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세한 맏형, 역대급 팀워크를 만들다
KIA 타이거즈의 통합 우승에 새삼 김 감독의 리더십이 집중 조명 받고 있다. ‘형님 리더십’ ‘동행 리더십’으로 대표되는 김 감독의 리더십은 팀 내 베테랑 선수들과 신인들의 조화로운 성장을 도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KIA의 조계현 수석코치, KBO리그 중계를 해왔던 정우영 SBS 아나운서, 그리고 KIA 전담 기자인 광주일보 김여울 기자로부터 김 감독이 어떤 리더십을 갖고 있는지 들어봤다.
눈시울을 붉힌 김기태 감독. 연합뉴스
2015년부터 KIA의 지휘봉을 잡은 김기태 감독은 2년 연속 9위에 머물렀던 팀을 2015년 7위, 2016년 5위로 점점 끌어올렸다. 올 시즌에는 100억 원의 몸값을 주고 최형우를 영입해 단숨에 우승 후보로 평가받았다. 김 감독은 자신에게 주어진 3년이란 시간 동안 팀을 재정비하고 전력을 수정 보완해가면서 단계를 밟아 올라갔다.
선수들은 김 감독을 향해 ‘맏형’ 같은 이미지를 갖고 있다고 말한다. 김 감독은 질책과 비난보다는 칭찬으로 선수들을 아우르는 리더십이 높은 평가를 받는다. 이런 김 감독을 조계현 수석코치는 ‘오너’라고 부른다. ‘오너’의 의미를 묻자 감독을 향한 자신만의 표현법이라고 설명했다.
“감독과 수석코치는 소통이 잘돼야 하는 것은 물론 손발이 맞아야 한다. 마음을 터놓고 충언할 수 있는 용기도 필요하다. 감독과 수석코치의 궁합이 좋을수록 팀 분위기는 한결 밝아지고 안정감을 보인다. 그런 점에서 김 감독은 배려의 아이콘이다. 예를 들어 투수 파트와 관련해서 내게 질문을 던지면서도 실질적인 문제는 투수코치와 상의한다. 굉장히 현명한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조 코치는 정규리그에서 1위를 차지하고 한국시리즈가 시작되기까지 오랜 시간을 기다리면서도 김 감독을 믿기 때문에 불안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원래 야생 호랑이는 사냥을 한 달 동안 안 한다고 해서 체력이 고갈되는 건 아니지 않나. 먹잇감을 포착하면 한 방에 때려잡으면 되기 때문이다. 한국시리즈를 준비하면서 김 감독은 코칭스태프는 물론 선수들에게 팀워크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흔들림 없이 경기를 준비하게끔 독려했다.”
조 코치는 한국시리즈를 처음 경험하는 김 감독이 흥분하지 않고 차분히 경기에 대처하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고 말한다.
“오히려 내가 더 당황했다. 김 감독은 끝까지 차분했다. 많은 야구 전문가들이 KIA보다 두산의 우세를 예상했는데 한국시리즈 4차전까지 곱씹어보면 모든 면에서 우리가 두산보다 한 수 위였다. 그 중심에는 감독의 리더십이 존재한다. 역대급으로 팀워크가 좋았던 시즌이었다. 선수단 내에서도 잡음이 없었다. 서로가 서로를 보호하고 배려했다. 그런 분위기를 김 감독이 이끌어나갔다.”
오랜 시간 동안 KIA 타이거즈를 취재해온 광주일보 김여울 기자는 김 감독의 형님 리더십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보통 ‘형님’ 하면 센 이미지가 있는데 김기태 감독은 굉장히 섬세한 성격의 소유자이다. KIA 감독 부임 후 마무리 캠프에 취재차 방문했을 때 김 감독이 2군 선수들 이름까지 훤히 꿰고 있어 깜짝 놀랐었다. 불펜포수들 이름을 다 외우고 선수를 부를 때 이름을 불러줬다. 감독이 된 지 얼마 안됐는데 그 짧은 시간에 마무리 캠프에 참가하는 선수들 이름을 다 외웠다는 게 신기했다. 그만큼 거친 형님 이미지보다는 섬세하고 인자한 모습을 보였다. 그런 모습에 선수들은 절로 김 감독을 신뢰했고 따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 믿음의 리더십이 보인 진가
김여울 기자는 올 시즌 후반기에 김 감독이 살짝 조급한 모습을 보였다고 회상했다.
