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편향’ 논쟁 팽팽…구체적 계획 감감
문재인 대통령이 11월 24일 지진으로 인해 특별재난지역으로 지정된 경북 포항시 북구의 포항여고를 방문해 현장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제공
사업계획안에 따르면 200개 읍면동 간사 200명에게는 각각 연 2500만 원을, 중간지원조직 전문가 60명에게는 각각 연 3000만 원의 인건비를 지급하게 된다. 이를 위해 투입되는 총 예산은 약 205억 원가량이다.
자유한국당(한국당) 측은 “지방을 좌파 일색으로 채우기 위한 꼼수”라며 “혈세를 투입해 좌파 풀뿌리 운동권을 양성하는 ‘완장 부대’ 사업”이라고 비판하고 나섰다. 정태옥 한국당 원내대변인은 사업을 반대하는 이유에 대해 “이 사업은 떠돌이 좌파 운동권에 자리를 만들어 주려는 사업”이라며 “처음에는 지역 활동도 하겠지만 정부 예산으로 사회운동을 교육하고, 장기적으로는 지역 사회를 장악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국당 관계자는 “혁신 읍면동 사업은 서울시의 마을공동체 사업을 롤모델로 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혁신 읍면동 사업을 구상한 사람이 마을공동체 사업을 만들었던 하승창 청와대 사회혁신수석”이라며 “마을공동체 사업을 보면 혁신 읍면동 사업도 정치적으로 편향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혁신 읍면동 사업은 일명 ‘하승창 사업’으로 불린다. 김도읍 한국당 예결위 간사는 언론 인터뷰에서 “당초 혁신 읍면동 사업 예산은 전액 삭감으로 의견이 모아졌는데 여당이 갑자기 다시 들고 나왔다”면서 불만을 터뜨렸다. 하승창 수석은 직접 윤후덕 더불어민주당(민주당) 예결위 간사와 소통하면서 혁신 읍면동 사업 예산 통과 여부를 챙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의 한국당 관계자는 “혁신 읍면동 사업은 민생 예산도 아니고 급한 것도 아닌데 여당이 고집을 피우는 이유를 모르겠다. 그러니 우리가 더 의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윤후덕 의원 측은 하승창 수석 압박 때문에 혁신 읍면동 사업 예산을 다시 추진하는 것이냐는 질문에 “사실 관계를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답변했다. 청와대 사회혁신실 측에도 사실관계를 확인해보려 했지만 회의 중이라며 전화를 끊은 후 더 이상 연결이 되지 않았다.
혁신 읍면동 사업의 롤모델인 서울시 마을공동체 사업은 마을 단위 소규모 공동체를 회복시켜 정치, 경제, 문화 등 다양한 분야의 지역 현안을 주민 스스로 해결하도록 지원하는 사업이다. 하지만 지난 2012년 한 언론보도를 통해 서울시로부터 지원을 받은 일부 마을공동체가 진보신당 당원들이 설립해 운영하는 단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정치 편향성 논란이 일었다.
한국당 관계자는 “(마을공동체 사업으로 선정됐던) 성미산 마을의 경우 마을 곳곳에 세월호 깃발을 걸어놓고 주민들이 역사교과서 반대, 박근혜 노동개혁 반대 서명운동을 진행했었다”면서 “이런 사업을 롤모델로 하고 있는 혁신 읍면동 사업을 순수하게 바라볼 수 있겠느냐”고 했다.
문제가 됐던 성미산 마을을 직접 찾아가봤다. 한국당 인사가 주장한 세월호 깃발이나 정치적 서명운동 등은 찾아볼 수 없었다. 다만 언론 기사 등을 찾아보니 과거 성미산 마을에서 그런 활동들이 실제로 있었다는 사실은 확인할 수 있었다.
서울시 마을공동체 사업 담당자는 “마을공동체 사업은 종교적인 행위나 정치적인 행위로 이용할 수 없다는 조항이 있다”면서 “세월호 깃발이나 정치적 서명 운동의 경우는 시에서 지원한 사업비로 한 것이 아니라 그 분들이 자발적으로 한 것이기 때문에 제재할 수 있는 근거가 없다”고 말했다.
