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조 ‘너무 잘나간 게 화근 결정적 순간 치명적 실책’ 제갈량 ‘혼자 일 다해 부하 성장 못시켜’
최근 일본 경제지 <동양경제 온라인>은 삼국지 영웅들의 약점에 대해 집중적으로 소개했다. 흥미로운 것은 그 약점이 현대의 ‘무능한 상사’가 안고 있는 단점과 묘하게 겹친다는 사실이다. 대표적인 예가 삼국지의 주연 인물인 유비다. 유비는 제갈량 같은 인재를 등용하고, 평생 인의(仁義)를 중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요컨대 ‘영웅 중의 영웅’ ‘처세술의 교과서’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하지만 “말년의 유비는 ‘세계 제일의 유감스러운 리더’라 할 수 있을 만큼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다”고 우야마 씨는 전했다.
가장 큰 실수는 의형제 관우의 죽음을 복수하기 위해 오나라를 공격한 일이다. 유비는 복수에 눈이 멀어 무리하게 전투(이릉대전)를 감행했고, 그 결과 참패도 모자라 목숨까지 잃었다. 전투 전날에는 유비의 오른팔 격인 무장, 장비가 부하들에게 살해되는 참사도 발생했다. 요즘으로 치면 상사의 ‘갑질’에 대한 부하들의 반란이었다. 유비는 오랫동안 장비의 권력형 폭력을 방치했는데, 그로 인해 전투 전날 ‘귀중한 전력’을 허무하게 잃고 말았다. 이렇듯 결정적 실수를 한 것은 비단 유비뿐만이 아니다. 삼국지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유감스러운 리더십을 한데 모아봤다.
# 원소 : 아첨하는 부하만 좋아하는 ‘이기주의 상사’
허베이(河北) 지역의 실력자 원소는 거느린 장수가 많았고, 참모진도 풍부했다. 본래 전통적인 명문가 출신 귀공자로, 이른바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케이스다. 하지만 원소는 부하를 ‘옳고 그름’이 아닌 ‘싫고 좋음’으로 판단하는 성격이었다. 자신과 생각이 다른 부하의 의견은 무시하기 일쑤였으며, 마음에 드는 참모 곽도의 말만 신임했다. 이로 인해 특히 피해를 본 사람이 무장 장합이었다.
서기 200년 원소는 큰 전투에서 조조와 맞붙는다. 그 유명한 관도대전이다. 여기서 곽도와 장합은 서로 다른 곳에 군대를 보내자고 진언한다. 하지만 결단을 내리지 못한 원소는 결국 두 가지 계책을 모두 취하는 우유부단한 전략을 짜 조조에게 패망하고 만다. 당시 곽도는 “장합이 패전을 기뻐하고 있다”며 모함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군주가 매번 곽도의 말만 신뢰하자 반감을 품었던 장합은 마침내 폭발했으며, 적군 조조 편으로 돌아서게 된다.
그 후 장합은 위나라의 뛰어난 무장으로서 많은 승전을 거뒀다. 결과적으로 원소 입장에서는 유능한 부하를 잃은 데다 경쟁자에게 날개까지 달아준 격이 됐다. 충언은 귀에 거슬린다. 문제를 정확히 지적했는데 ‘트집만 잡는 오만한 녀석’이라며 듣지 않는 상사가 있다면, 부하는 단념하고 돌아서고 만다.
# 손권 : 집안싸움으로 추락 ‘우유부단한 오너’
오나라를 세운 손권도 빼놓을 수 없다. 손권의 강점은 인재를 적재적소에 잘 활용했다는 점이다. 적벽대전에서도 촉한의 유비와 연합군을 구성해 조조의 대군을 막아내기도 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의 후계자 선정에서는 원칙을 세우지 못하고 갈팡질팡했다.
손권의 나이 60세 무렵. 아들들 사이에서 후계자 싸움이 벌어졌다. 적벽대전에서 위나라를 물리친 지 35년이나 흘렀기 때문에 나라 전체가 평온하고도 순조롭게 발전하던 시기였다. 하지만 후계자 싸움이 시작되자, 신하들은 자신의 세력을 확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였고 결국 조정은 분열되고 만다. 그런데도 손권은 사태를 수습하기는커녕, 측근들의 모함에 부화뇌동하는 모습을 보였다. 게다가 명장 육손을 포함해 우수한 부하들을 차례차례 처형시키는 치명적인 실수까지 범한다.
이후 오나라는 패망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손권이 평생을 일궈놓은 업적이 후계자 문제로 일순간 파탄이 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대에서도 곧잘 자수성가한 오너의 기업이 ‘집안싸움’으로 붕괴하는 소식이 뉴스로 들려온다. 어떤 조직에서든 ‘후계자 문제를 깨끗하게 처리하는 것’이 리더의 마지막 책임이라 하겠다.
# 조조 : 연전연승에 도취 ‘자신감 과잉 상사’
그렇다면 삼국지 제일의 강자 조조는 어떨까. 조조 하면 지략이 뛰어난 합리주의자, 혹은 삼국시대 최강대국이었던 위나라를 건국한, 가장 성공한 영웅 이미지를 떠올린다. 이런 조조가 만년에 유일하게 남긴 오점이 바로 촉·오 연합군과 장강 유역에서 싸운 적벽대전이다.
<삼국지연의>에 나오는 적벽대전은 제갈량의 화공(火攻)에 의해 조조가 무참히 무너진다. 그러나 실제로 “조조가 패한 원인은 화공이 아니라 풍토병”이라는 분석이 유력하다. 정사에 따르면 화공에 관한 애매한 서술이 많은 반면 “역병이 유행해서 조조군의 병사 다수가 사망했기 때문에 철수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여기서 역병은 장강 유역 특유의 풍토병인 것으로 알려졌다. 조조의 참모인 가후는 사전에 이를 예상하고 “오나라 침공 준비까지 3년을 투자하라”고 진언했다고 한다.
하지만 당시 조조는 연이은 승리에 도취한 나머지 “사기가 높을 때 단숨에 결판지어야 한다”면서 침공을 단행하는 치명적인 실책을 저지른다. 평소 조조라면 참모들의 말에 귀를 기울였을 것이다. 그러나 천하통일을 앞두고 한껏 들떠있던 터라 냉정한 판단이 결여됐다. 그럴 때일수록 신중해야 했지만, 천하의 조조도 삐끗하는 실수를 하고 말았다.
# 제갈량 : 혼자 너무 뛰어나서 ‘도가 지나친 상사’
제갈량은 유비를 섬긴 정치인으로 걸출한 지성의 소유자다. 천재적인 두뇌와 재능을 가진 데다가 성격까지 공명정대해 ‘이상적인 상사’에 가장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제갈량은 부하에게 일을 맡기지 않고, 뭐든지 직접 해야 직성이 풀리는 리더였다. 우수한 인력이 있었지만, 그들이 마음껏 성장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제갈량은 군주 유비가 세상을 떠나자 촉나라의 거의 모든 공무를 직접 결재했다. 위나라의 군사 전략가 사마의가 이를 듣고 “제갈량이 머지않아 과로로 죽을 것”이라고 예측했다는 일화도 유명하다. 사마의의 예상은 적중했다. 제갈량은 얼마 후 병으로 쓰러졌고, 더 이상의 인재가 없던 촉나라는 위나라에 정복당했다. 혼자서 일을 독점하고 부하들이 성장할 기회를 주지 않는다면 결코 성공적인 리더라 할 수 없다. 뛰어난 리더가 고군분투하는 조직은 처음에는 성장할 순 있으나 번영은 오래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