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년 금고지기’ 우리은행 각종 악재 터지자 시중은행들 물밑경쟁
서울시 중구 소공로 우리은행 본점. 최준필 기자
서울시금고는 경성부였던 1915년 조선경성은행(우리은행 전신) 시절부터 우리은행이 맡아 지금까지 103년간 독점해왔다. 2010년까지 수의계약 형식으로 주거래은행을 선정했으나 2010년 제정·공포된 ‘서울특별시 금고의 지정 및 운영에 관한 조례’에 따라 2011년부터 공개경쟁 방식을 도입했다.
이번 시금고 공모에서 눈에 띄는 점은 복수금고 지정이다. 서울시가 이러한 결정을 한 배경에는 우리은행의 시금고 독점에 대한 시중은행들의 불만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전국 지자체 중 유일하게 서울시만 단수금고를 운영해온 탓에 복수금고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거셌던 것도 한 이유다. 서울시는 오는 30일 참가희망 교육기관을 대상으로 설명회를 실시하고 4월 중순께 제안서를 받을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서울시금고를 노리는 은행들은 이미 올해 초부터 준비 작업을 펼쳐왔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오랜 기간 독점해오며 인프라를 구축한 우리은행이 아무래도 유리하겠지만 복수금고를 도입키로 한 만큼 제1금고는 우리은행에 맡기고 제2금고는 다른 은행에 맡기는 게 모양새가 좋다고 판단한 것 아니겠느냐”고 전했다.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도 “우리은행이 서울시금고라는 상징성이 큰 탓에 놓치고 싶어하지 않을 것”이라며 “‘빅4’를 비롯한 시중은행들은 제1금고보다 제2금고를 노릴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최근 연이어 악재를 맞은 우리은행이 이번 서울시금고 공모에서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관측하기도 한다. 우리은행은 서울시와 관계된 시정협력사업비에 대해 유착 의혹이 불거진 바 있으며 지난해에는 채용비리로 이광구 전 행장이 사퇴하는 일이 벌어졌다. 또 최근에는 세금고지서 오발송 사고로 논란에 휘말렸다.
감사원은 2012년과 2016년 ‘서울특별시 기관운영감사’를 통해 ‘시정협력사업 지원금 집행 부적정’을 지적했다. 감사원이 지적하고 조치를 요구한 기관은 ‘서울시’지만 사업비와 관련된 곳이 우리은행이기에 유착 의혹이 함께 불거졌다. 특히 2016년 진행된 2차 감사에서는 ‘출연금 부당 지원 및 사회투자기금 운영·관리의 부적정’이 지적됐다. 감사원은 서울시가 2012년 7월 시금고인 우리은행에 시정협력사업비 10억 원을 사회연대은행 사단법인에 직접 기부해줄 것을 요청, 사업비 10억 원이 서울시에 세입조치 되지 않고 민간재단의 재산 형성에 사용되는 문제점이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비록 감사원이 명시한 소관·조치기관은 ‘서울특별시’지만 내용을 보면 서울시가 우리은행과 해당 사업비에 대해 ‘협의하여 결정한 것’으로 돼 있어 우리은행이 자유롭다고 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우리은행 관계자는 “해당 사안에 대해 감사원에서 별도로 받은 메시지나 공문은 없다”며 유착 의혹을 부인했다.
업계에서는 다른 무엇보다 고지서 오발송 문제가 우리은행의 발목을 잡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지난 6일 서울시에 따르면 우리은행에서 관리하는 인터넷 세급납부 시스템 ‘이텍스’에서 오류가 발생해 특정 한 시민의 전자고지서가 70만 명에게 무작위로 발송됐다. 이 때문에 개인 도료사용료 건수, 금액 등이 명기된 개인정보가 노출됐다. 서울시와 우리은행은 이텍스 홈페이지를 통해 안내문을 게재하고, 착오 발송된 전자납부 가입자들에게 사과 메일을 보냈다.
문제는 해당 사고가 이번 시금고 평가항목에 배점 25점(100점 만점)이 부여된 ‘금고업무 관리능력’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이다. 금고업무 관리능력 평가 세부항목에는 ‘전산시스템 보안관리 등 전산처리능력’이 있으며, ‘전산보안을 강화하여 평가’한다고 명시돼 있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해당 사고에 대해서는 서울시에서도 은행에 연동돼 있는 외부 시스템의 오류로 이해하고 있다“며 ”해당 사고가 이번 공모에 반영되리라는 것은 경쟁하는 쪽의 추측에 불과할 뿐 우리는 제1금고와 제2금고 모두 입찰에 참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은행을 제외한 다른 은행들은 2금고를 잡기 위해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제2금융권에도 문을 열겠다고 했지만 업계에서는 사실상 제2금융권이나 지방은행이 도전할 수 있는 ‘사이즈’가 아니라고 토로한다.
시중은행 중 가장 주목받는 곳은 신한은행이다. 신한은행은 지난해 경찰공무원 대출 사업권을 국민은행에, 국민연금 주거래은행 자리를 우리은행에 빼앗겨 자존심을 구긴 바 있다. 따라서 이번 서울시금고를 확보함으로써 기관영업의 강자로 재부상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위성호 신한은행장은 올해 초 신년사에서 “대기업·기관고객영업도 더욱 강화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신한은행은 지난해 말 조직개편을 통해 개인그룹에 속해 있던 기관영업부문을 따로 떼 기관그룹으로 확대개편하고, 기관영업본부의 덩치도 기존 2개에서 3개로 키우기도 했다.
KB국민은행도 강력한 후보자다. 지난해 11월 취임한 허인 KB국민은행 행장이 ‘기관영업 전문가’라고 불리는 만큼 시금고에 대한 열의를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허 행장은 올해 신년인사회에서 “서울시금고 사업자로 선정되는 것은 무한한 영광이다. 복수입찰이 가능할 경우 적극적으로 뛰어들겠다”고 밝힌 바 있다. 국민은행 역시 지난해 말 조직개편에서 기관영업부서를 기관영업본부로 확대했다. 업계에서는 경찰공무원 대출 사업권을 두고 경쟁을 벌인 국민은행과 신한은행이 이번 서울시금고 공모를 통해 ‘자존심 대결’을 펼칠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여다정 기자 yrosadj@ilyo.co.kr
한점 부끄럼 없이 뛰어들 금융사 있나 우리은행이 잇단 악재로 금고지기 자리가 위태롭다는 관측이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다른 은행이라고 흠결이 없느냐는 이야기도 흘러나온다. 신한은행은 인천시금고와 용산구금고 선정 과정에서 의혹에 휘말린 바 있으며, KB국민은행은 채용비리와 관련해 검찰 수사가 한창이다. KEB하나은행 또한 채용비리와 관련해 금융당국의 강도 높은 조사를 받고 있다. 신한은행은 자지체 중 규모가 세 번째로 큰 인천시의 제1금고를 맡고 있다. 신한은행은 서울시금고 입찰경쟁에서 인천시금고를 운영했던 노하우를 어필할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신한은행은 인천시금고 선정 당시 재선정을 돕는 대가로 지자체장 후원회장에게 금품을 건넨 의혹이 불거져 2016년 10월 경찰 압수수색을 받은 바 있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경찰 수사 결과가 아직 나오지 않아 지켜봐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KB국민은행과 KEB하나은행 역시 금융권 채용비리와 관련해 곤욕을 치르고 있는 상황이다. [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