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무리 정명원, 선발로 출격 유일한 ‘노히트노런’ 슝~
정규시즌 우승은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향하는 지름길이다. 그러나 페넌트레이스에서 1위를 하지 못한 팀도 한국시리즈에서 4승을 올리면 그해의 ‘우승팀’으로 기록될 수 있다. 한 시즌 마지막 경기를 이기고 끝내느냐, 지고 끝내느냐의 승부. 그래서 한국시리즈는 더 긴장감이 넘치고 극적이다. 1982년부터 숱한 역사를 만들어온 역대 한국시리즈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들을 모았다.
# 김상진의 마지막 투혼
해태 고졸 2년차 투수였던 김상진은 1997년 10월 25일 LG와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 인생 최고의 가을을 보냈다. 9이닝을 2안타 2볼넷 1실점으로 막아내면서 완투승을 따냈다. 해태가 6-1로 승리해 통산 아홉 번째 우승을 확정한 날이었다. 2차전에서 3회를 못 넘기고 강판됐던 김상진은 5차전에서 아쉬움을 털어냈다. 역대 한국시리즈 최연소 완투승 투수로 기록됐다. 그러나 그 경기가 김상진의 마지막 불꽃이 되리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막 꽃을 피우려 했던 젊은 투수는 2년 뒤인 1999년 6월 10일, 만 22세 3개월 2일의 나이로 눈을 감았다. 갑작스럽게 위암 선고를 받은 지 8개월 만이었다.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 배영수가 8회 2사후 박진만에게 4구를 내주며 퍼펙트게임을 놓친 뒤 안타까워하고 있다. 연합뉴스
현대 정명원은 1996년 10월 해태와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 가을 야구 역사에 남을 최고의 역투를 펼쳤다. 정규시즌 내내 마무리투수로 활약했던 그가 깜짝 선발로 나서 포스트시즌 역사상 유일한 노히트노런 대기록을 작성했다. 김재박 당시 현대 감독은 시리즈 전적 1승 2패로 수세에 몰리자 해태에 강했던 정명원을 아예 가장 먼저 마운드에 올리는 ‘변칙’을 택했다. 정명원은 이날 해태 타자 29명을 상대로 안타와 실점 없이 4사구 3개만 내주면서 탈삼진 9개를 잡아냈다. 해태 이대진(7이닝 무실점)과 투수전에서 확실한 우위를 점했다. 개인 첫 한국시리즈 승리를 대기록으로 장식했다. 이날 정명원과 호흡을 맞춘 포수는 백업 김형남. 부상으로 빠진 주전 포수 장광호를 대신해 포수 마스크를 썼다가 대기록의 조력자가 됐다. 해태 타선은 생소한 배터리의 생소한 볼 배합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 배영수의 비공인 역투
2004년 10월 25일 삼성과 현대의 한국시리즈 4차전. 삼성 배영수와 현대 피어리의 역투 속에 포스트시즌 사상 첫 0-0 무승부가 나왔다. 특히 배영수는 무려 10이닝 동안 노히트노런을 기록했다. 7회까지는 퍼펙트 행진도 이어갔지만, 8회 2사 후 박진만에게 풀카운트에서 슬라이더를 던지다 낮은 볼이 돼 퍼펙트게임이 날아갔다. 배영수는 9회가 끝난 뒤 강판을 지시한 선동열 당시 삼성 수석코치에게 “1이닝만 더 던지겠다”고 했다. 투구수는 116개. 그러나 삼성이 다음 이닝에서 또 다시 득점에 실패했고, 배영수는 노히트노런 기록을 공인받지 못했다.
# 박경완이 발로 훔친 득점
꼭 발이 빨라야 도루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역대 최고의 포수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히는 박경완이 그랬다. 주루사에 대한 부담감이 몇 배 더 커지는 한국시리즈에서 센스와 배짱으로 뜻밖의 명장면을 만들어냈다. 박경완은 현대 시절이던 1998년 10월 27일 LG와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 3-0으로 앞선 4회 2사 1·3루서 딜레이드 더블스틸을 시도했다. 1루 주자가 먼저 스타트를 끊어 공이 2루로 향하는 사이 3루 주자가 기습적으로 홈을 노리는 작전. 아니나 다를까 LG 포수 김동수는 1루 주자가 달려가는 2루를 향해 공을 던졌다. 그 틈에 3루에 있던 박경완이 홈으로 달려들었다. 발이 빠르지 않았던 박경완의 홈스틸 시도는 LG의 허를 완벽하게 찔렀다. 그러나 김동수의 2루 송구가 정확하지 않았던 탓에 이 득점은 홈스틸이 아닌, 상대 실책에 의한 득점으로 기록됐다.
