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으로 타이밍 잡고 적극 스윙” 기다리는 타자 신수가 달라졌어요
2018시즌 스프링캠프가 시작된 후 추신수의 최대 화두는 레그킥 적응 여부였다. 시범 경기에 출전할 때마다 조금씩 변화를 주며 자신만의 방법을 찾아가고 있는데 경기에 출전하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타격감을 찾는 데 도움이 되고 있다. 기존의 타격폼을 유지해도 자신의 커리어를 쌓는 데 별다른 문제가 없었을 테지만 추신수는 안주하기보다는 도전을 택했고, 그 결과를 내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 감독도 인정하는 추신수의 가치
9일(한국시간) 미국 애리조나 주 서프라이즈 스타디움에선 매일 아침마다 텍사스 레인저스 제프 배니스터 감독의 인터뷰가 진행된다. 스프링캠프 훈련을 앞두고 반복되는 기자들과의 만남이다. 이날 MLB.com의 T.R.설리반 기자는 배니스터 감독에게 추신수 관련된 질문을 건넸다. “감독은 추신수를 어느 타순에 배치하는 게 제일 적절하다고 생각하느냐”란 내용이었다. 배니스터는 망설임도 없이 “추신수는 대단한 타자”라고 답을 하며 “추신수는 어느 타순에 집어넣어도 좋은 타격을 한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우리 팀에서 추신수가 얼마나 가치 있고 의미 있는 활약을 펼치는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구단 밖에서는 그가 충분히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홈런이 많은 타자가 아니다. 그러나 출루율이나 상대 투수를 상대하는 능력에다 두 자릿수 홈런을 때리고 높은 비율로 득점을 기록하는 걸 보면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추신수의 가치가 너무 저평가됐다고 생각한다.”
2013년 12월, 텍사스와 7년 1억 3000만 달러에 계약한 추신수는 4년간 469경기에 출전, 타율 0.259 출루율 0.358 장타율 0.420 64홈런 217타점을 기록했다. 2016년 네 차례 부상자명단에 오르며 48경기에 출전했는데 텍사스 현지 언론에서는 추신수가 비싼 몸값에 비해 성적이 저조하다는 이유로 트레이드시켜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배니스터 감독은 이런 여론을 거론하며 추신수의 가치가 저평가됐다고 말한 것이다.
# 레그킥 장착, 추신수의 새로운 도전
추신수는 레그킥으로 인해 스프링 캠프에서의 훈련량이 두세 배는 늘어났다. 한번 배팅게이지에 들어가면 좀처럼 나오지 않고 훈련에만 열중하는 스타일이다.
“매일 생각하는 부분이 있다. 하루는 다리에 집중했다가, 또 하루는 손에 집중하는 부분이다. 어떤 게 나한테 맞는지 알아가는 단계인데 오늘 같은 경우에는 다리를 드는 것보다 방망이를 들고 있는 손에 더 신경 썼다. 그래서인지 다리도 자연스럽게 올라가는 것 같고, 다리에만 집중하는 것보다 공을 더 잘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시범경기 초반만 해도 타석에서의 추신수는 그답지 않게 허둥대는 모습을 보였다. 공을 제대로 보지 못했고, 타격폼에 신경 쓰느라 투수와의 싸움이 아닌 타격폼과 싸우는 일이 발생했다. 그러나 2월 26일(한국시간) LA 다저스와의 원정 시범경기를 기점으로 타석에서의 추신수는 조금씩 편안해 보이기 시작했다. 그도 “첫 두 경기에 비해 한결 편안하게 타석에 임하고 있다”는 얘기를 전했다.
“타석에서 아무 생각 없이 얼마나 투수의 공에 집중할 수 있느냐가 제일 중요한 것 같다. 시범경기를 치를수록 그런 부분이 잘 되고 있는 것 같아 다행이란 생각도 든다.”
