘롯데 형제의 난’이 불거질 때부터 신 전 부회장을 도왔다. 재계 관계자는 “민 전 행장이 미국 씨티은행에서 근무할 때 아시안계 모임에서 신 전 부회장과 인연을 맺은 것으로 안다”며 “당시는 같은 한국인에 롯데가문이라는 정도만 알았지만 신 전 부회장이 한국에서 활동할 때 몸이 좋지 않았던 민 전 행장에게 도움을 주면서 사이가 발전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롯데소액주주연대모임은 지난 11일 국민연금공단에 탄원서를 제출한 데 이어 14일에는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에 신동빈 회장을 고발하는 등 여론전을 펼쳐나가고 있다. 공교롭게도 신동주 전 부회장 역시 지난 25일 저서 <나의 아버지 신격호>를 출판하며 주목을 끈다. 주주총회를 앞두고 자기 어필에 나섰다고 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 신 전 부회장의 회사인 SDJ코퍼레이션 관계자는 “출판 준비는 작년부터 했는데 그때 주주총회 이슈를 미리 예측했겠나”라며 “우연히 시기가 겹친 것이고 책 내용에 신 회장을 겨냥하는 이야기도 전혀 없다”고 전했다.
롯데소액주주연대모임과 신 전 부회장의 이해관계가 완벽하게 일치하는 건 아니다. 이 대표는 “우리는 신동주-신동빈 형제의 경영권 다툼에는 관심이 없다”며 “롯데쇼핑의 합병비율 재조정을 요청하는 부분에 대해서만 신 전 부회장과 같은 의견”이라고 말했다.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이 지난 3월 20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롯데그룹 경영비리 관련 1차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롯데그룹은 그동안 신동주 전 부회장에게 무응답으로 일관한 것과 달리 주주들에게는 친화정책에 나서고 있다. 지난 17일 롯데쇼핑은 “점진적인 배당 상향 및 중간배당(배당 성향 30% 수준) 실시 추진을 통해 주주가치를 제고할 것”이라고 공시했다. 지난 16일 24만 4500원이던 롯데쇼핑 주가는 24일 27만 3500원까지 올랐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주주 친화정책을 통해 기업가치와 주주가치를 제고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라며 “최근 국제의결권자문기구(ISS)가 보고서를 통해 이번 지주사 전환이 타당하다고 밝혀 이런 부분을 통해 우리의 대의명분과 타당성을 널리 알리려 하고 있다”고 전했다.
신동주 전 부회장 측이 기대를 거는 회사는 롯데칠성음료다. 국민연금은 롯데칠성의 지분 10.54%를 갖고 있고 외국인 주주 비율도 23.4%나 된다. 따라서 국민연금과 외국인 주주들이 모두 반대표를 던지면 롯데그룹의 지주사 전환 안건은 부결된다. SDJ코퍼레이션 관계자는 “롯데쇼핑을 제외한 3개사를 분할합병하자는 내용의 안건을 주주제안 형태로 올린 상태”라며 “외국인 주주들은 시장 가치를 우선적으로 판단하는 경향이 있어 상황을 지켜보겠다”고 전했다. 국민연금 관계자는 “지분율에 따라 의결권을 행사할 것”이라며 “아직 구체적인 입장을 밝힐 수 없고 법에 따라 주주총회 후 15일 이내에 공시할 것”이라고 했다.
재계에서는 국민연금이 신동빈 회장 편에 설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재계 다른 관계자는 “보통 국민연금은 자체적인 판단보다 관련 자문 기구들의 의견을 받아 주주총회 전 이사회에 해당 내용을 알리는 등 사전 조율을 한다”며 “주주총회에서 기습적으로 반대 의사를 표명하는 건 영화에나 나오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