“왠지 모르게 김 감독의 마음이 급해 보였다. 그런데도 선수들은 흔들림이 없었다. 아마도 김 감독과 선수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신뢰가 존재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김 감독도 사람이다 보니 실수할 때도 있었을 것이다. 그럴 때는 선수들이 나서서 위기를 극복해 갔다. 경기 후 인터뷰에 나서는 감독들은 패했을 경우 선수들 이름을 거론할 때가 있다. 그러나 김 감독은 대부분 선수들이 못한 것보다 잘한 걸 끄집어냈다. 고맙다는 말도 덧붙인 적이 있었다. 기자들 입장에선 너무 재미없는 취재원이지만 선수들이 봤을 때는 고마운 마음을 갖게 하는 지도자였을 것이다.”
김 기자는 다음과 같은 일화를 더 소개했다.
“2015 시즌의 KIA 타이거즈는 선수층이 두껍지 못했다. 덕분에 1군 엔트리에 55명의 선수를 등록시켰다. 많은 선수들에게 고른 기회를 주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 바탕으로 2016 시즌의 틀을 만들었고, 2017 시즌에는 그 틀에서 선수들의 기량을 끌어올렸다. 김 감독의 시선은 1년이 아닌 계약 기간 마지막 해인 2017 시즌에 맞춰져 있었던 것이다. 여러 가지 면에서 KIA는 올 시즌이 우승할 수 있는 적기였다. 그걸 놓치지 않고 결과로 만들어낸 부분이 김 감독의 리더십이 아닐까 싶다.”
정우영 아나운서는 김기태 감독의 리더십이 현대 야구에서 가장 요구되는 감독의 리더십이라고 평가했다.
“중계진이 경기를 앞두고 따로 감독을 만나다보면 감독들만의 다양한 특징들을 접할 수 있게 된다. 김기태 감독은 특이하게도 야구 얘기보다는 인생 얘기를 더 많이 하는 스타일이다. 중계진이 감독실을 방문하면 자신이 먼저 야구 얘기를 꺼낸 적이 없었다. 야구 관련해서는 우리가 질문을 해야 자신의 생각을 나타내는 식이다. 김 감독의 특징 중 하나가 고참 예우이다. 베테랑 선수들한테는 가급적 신뢰를 보이는 편인데 그렇다고 해서 고참이란 이유로 붙박이 자리를 보장해주진 않는다. 올 시즌 초반에 김주찬이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을 때 계속 출전시킨다는 이유로 김 감독을 향한 팬들의 비난이 거셌다. 그때 김주찬을 2군으로 내려 보냈다가 다시 1군으로 콜업해선 김주찬이 자신의 자리를 찾아갈 수 있도록 기회를 줬다. 이범호도 마찬가지다. 그들을 라인업에서 빼거나 2군으로 내려 보낼 때 항상 그 이유를 설명해주고 선수들을 설득한다. 선수들 입에서 불만이 새어나올 수 없는 상황이었다.”
우승 세리머니를 펼치는 김기태 감독. 연합뉴스
# 동행 야구를 이끈 힘
김기태 감독이 KIA 사령탑으로 부임했을 때 강조했던 메시지가 ‘내가 아닌 우리’였다. 그는 3년 동안 이 메시지를 몸소 실천했다. 그 중 하나가 ‘동행 야구’였다. 정우영 아나운서의 설명이 계속 이어진다.
“김 감독은 2군에서 올라온 선수에게 어떻게 해서든 빠른 시간 안에 1군 무대를 밟을 수 있게 했다. 2군에서 올라온 선수를 1군 경기에 투입하지 않고 그냥 내려 보낸 적이 거의 없었다. 1군에서 뛰게 한 다음 기량 미달이라고 판단되면 그 선수에게 설명을 해줬다. 그런 모습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한번은 야구 중계하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던 적이 있었다. 6회 정도 지난 후 김 감독이 선발 라인업에 포함된 선수를 다 빼고 백업 멤버들로 타순을 구성했는데 동점과 역전을 허용한 후론 경기 후반에 타석에 들어설 만한 선수가 없었다. 덕분에 김 감독의 동행 야구가 엄청난 비난을 받기도 했고, 그런 점이 김 감독의 단점으로 지적됐지만 이번 포스트시즌에선 동행보다는 선수들에게 동기 부여를 해주며 효율적으로 팀을 운영했던 게 큰 효과를 봤던 것 같다.”
한편 정우영 아나운서는 김 감독이 김선빈을 1, 2번 타순이 아니라 9번에 세우고, 김주찬을 2번타자로 내세우면서 어느 팀보다 강력한 타순을 구성할 수 있었던 부분도 KIA가 강팀으로 거듭난 배경이라고 꼽았다. 시즌을 마칠 때 KIA는 주전타자 9명 중 7명이 3할을 넘는 타율을 자랑했다.
