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속세로 돌아갔다” 고여 있는 진흙탕
한 주지스님이 20대 여성을 성폭행해 임신시킨 뒤 출산하게 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우리나라 불교에서는 대처승(아내를 둔 스님)을 인정하지 않는다.
지난 7월 7일, 경남지방경찰청에 한 통의 고소장이 접수됐다. 한 여성이 20대였던 2012년경 성폭행으로 임신에까지 이르게 됐고, 출산 직전까지 상대 남성으로부터 낙태를 강요받았다는 내용이었다. 아이를 낳은 이후에는 남성의 폭력과 폭언에 시달려야 했다며 중한 처벌을 내려달라는 호소도 덧붙였다. 여기까지라면 사회에서 자주 접할 수 있는 사건과 다를 바 없다. 그러나 그 상대가 스님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문제가 급속도로 커지기 시작했다.
고소인 측이 주장하는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신병을 앓고 있던 피해 여성 A 씨는 어느날 한 절에서 만난 스님으로부터 “업이 깊어서 신병이 들렸다. 절을 돌아다니며 공양주 식모살이를 하면 나아질 것”이라는 말을 듣고 경북, 경남, 전북 지역의 절을 전전했다.
그러던 중, A 씨는 2012년 8월 당시 몸을 의탁하고 있던 경북지역 B 스님의 절에서 그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B 스님은 조계종 산하 절의 주지로 지역 내에서는 꽤 이름이 알려진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B 스님은 약 2개월간 A 씨를 수차례 불러 성관계를 가졌는데, 심지어 절 인근 무인모텔에서까지 행위가 이뤄졌다고 고소인 측은 주장하고 있다.
A 씨는 2012년 10월 중순경 자신이 임신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A 씨의 어머니는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당시를 회상하며 “그때 B 스님한테 임신 사실을 알렸더니 왜 임신이 됐냐며 노발대발하고 낙태할 것을 강요했다고 하더라”라며 분통을 터뜨리기도 했다. 그러나 낙태를 하기 위해서는 아버지인 B 스님의 동의가 필요했고, A 씨와의 관계가 드러날 것을 우려한 B 스님이 동의서에 서명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무산됐다.
이후 A 씨의 배가 눈에 띄게 불러오자 B 스님은 자신이 주지로 있던 절에서 떠나 개인 소유 절인 경남의 한 절로 A 씨를 이사시켰다. A 씨의 어머니는 “이때 이사를 가면서 B 스님이 ‘절에 여자가 있는 것을 사람들이 알면 좋지 않으니 절대 우리 관계를 말하지 말라’고 입막음을 시켰다”라며 “그 절에 머무는 것도 보름 정도뿐이었으며, 주변 이웃들이 눈치 챌 것을 우려한 B 스님이 이사를 가라고 요구했다. 이사도 남들한테 들킬까봐 한밤중에 짐을 옮겨야 했다”라고 말했다.
2013년 11월경 딸을 낳은 A 씨는 딸의 출생신고도 자신의 앞으로 해야 했다. 주지 재임명을 앞둔 B 스님이 자신과의 관계를 일절 부정할 것을 요구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후 지난 5월경 A 씨가 B 스님과의 관계를 끊기 위해 만난 자리에서 B 스님은 “(딸이) 내 자식이 진짜 맞기는 하냐” “법대로 하면 당신들이 질 수밖에 없다. 위자료를 줄 필요도 없다”라며 법적 대응에 나설 것을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B 스님의 태도에 분개한 A 씨 측은 이 같은 사실을 호소문으로 작성해 조계종 총무원에 전달했다. 그러자 호법부에서 A 씨의 어머니에게 먼저 연락을 취했다. 호법부는 종단 내 사법기관 역할을 맡는 곳으로 범계(계율을 어김) 스님들에 대한 징계 조치를 결정한다. 그런데 B 스님은 이곳 호법부의 초심호계위원(판사 직)으로 범계 스님들의 징계에 관여해 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스님들의 범계 행위와 관련해 성평등불교연대, 참여불교재가연대 등 불교계 시민단체들이 지속적으로 자정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사진=참여불교재가연대
이와 관련해 <일요신문>은 조계종 호법부와 통화를 시도, B 스님과 관련한 징계 절차나 앞으로의 조치에 대해 질의했다. 그러나 호법부 관계자는 “B 스님이 이미 환속했으므로 우리와는 상관이 없다. 우리 손을 떠난 일이다”라며 “사회에서는 (이번 사건을) 큰 일로 볼 수도 있지만 우리는 뭐…알아서 생각하시면 될 것 같다”라는 애매한 답변을 내놨다. 범계 승려들에 대한 조치에 대해서도 “그건 그 쪽 분들이 아셔야 할 일이 아닌 것 같다”라며 “범계와 관련해서 말씀드릴 것은 아무것도 없다”라고 일축했다.
