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팀 땐 언니가 동생에 주전 물려줘…“송이였기 때문에 질투 안 나고 마음 편해져”
여자배구 2017~2018 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한 한유미(36)의 선수 생활 마지막 상은 베스트 드레서상이었다. 다소 과감하고 화려해 보이는 드레스를 입었던 한유미는 선수들로부터 “아름답다”는 찬사를 받으며 스포트라이트를 한몸에 받았다. 선수로 참석한 마지막 시상식에서 한유미는 소중한 추억 하나를 품에 안았다. 어느 누구보다 가장 빛나는 모습으로 팬들의 기억에 남을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한유미는 동생 한송이(34·KGC인삼공사)와 함께 배구 코트를 누볐다. 비록 같은 팀에서 뛴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그 아쉬움은 대표팀에서 태극마크를 달고 뛰며 풀어냈다. 고교 졸업 후 실업팀 포함 프로 생활을 한 것만 19년째. 한송이는 16년째의 배구 인생을 일구고 있다. ‘일요신문’은 실력과 미모로 사랑받은 자매 배구 선수 한유미와 한송이를 만나 특별한 인터뷰를 가졌다.
배구선수 자매 한유미 와 한송이 선수가 일요신문과 인터뷰를 마치고 사진포즈를 취하고 있다. 임준선 기자
한유미는 2011-2012 시즌을 마치고 한 차례 은퇴를 경험했다. 그러나 2년 뒤 그는 친정팀인 현대건설로 복귀했고 복귀 후 4시즌을 보낸 후 진짜 은퇴를 하게 됐다.
한송이(송) : 몇 년 전부터 언니가 은퇴하기를 바랐어요. 나뿐만 아니라 부모님도 언니의 은퇴를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이유요? 너무 부상이 심했으니까요. 재활해서 나아질 몸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에 은퇴해야만 했어요. 원래는 지난 시즌에 은퇴한다고 했다가 한 시즌을 연장한 거였어요.
한유미(유) : 다른 집은 은퇴를 말린다고 하는데 우리 가족들은 제게 은퇴하라는 말을 달고 살았어요(웃음). 팬들은 19년째이니까 20년 채우고 떠나라는 말씀도 하시지만 더 이상은 무리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몸이 많이 아팠어요. 제대로 뛸 수도 없고 무릎이 지탱을 못하는데 욕심을 낼 수 없었던 거죠. 주위에선 모두가 은퇴를 축하(?)해주는 분위기예요. 덕분에 저도 선수 생활에 대한 미련이 1도 없습니다.
송 : 언니가 속해 있는 현대건설과의 시즌 마지막 경기가 3월 4일에 있었어요. 경기 끝나고 라커룸으로 들어가기 전 언니를 불러선 포옹하고 기념사진을 찍었어요. 유니폼 입고 언니랑 찍는 마지막 사진이 될 것 같아서요. 그때 조금 실감이 나더라고요. 앞으로는 언니랑 네트를 마주하고 경기할 수 없다는 사실이 말이죠.
# 선수가 선수를 말하다
여자 배구의 쌍둥이 자매로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이재영(22·흥국생명)과 이다영(22·현대건설)은 포지션이 다르다. 이재영이 레프트라면 이다영은 세터. 서로 다른 포지션이라 상대팀으로 만나도 겹치는 부분이 없다. 그러나 한유미 한송이는 레프트를 맡고 있어 트레이드가 돼도 같은 팀이 되긴 불가능했다. 항상 네트를 사이에 두고 맞은편에서 서로를 바라봤던 자매들. 서로에 대한 평가가 궁금했다.
유 : 송이는 선수들이 인정하는 레프트예요. 선수들끼리 “한송이가 레프트 중에서 제일 잘한다”고 말할 정도니까요. 그런 인정을 받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지 잘 알기 때문에 저한테 송이는 김연경 다음의 최고 레프트입니다.
송 : 저도 언니가 최고의 레프트였다고 생각해요. 언니를 상대팀 선수로만 만났지만 그래도 언니가 항상 잘하길 바랐어요. 경기 중 언니가 힘든 모습을 보일 때는 승부가 어느 정도 기울어진 상황에선 강하게 서브를 넣지 못하겠더라고요. 한두 번씩 삐끗한 적도 있었어요.
유 : 저도 송이답지 않은 서브가 들어올 때는 확신하진 못했지만 ‘혹시나’하고 생각한 적은 있었어요. 송이가 그런 마음을 가졌었다는 걸 오늘 처음 알았네(웃음).
송 : 선수 한유미는 열정이 가득한 선수였어요. 전 승부욕이 겉으로 표출되지 않는 편이거든요. 대표팀에 있을 때 감독님이 ‘너랑 언니랑 반반 섞였으면 좋겠다’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정말 그랬다면 최고의 선수가 됐겠죠. 언니는 손목 스냅도 좋았고, 스피드가 대단했어요. 전 그런 능력이 없었고요.
