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액의 계약금이 몸값 폭등으로 이어져…10개 구단 상한선 제도 도입 움직임
역대 FA 몸값 1위 주인공은 단연 롯데 이대호다. 지난해 일본과 메이저리그를 거쳐 고향팀으로 복귀하면서 총액 4년 150억 원에 계약했다. 그러나 총액이 아닌 계약금만으로는 김현수가 ‘킹’이다. 김현수는 LG와 계약한 115억 원 가운데 무려 57%에 달하는 65억 원을 계약금으로 받았다. 4년 연봉을 다 합쳐도 계약금보다 15억 원이나 적다. 반면 이대호는 계약금 비율이 약 33%로 추정된다. 롯데가 계약 당시 세부 내용을 공개하지 않았지만, KBO 자료를 통해 지난해 연봉 25억 원을 받았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결국 150억 원 가운데 50억원이 계약금, 연봉 총액이 100억 원이라는 추산이 가능하다. 적어도 계약금만으로는 김현수가 역대 최고액 선수다.
# 4년 연봉 총액보다 계약금이 더 많다?
야구에 ‘계약금’라는 단어가 처음 생긴 것은 1975년이다. 메이저리그에 자유계약선수(FA) 제도가 도입되면서 ‘사이닝 보너스(Signing Bonus)’라는 용어가 나타났다. 말 그대로 이 돈은 선수에게 연봉 외에 별도로 지급되는 ‘보너스’다. 계약서에 사인을 하는 대가로 선수가 받는 별도의 수입이다. FA 선수의 영입 혹은 잔류 그 자체를 기념하는 액수라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오히려 보너스 격인 계약금이 FA 선수들의 ‘주 수입’으로 둔갑하고 있는 모양새다. 100억 원을 넘나드는 대형 계약이 쏟아지고 있는 최근 수년간은 더 그렇다.
사진= LG 트윈스
김현수 전에도 이미 계약금 비중이 총액 50%를 넘어선 선수들이 나왔다. 각 구단 공식 발표액 기준으로 역대 가장 계약금 비중이 높았던 선수는 NC 박석민이다. 2015시즌을 마치고 삼성에서 NC로 팀을 옮기면서 4년 96억 원에 사인했는데, 그 가운데 계약금으로만 56억 원을 받았다. 무려 58%에 달하는 비중이다. 2016년 말 삼성에서 LG로 이적한 차우찬도 4년 95억 원 가운데 55억 원(58%)이 계약금이었다. 둘 다 김현수보다 계약금 비율이 더 높았다.
지난해 말에도 강민호와 황재균이 각각 삼성, kt와 계약하면서 총액 대비 계약금 비율 50%를 기록했다. 강민호는 80억 원 가운데 40억 원, 황재균은 88억 원 가운데 44억 원을 계약금으로 수령했다.
이외에도 웬만한 대형 FA 선수들은 계약금 비율이 50%에 육박한다. SK 최정은 2014년 말 총액 86억 원 가운데 42억 원(49%), 두산 장원준은 2014년 말 84억 원 가운데 40억 원(48%), KIA 윤석민은 2015년 말 90억 원 가운데 40억 원(44%), 한화 정우람은 2015년 말 84억 원 가운데 36억 원(43%), KIA 최형우는 2016년 말 100억 원 가운데 40억 원(40%)을 각각 계약금으로 받았다. 지난해 말 나란히 롯데와 계약한 손아섭(4년 96억 원)과 민병헌(4년 80억 원)은 세부 내용을 공개하지 않았지만, 50% 안팎의 계약금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 메이저리그 계약금은 총액의 10% 안팎
KBO 리그에서만 볼 수 있는 광경이다. 사실 천문학적인 액수의 계약이 겨울마다 쏟아지는 메이저리그에서는 오히려 계약금이 총액 대비 10% 안팎을 벗어나지 않는 게 일반적이다. 일례로 류현진이 2012년 말 LA 다저스와 6년 총액 3600만 달러(최대 4200만 달러)에 계약할 때 사이닝 보너스는 약 13.9%인 500만 달러에 불과했다. 박찬호가 2001년 말 텍사스와 5년 총액 7100만 달러 대박 계약을 맺을 때도 일시불로 지급되는 계약금은 단 600만 달러만 포함됐다. 총액의 약 8%에 해당하는 액수다.
내로라하는 메이저리그 톱스타들도 다르지 않다. 은퇴한 알렉스 로드리게스는 2000년 텍사스와 계약 기간 10년, 총액 2억 5200만 달러 조건에 사인하면서 메이저리그 사상 첫 연봉 2000만 달러, 총액 2억 달러 이상을 받아 냈다. 당시 사이닝보너스는 총액의 약 4%인 1000만 달러였다. 클레이튼 커쇼는 2014년 LA 다저스와 7년 계약하면서 무려 2억 1500만 달러에 합의해 사상 처음으로 연봉 3000만 달러 시대를 열었다. 그때 커쇼의 계약금 역시 총액의 약 8%인 1800만 달러였다.
