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 때 이명박 개입 진술 나와…현 정부 대대적 수사 임박
제2롯데월드 전경. 고성준 기자
“VIP의 뜻이라는 말을 여러 번 강조했다.”
지난해 6월 한 군(軍) 관계자는 박근혜 정권 청와대 민정수석실 관계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는 “반대할 수 없는 분위기였다. 군 특정 라인이 정권을 등에 업고 밀어붙였다. 별 네 개도 옷을 벗었다. 군에서도 불만이 많았다. 당연히 그 뒤엔 VIP가 있었다고 생각했다”고 털어놨다. MB 정권 시절 승승장구했던 군 출신 무기업계의 한 인사 역시 “정권 실세로 알려진 한 인사가 VIP를 대신해 주도했다. VIP와 회장님 간 얘기가 끝났다는 말까지 들었다”고 했다. 이는 검찰의 제2롯데월드 의혹 수사가 진행되고 있을 당시 청와대 민정실이 확보한 진술들이다.
여기에 담긴 내용들을 풀어보자. 우선 VIP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다. 별 네 개는 제2롯데월드에 반대 입장을 고수하다 2008년 10월 경질된 김은기 전 공군참모총장으로 보인다. 정권 실세는 친이계 중에서도 핵심으로 꼽혔던 인사다. 정치권에선 그가 제2롯데월드 인허가와 관련해 이명박 전 대통령과 롯데 간 연결고리라는 얘기가 끊이지 않았다. 회장님의 경우 제2롯데월드 건설을 숙원사업으로 여겼던 신격호 총괄회장일 것으로 추측되지만 신동빈 회장일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다.
박근혜 정권은 지난해 6월경부터 롯데그룹에 대한 전방위 수사에 나섰다. 서울중앙지검 특수4부와 첨단범죄수사1부, 방위사업수사부 등이 동시다발적으로 칼을 겨눴다. 롯데그룹 정책본부를 포함해 롯데쇼핑과 호텔롯데 등 주요 계열사, 그리고 신격호 총괄회장 집무실과 신동빈 회장 평창동 자택 등이 압수수색을 당했다. 사실상 그룹 전반을 향한 수사로, 제2롯데월드 인허가 비리도 대상이었다고 한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선 청와대 하명에 의한 수사라는 게 중론이었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고위 인사는 “총수 일가의 자금 흐름, 정관계 로비 등에 대해 수사했다. 제2롯데월드 건도 포함돼 있었다”면서 “MB 정권 때의 군 관계자 및 정권 실세 등을 상대로 조사를 벌였다”고 귀띔했다.
청와대까지 나섰던 부분에 대해서 박근혜 정부 청와대 민정실 근무 경력이 있는 사정당국 관계자는 “(검찰뿐 아니라) 복수의 사정기관이 롯데 관련 첩보를 생산하던 때였다. 우리 쪽이 컨트롤타워 역할을 했고, 자체적으로도 조사를 벌였다. 이 과정에서 접촉한 인사들 중 몇몇이 MB 이름을 언급했던 것으로 안다. 그들은 제2롯데월드 인허가 과정에 깊숙이 개입했던 인사들이다. MB 지시를 받은 정권 실세가 군에 압력을 행사해 제2롯데월드 입장을 바꾸도록 했다는 게 골자”라고 말했다. 당시 청와대 민정실에선 ‘MB맨’으로 통하며 제2롯데월드 찬성 주장을 폈던 군 특정 인사들에 대해선 정식 수사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었다고 한다.
이 전 대통령 이름이 직접 거론된 대목은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 ‘VIP 뜻이다, VIP와 회장님 간 얘기가 끝났다’ 등의 내용이 제2롯데월드 인허가가 경제나 안보 논리가 아닌 정치적 외압에 의해 이뤄졌음을 뒷받침하는 진술이기 때문이다. 서울중앙지검 고위 인사도 “MB를 검찰청사로 부를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는 진술”이라면서 “적폐 청산에 나선 현 정권이 다시 이 부분을 꺼내 확인할 수 있다면 이 전 대통령을 잡을 수 있는 스모킹 건(결정적 증거)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앞서의 박근혜 정권 사정당국 관계자도 “어디 있는지는 모르지만 당시 내용을 정리해 문서를 만들어 보고했다. 보고서에 나온 친이계 실세와 군 인사들을 조사할 경우 엄청난 파급력이 예상된다”고 귀띔했다.