유 : 선수들이 우스갯소리로 이런 얘길 했어요. 제 어깨를 경매에 내놓으면 몇 천만 원을 주고서라도 사고 싶다고(웃음). 어깨만큼은 부상이 없었어요. 아무리 많은 볼을 때려도 끄떡없었죠. 제 유일한 밥줄이라 자신감을 얻는 계기도 됐는데 나이 때문인지 어깨에 통증이 생기더라고요. 그만둘 때가 됐다고 신호를 보내는 것 같았어요. 선수 한송이는 배구 보는 시야가 아주 뛰어났어요. 제가 파워로 밀어붙이는 스타일이라면 송이는 탄탄한 기본기와 타고난 배구 센스를 자랑했습니다. 동생이 잠이 많은 편이었거든요. 그래서인지 저보다 키가 6cm나 더 커요(웃음).
배구선수 자매 한유미 와 한송이 선수가 일요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임준선 기자
# 어린시절의 추억
한유미와 한송이는 초·중·고 선후배 사이다. 언니 유미가 배구하는 걸 보고 동생 송이가 자연스럽게 뒤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유 : 송이는 원래 배구 재능이 뛰어난 아이였어요. 반면에 전 별로였고요. 그래서 아빠가 운동을 하지 말라고 만류하셨어요. 송이는 어렸을 때부터 뛰어 노는 걸 좋아했어요. 아빠는 송이에게 운동하라고 권유하셨고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욕심이 생겼던 것 같아요. 제가 잘해야 무시당하지 않을 것도 같았고요.
송 : 언니가 하는 배구가 재미있어 보였어요. 그때는 맞으면서 운동하던 시절이었는데 그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어요. 어린 시절에 본 언니는 하늘과 같았어요. 고등학교 올라가선 제게 운동 물품이나 용돈도 줬거든요. 멋있게 보일 수밖에 없었죠. 대신 언니의 말투는 별로였어요. 집에서도 학교에서처럼 명령과 지시하는 걸 좋아했거든요. “야, 너 이거 해”라는 투로요.
유 : 송이가 어렸을 때는 제 말을 잘 듣는 편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제가 뭔가를 지시하면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 하지 마. 언니가 이런 모습을 보이면 후배들이 언니를 부담스러워 해”라고 반항하더라고요. 당시 충격 좀 받았었죠.
송 : 대표팀에서는 제가 후배들을 대변하는 역할을 맡았어요. 후배들이 언니한테 하고 싶은 말이 있을 때는 저를 찾아왔거든요. 언니한테 직접 말하지 못하는 내용들을 제가 대신 전했어요. 언니가 알고 있어야 하는 부분이라면 강하게 어필했던 것 같아요.
유 : 처음에는 송이의 태도가 서운하기도 했지만 나중에는 고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송이 덕분에 후배들의 속내를 알게 됐으니까요. 겉으론 아무렇지 않은 척하지만 속으론 다른 생각을 하는 거잖아요. 그런 점에선 송이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할 수 있어요.
# 대표팀에서의 경쟁
베테랑 선수로 자리매김했던 한유미는 한때 국가대표팀에서 주포 역할을 맡았다. 리시브나 수비보다는 직선 코스의 스파이크를 내리 꽂는 선 굵은 공격이 주특기였다. 한송이가 대표팀에 발탁되면서부터 같은 포지션의 한유미는 동생한테 주전 자리를 내줘야만 했다.
유 : 20대 중반까진 대표팀에서 제 역할이 분명했어요. 주전으로 뛸 수 있었으니까요. 20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제가 뛰던 자리를 송이에게 내줬어요. 송이였기 때문에 그 자리를 내주는 게 이해됐어요. 만약 다른 선수였다면 어떻게 해서든 경쟁을 통해 자리를 빼앗으려 했겠죠. 그리고 제가 객관적으로 봐도 송이가 더 잘했어요.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인정하니까 마음이 편해지더라고요. 시기와 질투를 앞세웠더라면 대표팀 생활이 즐겁지 못했을 거예요. 동생이 잘되는 게 더 좋은 거잖아요.
송 : 언니가 무릎을 크게 다치면서 제가 들어갔던 거라 처음에는 무조건 잘해내야겠다는 생각만 했어요. 언니가 재활 후 복귀했을 때의 상황을 미리 염려하진 않았고요. 대표팀 선수를 뽑는 건 제가 아닌 감독님이 정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제 할 일만 하자는 주의였습니다.
유 : 박삼용 감독님이 대표팀을 맡으시면서 송이가 계속 주전으로 뛰었어요.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때 송이가 광저우 5대 얼짱으로 뽑혔는데 가장 분개했던 선수가 (김)연경이었어요. 송이한테 ‘언니가 무슨 얼짱이냐’고 항의도 하면서요(웃음). 전 동생이 얼짱으로 뽑혀 기분 좋았거든요.
송 : 전 언니랑 함께했던 대표팀 생활 중 2012 런던올림픽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물론 제가 주전으로 뛰었지만 그 대회가 우리가 함께했던 마지막 올림픽이었어요. ‘죽음의 조’라고 불렸던 예선전에서 기적적으로 올림픽 티켓을 거머쥐었던 터라 본선 진출 자체가 금메달 획득한 거나 마찬가지였어요. 본선 경기는 보너스라고 생각하고 즐기려 했었죠. 물론 경기에 나가면 승부욕을 불태웠지만요. 즐기려 해서 그런지 4강 진출의 신화를 이뤄냈습니다.