한국당 주장에 대해 강훈식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동네 사람들을 좌파, 우파로 나누는 것 자체를 이해할 수 없다”면서 “정부가 좌파 인사를 찾아서 채울 것이라는 주장은 매우 부적절하다. 마을공동체 사업을 롤모델로 하고 있지만 원래 주민자치회는 특정 정당 당원이면 가입이 안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장에게 활동비 준다고 좌파로 채우려는 것인가. 주민자치회 활동 중에 선거운동을 하거나 정치적 중립을 위반할 경우 위원에서 해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야당은 절대 반대 입장인데 예산안 통과를 위해 양보할 생각은 없느냐는 질문에는 “저희로서는 포기할 예산 없다”고 일축했다.
민주당 예결위원인 어기구 의원도 “시골에 좌파인사가 어디 있느냐”면서 “현재 말만 지방자치지 주민들은 소외되고 있다. 진정한 풀뿌리 민주주의를 하려면 책임지고 프로젝트를 진행할 담당자가 있어야 한다. 당장 전국적으로 다 하자는 것도 아니고 시범사업을 해보자는 것인데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어 의원은 “좋은 제도인데 색안경을 끼고 봐서 그렇다. 지레 겁먹고 반대하는 것은 너무 예민한 반응”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강세진 박사가 지난 5월 발표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마을공동체 사업에 1000만 원을 지원할 경우 약 5600만 원의 사회경제적 파급효과가 발생한 것으로 분석됐다. 강 박사는 구체적으로 “마을 내부 매출증대 269만 원, 소득증대 696만 원, 마을 외부 매출증대 2013만 원, 소득증대 261만 원 등 3239만 원의 직간접적 경제효과와 일반주민 참여에 따른 2366만 원의 사회적 효과가 발생했다”고 분석했다.
이 같은 주장에 대해 정태옥 한국당 원내대변인은 “전교조가 촌지 추방운동을 처음 시작할 때 국민들이 얼마나 환영했느냐”면서 “결국은 전교조가 풀뿌리 교육을 장악하고 학생들에게 역사를 왜곡시키고, 교육 현장을 정치화했다. 혁신 읍면동 사업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문재인 정부는 혁신 읍면동 사업 예산으로 약 205억을 신청해놨지만 주민자치회 간사 및 중간지원조직 전문가를 어떤 방식으로 선발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은 세우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업을 담당하게 될 행정안전부 측에 수차례 질의를 해봤지만 매번 담당자가 없다는 이유로 답변을 하지 않았다.
김광림 한국당 의원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어떻게 뽑는지도 모르는 간사에게 3000만 원씩 주겠다는 건 재정으로 관변단체를 만드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황주홍 국민의당 예결위 간사도 “정부 계획대로라면 2019년엔 마을 1500개 1537억 원, 2020년엔 마을 3500개 3600억 원이 투입될 예정”이라며 “주민자치회가 아니라 주민관치회를 만들려는 의도”라고 비판했다.
국민의당은 또 혁신 읍면동 사업이 사실상 ‘묻지마 공무원 증원’이라는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국민의당의 한 관계자는 “과거에는 자원봉사를 하던 것을 유사 공무원처럼 월급을 주는 형태로 만들었다”면서 “불필요하게 공무원을 늘리는 것은 건전 재정을 위해 용납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민주당 관계자는 “이 사업은 자치단체장이 운영권을 갖게 된다. 야당 자치단체장들도 많은데 무슨 수로 좌파 인사들만 기용하겠느냐”면서 “혁신 읍면동 사업은 주민이 실질적으로 참여하는 주민 자치를 구현하고 마을공동체의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사업이다. 불필요하게 공무원을 늘리는 사업이 아니다. 야당이 오해를 하고 있는 만큼 잘 설득해 통과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