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말·고성 여전, 한국당 야당 설움 톡톡…증인실명제 다소 효과, 출석률은 되레 뚝
소중한 제도가 도입된 지 30년. 올해도 ‘역시나’라는 비판을 면치 못했다. 수준 높고 치밀한 공부를 바탕으로 한 의원들의 질의도 많았지만 막말과 고성은 여전했다. 야당으로 처지가 바뀐 제1야당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피감기관 관계자들로부터 수모를 겪는 등 정권교체에 따른 격세지감을 절실히 느낀 국감이기도 했으며 기업인 등의 증인 수가 대폭 줄어든 속에 ‘은둔의 경영자’ 이해진 네이버 전 이사회 의장이 국감에 출석, ‘국감 화제’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올해 국감은 10월 31일까지 이어진 뒤 종료된 ‘국감 1라운드’보다는 이달부터 시작된 정보위·운영위 등 겸임 상임위의 ‘국감 2라운드’에 더 관심이 쏠리는 기현상이 벌어지기도 했다. 최근 ‘국정원 특수활동비 사태’가 터지면서 여야 공방이 가열된 탓이다.
11월 2일 오전 서울 서초구 내곡동 국가정보원에서 열린 국회 정보위원회의 국정원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서훈 원장을 비롯한 신현수 기조실장, 서동구 1차장, 김상균 2차장, 김준환 3차장 등 참석자들이 강석호 위원장의 모두발언을 듣고 있다.
#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왕년에 나도 국회의원 했으니까 그렇게 하겠다는 태도입니까.” (자유한국당 정우택 의원)
“지금 나한테 반말합니까.”(함승희 강원랜드 사장)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의 10월 19일 강원랜드 국정감사장. 계속해서 큰 소리가 터져 나왔다. 정우택 의원이 함승희 사장에게 질의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다.
정 의원이 함 사장의 답변 태도를 문제 삼자 함 사장은 “다음 질문 하시죠”라고 받아버렸다. 정 의원은 발끈했다. “국회의원 할 때 그 따위로 질의를 받았느냐”고 정 의원이 몰아붙이자 함 사장은 “왜 목소리를 높이냐. 제가 뭘 어쨌다고 그러냐”고 받아쳤다. 함 사장은 정 의원에게 “지금 나한테 반말합니까”라고 따져 묻기도 했다. 정 의원은 “국감을 받으면서 ‘다음 질문 하시죠’라고 하는 피감기관(장)을 본 적이 없다”고 발끈했다.
강원랜드 국정감사장 풍경처럼 올해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어김없이 큰소리가 났고 막말이 쏟아져 나왔다. 10월 17일 안전행정위원회의 서울시·서울교육청 국정감사장에선 ‘사회적 경제’ 교과서가 발단이 돼 또 고성이 곳곳에서 허공을 갈랐다. 장제원 한국당 의원은 이 교과서가 박원순 서울시장과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의 경제 이념을 주입하려는 시도라고 언급하는 과정에서 “정신이 나갔어 정신이”라고 위험 수위를 넘나드는 발언을 했다.
여당 의원들은 들고 일어났다. 더불어민주당 박남춘 의원은 “기관장한테 손가락질하며 질의하는 게 뭐예요”라며 장 의원을 제지했고, 같은 당 이재정 의원은 “체통 좀 지키십시오”라고 쏘아붙였다. 그러자 장 의원이 “체통은 당신이 지켜”라고 응수했다.
