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판이 문하생을, 선배가 후배를…‘쉬쉬’하는 사이 곪다가 결국 터져
10대 남성 심판문하생을 성추행한 최고위 심판 시키모리 다테교지. 니테레 뉴스 캡처.
성범죄 피해 사실을 고백하는 ‘미투(Me Too) 운동’이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그런데 피해자가 비단 여성에게만 국한되는 것은 아닌 듯하다.
지난 1월, 일본스모협회는 “시키모리 이노스케 다테교지(최고위 심판·58)가 지방 순회대회 참가 중 10대 남성 심판문하생을 성추행했다”고 밝혔다. ‘도쿄신문’에 의하면 “시키모리 심판은 자신의 숙소에서 심판문하생에게 수차례 키스를 하고 가슴을 만졌다”고 한다. 이에 대해 피해자는 ‘정신적 피해를 입었다’며 사죄를 요구한 것으로 전해진다. 문제의 시키모리 심판은 “만취해서 기억이 안 난다. 남색(男色)을 좋아하지 않는데,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모르겠다. 문하생에게는 큰 잘못을 저질렀다”고 사과했다.
일반 사회에서도 미성년자에 대한 성희롱은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다. 하물며 공익재단법인인 스모협회는 말할 것도 없다. 이와 관련 ‘주간겐다이’는 “최고위 심판이 거절할 수 없는 ‘권력 차이’를 이용해 어린 심판을 성추행한 점은 매우 비열한 행위”라고 비판했다. 아울러 매체는 “이번을 계기로 ‘과거 성희롱을 겪었다’는 전(前) 스모선수들의 목소리도 나오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스모계가 ‘쉬쉬’하는 분위기라 조용히 넘어가야만 했던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설명이다.
일본의 전통 스포츠, 스모는 원래 힘센 남자들이 신 앞에서 힘을 바치는 의식에서 비롯됐다. 종교 의례적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에 무기를 지니지 않고, 몸에 띠만 두른 채 힘을 겨룬다. 특기할 만한 점은 스모선수는 물론 심판, 경기진행 보조 등 스모계 종사자들이 모두 남성이라 점이다.
‘주간겐다이’에 따르면 “도효라 불리는 씨름판은 예로부터 성역으로 여겨졌으며, 피를 멀리하는 관습이 있어 여성이 도효에 올라서는 행위가 금기시됐다”고 한다. 에도시대까지는 여성이 스모를 관람하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또한 스모계는 필수적으로 지켜야하는 ‘삼금(三禁)의 원칙’도 이어져 오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흡연과 강탈, 그리고 훈련소(헤야) 비밀을 외부에 밀고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일본 스모계가 유독 폐쇄적인 이유가 여기서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익명을 요구한 관계자는 “실은 금기 사항이 하나 더 존재한다”고 털어놨다. 다름 아니라 “완전한 남성사회이기 때문에 내부적으로 ‘남색 행위’가 금기”라는 것이다. 관계자는 “후배를 성노리개로 취급하는 행위는 공동생활의 규율을 무너뜨리게 한다. 만약 그런 불미스러운 일이 생겼을 땐 외부에 알려지기 전에 조용히 처리하는 것이 관례였다”고 밝혔다. 요컨대 “오래전부터 남색이 문제시되는 동시에 방조되어 왔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스모협회의 또 다른 관계자는 “헤야의 특수한 생활환경이 성추행의 온상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헤야의 하루는 등급이 낮은 선수의 경우 아침 6시부터 연습을 시작한다. 선수들은 항상 짧은 팬티차림으로 지낼 때가 많으며, 여름에는 샅바만 걸치고 움직이는 일이 허다하다. 이런 상태로 헤야에서 생활하다 보니 ‘수치’의 감각이 마비된다는 것이다.
관계자는 “하루 종일 벌거벗은 상태로 동료와 어울리고, 혈기왕성한 나이에 연습에만 매달리는 탓에 밤 문화를 즐길 여유도 없다. 개중에는 절대적 수직관계를 이용해 후배에게 ‘그릇된 행위’를 하는 선수가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폭로했다.
실제로 전 스모선수 B 씨는 “선배로부터 성희롱을 당한 적이 있다”고 고백했다. 그는 “훈련 과정에서 일부러 신체를 밀착해오는 선배가 있었다”면서 “샅바를 잡기 위해서가 아니라, 부자연스럽게 얼굴을 비비거나 귀에 숨을 불어 넣기도 했다. 솔직히 너무 끔찍했다”고 말했다. 더욱이 “술자리에서는 키스를 하거나 손을 잡는 일도 많다”고 한다. 하지만 선배에 관해서는 절대 불평불만을 하면 안 되는 문화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참고 지냈다.
B 씨는 “성희롱이 가벼울 경우 스승으로부터 ‘기분 나쁜 행동을 하지 마라’고 경고하는 데 그친다. 이후 도를 넘어서면 다른 이유를 들어 은퇴 절차를 밟게 한다. 절대적인 상하관계나 악습 같은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그저 덮는 데 급급하기 때문에 스모계의 성희롱 추문이 끊이질 않는 것”이라고 탓했다.
이와 관련 ‘주간겐다이’는 “2000년대 돌연 은퇴한 C 선수가 지나친 성희롱이 원인이 돼 씨름판을 떠난 케이스”라고 보도했다. 표면상으로는 도박이 원인이었지만, 실제로는 한밤중에 술에 취해 어린 선수들이 자고 있는 방으로 들어가 덮쳤다는 것이다. 이에 “피해자 선수 중 한 부모가 협회 측에 항의했고, 소문이 퍼지기 전 협회가 C 선수를 해고하면서 부랴부랴 수습했다”는 후문이다. 덧붙여 “피해자 중 한 명은 장래가 유명한 선수였으나 사건 이후 충격으로 성적이 급강하하다 결국 은퇴하게 됐다”고 한다.
선수끼리의 성희롱도 문제지만, 심판이나 도코야마(스모선수들의 머리를 틀어주는 사람)같이 선수 이외의 관계자에 의한 성희롱도 훈련소에서 벌어진다. 일례로 2012년 나루토베야의 전 소속선수가 “젊은 심판에게 성추행을 당했다”며 소송을 제기한 사건이 있다.
당시 10대였던 D 선수는 “심판이 이불 속에서 몇 번이나 강제로 포옹하고, 하반신을 밀착시킨 다음 사타구니를 만지는 등 성추행을 했다”고 주장했다. 여기에 공포심을 느낀 나머지 D 선수가 탈주, 부모의 항의로 인해 심판은 근신처분을 받았다. 그러나 이후에도 후유증이 계속되자, D 선수는 결국 심판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를 제기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이 소송은 증거 불충분으로 기각되고 말았다. 스모협회 관계자는 “소송을 제기하는 사람을 업계에서는 ‘배신자’로 여긴다. 따라서 증언하려는 사람이 아무도 나오질 않는다. 현재로서는 승산이 없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스모 관련 저널리스트 나카자와 기요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기도 했다. “스모는 남성만의, 절대적인 상하관계로 이뤄진 세계다. 등급이 높은 선수나 심판에게 부적절한 행동을 당해도 피해자가 오히려 휘둘리는 경우가 많다. 이번에는 스모협회가 폭행사건을 축소하려다 발각된 사례가 있어 울며 겨자 먹기로 발표했지만, 보통이라면 문제조차 되지 않았을 것이다. 부끄러운 일이다. ‘전통’이라는 이름 아래, 폐쇄적인 스모계가 방치해온 성희롱, 성추행 환경을 개선하지 않으면 아무리 인기 스포츠라고 해도 언젠가 외면당할 수 있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