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세대교체 속앓이도…“그러나 이제 야구를 즐기려 한다”
―아메리칸리그가 치열한 와일드카드 경쟁을 펼치고 있다. 텍사스 레인저스는 21일(경기 전) 현재 와일드카드 고지에 접어드는데 3경기 승차를 두고 있다. 앞으로 남은 경기가 11경기이다. 어느 정도 승산이 있다고 생각하나.
“만약 우리 팀 상황이 5경기 남았고, 와일드카드 진입하는데 6경기 차이를 보인다면 포기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쉽게 포기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렇기 때문에 부상 선수들도 최선을 다해 뛰고 있다. 벨트레, 오도어, 나폴리 등 부상으로 힘든 상황이지만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고 부상을 참고 경기에 나선다. 그런 선수들을 보면서 다른 선수들이 더 힘을 내고 있다.”
―올시즌 텍사스 레인저스 마운드는 계속 어려움을 겪었다. 특히 다르빗슈 유가 LA 다저스로 트레이드되면서 그 어려움은 배가 됐다. 이런 상태에선 포스트시즌에 진출해도 올라가기가 쉽지 않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팀 에이스를 트레이드시킨다는 건 구단에서도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선수들이 구단의 결정을 이해했던 건 아니다. 떠나간 선수의 공백을 몸으로 느꼈기 때문이다. 맞다. 지금과 같은 전력에선 포스트시즌에 진출한다고 해도 많은 장벽에 부딪힐 것이다. 선수 보강이 안 된 상태라 포스트시즌 같은 단기전에서 좋은 모습을 보일 거라고 장담할 수도 없다. 그러나 선수라면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 미리 걱정하기보다는 어떻게 해서든 와일드카드 경쟁을 이겨내는 게 우선이다. 그리고 우리가 포스트시즌에 진출한다면 정규시즌에선 볼 수 없었던 집중력, 에너지, 팀워크가 더 살아날 것이라고 믿는다. 무엇보다 우린 포스트시즌을 경험해봤던 팀이다. 그 부분들이 좋은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싶다.”
―지난해 이맘때 시애틀, 바로 이 구장에서 추신수 선수를 만났던 기억이 난다. 당시 추신수 선수는 왼 손목 골절(8월 16일)을 당한 상황이었고, 수술 후 시즌 아웃 판정을 받았지만 포스트시즌 진출에 대한 의지를 불태우며 피나는 재활 훈련을 거듭한 끝에 9월 8일 시애틀 원정 경기에 합류하면서 처음으로 캐치볼을 시작했었다. 그때 기자에게 “올 시즌 내 야구는 끝나지 않았다”면서 재기에 대한 강한 의지를 다졌던 게 기억이 난다.
“나도 어제(20일), 세이프코필드에 들어서는 순간 지난해 가을 이곳을 찾았던 생각이 나더라. 텍사스 레인저스 입단 후 2015년, 2016년 2년 연속 지구 우승을 차지했다. 지난 2년 동안 포스트시즌은 항상 축제 같은 마음으로 임했는데 올 시즌에는 와일드카드 경쟁을 펼치는 상황이 묘한 감상에 빠지게 했다. 그래도 부상 없이 시즌을 마치는 게 어디인가. 올 시즌 목표대로 잘 왔다고 생각한다.”
―맞다. 지난 3월, 애리조나 스프링캠프에서 부상 없이 시즌을 치르는 게 올 시즌 목표라고 말했었다. 아직 시즌이 끝나진 않았지만 현재까지 목표 달성은 이룬 셈이다.
“정말 관리 많이 했다. 아프지 않아도 매일 트레이너실을 찾아가 치료받았고, 약간의 이상 증세만 보여도 치료실을 방문했다. 몸 상태가 좋지 않으면 하던 운동을 그만뒀고 절대 무리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야구하면서 이토록 몸 관리를 철저히 했던 적이 없었다. 이전에는 참고 야구하는 게 당연했는데 말이다. 나이가 30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몸이 보내는 신호에 신경을 쓰고 있다.”
팀 동료 루그네드 오도어와 함께 있는 추신수.
―올 시즌 부상은 없었지만 심적 갈등이 많았던 시간들이었다. 외야수보다는 지명타자로 나서는 시간들이 늘어나면서 타격감을 유지하는 데 힘든 모습을 보였다.
