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은 여전히 자살로 생각…공소시효 없애고 재조사 해야”
지난 9월 1일 국방부가 지난 1998년 2월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에서 사망한 김훈 중위에 대해 순직 처리를 발표한 가운데 6일 오후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김 중위의 아버지 김척 예비역 중장을 만났다. 박정훈 기자
하지만 김 중위 아버지 김척 예비역 중장(75·육사 21기)의 시간은 여전히 19년 전 그날에 멈춰 있다. 국방부는 김 중위 순직 처리에 대해 소대장 임무 수행 중 숨졌다는 이른바 ‘형태 불명의 사망’이 인정됐다고 설명했다. 아직 김 중위 죽음에 대한 진상규명이 이뤄지지 않은 상황으로 긴 시간 아들의 명예회복을 위해 외로운 싸움을 벌여왔지만 김 씨에게 아들에 대한 순직 인정은 절반의 승리일 뿐이다. <일요신문>이 지난 6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김 씨를 만나 아직 끝나지 않은 아버지의 전쟁 스토리를 들어봤다.
—지난 9월 1일 국방부가 1998년 사망한 김훈 중위에 대해 순직 처리를 발표했다. 당시 기분이 어땠나.
“일단 뒤늦게라도 김훈 중위가 순직 처리를 받고 현충원에 안장할 수 있게 돼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국방부는 아직도 그의 죽음이 자살이라고 생각한다. 발표하면서도 진정성 있는 어떠한 사과나 유감 표시도 없었다. 전날(8월 31일) 중앙전공사상심사위원회를 마치고 저녁에 국방부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진상규명에 대한 설명은 일체 없고 앞뒤 다 빼고 순직처리한다고 전화 한통 왔다. 군 통수권자, 새로운 국방부 장관이 군 의문사는 적폐라고 하니까 순직 처리한거지 군은 여전히 진심으로 국민에 사죄하고 반성하는 기색이 없다. 19년 전 그때처럼 이들은 아직도 김훈 중위가 자살했다고 생각한다.”
—순직 처리는 됐지만 ‘형태 불명의 사망’으로 인정됐다. 아직까지 김 중위 죽음에 대한 진실은 규명되지 않은 상태인데.
“국방부는 타살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1998년 당시 국방부는 수사관이 사건 현장에 도착하기도 전에 언론에 자살이라고 발표한 뒤 지금까지도 계속 그 주장을 이어오고 있다. 초동수사 시 사건 현장에 있는 권총이 누구의 권총인지도 사건 발생 6개월 뒤 유족이 요청해서 알 수 있었다. 군은 그때도 누구의 권총인지 확인할 수 없다고 했다. 이처럼 군은 제대로 수사한 적이 없다. 대법원, 국민권익위원회에서 김훈 중위 스스로 쐈다고 볼 수 없다고 했을 때도 이를 무시한 채 19년을 보냈다.”
—초동수사가 엉망이 됐던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나.
“초동수사 시 현장보존을 소홀히 하고 주요 증거품을 확보하는 조치도 안했고 소대원들에 대한 조사도 상당 기간이 경과한 뒤에야 진행했다. 김훈 중위가 사망한 날은 김대중 대통령 취임식 바로 전날이었다. 당시 김동신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이 김훈 중위 사망에 대해 최초 상황을 전파시킨 장본인이다. 이후 육군참모총장 때도 조사하지 않았고 국방부 장관 되고도 조사를 안했다. 많은 사람들이 판단하기를 출세영달을 위해 적 내통에 의한 큰 사건으로 번지는 걸 막기 위해 김훈 중위의 죽음을 자살로 조작한 것이라고 한다. 당시 나는 이미 전역한 상태라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적 내통에 의한 것이라고 했는데 무슨 뜻인가.
“사건 10개월 후 북한군과 우리 군의 내통 의혹이 나왔다. 김훈 중위가 사망했을 당시 부소대장이었던 김 아무개 중사가 그 전년도부터 북한군과 상습적으로 접촉하며 북한군으로부터 받은 물품을 사병들에 상습적으로 나눠줘 환심을 샀다는 것이다. 북한 유류품은 포상휴가 증빙으로 쓰이기 때문에 사병들에겐 유혹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김훈 중위가 사망한 날은 2월 24일 김대중 대통령 취임식 바로 전날이다. 적 내통 의혹이 터지면 큰 사건으로 커질까봐 정부가 바뀌기 전에 덮고 가자는 식이었던 것 같다.”
—그동안 김훈 중위 죽음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왔나.