이뿐 아니다. 맥스 슈어저는 2015년 1월 워싱턴과 7년 계약을 하면서 역대 메이저리그 최고 계약금인 500만 달러에 사인해 화제가 됐다. 그러나 메이저리그 전체를 떠들썩하게 한 사이닝 보너스 500만 달러는 사실 총액 2억 1000만 달러 가운데 23.8%에 불과했다. KBO 리그 FA 계약의 계약금 비중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
한 메이저리그 전문가는 이에 대해 “미국에선 계약금 자체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선수가 야구를 잘해서 받는 돈은 연봉이지 계약금이 아니다. 계약금을 위한 계약은 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류현진이 2012년 말 LA 다저스와 6년 총액 3600만 달러(최대 4200만 달러)에 계약할 때 사이닝 보너스는 약 13.9%인 500만 달러에 불과했다. 일요신문 DB
# 왜 FA 계약금 비중은 점점 높아질까
한국은 반대 상황이다. 몇 안 되는 대어급 선수들이 FA 자격을 얻는 순간 10개 구단의 과열 경쟁이 시작된다. 매년 200억 원 이상 적자를 내는 프로야구단이 수십억·수백억 원의 ‘특별 예산’을 편성해 시장에 뛰어든다. 선수는 ‘갑’이 되고 구단은 ‘을’이 된다. 자연스럽게 선수 친화적인 계약으로 흘러간다. 계약금 상승도 그 연장선상이다.
선수는 당연히 계약금을 많이 받을수록 좋다. 한꺼번에 큰돈을 손에 쥐면 자산을 불릴 수 있는 폭이 넓어진다. 일시불로 지급되는 계약금으로 거액의 부동산 투자에 나서는 선수들도 많다. 향후 수령 총액이 적어질 위험도 피할 수 있다. KBO 규약 제73조 ‘연봉의 증액 및 감액’에는 “연봉 3억 원 이상인 선수가 소속 구단 현역 선수로 등록되지 못하면 연봉을 감액한다”고 명시돼 있다. 특히 성적이 좋지 않아 2군에 내려가게 되면 선수 귀책사유가 인정된다.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된 일수에 연봉 300분의 1의 50%를 곱한 금액을 연봉에서 깎는다. 연봉이 높으면 높을수록 삭감액이 커지는 건 당연지사. 예를 들어 연봉이 10억 원인 선수는 단 열흘만 1군 등록이 말소돼도 약 1667만 원을 못 받게 된다.
무엇보다 4년 뒤 한 차례 더 FA 계약을 노리는 선수는 마지막 해 연봉이 낮을수록 좋다. FA 선수 이적 시 보상규정(그해 연봉의 300% 혹은 연봉의 200%와 보호선수 20인 외 보상선수 1명)을 고려하면 연봉이 너무 높지 않아야 이적 가능성이 더 크게 열린다.
물론 구단 입장에서도 계약금 비중을 최대한 높이고 연봉을 낮추는 쪽이 여러 모로 이득이다. 총액 100억 원 계약 선수에게 계약금 20억 원을 주고 매년 연봉 20억 원을 지급하는 것보다는 계약금 40억 원을 미리 해결하고 매년 연봉을 15억 원만 주는 게 낫다는 의미다. 계약 첫해의 과다 지출은 FA 특별 예산으로 해결하고, 남은 3년간은 연봉 총액을 낮춰 구단 전체 예산 운용을 더 수월하게 하겠다는 작전인 셈이다. 결국 선수와 구단 양측의 이해관계가 맞물린 기현상이다.
# 구단들 “FA 계약금 상한선 만들자” 움직임
거액의 계약금은 결국 FA 몸값 폭등으로 이어진다. 잘하는 선수가 돈을 많이 받는 것은 프로의 세계에서 당연한 일. 문제는 만성 적자에 허덕이고 있는 구단들의 현실이다. 정해진 예산 안에서 한 선수에게 너무 많은 돈이 돌아가면, 다른 선수가 연쇄적으로 피해를 떠안을 수밖에 없다. ‘부익부 빈익빈’은 점점 더 심해진다. 실제로 FA 대박 계약이 연이어 터진 지난해 말, 준척급 FA나 베테랑 선수들은 계약할 팀을 찾지 못하거나 소속팀에서 방출됐다. 일부 베테랑 FA들은 2년도 아닌 1년 혹은 1+1년 계약에 만족해야 했다. 계약금 현실화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이유다.