문재인 정부도 이러한 내용들을 이미 인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해 검찰 수사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는 문제 의식도 감지된다. 현 정권 사정당국 인사는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박근혜 정권 때 만들어진 제2롯데월드 인허가 보고서를 우리도 파악한 상태다. 상당히 신빙성 있는 것으로 결론 내렸다.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어떤 내용이 들어있는지는 확인해주기 어렵다”면서도 “이를 포함해 MB에게 뼈아픈 자료들이 몇 개 있다. 기초 작업을 하는 중이다. 조만간 (제2롯데월드를 겨냥한) 본격 수사가 시작될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정권 출범 후 친문 진영에선 제2롯데월드 인허가 문제를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고 목소리를 높여 왔는데, 물밑에선 이미 그러한 움직임들이 구체적으로 실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를 뒷받침하듯 문무일 검찰총장은 10월 27일 국정감사에서 “(제2롯데월드 인허가) 관련 의혹이 지속적으로 제기된 것도, 국민이 우려하시는 것도 안다”며 “이 부분에 대해 검찰이 다시 살펴보고 구체적 범죄행위가 발견되면 수사토록 하겠다”고 말했다. “엄정한 검찰 수사가 필요하지 않느냐”라는 박범계 민주당 의원 질의에 대한 답이었다. 정권 실세 정치인으로 꼽히는 박 의원은 최근 제2롯데월드를 향해 연이어 쓴소리를 내뱉고 있다. 한 인터뷰에선 “기업 이익을 위해 국가안보가 무시된, 반역 행위”라고 강하게 성토했다. 또 국정감사장에선 “이명박 정부는 롯데를 위해 정부조직과 공무원 인력을 동원했을 뿐 아니라, 롯데의 비용절감을 위해 변경안을 전격제시하고 채택했다”며 “이는 국가 안보와 안전을 롯데의 이권행위와 맞바꾼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박 의원을 비롯한 친문 핵심부는 반대 뜻을 굽히지 않던 공군이 돌연 입장을 바꾼 배경부터 살펴봐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성남 서울공항 안전 문제로 번번이 좌절됐던 제2롯데월드는 이명박 전 대통령 당선 후 급물살을 탔다. 이 전 대통령은 2008년 4월 이상희 당시 국방장관에게 “날짜를 정해놓고 긍정적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검토해 보라”고 지시했다. 현직 대통령이 특정 기업 숙원사업에 도움을 주는 듯한 발언을 한 셈이다. 그 후 지지부진했던 인허가 작업은 일사천리로 이뤄졌다. 제2롯데월드에 반대했던 김은기 공군참모총장은 같은 해 10월 옷을 벗어야 했다.
이 과정에 ‘보이지 않는 손’이 개입했을 것이란 게 제2롯데월드 인허가 의혹의 핵심이다. 이런 배경에서 본다면 지난 2016년 작성된 보고서는 현 정권의 향후 제2롯데월드 수사에 많은 도움이 될 전망이다. 더군다나 보고서엔 친이계 최고 실세와 군 관계자, 그리고 이명박 전 대통령 이름이 적시돼 있다. 한 친문 의원은 “제2롯데월드 인허가는 MB 정권에서 벌어진 대표적인 특혜 사업이다. (수사를) 안 할 수가 없는 적폐다. 안보를 포기하고 기업의 민원을 들어준 대가로 어떤 거래가 오갔는지 반드시 밝혀내야 한다”면서 “MB가 절대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고들 하는데 왜 그런 진술들이 나왔는지 궁금하다. 박근혜 정권 때 핵심 당사자들을 조사하는 등 의혹의 실체에 근접했기 때문 아니겠느냐. 파괴력만 놓고 보면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사안”이라고 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