호법부의 말대로 B 스님은 지난 8월 17일 조계종에 환속제적원을 제출했다. 환속이란 ‘속세로 돌아간다’는 뜻으로 범계를 저지른 승려들이 승단에서 스스로 물러나는 것을 말한다. 앞선 8월 1일에는 호계위원 사직서를 제출하고, 본인의 사찰 주지 소임도 사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문제의 스님이 속세로 돌아갔다고 해서 사건이 종결된 것은 아니다. 성평등불교연대 소속으로 스님들의 음행 범계 제보를 받고 있는 관계자는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종단에서는 사건이 시끄러울 때만 잠깐 징계했다가 잠잠해지면 다시 불러들이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특히 음행과 관련해서는 보다 엄중한 처벌을 내리고 다시는 승단에 복적하지 못할 만큼 엄격한 대처가 필요하지만 조계종의 징계는 말뿐이고 서로 보호해주기 바쁘다”라며 “이러니 스님들에게 음행 피해를 입은 피해자들이 목소리나 제대로 내겠는가”라고 꼬집었다.
실제로 조계종 산하 절의 주지들 가운데 범계로 구설수에 오른 주지들이 많다. 가장 유명한 ‘용주사 쌍둥이 아빠 성월 주지스님’ 사건만 하더라도 조계종 측이 사건 조사와 징계 조치를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당시 성월스님은 은처(숨겨진 부인)와 쌍둥이 아들이 있다는 의혹을 부인하고 자신의 사퇴를 요구한 신도들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그러나 지난 4월 재판 과정에서 이들 가족과 이웃이었던 여성이 증인으로 출석해 스님에게 은처와 자식이 있다고 증언했다. 이런 데도 조계종은 개인 신상에 관련한 민감한 상황이라 법원의 판단이 필요하다며 징계를 내리지 않고 있어 비난의 목소리는 더욱 커지고 있다.
지난 4월에는 조계종의 모체로 불리는 재단법인 선학원의 이사장이 재단 신입사원을 성추행한 혐의로 검찰에 기소되기까지 했다. 2015년에는 조계종 내 임원인 한 스님이 어린 나이에 출가한 두 비구니 자매를 성폭행했다는 주장이 대두되기도 했다.
지난 6월에는 조계종 중앙종회의원인 한 스님이 여성 종무원을 성추행한 혐의로 피소되는 일도 발생했다. 성평등불교연대는 “이 스님은 몇 년 전 성추행과 성매매 사건으로 사회적 지탄을 받았던 당사자”라며 “그런 사람이 중앙종회의원으로 선출돼 종단의 지도자로 행세한 것은 종단의 지도부가 성범죄의 심각성을 전혀 인식하지 못한 결과”라고 지적했다.
이 당시 호법부는 성평등불교연대 대표들과 만나 “출가자들의 성범죄와 관련해 성평등적 관점에서의 조사 절차를 엄격하게 적용하겠다”고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그로부터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았는데 호법부 호계위원의 성폭행 의혹과 은처 사실이 밝혀지면서 종단도 난색을 표하고 있는 상황이다.