법제사법위원회의 10월 17일 국정감사에서는 여야 의원들이 고성을 주고받다가 30여 분간 감사가 중지되기도 했다. 이용주 국민의당 의원이 이헌 법률구조공단 이사장에 대해 2015년 새누리당 추천 몫 세월호 특조위원으로 활동 당시 세월호 참사 때 박근혜 전 대통령의 7시간 행적 조사에 반대하지 않았냐고 질의한 것을 두고 권성동 법사위원장이 “질의에 답변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라고 제지한 것. 이를 빌미로 해서 여야 간에 고성이 오고갔다.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권 위원장에게 “창피한 줄 알아라”, “법사위원장으로 인정할 수 없다”라며 강하게 반발했고, 권 위원장은 “집권당이 됐다고 완장 찬 역할을 하지 마라“며 맞받는 등 설전을 벌였다. 이에 바른정당 오신환 의원이 의사진행발언을 통해 박 의원 등을 향해 “왜 이렇게 소리만 지르느냐”라면서 고성을 질러 장내는 엉망이 됐다. 박지원 국민의당 의원도 오 의원을 향해 “자기도 소리 지르면서”라고 받아치면서 의원들끼리 국감장은 물고 물리는 ‘말싸움의 전당’이 됐다.
무분별한 증인 신청에다 증인으로 선정되고도 국감장에 나오지 않는 ‘불출석 관행’ 역시 그대로였다. 올해 처음 도입된 증인실명제로 인해 일반인 증인 신청자 수는 지난해 251명보다 줄어든 227명으로 다소 개선됐지만 여전히 200명을 웃돌았고, 출석률은 오히려 70%대로 떨어졌다.
기업인 증인 신청이 대폭 줄어든 속에서 네이버 창업자인 이해진 전 이사회 의장이 국감장에 출석, 화제가 되기도 했다. “네이버가 저를 유독 미워하는 이유가 있습니까? 머리 풀고 칼춤이라도 춰야합니까?”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이해진 네이버 전 의장을 향해 이렇게 몰아붙이기도 했다. 지난 대선 당시 홍준표 후보가 네이버 메인에 82번 노출될 때 자신이 메인에 노출된 것은 단 한 차례뿐이었다며 네이버의 불공평함에 대해 강한 항의를 하는 발언이었다.
이 전 의장은 의원들의 질타가 파상공세로 쏟아지자 최근 문제가 된 기사 부당편집 부분에 대해서는 고개를 숙이는 등 시종일관 조심스런 태도를 나타냈다.
# 자유한국당, 야당 설움 톡톡
10월 19일 열린 기획재정부 국정감사는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장관의 ‘사과’로 시작됐다. 이날 정부 세종청사에서 열린 기재부 국정감사에서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박명재 자유한국당 의원이 질의에 앞서 의사진행 발언을 하고 같은 당의 다른 의원들까지 한목소리로 질타에 나서자 김 부총리는 정책 발언에 앞서 사과부터 해야 했다.
박 의원은 “저희 보좌진이 공공기관 관련 자료를 요구하자 기재부 모 과장이 아직 검토가 끝나지 않았다며 제출을 거부하고, 통화 말미에는 ‘박명재 보좌관 이거 완전 돌아이 아냐’라며 욕설을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전화가 끊어졌다고 생각하고 말한 것이겠지만, 피감기관인 기재부가 국회를 얼마나 우습게 보는지 알 수 있는 사건”이라며 “국감을 대하는 기재부의 기고만장함과 오만방자함이 여실히 드러난 것”이라고 질타했다.
박 의원 폭로에 다른 자유한국당 의원들까지 가세, 국감장 분위기는 싸늘하게 변했고 이현재·심재철 의원 등도 바통을 이어받으며 질타를 계속했다. 결국 김 부총리는 몸을 낮췄다. 김 부총리는 “오늘 아침에야 보고받았다. 조직과 직원을 대표해 다시 한 번 사과드린다. 명백하게 저희 직원이 잘못한 일이다”며 “뜻하지 않게 해당 직원의 개별 행동으로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 적절한 조치를 취하도록 하겠다”고 공식 사과했다.
이날 국감 현장처럼 제1야당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이번 국정감사가 1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누려온 ‘여당 지위’가 사라졌음을 절감하는 계기였다. 자유한국당 의원 보좌진들은 “정말 죽을 뻔했다. 야당이 되니 자료 한 장 획득하기가 힘들다”고 입을 모았다. 박명재 의원 보좌진 사례도 이의 연장선이었다.
