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오너 부자, 의결권 제한돼도 삼성생명 지배력 이상무”
# 삼성생명 의결권 제한될까
최근 세무사 출신으로 금융감독원 근무경력이 있는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조세포탈 혐의가 확인됐다며 삼성생명의 의결권 일부를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을 했다.
이 회장이 2015년 10월부터 6개월간 박근혜 정부에서 한시적으로 운영한 ‘자진신고제도’를 통해 국외에 은닉했던 계좌들을 과세당국에 신고하고 처벌을 면한 것은 사실이다.
현행 금융지배법은 조세범 처벌법이나 금융관련법령을 위반해 금고 이상의 형을 받을 경우 금융회사 의결권을 10% 이하로 제한할 수 있도록 정하고 있다. 이 회장의 삼성생명 지분은 20.29%다. 이 가운데 10.29%가 제한 대상이 될 수 있다. 삼성생명은 삼성전자의 최대주주다. 삼성생명 경영권이 흔들리면 그룹 전체에 대한 통제력 약화로 이어진다.
금융지배법이 시행되면서 재벌과 금융지주 회장들이 긴장하고 있다. 특히 이건희 삼성 회장의 삼성생명 지배력이 약화될지 관심을 모은다. 사진은 삼성생명 서초사옥. 고성준 기자
#의결권 지키겠지만…
하지만 법조계 중론은 “이 회장의 의결권을 제한할 수 없다”다. 설령 지금 형사처벌을 해도 범죄행위가 이뤄진 시점이 금융지배법이 발효된 2016년 8월 이전이기 때문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지난 5월 금융지배법 시행 후 첫 대주주 자격심사를 위해 적용요건과 관련한 법령해석위원회를 열었는데, 형 확정 시점이 아닌 범죄 성립 시점을 기준으로 삼자고 결론냈다”고 전했다.
이 기준을 적용하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도 애매해진다. 이 부회장 역시 법원의 1심 판결에서 외국환거래법 위반이 일부 인정됐지만 범죄 발생 시점, 즉 삼성이 정유라 씨에게 말을 사준 시점이 2016년 8월 이전이다. 금융지배법에 따른 삼성생명 대주주 자격제한에 해당되지 않을 수 있다.
변수는 있다. 최근 국세청이 이 회장의 추가 차명계좌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이들 차명계좌에서 최근까지 지속적으로 조세포탈이 이뤄졌다면 범죄 성립 논란은 의미가 없다. 차명계좌에서 만에 하나 이 부회장 관련 계좌가 발견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금융실명제법 위반 역시 금융지배법에서 의결권 제한을 할 수 있는 범죄다.
하지만 이 회장 부자 모두 의결권 제한 조치를 당해도 삼성생명 경영권에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이 회장이 의결권의 10%만 행사해도, 2대 주주인 삼성물산(19.34%)과 합치면 30%에 육박한다. 이 회장 부자 모두 의결권이 제한돼도 20%다. 의결권이 제한된 상황에서 20%의 의결권은 의결권행사가능주식의 25%에 해당한다. 게다가 금융지배법상 의결권 제한 조건은 최대 5년이다. 기한 판단은 금융당국의 재량이다. 경영권에는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풀이했다.
# 영향력 약화 불가피
다만 이 부회장의 경우 금고 이상의 형을 받으면 10년간 삼성생명 이사회에 직접 참여할 수 없다. 금융지배법은 금고 이상의 실형을 선고받고 그 집행이 끝나거나 집행이 면제된 날부터 5년이 지나지 아니한 사람은 금융회사 임원 취임을 금지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이 부회장이 실형을 받으면 대리인을 통한 이사회 참여는 가능하겠지만, 최근 법과 제도가 이사회 중심으로 강화되고 있다”며 “사면복권 여부가 변수겠지만, 이 회장처럼 강력한 카리스마를 갖지 못한 상황에서 10년간 이사회에서 배제된다면 영향력 약화는 불가피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 소수주주권의 도전
이 회장 부자가 경영권을 지킨다 해도 이사회를 파고드는 금융지배법의 또 다른 칼날이 있다. 소수주주권이다. 금융회사지배법상 소수주주 권한은 상법보다 훨씬 느슨하다.