“이젠 이전처럼 화도 안 나고, 설령 화가 난다고 해도 금세 가라앉는 편이다. 야구에 대한 열정과 간절함이 줄어든 게 아니라 이젠 좀 더 야구를 즐길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는 나이가 아닌가 싶다. 어느 날 문득 내가 앞으로 야구를 얼마나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봤다. 내가 야구해왔던 시간들에 비하면 그리 많지 않은 기회가 주어질 것이고, 그 기회 속에서 유니폼을 입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젠 매 경기 일희일비하지 말고 야구를 즐겨야 한다. 우리 팀의 아드리안 벨트레를 보면서 배우는 게 많다. 나보다 세 살이나 많은 선수의 야구 인생은 즐거움 그 자체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어떤 결과가 주어져도 그걸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자세가 필요한 것 같다. 물론 이런 방법은 내가 추구하는 야구 스타일과는 차이가 있다. 하지만 많이 남지 않은 선수 생활 동안 좀 더 편하고, 좀 더 즐기고, 좀 더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야구인생을 채워나가고 싶다.”
―지명타자로 나설 때와 외야수로 출전할 때의 성적 차이가 나는 편이다. 특히 홈런에선 4개(지명타자)와 15개로 차이가 크다.
“리듬 때문에 그렇다. 수비로 나갈 때는 경기 내내 일정한 리듬을 유지할 수 있지만 지명타자는 벤치에서 머물다 타석에 들어서는 것이라 타격감을 일정하게 갖고 가는 게 쉽지 않다. 물론 벤치에서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한다. 더그아웃 뒤에서 계속 몸을 움직이며 타석을 준비하는데 그렇게 해도 타석에 들어설 땐 미묘한 차이를 느낀다. 올해는 잘 맞은 타구가 잡히는 횟수가 많았다. 오른손 투수를 공략하는 부분도 만족할 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팀에서 지명타자를 맡긴 건 좋게 표현하면 관리를 하는 것이고, 반대로 해석하면 그만큼 기회를 뺏었다는 생각도 든다. 특히 올 시즌에는 성적이 좋았던 경기 다음날 라인업에서 아예 빠지는 경우가 빈번했다.
“선수라면 매일 경기에 뛰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다. 내 몸은 누구보다 내가 잘 안다. 솔직히 처음에는 이런 흐름이 익숙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라인업을 내가 짤 수는 없지 않은가. 시간이 흘러서 그런지 지금은 많이 편해졌다. 부상 선수가 늘어난 후론 거의 매일 수비에 나서고 있는데 나한테는 이런 리듬감이 맞는 편이다.”
―추신수 하면 ‘출루머신’으로 유명하다. 그만큼 볼넷을 많이 기록하는 선수인데 후반기 들어선 볼넷 비율이 확 떨어졌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공격적으로 상대 투수의 공에 대응했기 때문이다. 메이저리그 모든 투수들이 내가 선구안이 뛰어나다는 걸 안다. 가능하면 볼넷을 주지 않으려고 애를 쓰는 편이다. 그런 상황에서 내가 공격적으로 타격한다는 걸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벨트레가 올 시즌 3000안타란 대기록을 작성했다. 그 당시 내 기록과 벨트레 기록을 살펴봤었다. 내가 기록한 안타는 1300여 개였는데 볼넷은 벨트레랑 큰 차이가 나지 않았다. 볼넷이 많으면 안타가 많이 나올 수 없다.”
―일부 야구팬들 중에는 추신수 선수의 ‘영양가’에 대해 갑론을박을 벌일 때가 있다. 영양가가 없다는 팬들도 있고, 어느 선수보다 저평가 받는 선수라고 반박하는 팬들도 있다. 이에 대한 생각이 궁금하다.
“영양가가 있고 없고는 내가 평가하는 건 아니지 않나. 그러나 내게 영양가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과 야구 게임 한 번 해보고 싶다. 난 어느 타석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 그 지나친 타석이 아쉬울 수 있기 때문이다. 밖에서 보기엔 그냥 삼진 먹는 것 같고, 안타 없이 땅볼 치는 것 같지만 선수라면 모든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이해해주셨으면 좋겠다.”
―조금 다른 질문이다. 지난해와 올 시즌 코리안 메이저리거들이 많이 늘어난 듯하지만 일부 선수들이 적응하는 데 힘든 모습을 보였다. 한국으로 돌아간 선수들도 있고, 미국에 남아 있지만 내년 시즌 어떤 모습으로 시즌을 시작할지도 모른다. 이 부분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나.