유 : 조별예선 1승조차 장담하기 힘들었던 우리가 일본과의 4강전에서 패하는 바람에 메달 획득에는 실패했지만 선수들은 충분히 잘했고 멋진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런던올림픽에서는 이런저런 해프닝도 많았어요. 당시 ‘드림팀’으로 불린 미국농구대표팀 선수들이 선수촌에 나타났는데 우린 밥 먹다가 그 선수들 보겠다며 뛰쳐나간 적이 있었어요. 당시 한창 NBA 경기에 빠져 있던 때라 코비 브라이언트, 케빈 듀란트가 눈앞에 있는데 가만있을 수 없었던 거죠. 결국 그들과 사진 찍는 데 성공한 후 대표팀 선수들 단체 톡에 자랑삼아 올렸더니 (김)연경이가 숙소에 있다가 뛰어 내려와선 미국 대표팀 숙소까지 갔다가 결국엔 르브론 제임스와 사진 찍는 데 성공했더라고요. 당시 그들은 선수촌에서 생활하지 않고 호텔에서 따로 지냈었거든요. 선수촌 행사에 참여하려고 왔다가 선수촌을 발칵 뒤집어놨었죠.
송 : 제일 ‘핫’했던 선수가 우사인 볼트였어요. 볼트 선수한테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쫓아 다녀 감히 접근할 엄두도 나지 않더라고요. 광저우아시안게임 때는 이대호, 추신수 선수가 ‘짱’이었습니다. 덕분에 야구 선수들과도 친해질 수 있었던 기회가 됐었고요.
# 화려했지만 채워지지 않은 것들
유 : 20대 때는 대학 생활을 제대로 못해본 게 많이 아쉬웠어요. 그 나이 때의 경험을 할 수 없다는 것도 안타까웠죠. 서른 살이 넘어서면서부터는 배구를 통해 제가 얻는 게 정말 많다고 생각했어요. 일반인들이 갖지 못하는 걸 제가 갖고 있다는 것도 알았고요. 그 후론 감사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송 : 어렸을 때는 마냥 힘들었어요. 운동하는 것도 숙소 생활도, 선배와의 관계도요. 그래서 하루라도 빨리 그만두고 싶었어요. 스물다섯 살에 은퇴하는 걸 목표로 삼았었죠. 20대 후반부터 배구에 대한 새로운 눈이 떠지더라고요. 재미있었어요. 배구를 통해 이루고 싶은 것도 많았고요. 가끔은 이런 생각을 해봐요. 내가 배구를 안했더라면 뭘 하고 살았을까 하고.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더라고요. 배구 선수가 최선의 길이었던 거죠. 감사해요. 죽을 때까지 배구를 통해 누린 걸 잊지 않고 베풀며 살고 싶어요.
한유미는 은퇴 후의 삶에 대해 정확한 로드맵을 세우지 못했다. 당분간은 여행을 다니며 재충전의 시간을 갖고 싶다고 말한다. 한송이는 “언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얘기를 들려준다. 어떤 길을 선택해도 잘해낼 사람이기 때문이란다. 배구로 함께 걸었던 자매의 길. 이제 언니는 코트를 떠나 상대팀 선수가 아닌 동생인 한송이를 부담 없이 응원할 수 있게 됐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
“저 돌싱녀 아니에요” 한유미 루머에 억울 “아직도 제가 결혼해서 이혼했거나 파혼당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더라고요.” 한유미가 인터뷰 도중 목소리를 높였다. 2012년 결혼을 전제로 만난 남성은 있었지만 당시 은퇴를 발표하면서 결혼과 함께 은퇴했다고 알려지는 바람에 한유미는 졸지에 ‘돌싱녀’가 되고 말았다며 억울해 한다. “그때 만난 사람이랑 헤어졌어요. 당연히 결혼은 하지 않았고요. 파혼당한 것도 아닙니다. 그냥 만나다 헤어졌을 뿐인데 엄청난 소문이 퍼졌더라고요.” 한유미는 현재 남자친구가 없다고 한다. 혼자 사는 삶을 즐기고 있고 결혼의 필요성을 절감하지 못하는 터라 당분간은 혼자 지낼 것이란 얘기도 덧붙였다. 반면에 한송이는 남자친구가 있다. 예능 프로그램 ‘우리 동네 예체능’에 출연했다가 인연을 맺은 배우 조동혁과 공개 열애 중이다. “여전히 지금도 잘 만나고 있어요. 처음에는 맞춰가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느끼기도 했지만 지금은 서로를 이해해주는 폭이 넓고 깊어 편안하게 만남을 이어가고 있는 것 같아요. 오빠의 직업 때문에 선입견을 갖는 분들도 있지만 굉장히 진중하고 이해심이 많은 사람이에요. 결혼이요? 아직은 좋은 감정으로 만나고 있다는 말씀만 전해 드릴게요(웃음).” [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