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에 의문의 액체 주입…누구 짓인가
헨드릭스 주변엔 여자들이 끊이지 않았고 헨드릭스 자신도 마다하지 않았다. 죽기 전 일주일 동안의 행보만 봐도 알 수 있다. 그의 곁엔 집착에 가깝게 그를 따르던 그루피 데본 윌슨이 있었고, 덴마크 모델 크리스틴 네페르도 하룻밤을 자고 갔으며, DJ였던 캐시 에칭햄이라는 여성과도 만났다. 당시 헨드릭스가 사귀던 사람은 모니카 다네만. 독일 출신의 피겨 스케이터였던 그녀는 헨드릭스의 복잡한 여자관계에 진저리를 쳤다. 헨드릭스가 세상을 떠났던 1970년 9월 18일 새벽에도, 그녀는 파티에서 여자들과 시간을 보내는 헨드릭스를 빼내오기 위해 한바탕 난리를 쳐야 했다.
지미 헨드릭스
그렇게 헨드릭스를 자신의 아파트로 데려 온 다네만은 곧 잠에 들지 못했다. 결국 두 사람은 오전 6시까지 눈을 뜨고 있다가 겨우 잠에 들었고, 먼저 깬 다네만은 잠깐 밖에 나갔다 들어왔는데 이때 헨드릭스의 상태는 심상치 않았다. 다네만은 황급히 전화를 걸었고 오전 11시 27분에 앰뷸런스가 도착했다. 그러나 그때 다네만은 없었다. 대신 침대 위는 헨드릭스의 엄청난 양의 토사물로 뒤덮여 있었다. 응급요원은 황급히 흡입기를 가져다 댔으나 헨드릭스의 기도는 막혀 있었다. 11시 30분에 경찰이 도착해 상황을 파악했고, 앰뷸런스는 11시 45분에 세인트 메리 애보트 병원에 도착했다. 여러 차례 심장 충격 요법을 사용했지만 헨드릭스의 의식은 돌아오지 않았고 결국 의사는 12시 45분에 사망 선고를 내린다. 당시 나이 28세. 너무나 이른 죽음이었다.
사인은 약물 과용. 검시 결과 사망 당시 헨드릭스는 영양 상태도 좋았고 근육도 잘 발달되어 있었다. 마약 중독은 아니었지만, 혈중 알코올 농도는 꽤 높아서 음주 단속에 걸릴 수준이었다. 수면제 성분이 발견되었는데 그 양이 꽤 많았다. 의사는 이 성분이 중독 상태를 만들었고, 그 결과 구토 증세가 일어났으며, 호흡 장애를 일으켰다고 보았다. 심장 오른쪽 부분이 매우 팽창되어 있었는데, 판막 관련 질병은 없었다. 왼쪽 폐가 부분적으로 파괴된 상태였다. 토사물이 기도를 통해 폐로 들어간 모양이었다. 가슴 부분이 40ml 정도의 액체가 주입되어 있었다. 위에선 반쯤 소화된 음식이 있었다. 토사물에 의한 질식사가 검시관의 최종 결론이었다.
연인인 다네만은 의혹의 중심이었다. 앰뷸런스가 도착하기 전, 헨드릭스의 친구이자 밴드 더 애니멀스의 싱어인 에릭 버든이 아파트를 방문했다. 그는 이틀 전 헨드릭스의 마지막 연주 무대를 함께했던 절친이었다. 그는 새벽에 다네만의 전화를 받아 해가 뜨자 아파트로 왔다고 증언했는데, 다네만은 이 사실을 경찰에 숨기다가 발각되었다. 다네만은 앰뷸런스가 오기 전에 헨드릭스가 쓰러져 있는 아파트를 빠져 나와 버든의 집으로 갔던 것도 이후 밝혀졌다. 한편 헨드릭스의 로드 매니저인 게리 스티켈스는 아침 8~9시에, 헨드릭스에게 뭔가 문제가 생겼다는 다네만의 전화를 받았다고 했다. 그런데 헨드릭스의 밴드에서 드럼을 쳤던 미치 미첼은 아침 7시 30분에 매니저 스티켈스의 전화를 받았고, 이때 헨드릭스가 죽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했다.
지미 헨드릭스와 모니카 다네만
이후 다네만의 일관성 없는 증언은 더욱 상황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다네만은 <빌트>와의 인터뷰에서 헨드릭스가 잠에 들지 못해 자신이 수면제를 주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후 경찰 조사에선 헨드릭스가 자신 몰래 수면제를 먹었고, 반 알만 먹으면 되는 수면제를 헨드릭스는 아홉 알이나 삼켰다고 말했다. 잠에서 깬 시간도 이야기할 때마다 달랐다. 9시, 10시, 11시…. 경찰엔 10시 20분에 일어났을 땐 헨드릭스가 정상이었지만, 담배 사러 나갔다 온 11시엔 토사물 범벅이 되어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앰뷸런스를 함께 타고 가면서 확인했을 땐 아직 생명이 붙어 있는 상황이었다고 증언했다.
하지만 응급요원들의 소견은 달랐다. 사실상 헨드릭스는 처음부터 죽은 상태였으며, 다네만은 앰뷸런스에 타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그녀를 본 적도 없다고 말했다. 토사물이 이미 말라붙어 있던 걸로 봐서, 구토 증세는 몇 시간 전에 일어난 것이 틀림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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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드릭스는 스스로 과도한 양의 수면제를 삼키고 자살한 걸까? 아니면 과용에 의한 사고일까? 혹시 다네만에 의해 체내로 그 성분이 들어간 건 아닐까? 이 과정에 공범이 있었다면 누구일까? 잠이 들기 시작한 아침 7시 즈음부터 앰뷸런스가 도착한 11시 27분 사이에 과연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헨드릭스의 왼쪽 손목에 있던 6mm 크기의 상처와 그의 가슴 부분에 주입된 액체도 의문이었다.
결국 그가 세상을 떠난 지 22년이 되는 1992년에 헨드릭스의 과거 애인이었던 캐시 에칭햄의 요구로 재수사가 이뤄졌고, 경찰은 지미 헨드릭스가 죽기 전 파티에서 만났던 모든 사람을 만나 조사를 했지만, 이렇다 할 결론을 내리진 못했다. 이후 경찰은 수사를 계속 진행하는 것이 공공의 이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중단했고, 1996년 헨드릭의 마지막 시간을 함께했던 다네만이 세상을 떠나면서 모든 진실은 땅에 묻히게 되었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