# 김유동의 원년 우승포
OB 김유동은 프로야구 원년인 1982년 삼성과의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 영원히 기록에 남을 그랜드슬램 하나를 쏘아 올렸다. OB 박철순과 명품 완투 대결을 펼치던 삼성 이선희를 마지막 순간 울렸다. 김유동은 이미 2회 이선희의 초구를 때려 솔로 홈런을 때린 뒤였다. 또 5회 2사 1·2루에서는 3-3 동점을 만드는 중전 적시타도 만들어 냈다. 9회까지 같은 스코어로 팽팽한 가운데 OB는 김경문의 기습번트 내야안타로 기회를 잡았고, 2사 만루서 신경식이 밀어내기 볼넷을 골라 결승점을 뽑았다. 그리고 계속된 만루에서 김유동이 이선희의 초구를 때려 동대문구장 담장 너머로 만루 홈런을 날려 보냈다. 김유동은 이날 6타점을 올려 원년 한국시리즈 MVP가 됐다.
한국시리즈 MVP가 돼 부상으로 받은 승용차에 앉아 포즈를 취하는 김유동. 연합뉴스
# 김광현의 화려한 가을
SK 김광현은 2007년 프로야구에 데뷔했다. 그러나 그가 본격적인 ‘등장’을 알린 시기는 그해 봄이 아닌 가을이었다. 2007년 10월 26일 열린 두산과 한국시리즈 4차전. 시즌 3승 7패에 평균자책점 3.92를 기록한 고졸 신인 투수가 SK의 4차전 깜짝 선발 투수로 나섰다. 상대 선발 투수는 1차전에서 역대 한국시리즈 최소투구 완봉승(99개)을 거둔 두산 에이스 다니엘 리오스였다. SK 타선은 1회 이호준의 중전 안타로 선취점을 올린 뒤 5회 조동화-김재현의 연속타자 홈런으로 3점을 먼저 냈다. 김광현이라는 새로운 스타의 탄생을 위해 그 정도 점수면 충분했다. 앳된 얼굴의 ‘히든 카드’ 김광현은 공 하나마다 힘과 패기를 모두 실어 던졌다. 특유의 역동적인 투구폼과 시속 150km를 넘나드는 강속구를 앞세워 두산 강타선을 틀어막았다. 6회 1사 후 이종욱에게 단 한 개의 안타를 내준 게 전부. 7.1이닝 9탈삼진 무실점으로 한국시리즈 첫 승리를 따냈다. 그렇게 SK의 에이스가 태동했고, SK는 그해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했다.
# 김선진의 생명 연장포
LG 김선진은 한국시리즈 홈런 한 방으로 자신의 인생을 바꿨다. 1994년 10월 18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LG와 태평양의 한국시리즈 1차전. 6회 대주자로 출장한 프로 5년차 김선진은 1-1로 팽팽히 맞선 연장 11회 1사 후 타석에 섰다. 그때까지 완투하던 태평양 김홍집은 무명 타자 김선진에게 그 경기의 141번째 공을 던졌다. 김선진은 그 초구를 천금 같은 끝내기 홈런으로 연결했다. 누구도 기대하지 못했던 한 방. 잠실구장이 난리가 났다. LG는 3시간 43분에 걸친 혈투 끝에 결국 2-1로 승리했다. 그 한 방을 신호탄으로 LG는 4승 무패 우승 신화를 썼다. 시즌 직후 방출될 선수 명단에 올라 있던 김선진은 그 후로 선수 생활을 6년 더 연장했다. 그가 은퇴할 때까지 포스트시즌 30경기 58타석에서 때려낸 단 하나의 홈런이 바로 그날의 끝내기 포였다.