‘자유한국당의 수모’는 국감 내내 이어졌다. 정용기 한국당 의원은 자료요구를 했다가 관련 인사로부터 협박성 발언까지 들었다고 국감장에서 공개, 파문이 일기도 했다. 정 의원은 10월 25일 국토교통위원회의 서울시 국감에서 “서울시에 태양광 발전사업 관련 자료를 요구했더니 이 사업과 관련된 기업인이 찾아와 낙선 운동을 하겠다는 등 협박성 발언을 했다”고 폭로했다.
10년 넘게 국정감사를 경험한 자유한국당 한 보좌진은 “야당도 해봤지만 여당을 더 오래 하다 보니 이제 야당이 돼 다시 국감준비를 하면서 너무 힘들었다. 우리한테는 ‘없다’고 했던 자료가 불과 며칠 뒤 여당 의원실에는 들어가더라. ‘의원님’한테 박살이 났다. 여당 시절부터 아는 공무원인데 정말 해도 해도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하소연했다.
# 전반보다 뜨거운 후반전
국회 겸임 상임위원회(운영·정보·여성가족)가 11월 1일부터 소관 부처에 대한 국정감사에 들어갔다. 겸임 상임위는 의원들이 일반 상임위와 겸할 수 있는 상임위. 일반 상임위 국감이 끝나면 겸임 상임위 국감이 진행된다. 예년 같으면 13개 일반 상임위원회 국감, 즉 전반전이 마무리되면 ‘사실상 끝났다’고 표현했지만 올해는 ‘후반전’에 대한 관심이 더 뜨겁다. 여야가 일전을 벼르고 있는 국가정보원, 국군사이버사령부, 청와대 등이 피감기관이기 때문이다.
정보위원회는 1일 국군기무사령부, 2일 국가정보원, 3일 국군사이버사령부·국방정보본부에 대한 국감을 벌였다. 2일 진행된 국정원 국정감사에서는 국정원을 적폐의 상징으로 규정하고 환골탈태를 주장하는 여당과 정치보복을 적폐 청산으로 포장하지 말라는 야당이 정면으로 맞섰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른바 국정원 댓글 사건 및 정치인 비판활동, 문화·연예계 블랙리스트 작성, 민간인 사찰 등에 대한 국정원 개혁위원회의 보고를 자기반성문으로 규정하고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적폐를 집중적으로 물고 늘어졌다.
여당 의원들은 한반도 안보환경이 어느 때보다 엄중한 상황에서 국가정보기관이 본연의 업무를 망각한 채 정권수호에만 열을 올린 과거를 철저하게 반성하고 재발 방지를 위한 제도 보완을 요구했다.
이에 맞서 자유한국당 등 보수 야당은 국정원 개혁위의 적폐 청산작업을 사실상 정치보복이라고 비판했다. 개혁위가 적폐라고 발표한 내용 가운데 상당 부분이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도 행해졌다는 논리를 한국당은 펼쳤다. 나아가 여권이 정보기관을 정치보복의 수단으로 활용해서는 곤란하다는 지적도 쏟아냈다. 또 국정원 적폐청산 TF 위원들이 민간인 신분임에도 국정원법을 위반하면서 서버를 보는 등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운영위원회는 6일엔 대통령비서실, 국가안보실, 대통령경호처를 대상으로 국감을 진행한다. 자유한국당 한 의원은 “청와대가 발표하고 있는 박근혜 정부의 주요 문건, 일명 캐비닛 문건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도 캐봐야 한다.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뿐만 아니라 그동안 낙마했던 국무위원 후보들까지 포함해 문재인 정부의 총체적인 인사 난맥상도 지적할 것”이라고 각오를 다졌다. 이에 밀릴세라 여당은 전 정부 청와대 비서실장 등을 증인으로 불러 맞불을 놓겠다는 전략을 짜고 있다.
최경철 매일신문 서울 정경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