“김선빈이 시즌 중반 타격 1위에 오를 때만 해도 그가 시즌 마칠 때까지 그 자리를 유지할 거라고 생각지 못했다. 유격수는 수비 부담으로 체력 소모가 큰 포지션이라 좋은 타율을 유지하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데 김선빈을 9번에 세우면서 타격할 기회를 줄여줬고 1번으로 연결되는 브리지 역할을 맡기면서 타율 관리까지 되는 1석2조의 효과를 냈다. 현대 야구에서 가장 중요한 타순이 2번타자다. 김주찬은 시즌 중반 이후부턴 리그 최고의 2번타자였다. 1할대의 타율을 3할까지 끌어올리면서 타율이 큰 폭으로 상승했고, KIA 라인업이 가장 강력한 파워를 자랑했다. 김주찬을 기다려주고 기회를 준 이는 김 감독이었다. 덕분에 KIA의 타선은 뜨거웠고 마운드를 도와 제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김여울 기자는 KIA와 김기태 감독을 ‘필연’이라고 정리했다. 선수 시절에는 고향 팀에서 뛰지 못하다 감독이 돼 고향 팀을 맡았고, 한국시리즈 첫 우승을 KIA에서 이룬 걸 보면 운명 같은 인연이 존재한다는 설명이다. 정우영 아나운서는 “김 감독은 올 시즌 KIA와 함께 인생의 희로애락을 모두 맛봤다”면서 “최고의 강팀으로 꼽혔다가 시즌 막판 1위 자리를 내줄 뻔한 위기를 겪으면서도 무너지지 않고 가까스로 정규시즌 우승과 한국시리즈 우승을 거머쥐었다. 이 모든 건 김기태란 감독이 존재했기 때문에 가능한 시나리오였다”고 말했다.
이영미 스포츠 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
‘부부’로 소문난 김기태 감독과 조계현 수석코치 야구계에선 김기태 감독과 조계현 수석 코치를 향해 ‘영혼의 콤비’로 부른다. 2012년 LG 트윈스 사령탑에 올랐던 김기태 감독은 두산에서 투수코치를 맡고 있던 조계현 수석코치에게 손을 내밀었고, 고심 끝에 김 감독과 한 배를 탄 조 코치는 이후 김 감독과 ‘실과 바늘’의 관계를 이어갔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건 1999년 삼성 라이온즈 시절이었다. 1997년 시즌 종료 후 삼성 라이온즈로 현금 트레이드된 조 코치는 삼성에서 3년간 선수로 뛰었고, 김 감독은 1999년 쌍방울 레이더스에서 삼성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한 시즌 동안 조 코치와 선후배로 만났다. 그 후 서로 다른 팀에서 각자의 길을 걷던 두 사람이 다시 만난 건 2008베이징올림픽. 김 감독은 타격코치로, 조 코치는 투수코치로 김경문 감독과 함께 대표팀을 이끌었다. 조 코치는 당시 김 감독과 많은 대화를 나누며 서로의 야구관이 비슷하다는 걸 발견했다고 말한다. 김기태 감독과 조계현 수석 코치. 연합뉴스 “내가 감독이 되면 하고 싶었던 부분을 김 감독이 그리고 있더라. 그걸 기억했기 때문에 LG로 와 달라고 부탁했을 때 고민 끝에 수락할 수 있었던 것이다. 두산 코치가 LG로 곧장 이동하는 게 쉬운 결정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조 코치는 김 감독의 야구관의 일부를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경기 중에 실수를 한 선수가 있다고 하자. 김 감독은 선수가 실수를 하더라도 자꾸 부딪히길 바란다. 그래야 문제점이 무엇인지 찾아낼 수 있다. 실수할까봐 두려워 그 행동을 피하고 하지 않으면 문제점만 느끼고 끝나는 것이다. 한마디로 발전 가능성도 없고, 새로운 야구를 만들어내기가 어렵다. 우리 때랑은 틀려서 요즘 프로야구는 타고투저 현상이 극심하다. 어떤 형태로든 선수들의 기본기를 제대로 다져놓지 않으면 돌발 상황이 벌어졌을 때 적절히 대응할 수 없다. 선수들에게 부딪히면서 깨우치고 배워가라는 마인드가 나랑 상당히 비슷하다.” KIA 담당 기자들은 김 감독과 조 코치를 ‘부부’라고 말한다. 김여울 기자는 “감독이 실수하면 코치는 옆에서 핀잔주는 아내와 같은 역할을 한다. 김 감독이 강하게 나가면 조 코치가 보완해주는 모습도 종종 엿볼 수 있다. 그래서 두 사람의 관계를 부부라고 비유할 때가 있다”는 얘기를 들려줬다. 정우영 아나운서도 “부부 맞다. 아주 보기 좋은 부부의 케미가 두 사람한테 나온다”고 설명했다. [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