# “공을 골라내기보단 적극적으로 스윙할 것”
타격폼에 변화를 준 이후 추신수는 타석에서 굉장히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공을 기다리는 데 익숙했던 그가 들어오는 공에는 과감히 방망이를 갖다 대고 있는 것. 그 배경에는 손으로 타이밍을 잡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손으로 준비가 돼 있는 상황에서 공이 들어온다 싶으면 바로 방망이를 휘두른다. 미세한 차이지만 손으로 타이밍을 잡게 되니까 타석에서 좀 더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것 같다. 다리를 들게 되면서 이 부분이 가장 큰 변화를 이뤘다.”
추신수는 시범경기에서의 성적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그래서 다양한 방법을 시도해볼 수 있다고 말한다.
“마이너리그 선수들은 감독, 코치 눈에 들려고 시범경기에서 최선을 다해야 하지만 이미 주전으로 뛰는 선수들은 시즌 개막 전까지 최상의 몸 상태를 만들며 부족한 부분을 채우려 노력한다. 그래서 마이너리그 선수가 빅리그 로스터에 들어가는 게 하늘의 별 따기 만큼 어려운 것이다.”
# 토론토로 떠난 오승환, 그를 바라보는 시선
현재 메이저리그 스프링캠프에서 활약 중인 한국인 선수는 4명이다. 추신수를 비롯해 오승환(토론토 블루제이스), 류현진(LA 다저스), 최지만(밀워키 브루어스)인데 최지만은 캠프 이후 메이저리그 잔류가 불확실한 상태이다. 이대호, 황재균, 박병호, 김현수, 강정호가 활약했던 메이저리그가 한순간에 정리되면서 지금은 추신수, 오승환, 류현진만 남았다.
추신수는 “한국 선수가 많았을 때는 팀 동료들에게 후배들 자랑을 하며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받았는데 지금은 모두 한국으로 돌아간 터라 다소 아쉬움이 있는 건 사실”이라면서 “후배들이 더 많은 준비를 해서 미국에 오길 바란다. 경험만을 위해 메이저리그에 가는 게 아니라 경쟁에서 이기고 생존하겠다는 각오로 도전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추신수가 오승환과 한 팀에서 뛰고 싶어 했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 미국에서 야구하는 동안 한국 선수와 한 팀에서 뛰는 걸 그리워했던 추신수는 텍사스 단장이 오승환과 계약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부탁했을 때 거부감 없이 적극 나설 수 있었다. 그러나 오승환의 메디컬 테스트에서 팔꿈치 염증이 나타나자 계약 내용 수정을 요구한 텍사스의 태도에 반감을 산 오승환이 계약 무효를 선언하는 바람에 추신수의 바람은 현실로 이뤄지지 못했다.
“상당히 아쉬웠다. 친구랑 함께 야구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그보다 더 큰 건 승환이가 우리 팀에 꼭 필요한 선수였기 때문이다. 구단과 선수의 비즈니스 부분은 내가 관여할 게 아니지만 여러 가지 면에서 미련이 남는 상황이었다.”
오승환은 애리조나에서 토론토 블루제이스 스프링캠프가 있는 플로리다로 떠날 때 추신수에게 따로 연락해 자신의 상황을 먼저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추신수는 해마다 나오는 트레이드 얘기로 한때 스트레스가 심했다. 내부 사정을 잘 모르는 이들이 트레이드설을 흘리며 그를 흔들려고 했지만 추신수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3월 9일 현재, 추신수는 시범경기에서 4경기 연속 안타를 터트리며 타율 0.438을 기록 중이다. 시범경기 성적이 중요하지 않다고 해도 연속 안타와 홈런이 터지면 자신감이 붙는 게 인지상정. 지금까지 추신수의 2018시즌은 순항 중이다.