상법에서 주주제안권과 임시주총 소집요구권은 3% 이상 주주의 권한이지만, 금융지배법은 0.1%, 1.5%면 된다. 대형 금융회사의 임시주총소집요구는 0.75%만 보유하면 가능하다. 특히 금융지배법은 주주제안권 요건을 갖춘 주주에게 사외이사 후보추천권을 부여한다.
지난 11월 20일 열린 KB금융지주 주주총회에서 노조 측이 추천한 사외이사 후보에 최대주주인 국민연금이 찬성표를 던졌다. 부결은 됐지만 상당한 파장을 일으켰다. 국민연금은 삼성전자 지분 9.71%를 보유한 단일 최대주주이며, 삼성생명과 삼성화재도 각각 지분 6.11%. 9.11% 보유하고 있다. 국민연금이 운용을 위탁한 국내외 기관투자자들 역시 상당하다. 삼성은 물론 국내 주요 대기업 이사회에 소수주주를 대표하는 사외이사가 등장할 가능성이 크다.
# 긴장하는 금융지주 CEO들
금융지배법은 금융회사 임원추천을 위한 위원회를 의무화하고 있다. 그런데 임원추천위원회에는 사외이사들과 함께 최고경영자(CEO)도 참여하고 있다. 임추위가 본인 추천에 대해서는 의결권을 행사하지 못하지만, 상호 추천은 가능하다. 사외이사가 CEO를 후보로 추천하고, CEO가 다시 사외이수 후보를 추천해주는 구조인 셈이다.
3연임에 도전하는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의 임기는 내년 3월까지다. 하나금융지주 회장추천위원회는 사외이사 8명 중 6명의 위원으로 구성된다. 현 위원들 가운데 3명은 2015년 3월 김정태 회장의 연임에 찬성표를 던진 인물들이다. 또 이들 전원은 김 회장이 참여한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의 추천을 받아 사외이사에 올랐다. 한마디로 김 회장이 뽑은 이들이다.
하나금융 회추위 위원들은 2014년 3월과 2015년 3월 주총에서 선임됐다. 금융지배법은 사외이사가 한 회사에서 6년, 그 회사와 계열사 포함 9년까지 재임하는 것이 가능하다. 2015년 3월에 취임한 사외이사는 2018년 3월 주총에서 연임하면 2021년 3월까지 임기가 가능하다. 2021년 하나금융지주 회장추천위원회에 참여할 수도 있는 셈이다.
그나마 70세 이상은 최고경영자(CEO)의 새로운 임기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한 내부 규정 때문에 김 회장의 연임은 이번이 마지막이다.
# 사외이사-CEO 상호추천 모순
이른바 상호추천에 따른 회전문 인사를 피하기 위해 금융지배법은 소수주주가 추천한 사외이사 후보를 반드시 포함시키도록 강제하고 있다. 임추위가 독점해온 사외이사 추천권을 소수주주에도 부여한 셈이다.
일단 사외이사가 되면 경영에 상당한 영향을 행사할 수 있다. 대주주가 아무리 껄끄러워도 소수주주 사외이사를 위험관리위원회, 보수위원회, 감사위원회, 임원추천위원회 가운데 한 곳 이상에는 참여시켜야 한다. 금융지배법은 사외이사에게 직무수행에 필요한 자료에 대한 접근권을 상당히 보장하고 있다.
최종구 금융위원장도 이른바 회전문식 인사 문제에 적극 공감하면서 조치 방침을 시사했다. 최 위원장은 “특히 은행권에서 (현직) CEO가 자신과 가까운 인사들로 이사회를 구성하고 연임을 도모하고 있다는 논란이 있다”며 “자신과 경쟁할 수 있는 유력 후보를 인사 조치해서 대안이 없다며 자기밖에 할 사람이 없다고 하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러한 문제가 없도록 하는 것도 금융당국이 해야 할 일”이라고 밝혔다
재계 한 관계자는 “소수주주 추천권을 활용하면 사외이사들의 임기 만료가 다를 경우 자리가 날 때마다 소수주주를 대표하는 복수의 이사 선임도 가능할 수 있다. 특히 현재 여권에서 추진 중인 집중투표제가 허용된다면 그럴 가능성은 더욱 높아진다. 자칫 최고경영자를 비롯한 인사권에 개입할 소지가 있다. 경영진 입장에서는 엄청난 부담이다”라고 우려했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