“메이저리그는 선수층이 두꺼워 대체할 선수가 넘쳐난다. 그건 그만큼 기회를 잡기 어렵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이왕 선수를 쓴다면 구단에서 돈을 많이 주고 잡은 선수에게 더 많은 기회를 준다. 당연한 경제논리이다. 기회를 받기는 정말 어렵지만 한 번 기회를 잡으면 믿고 쓰는 곳이 메이저리그이다. 피츠버그 강정호를 예를 들어 보자. 정호가 개인적인 일로 미국에 갈 수 없는 상황에 처했지만 피츠버그는 도미니카 윈터리그를 제안해주는 등 끊임없이 관심을 표하고 관리한다. 그 이유가 뭘까? 강정호는 피츠버그 구단으로부터 실력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한 번 인정받으면 어떤 상황이 펼쳐져도 계속 갈 수 있는 곳이 메이저리그이다. 미국으로 오는 한국 선수들 중 메이저리그 계약을 개런티해주지 않는다면 오지 않는 게 맞다. 적은 돈을 받고 기회를 얻기가 힘든 곳이다. 물론 어린 나이에 고생을 각오하는 거라면 말릴 수 없지만 말이다. 나로선 지금보다 더 많은 한국 선수가 메이저리그에서 뛰길 바란다. 하지만 무모한 도전이 되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추신수는 한국보다 메이저리그에서 더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팀에서 세대교체를 진행한 시즌이었지만 만약 지금 추신수가 텍사스 레인저스에 존재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그가 없는 1, 2번 타순을 떠올리긴 결코 쉽지 않다. 2000년 시애틀 매리너스와 계약 후 마이너리그 루키리그부터 단계를 밟아 지금의 자리에 올라선 추신수. 과연 어떤 한국 선수가 1억 3000만 달러의 FA 계약을 성사시킬 수 있을까. 당분간 그런 선수는 나오지 못할 것이다.
미국 시애틀=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
불펜행? 류현진의 포스트시즌은… 류현진은 과연 포스트시즌 동안 팀에서 어떤 보직을 맡게 될까. 지난 20일(한국시간) 필라델피아 원정 중인 다저스 데이브 로버츠 감독은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포스트시즌을 대비해 류현진과 마에다의 불펜 오디션을 시사한 바 있다. 그 말인즉 두 선수가 포스트시즌 선발 경쟁에서 탈락했다는 걸 의미했지만 상황은 또 어떻게 변화될지 아무도 모른다. 그동안 로버츠 감독의 의견이 자주 뒤바뀌었기 때문이다. 현지 언론에선 다저스가 클레이튼 커쇼, 다르빗슈 유, 알렉스 우드, 리치 힐로 포스트시즌 선발 로테이션을 꾸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류현진은 후반기 9경기에서 2승1패 평균자책점 2.36으로 활약했다. 마에다는 올 시즌 26경기(24선발)에서 12승(6패)을 거뒀지만 평균자책점 4.21로 다저스 선발투수 중에서 가장 경쟁력이 떨어진 편이다. 즉 마에다를 불펜으로 전환한다고 해도 이해할 수밖에 없지만 류현진의 성적을 고려하면 아쉬움이 크다. 류현진은 포털사이트에 연재하는 일기를 통해 이에 대한 속내를 털어 놓은 바 있다. 그는 “포스트시즌 동안 구단이 나랑 마에다를 불펜으로 활용할 예정이란 기사를 봤지만 선발투수의 루틴이 있기 때문에 불펜으로 내려가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면서 “아직 감독이나 코칭스태프로부터 정식 통보받은 게 없어 난 내가 나서야 할 다음 등판을 열심히 준비하겠다”라고 표현했다. 최근 현지 언론에서 불거진 트레이드 관련 얘기도 비슷한 입장이었다. ESPN에 따르면 류현진 트레이드에 관심을 드러낸 타 구단이 있었지만 일단 다저스가 이를 거부했다고 보도됐다. 내년 시즌 이후 FA가 되는 류현진으로선 자신과 관련된 트레이드 얘기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했다. 그는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건 없다”는 말로 대답을 대신했다. 부상에서 복귀한 올 시즌 류현진은 많은 장애물을 딛고 일어섰다. 그가 부디 유종의 미를 이루고 올겨울 행복한 시간을 보냈으면 한다. [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