미국 애리조나=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
‘남다른 인연’ 이치로를 보는 추신수 “야구 열정만큼은 정말 존경” 3월 8일 애리조나 피오리아 스포츠콤플렉스에서는 45세 나이의 스즈키 이치로의 시애틀 입단식이 열렸다. 2012년 시즌 중반에 뉴욕 양키스로 트레이드 됐다가 이후 마이애미 말린스에서 활약했던 이치로가 친정팀 시애틀로 돌아온 것. 이치로의 시애틀 복귀 소식이 알려지자 추신수도 관심을 나타냈다. 먼저 그 나이까지 선수 생활을 이어가는 이치로가 대단하다고 말문을 연 추신수는 “일정한 경기력을 보이려면 많은 것들을 참고 견뎌내야 한다”면서 “이치로는 그 과정을 선수 생활을 이어가는 걸로 보여주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치로와 추신수는 시애틀 매리너스에서 함께 뛰었다. 루키부터 단계를 밟아가다 4년 만인 2005년 빅리그에 데뷔했지만 추신수 앞에는 같은 왼손 타자에 같은 포지션인 우익수 이치로가 버티고 있었다. 이치로가 있는 한 추신수가 주전으로 뛰긴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었던 것. 이후 추신수는 클리블랜드로 트레이드 되며 앞길이 열렸고, 신시내티를 거쳐 텍사스 유니폼을 입은 메이저리거 추신수로 거듭났다. 당시 추신수한테 이치로는 태산 같은 존재였다. 서로 영어가 서툴다 보니 가까이 지낼 만한 기회가 없었다고 한다. 자신의 루틴을 철저히 지키며 클럽하우스의 또 다른 ‘섬’처럼 지내는 이치로에게 다가갈 엄두도 나지 않았다는 것. “다른 건 몰라도 이치로의 야구에 대한 열정만큼은 존경한다. 45세의 나이에 메이저리그에서 야구를 계속하고 있을 거라곤 상상조차 못했다. 무엇보다 그가 다시 인연을 맺은 팀이 친정팀인 시애틀 매리너스란 점에서 놀랍기만 하다.” 추신수는 시애틀에서 클리블랜드 이적 후 처음 출전한 경기에서 운명처럼 시애틀을 만나게 된다. 클리블랜드 유니폼을 입고 출전한 첫 번째 경기 상대가 시애틀 매리너스가 되리라곤 상상조차 못한 일이었다. “마음 한구석에는 시애틀이 날 클리블랜드로 보낸 데 대한 서운한 마음이 존재했던 것 같다. 그 경기를 앞두고 간절히 기도했었다. 제발 이 경기에서 안타라도 하나 치게 해달라고. 8번 타자였고, 시애틀의 선발 투수는 한창 잘나갔던 펠릭스 에르난데스였다. 겉으로는 상대가 안 되는 투타 대결이었다. 그런데 내가 펠릭스 에르난데스를 상대로 메이저리그 데뷔 첫 홈런을 때려낸 것이다. 홈런을 치고 베이스를 돌며 만감이 교차했다. 드라마 같은 일이 벌어지는 바람에 홈런의 의미가 매우 깊었다. 경기 후 아버지랑 통화했는데 야구 시작하고 처음으로 큰 칭찬을 받았다. ‘오늘 정말 야구 잘했다’라고 말이다.” 50세까지 야구하고 싶다는 의미에서 등번호를 ‘51’번으로 달고 뛰는 이치로는 시애틀 입단식에서도 다시 한번 “50살까지 야구하고 싶다”는 말로 자신의 의지를 천명했다. 그러나 이치로의 현실은 주전보다는 대타 출전의 가능성이 높다. 그는 “이전에는 매일 경기에 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선발 출전 여부를 알 수 없게 된다. 그걸 인식했을 때 가슴이 정말 아프다”는 말로 자신이 처한 상황을 설명했다. 45세 이치로의 선수 생활 연장이 모든 이들의 환영을 받는 건 아니다. 일부에선 개인주의적인 사고방식과 후배들을 배려하지 못하는 처사라고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는 이들도 있기 때문이다. [영] |