# 나지완의 시리즈 끝내기포
역대 가장 완벽한 ‘한국시리즈 4승’ 전설을 완성한 고 최동원. 연합뉴스
한국시리즈 역사상 최고의 홈런을 꼽는 데는 누구도 이견이 없다. 우승을 결정짓는 끝내기 홈런을 ‘마지막 승부’인 7차전에서 때려낸 선수는 역대 단 한 명뿐. KIA 나지완이다. 2009년 KIA와 SK는 3승 3패로 팽팽하게 맞선 채 운명의 7차전을 맞았다. 초반 분위기는 한국시리즈 3연패에 도전한 SK 쪽에 유리하게 흘렀다. 6회초까지 5-1로 앞서갔다. 그러나 KIA 타선은 늦게 발동이 걸렸다. 나지완이 6회말 2점 홈런으로 추격 시동을 걸었다. 7회말 안치홍의 솔로홈런과 김원섭의 적시타로 2점을 만회해 5-5 동점을 이뤘다. 마침내 찾아온 운명의 9회말. 투수를 모두 소진한 SK는 팔꿈치가 아파 쉬고 있던 채병용을 마운드에 올렸다. 반면 타석에 선 나지완은 앞선 타석에서 홈런을 터트린 터라 자신감이 충만했다. 볼카운트 2B-2S서 채병용이 던진 5구째 시속 143km 직구가 약간 높게 들어갔다. 완벽한 먹잇감을 찾은 나지완이 무섭게 배트를 돌렸다. 공이 배트에 맞는 순간 모두가 홈런임을 직감했다. 역사적인 타구 하나가 잠실구장 하늘을 갈랐다. 나지완은 이미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잠실구장 베이스를 돌았다. KIA 선수들은 얼싸안고 펄쩍펄쩍 뛰었다. KIA는 그렇게 ‘해태’에서 ‘KIA’가 된 후 처음으로 한국시리즈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 그리고 최동원
1984년 한국시리즈에는 오직 한 사람의 이름만이 존재했다. 롯데 최동원이다. 그는 1·3·5·6차전에 이어 7차전에도 다시 마운드에 올랐다. 상대 선발은 5차전에 등판했던 삼성 김일융. 당시 롯데 강병철 감독은 과연 최동원을 7차전에 다시 써도 괜찮을지 고민을 거듭했다. 아무리 떨쳐내려 해도 자꾸 최동원 카드에 미련이 남았다. 강 감독은 최동원의 아버지인 최윤식 씨에게 의견을 물었다. 최 씨는 아들과 사우나에 함께 앉아 진지한 대화를 나눴다. 그리고 출전을 결정했다. 최동원은 7차전에서 피로누적으로 제 컨디션이 아니었다. 그러나 결코 무너지지 않았다. 팀도 에이스의 불꽃같은 투혼에 화답했다. 3-4로 뒤진 8회 1사 1·3루서 유두열이 김일융을 상대로 역전 3점포를 쏘아 올렸다. 롯데 팬들은 경기와 상관없이 ‘아! 대한민국’을 합창했다. 1차전 첫 타자 장태수를 삼진으로 잡았던 최동원은 7차전 9회에도 다시 마지막 타자로 나온 장태수를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동시에 역대 가장 완벽한 ‘한국시리즈 4승’ 전설을 완성했다. 경기가 끝나 뒤 긴장이 풀린 최동원은 시상식 때 한국시리즈 MVP 부상으로 받은 승용차 위에서 연신 어깨를 만졌다. 우승 축하파티를 앞두고 결국 코피도 쏟았다는 후문이다.