조계종은 종단 내부적으로 종헌종법에 따라 범계 행위를 저지른 스님들을 처벌하고 있다. 그러나 종법에 ‘4바라이죄(음행, 살인, 도둑질, 거짓말)를 범해 실형을 선고 받은 자’에 한해서만 징계 처벌을 내리는 경우가 많아 ‘범계는 저질렀으나 실형선고를 받지 않았을 경우’에 대해서는 솜방망이 처벌이 따를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익명을 요구한 조계종 산하 한 사찰의 여성 신자는 “청정승가를 위해 종단 측의 엄정한 대처와 사후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지만 종단의 자정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라며 “지난 7월에 낸 종단 내 승려들의 성범죄와 관련한 조계종의 공식 담화문도 성범죄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니까 부랴부랴 낸 것 아닌가. 애초에 처음 문제가 제기됐을 때 종단 내에서 철저히 수사해 징계했다면 종단과 승가 전체가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될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일요신문>은 B 스님과 통화를 시도했으나, B 스님은 “이미 환속해 스님이 아니므로 사건과 관련해서는 드릴 말씀이 없고 재판에서 결국 밝혀질 것으로 생각한다. 결백을 밝히기 위해 아이의 유전자 감식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라고만 짧게 밝혔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
“고기·술 절대 안 돼” 불교 규율 실제로는? 동자승·요양 스님 등 육식 일부 용인 누군가 ‘불교’의 특징을 물을 때 한국인들은 대부분 “육식을 금한다”는 것을 먼저 떠올린다. 사찰 음식이 채식 위주인 점은 불교의 육식 금지를 나타내는 가장 뚜렷한 근거다. ‘불살생 정신’을 적극적으로 해석한 대승불교를 받아들인 우리나라는 이에 대한 실천의 방법으로 육식 금지를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실제 불교의 계율 가운데 “육식을 금한다”고 명확하게 밝힌 계율은 존재하지 않는다. “술을 마시면 안 된다”라는 계율은 비구(남자 스님) 250계에 명시돼 있지만, 일반인들에게 널리 알려진 ‘육식 금지’는 아예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이는 불살생의 실천에 이르는 육식 금지 행위를 형식적인 규율이 아니라 출가자들의 자발적인 의지에 달려 있음을 강조했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존재한다. 즉, 계율대로라면 스님이라도 고기를 먹는 것은 별 다른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말이 된다. 그렇다고 스님들이 대놓고 고기를 즐기는 것은 아니다. 불교 안에서 ‘식육(食肉)’은 조건적으로 허용되지만, 식육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세 가지를 엄격히 금하고 있다. 자신을 위해 생물을 죽이는 것을 보거나, 죽였다는 소리를 듣거나, 그런 의심이 가는 과정을 거친 고기는 먹지 않아야 한다는 것. 즉, 생물이 자신을 위해 희생됐다는 것을 인지한 상태라면 그 고기를 먹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 불교에서는 다섯 가지 깨끗한 고기, 즉 ‘오정육(五淨肉)’에 한해서는 먹어도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죽이는 장면을 보지 않은 고기 ▲죽이는 소리를 듣지 않은 고기 ▲자신을 위해 잡은 것이 아님을 안 고기 ▲수명을 다해 스스로 죽은 생물의 고기 ▲매나 독수리 따위가 먹다 남긴 고기 등은 ‘나를 위해’ 죽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먹어도 된다는 이야기다. 이런 규율에 의거하면 닭이나 개, 생선 등을 그 자리에서 잡아달라고 요구해 먹는 것은 엄격히 금지되지만, 이미 죽어 음식으로 판매되고 있는 고기의 경우는 사실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다만 이 같은 육식을 건강한 스님이 보신을 위해 먹거나 즐겨 찾는 것은 지양된다고 볼 수 있다. 또, 질병에 걸렸거나 요양 중인 스님, 한창 자랄 때인 동자승들에 한해서는 육식이 용인되기도 한다. 현대에 이르러 불교의 육식과 관련한 의견이 높아지면서 종단 내에서도 육식 허용에 대한 찬반 논란이 뜨겁다. 지난 7월 20일~23일 열린 대한불교 조계종 백년대계본부의 ‘백년대계 기획 워크숍’에서 육식 문제가 논의되기도 했다. 이날 워크숍 참가자 가운데 일부는 “육식 금지와 같은 불교의 경직된 계율이 출가자 감소로 이어진다”라고 지적하며 계율을 유연하게 해석할 것을 주장했다. 반면 반대파는 “대만 불교가 1965년 이후 육식 금지의 계율을 지키면서 대중의 존경을 회복했다. 더욱이 채식 문화가 세계적으로 융성하고 있는데 불교가 역행해서는 안된다”라며 맞섰다. 한편, 육식과는 달리 계율에 명시된 음주 문제에 대해서는 강력한 제재가 따르는 일이 많다. 지난 2014년 조계종 총무원장 상좌스님이 만취 상태로 운전을 하다 주차 관리원과 시비가 붙어 음주운전 사실이 적발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중앙종회의원이었던 이 스님에 대해 조계종 호법부는 공권정지 5년의 중징계를 청구하기도 했다. [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