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문 진영 ‘추미애 사당화’ 주장하며 거세게 반발
8월 18일 오후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의원총회에서 추미애 대표가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박은숙 기자
추미애 대표는 정발위를 통해 시·도당 공천권 문제를 손보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정발위 핵심 활동 방향으로 ‘지방선거에 대비한 당헌·당규 등 제도 보완’이 포함된 것. 추 대표는 현행 공천 룰에 대해 “중앙당의 패권을 개선하려고 만든 것이지만 결과적으로 중앙당의 패권을 시·도당에 그대로 옮겨 놓은 것”이라고 반대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이를 두고 친문 진영에선 비판이 쏟아졌다. 중앙당이 공천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공천 규칙이 변경되면 중앙당의 영향력이 강해질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문재인 대통령이 당 대표 시절이던 2015년 만들어진 현행 민주당 공천 규칙은 시·도당의 후보 추천권을 강화하고 중앙당이 개입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공천 규칙을 바꿀 경우, 선거 1년 전 경선 룰을 확정하도록 한 현행 당규를 위반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이어졌다. 한 친문계 의원은 8월 18일 의원총회에서 “당 대표가 당헌·당규를 위반한 것도 탄핵감이지 않으냐”는 취지로 발언하기도 했다. 친문 진영에선 “추 대표가 공천권을 행사해 지방선거에서 자기 사람을 심으려고 한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추미애 사당화’ 논란이 나오는 배경이다.
정발위원장에 신친문계인 최재성 전 의원이 임명된 배경도 궁금증을 낳았다. 차재원 부산가톨릭대 교수는 “최재성 위원장은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에 앞장 선 친문 인사다. 하지만 문 대통령 최측근들이 최일선에서 물러나면서 자신 또한 전면에 나설 수 없게 됐다. 추미애 대표와 최 위원장 간 정치적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것 같다. 추 대표 입장에선 주류(친문계)와 거리를 두면서도 주류에 속해 있는 최 위원장을 이용하는 것이고 최 위원장 입장에선 자신의 정치적 존재감을 과시할 수 있는 기회인 셈”이라고 말했다.
대표적인 친문계 인사로 분류되는 전해철 의원은 8월 20일 “어렵게 혁신안을 마련해 당헌·당규에 반영시키고도 이를 실천하지 않는다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추 대표를 비판했다. 역시 친문 인사인 황희 의원도 페이스북에 “개선은 중요하지만 원칙과 신뢰는 더더욱 중요하다. 새로운 룰을 적용하더라도 다음 지방선거는 아니다”고 밝혔다. 한때 친문계는 정발위 활동에 반대하며 연판장을 돌리겠다고 밝히는 등 집단행동에 돌입하는 방안까지 검토했다.
하지만 추 대표는 정발위 강행 의사를 재확인했다. 추미애 대표는 8월 21일 “지방선거 1년 전 공천 규정을 확정 짓도록 한 혁신안을 지키지 못했다”는 친문계 비판에 대해 “지난해 총선 때 김종인 비대위원장이 혁신안의 취지와 달리 전략공천을 하지 않았느냐. 대선 룰도 탄핵 때문에 2016년 12월 17일까지 정하지 못했다. 규정상 지난 6월까지 지방선거 룰을 만들어야 했지만, 의원들이나 당직자들이 국정기획자문위나 청와대로 빠져 논의할 여건이 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중앙당이 시도당의 권한을 회수하겠다는 게 아니라 견제와 균형이 가능하도록 고민해보자는 의미”라고 거듭 강조했다.
싸움이 크게 번지자 최 위원장도 전면에 나섰다. 최 위원장은 8월 20일 “소위 친문 의원이 추 대표를 비판했다고 추 대표를 배척해서도 친문 의원을 배척해서도 안 된다. 이견이 있다면 해법을 내야 한다. 추미애 대표가 혁신하자면서 지방선거에 사심을 갖는다면 결별을 넘어서서 맞서겠다”고 밝혔다. 이어 친문계를 향해 “집권한다더니 배부른 짓 한다는 소리를 듣는 것이 가장 부끄러운 일이다. 소위 친문 누구라도 사심을 부린다면 그 또한 비켜서 있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차재원 교수는 “친문계 입장에선 추미애 대표에게 ‘월권하지 말고 당 대표로서 존재만 하라’고 요구하고 있는 반면, 추 대표는 당 대표로서 목소리를 내고 싶은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추 대표는 자신이 정당 대표로서 정치적 도약을 위해, 또 여당 대표로서 정국을 주도하는 모습을 보이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일부에선 원조 친문과 신친문의 파워 게임이라는 분석도 있다. 전계완 정치평론가는 “범친문계 안에 신친문과 원친문이 분화되는 과정이다. 사실 추미애 대표는 당 대표로서 권한을 갖고 100% 그 권한을 활용하고 있는 것뿐이다. 반대파도 추 대표를 비판할 명분이 약하다. 지금 당장 룰을 바꾸겠다는 것도 아니고 당 대표가 자신의 권한을 활용하고 있을 뿐이기 때문”이라고 평했다.
일단 추미애 대표와 친문계의 갈등은 봉합 수순을 밟는 모습이다. 지방선거 공천은 사무총장 직속의 지방선거기획단이 맡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백혜련 민주당 대변인은 8월 23일 “정발위는 당원권 강화와 당의 체력 강화, 체질 개선, 문화 개선, 그리고 백만 당원 확보와 인프라 구축을 하는 기구로서 활동하게 된다. 지방선거와 관련해서는 당헌 제95조에 규정되어 있는 지방선거기획단에서 지방선거와 관련한 당헌·당규의 해석과 지방선거 준비를 위한 시행세칙을 준비해서 논의하고 보고하는 것으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논란의 여지는 여전히 남아있다. 현재 민주당 내 17개 시·도당 위원장은 경기도당위원장인 전해철 의원을 비롯해 대부분 친문계가 맡고 있다. 현역 의원들이 지역위원장을 맡고 있는 만큼 공천권에 대한 재논의 필요성이 비문계에서도 나올 가능성이 높다. 전계완 정치평론가는 “이 싸움은 추 대표가 이길 수밖에 없다. 중재안도 추 대표가 원하는 대로 가는 것이나 다름없다. 사무총장 직속의 지방선거기획단에서 맡게 되는데 사무총장은 당 대표가 임명하는 것 아닌가. 당 대표의 영향력이 크게 작용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라고 점쳤다.
김경민 기자 mercur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