“그나마 군 출신이니까 진상규명을 위해 증거를 찾고 증언을 받는 등 할 수 있는 일을 백방으로 노력해 찾은 거지 일반 국민이었다면 더 큰 고통 속에 살았을 거다. 하지만 아무리 명색이 장군 출신이라도 내가 김훈 중위 명예회복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사실상 아무것도 없었다. 유족이 어렵게 어렵게 노력해서 타살증거를 제시하면 국방부는 타살증거를 자살로 조작하는 것만 했다.”
김 씨는 이날 김 중위 사건 이후 국방부가 타살을 입증하는 미 육군 수사연구소의 감정서를 부정하고 국과수 피복감정서를 조작했다고 주장했다. 사진은 당시 김훈 중위가 스스로 쏘지 않았다는 내용이 담긴 뇌관화약감정서(왼쪽)와 권총에 김 중위의 지문이 묻지 않았다는 내용의 지문감정서(가운데), 권총발사자 확인 방법을 명시해 놓은 국방조사본부 홈페이지(오른쪽). 박정훈 기자
—군이 타살증거를 자살로 조작했다고 주장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당시 김훈 중위의 국방부조사본부 수사 관련자들은 타살을 입증하는 미 육군 수사연구소의 뇌관화약감정서와 지문감정서를 부정하고 국과수피복감정서를 조작해 손에 뇌관화약이 아닌 피복의 어깨부위 무연화약이 자살 사격근거라고 주장했다. 뇌관화약감정서에는 김훈 중위가 스스로 쏘지 않았다는 내용이, 그리고 지문감정서엔 권총에 김훈 중위 지문이 없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또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노르웨이의 숲>을 읽고 자살한 것이라 설명하기도 했다.”
—김훈 중위가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고 본 것인가.
“국민권익위원회에서도 2012년 8월 벙커 내 격투흔적이 있고 김훈 중위 관자놀이에서 총구에 눌린 흔적이 없었다는 점 등을 들어 자살로 결론내기 어려우니 순직을 인정하라고 국방부에 권고했다. 그러나 이마저도 무시한 채 국방부는 권익위에 정신질환자 여부를 조사하고 있다며 김훈 중위를 정신질환 자살자로 몰았다.”
—그렇다면 김훈 중위는 어떤 아들이었나.
“김훈 중위는 내가 한창 전방근무할 당시 네다섯 살 때부터 군부대에서 병사들과 친하게 지내고 군대문화에 익숙해 있었다. 그러다 아버지를 따라 육사에 지원한다고 했고 군인이 되고 나서도 별 3개 달고 있는 아버지 계급 이야기를 한 번도 주변에 안했다. 학교 다닐 때도 항상 아침마다 한강 조깅을 하고난 뒤에야 등교할 만큼 강인한 아이였다. 아버지를 따라 군에 헌신하겠다고 입대한 아들을 이렇게 심신이 미약해서 자살한 것으로 처리해버렸다.”
—순직이 인정된 만큼 이제는 진상규명에 힘을 써야할 때인 것 같다.
“육사동기생들이나 선배들은 내게 그동안 고생했다며 ‘순직 처리 됐으면 할 만큼 한 거 아니냐’고 말한다. 군에선 순직 처리했지만 아직까지 김훈 중위의 죽음을 자살로 생각하고 있다. 군은 죽고 난 뒤 이리 저리 핑계되며 공소시효가 지날 때까지 시간을 끌어왔다. 하지만 나는 여기서 멈출 수 없다. 공소시효 없애고 재조사 들어가서 진실을 밝혀야 한다. 그것만이 아들의 명예를 회복할 수 있는 길이다.”
—앞으로 국방부나 문재인 정부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먼저 새 정부 들어 군 의문사에 관심을 가져준 문재인 대통령, 송영무 국방장관에 감사드린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아직 부끄러운 나라다. 김훈 중위가 자살이라면 자살 근거를 명확히 제시해야 한다. 그런데 대법원, 국회 등 국가기관과 다른 나라 감정서까지 자살로 볼 수 없다고 나왔는데 그것을 전부 부정해온 것 아닌가. 김훈 중위 사건엔 군대의 모든 적폐가 다 포함돼 있다. 군 당국의 진정한 사과가 필요하고 재조사를 확실히 해야 한다. 공소시효도 없애고 군 의문사 수사처를 만들어야 우리 가족같이 의문사로 고통받는 유족들에 힘이 될 수 있다.”
김상훈 기자 ksangh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