배영은 일간스포츠 기자
[양키스-보스턴 가을야구 최고 명승부] 실링 ‘피묻은 양말’ 투혼 힘 입어 보스턴 ‘리버스 스윕’ 뉴욕 양키스와 보스턴 레드삭스는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유명한 라이벌이자 숙적이다. 그러나 월드시리즈에서는 맞붙을 수 없는 운명이다.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에 나란히 소속돼 있다.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시리즈(ALCS)가 두 팀에게는 최고 단계의 전쟁터다. 같은 지구 소속이니 한 시즌에 여러 차례 맞대결을 펼친다. 그런데도 두 팀의 경기는 늘 초미의 관심을 모은다. 팀 순위와 별개로 자존심이 걸린 경기라서다. 두 팀 간 경기 티켓은 다른 경기 입장권보다 비싸다. 포스트시즌 맞대결이라면 두말할 것도 없다. 월드시리즈 진출권이 걸린 2004년 ALCS는 그런 두 팀의 라이벌 역사에서도 가장 치열하고 상징적인 승부였다. 이미 한 해 전인 2003년에도 두 팀은 ALCS에서 맞대결한 터였다. 7전 4선승제 승부에서 3승 3패로 맞선 가운데 7차전이 열렸다. 양키스가 8회 3점을 뽑아 5-5 동점을 이룬 뒤 연장 11회 애런 분의 끝내기 홈런이 터지면서 극적으로 보스턴에 역전승했다. 그날 투수교체 판단을 잘못한 보스턴 그래디 리틀 감독은 팀을 ALCS까지 이끌고도 경질됐다. 커트 실링. 연합뉴스 그 후 1년 뒤. 양키스와 보스턴은 다시 ALCS에서 만났다. 양키스가 지구 1위였고, 보스턴이 지구 2위로 와일드카드를 얻어 ALCS까지 올라왔다. 전운이 감돌던 2004 ALCS 1차전. 양키스가 10-7로 이겼다. 보스턴 선발 커트 실링이 3이닝 6실점으로 무너졌고, 양키스 마쓰이 히데키가 5타점을 올렸다. 2차전은 3-1 투수전. 역시 양키스가 이겼다. 양키스 존 리버(7이닝 1실점)가 보스턴 페드로 마르티네즈(6이닝 3실점)를 이겼다. 1차전에 이어 2차전도 마리아노 리베라가 세이브를 올렸다. 보스턴으로 자리를 옮긴 3차전은 아예 양키스가 19-8로 대승했다. 양키스는 3연승으로 월드시리즈 진출까지 1승만 남겨뒀다. 이전까지 메이저리그 역사에 4선승제 시리즈에서 3패를 먼저 당한 팀이 다음 단계에 진출한 사례는 단 한 번도 없었다. 양키스는 사실상 월드시리즈 진출을 확정지은 듯했다. 보스턴 글로브는 “공식적인 사형 선고를 받았다”고 썼다. 그때 기적이 시작됐다. 보스턴은 4차전에서 9회초까지 3-4로 뒤졌다. 9회말 공격을 앞두고 리베라가 마운드에 올랐다. 가을이 끝난 듯했다. 그러나 볼넷과 도루, 적시타로 점수를 뽑아 동점을 만들었다. 그리고 날짜가 다음 날로 넘어간 연장 12회말, 데이비드 오티스의 끝내기 2점 홈런이 터졌다. 보스턴의 6-4 승리. 시리즈의 흐름이 보스턴 쪽으로 돌아섰지만, 그래도 1승과 3패의 간격은 너무 커 보였다. 5차전에선 양키스가 1-2로 뒤진 6회 3점을 뽑아 역전했다. 8회 오티스가 솔로홈런으로 한 점을 따라잡자 리베라를 조기 투입했다. 그러나 리베라가 또 다시 연속 블론세이브를 범했다. 리베라의 선수 생활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장면. 보스턴은 8회 결국 동점을 만들었다. 다시 연장 14회까지 경기가 계속됐다. 마지막에 탄생한 스타는 다시 오티스. 끝내기 안타로 5-4 승리를 만들었다. 2승 3패. 한 번만 더 이기면 원점이었다. 다시 뉴욕으로 갔다. 6차전. 그 유명한 ‘피 묻은 양말’ 투혼이 탄생한 날이다. 보스턴 선발 커트 실링은 발목 섬유 인대가 끊어진 상태에서 마운드에 올랐고, 치료 부위에서 피가 흘러 양말로 스며드는 가운데서도 호투를 이어갔다. 7이닝 4피안타 1실점. 게다가 8회말 양키스 공격에선 알렉스 로드리게스가 교묘한 수비 방해를 하다 득점을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까지 나왔다. 보스턴이 4-2로 이겼다. 최초의 3연패 후 3연승. 최후의 승부는 오히려 싱거웠다. 이 시리즈의 절대적 스타인 오티스가 1회부터 선제 2점포를 날렸다. ‘로켓맨’ 조니 데이먼은 2회 1사 만루서 그랜드슬램을 작렬했다. 10-3으로 보스턴 승리. 메이저리그 사상 처음으로 리버스 스윕이 완성됐다. 한국에서도 4선승제 시리즈 리버스 스윕은 아직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 명승부 끝에 숙적을 제압한 보스턴은 월드시리즈에서 세인트루이스를 4승 무패로 가볍게 제압했다. 1918년 이후 86년 만에 우승을 차지하면서 숙원이던 ‘염소의 저주’를 풀었다. [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