이 때문에 10개 구단은 계약금 상한선 제도를 도입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계약금이 FA 자격 직전시즌 연봉의 300%를 넘지 않도록 하자”는 제안이다. 이미 높아져 버린 몸값 전체를 대폭 낮추기는 어렵겠지만, 적어도 연봉 비중을 늘려 리그와 구단 운영의 투명성을 확보할 필요는 있다는 지적이다. 여기서 더 계약금이 높아지면 리그 전체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위기의식도 깔려 있다. 한 구단 관계자는 “FA 선수 A가 일정 금액에 계약을 하면, A 선수와 비슷한 레벨의 다른 선수들에게는 그 금액이 협상의 출발선이 된다”며 “제도적으로 장치를 마련하지 않으면 구단들이 선수들에게 계약금을 줄이자고 말할 수 있는 명분이 없다. 결국 그 선수를 필요로 하는 구단은 그 돈을 지불하게 된다”고 귀띔했다.
물론 프로야구선수협회는 반대 입장이다. FA 계약금에 상한을 두려면 앞서 언급된 ‘연봉 감액’ 규정을 먼저 없애야 한다고 주장한다. “부진이나 부상이 아니라 팀의 방향성 때문에 2군에 간 선수들이 부당하게 몸값이 깎이는 일이 생긴다. 그런 규정이 있는 한 선수들은 최대한 많은 금액을 보장받을 수 있는 계약금에 비중을 둘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KBO 역시 FA 몸값이 늘어난 만큼 최소한의 안전장치는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FA 선수에게 큰돈을 투자하고도 4년간 별다른 소득을 거두지 못하는 사례는 여전히 종종 나오고 있어서다. FA 선수들의 몸값이 올라가고 거액의 계약금이 오갈수록 ’돈‘을 둘러싼 대립과 논란은 멈출 줄 모른다.
배영은 일간스포츠 기자
잘나가는 오타니 ‘헐값 계약금’ 왜? 나이 규정에 걸려 FA 아닌 신인 취급 ‘괴물’ 오타니 쇼헤이(23)의 메이저리그 진출은 지난 오프시즌 최고의 화두 가운데 하나였다. 다수의 메이저리그 구단 고위 관계자들이 시즌 도중 오타니를 보러 일본행 비행기에 올랐고, 시즌 종료 후 포스팅에 나오자 30개 구단 가운데 27팀이 영입전에 뛰어 들었다. 메이저리그와 일본은 물론 한국에서조차 오타니의 행선지를 두고 큰 관심을 보였을 정도다. 오타니는 러브콜을 보낸 구단들을 놓고 신중한 ’심사‘를 한 끝에 LA 에인절스를 새 소속팀으로 결정했다. 뉴욕 양키스나 보스턴, 텍사스 같은 전통의 ‘빅 마켓’ 인기 구단들은 최종 후보를 7개 구단으로 좁히는 과정에서 이미 제외됐다. 어차피 오타니의 입단 계약에서 ‘돈’은 큰 경쟁력을 가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일요신문 DB 실제로 오타니는 명성과 화제에 비해 큰돈을 손에 넣지 못했다. 오타니가 에인절스와 사인하면서 받은 계약금은 ‘고작’ 231만 5000달러. 약 25억 원 정도에 불과한 금액이지만, 규정상 에인절스가 내줄 수 있는 최대 규모 액수였다. 올해 받게 되는 연봉도 메이저리그 하한선인 54만 5000달러밖에 되지 않는다. 원 소속구단 니혼햄이 받은 이적료 역시 미국·일본 포스팅 협정에 따른 상한선인 2000만 달러(약 219억 원)에 그쳤다. 2012년 텍사스와 계약한 일본인 투수 다르빗슈 유가 포스팅 금액 5170만 달러와 6년 총액 6000만 달러에 사인한 점을 고려하면 그야말로 ‘헐값’이 따로 없다. 이 같은 계약은 사실 오타니 스스로 선택한 길이다. 오타니가 25세 이후 메이저리그에 진출했다면, 계약금과 연봉 제한을 전혀 받지 않기 때문이다. 현지 언론은 “오타니가 25세를 넘기고 빅리그에 왔다면 장기 계약 6~7년에 총 2억 달러(약 2200억 원) 정도는 충분히 받았을 것”이라고 내다보기도 했다. 그러나 오타니 입장에선 적은 계약금을 감수하고 2년 먼저 미국에 온 것이 무조건 손해는 아니다. 3년 뒤 연봉조정신청을 통해 몸값이 크게 불어날 기회를 잡을 수 있다. 그 기간 동안 일본이 아닌 메이저리그에서 실력을 보여준다면 오타니의 가치는 훨씬 더 높아진다. 또 에인절스는 오타니의 트레이드마크인 ‘투타 겸업’을 적극 지지하는 구단이다. 일본 프로야구에서 더 이상 오를 곳이 없는 오타니에게 새로운 도전의 장이 열릴 수 있다. 오타니는 이미 입단 전부터 ‘플레이어카드’를 매진시키며 인기를 과시했다. [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